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5)
신마의선-246화(245/500)
신마의선 (246)
산서성과 호북성을 가르는 거대한 산줄기, 태행산맥(太行山脈).
산맥의 서쪽은 산서라 불렸으며 동쪽은 산동이라 칭하였다.
산동 지역은 본래 습지가 매우 많아 수많은 도적 무리가 들끓었다.
수호전에 언급된 양산박이 대표적이었다.
지금은 습지가 줄었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적 떼는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었다.
단지 수적에서 산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나 산동의 광활한 평야 지대와 서쪽의 바다는 풍부한 물산을 자랑했고, 북쪽으로 치우쳐 동서를 가로지르는 황하(黃河)는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만큼 녹림이 활개를 치기 좋은 곳이었다.
강줄기를 따라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강상 포구.
그중 하정포라 불리는 마을 역시 한때는 녹림의 산채 중 하나였던 강룡채의 근거지였다.
원래는 수적 집단인 장강십팔채의 영역이었으나, 그들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녹림이 그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주인을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빈 유령 마을에 불과했다.
녹림이 일제히 철수했기 때문이다.
그 하정포 어귀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빛을 지닌 풍채 좋은 중년인과 헌앙한 기상이 출중한 청년.
한눈에 봐도 부자지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은 외모가 매우 닮아 있었다.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언과 그의 유일한 후계자인 황보경이었다.
황보언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너는 돌아가도록 해라.”
“아버님!”
“여기까지 오며 내가 했던 말들을 잊지 마라.”
아버지의 준엄한 눈빛을 마주한 황보경이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황보언의 눈썹이 꿈틀했다.
“만약 내가 잘못되면 누가 세가를 이끈단 말이냐.”
황보언의 질책에 황보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잊지 말라 하셨던 그 말씀들……. 설마 그것이 유언이셨습니까?”
침묵하는 황보언을 황보경이 설득했다.
“차라리 저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본 가의 무력을 총동원하여 맞서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무림맹이 저희와 뜻을 함께한다면…….”
황보언이 한숨을 흘리며 아들의 말을 잘랐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버님. 대체 뭘 숨기시는 겁니까? 그 서찰이 대체 무엇이기에?”
황보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만약 내가 잘못된다면 넌 영원히 서찰의 내용에 대해 몰라야 한다. 그러니 당장은 알려고도, 훗날 알아내려 하지도 말아라.”
“아버지…….”
“가라. 가주로서의 명령이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황보경이 결국 억지로 신형을 돌려세웠다.
아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황보언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버려진 산채에 도착했다.
두꺼운 나무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보강토를 더해 옹벽을 쌓은 목책.
그 중앙의 입구로 들어서자 낡은 평상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작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셨어요?”
인기척을 느낀 단악선이 차를 내려놓으며 반색했다.
반면 주위를 둘러보던 황보언은 눈살을 찌푸렸다.
“만용이냐?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네?”
영문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황보언은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신마삼존 중 한 명 정도는 호위로 따라왔을 거라 생각했거늘…….’
고작 어린애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그토록 긴장했다니.
그로선 다소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말없이 단악선을 응시하던 황보언이 이내 평상 한쪽에 걸터앉았다.
단악선이 찻잔에 차를 따라 그에게 건넸다.
“인사가 늦었어요. 저는 단악선이라고 해요. 그날 장례식에서 뵈었었죠?”
단악선이 이립의 장례식을 언급하자 황보언이 멈칫했다.
그러기를 잠시.
“그 서찰을 가지고 있다고?”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황보위안이라는 분이 지니고 계시던 무공 구결 말이죠? 칠절마군에게 전달했던.”
“……!”
“나중에는 증거 인멸을 위해 태워 없애려고 했고요.”
상대가 서찰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넌지시 떠보던 황보언의 얼굴이 그대로 구겨졌다.
용모파기를 이용해 이미 연락책의 신원까지 특정했다면 감추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아이의 신변을 현재 너희가 구속하고 있느냐?”
황보언의 물음에 단악선은 그저 모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답하기 싫다면 다른 걸 묻지. 그 서찰을 지금 지니고 있느냐?”
“그렇다면요?”
“내게 다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물건이다.”
“누구를 위해서죠?”
“본 가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제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황보언의 눈빛이 한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그래도 그는 나름 명문 정파를 자부하는 세가의 책임자였다.
아무리 당금 강호에 신마의선의 명성이 대단하다 한들 유구한 그들의 역사와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지금 상황이 자존심 상했다.
하다못해 협상의 대상이 혈수존자나 망산초자, 빙옥선자만 되었어도 지금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기를 애써 억누르며 황보언이 입을 열었다.
“나를 불러낸 목적이 있을 터. 원하는 걸 말해라.”
“의외네요.”
“……?”
“저를 어르거나 협박해 서찰을 내놓으라 강요하실 줄 알았거든요.”
황보언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체 나를 뭘로 보고…….”
어이없고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황보언이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긴. 또 모르지. 궁지에 몰리면 어떤 짓을 하게 될지.”
수궁즉설(獸窮則齧)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곤경에 처하면 살기 위해 무슨 짓도 서슴지 않는 건 짐승이건, 사람이건 마찬가지였다.
물끄러미 황보언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노단양. 우리는 그 사람을 찾고 있어요.”
“우리?”
쿠웅.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황보언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가 들어섰던 산채의 입구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망산초자!”
범계위였다.
“그나마 뼛속까지 썩어 빠진 위인은 아니었군.”
“……!”
반대쪽에서 들려온 음성에 황보언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 장쯤 떨어져 있는 곳.
목책을 지탱하고 있는 옹벽에 기대어 서 있는 초악량을 발견한 황보언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혈수존자까지…….’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저들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그제야 자신을 앞에 두고 단악선이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쳇. 아깝군. 모처럼 제대로 몸 좀 풀어 보나 했더니만.”
뭐가 그리 아쉬운지 범계위가 입맛을 다셨다.
단악선이 품속에서 반쯤 탄 서찰을 꺼내 든 것도 그때였다.
“제가 가주님을 뵙자고 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막기 위해서예요. 만약 이 기회를 놓치신다면 분명 후회하실 거예요.”
“후회?”
황보언이 단악선을 노려봤다.
“그 말인즉슨 무위가 공식적으로 우리 세가……. 아니, 무림맹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하겠다는 뜻이냐?”
“아니요.”
“……?”
“무위가 아니라 전 무림이죠. 그 대상은 무림맹이 아닌, 황보세가로 한정될 것이고요.”
“뭐라? 그게 무슨…….”
“이 서찰의 내용이 개방을 통해 공표된다면 무림맹이 황보세가와 운명을 함께할 것 같으세요?”
“……!”
말을 잇지 못하는 황보언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 말대로였다.
제갈연이라면 필시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무림맹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자신들과 선을 그을 터.
오히려 자신들을 배신자로 몰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모용세가가 먼저였어요.”
“뭐?”
황보언의 반문에 단악선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귀가의 사람에 앞서 제갈연과 노단양 사이를 오갔던 연락책 말이에요.”
“…….”
“그 사람은 이미 죽고 없어요. 그를 대신해 황보세가에 다음 역할이 주어진 것이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대답을 하지 못하는 황보언을 대신해 단악선이 말했다.
“제갈연이 원하는 건 공범이에요.”
“……!”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필시 자신이 믿는 심복을 시켰겠죠.”
황보언이 입술을 짓씹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진실은 참으로 뼈아팠다.
“칠절마군과 엮인 이상 가주님은 제갈연의 손아귀를 절대 벗어날 수 없게 되었어요. 이번에 황보위안이라는 분이 사라졌으니 다음은 다른 세가의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죠. 어쩌면 모용세가 이전에 다른 세가에서 그 역할을 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
“제갈연은 칠절마군이 언급되는 순간, 황보세가와 잡았던 손을 놓는 데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이 서신이 무림맹주의 필체라고 해도 직접적인 물증은 아니니까요. 연구를 위해 남겨 두었던 마공의 구결이라 잡아떼겠죠. 치밀한 성격이니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게 분명해요. 칠절마군에 대한 지시는 말로 전달했을 테고요.”
황보언이 움찔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무림맹이 황보세가의 손을 놓는다면 누가 가장 기뻐할까요?”
“설마?”
“맞아요. 지금도 무위에서 때만 기다리며 이를 갈고 계신 분이 있죠. 제가 간신히 막고는 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예요.”
“악호군…….”
사실상 녹림은 피해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현 상황에서 무림맹의 지원 없이 황보세가 단독으로 녹림과 결전을 치르는 건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무위를 떠난 녹림이 산채로 흩어질지, 아니면 곧장 산동으로 집결할지는 오직 가주님의 선택에 달렸어요.”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황보언을 응시했다.
“이제 왜 제가 기회라 했는지 아시겠죠?”
황보언은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에 당장이라도 화병이 나 주화입마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거절해라. 제발 거절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범계위가 간절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고대하고 있었다.
뒤늦게 황보언의 시선을 깨달을 범계위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따가운 초악량의 눈빛에 범계위가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혹시 방금 내가 소리 내서 말했수?”
“아예 물그릇도 떠다 놓고 치성도 올리지 그러냐.”
초악량의 핀잔에 황보언은 돌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가 경계해야 할 적은 비단 녹림만이 아니었다.
이립의 장례식장에서 초악량과 범계위는 이미 흉수인 노단양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자에 대해 피의 복수를 천명한 상태였다.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한설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무위에 집결해 있는 사파의 고수들.
단악선의 말이라면 주저 없이 몸을 던질 그들의 존재도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황보언은 눈앞이 아찔했다.
뒤늦게 자신을 포함한 황보세가 전체가 더없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니, 이란격석(以卵擊石)이니 하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심각한 위기.
황보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황보위안이라는 분은 돌아가셨어요.”
“뭐?”
돌아가신 형님의 아들.
그에게는 큰조카가 되는 황보위안의 죽음에 황보언은 일순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단악선이 사실을 감추고 황보위안을 구속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그에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무림맹주가 스스로 진실을 밝힐 일은 없을 테니, 저만 입을 닫는다면 황보세가가 칠절마군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뜻이죠.”
“……!”
“이 정도면 제가 가주님께 기회를 드렸다는 걸 믿으실 수 있겠죠?”
그래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갈등하는 황보언을 향해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민을 덜어 드릴까요?”
“……?”
“저는 무림맹과의 일전이 두렵지 않아요. 다만 불필요한 희생이 싫을 뿐이죠.”
그 말에 황보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중얼거리는 범계위는 말할 것도 없었고, 서늘한 눈빛을 흘리는 초악량 역시 점차 농밀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비로소 황보언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아이가 저들을 막고 있는 것이었구나!’
단악선의 한마디면 그대로 풀려난 저 괴물들이 그야말로 끔찍한 혈풍을 몰고 다닐 터.
“방주님을 죽인 흉수와 협력자들에게만큼은 저 역시 이분들과 뜻을 함께할 거예요.”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한 황보언이 흠칫했다.
방금 전까지 서글서글하게 웃던 아이의 눈빛이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결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