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6)
신마의선-248화(246/500)
신마의선 (248)
밤이 깊어진 자시 말엽.
늦은 일과를 마무리한 뒤 처소로 돌아온 풍진성은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곧바로 서탁 앞에 앉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단악선의 빈자리를 메우는 일은 버겁지 않았다.
명성에 걸맞게 주초운의 의술은 매우 뛰어났고, 단악선에게 의술을 배운 의원들 역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본이 탄탄했다.
덕분에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풍진성은 서탁 위에 올려진 책자를 펼쳐 환자들의 상태와 치료 방법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단악선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임상 기록부터 확인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몸은 피곤해도 나름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 상세한 기록에 몰두하고 있던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스승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두냐?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며 아두가 들어섰다.
“밤이 깊었는데 왜 아직까지 깨어 있는 것이냐?”
풍진성의 물음에 아두가 배시시 웃었다.
“지나가다 스승님 처소에 불이 켜져 있어서요.”
뒤늦게 아두의 손에 들려 있는 다기를 발견한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잠을 쫓을 한잔의 차가 간절하던 참이었다.
“네 사형들도 이런 걸 좀 본받아야 할 텐데.”
풍진성의 농담에 아두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환자를 진료하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요. 종일 격무에 시달린 사형들에 비하면 제가 맡은 허드렛일은 아무것도 아니죠.”
“허드렛일이라니? 그리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너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말대로 환자를 응대하고 안내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아픈 몸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환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다루는 과정은 어지간한 정신력으로 버텨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의술을 배우기 위해 늦은 시각까지 노력하는 아두의 모습이 풍진성은 매우 기꺼웠다.
아두를 정식으로 제자로 들인 것도 그래서였다.
어깨너머로 어떻게든 의술을 익히려는 모습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싹싹하고 영민한 데다 심성도 올곧아, 제 사형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주변의 영향 때문이겠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단악선은 이미 출중한 의술을 지니고 있었고, 그보다 더 어린 주장명 역시 이미 아비의 뒤를 잇기 위해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늘 머무는 곳이 의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원의 길을 꿈꾸게 된 것이리라.
공손하게 찻잔에 차를 채우는 아두를 향해 풍진성이 물었다.
“최근에도 인시에 일어나느냐?”
“네.”
“그렇다면 잠이 부족하지 않으냐? 매일같이 축시에 접어들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 같던데.”
“전혀요. 오히려 잠자는 그 시간마저 아까울 정도예요.”
풍진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독종이구나.”
“예?”
“스스로를 몹시 지독하게 몰아붙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배우는 게 더딘걸요.”
“힘들지는 않고?”
“전혀요. 오히려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행복해요. 제가 이런 복을 누려도 되는지 가끔 불안해질 정도로요.”
진심이 느껴지는 아두의 대답에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이처럼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가 특별했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며 낭비하지 않는 자세.
남달리 배움이 빠른 이유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의원으로서 몫을 해내야죠. 그만큼 곡주님의 부담도 줄어들 테니까요.”
“거기까지 생각했더냐?”
풍진성이 아두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는 분명 좋은 의원이 될 것이다.”
멋쩍게 웃던 아두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를 놓칠 풍진성이 아니었다.
“왜? 내 말이 못 미더운 것이냐?”
아두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느냐?”
“그건…….”
머뭇거리며 대답을 망설이던 아두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무서워서요.”
“……?”
“문득문득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해요. 호사다마(好事多魔)니,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말처럼요. 어느 순간 갑자기 이 행복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서요.”
불안해하는 어린 제자의 모습에 풍진성은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물끄러미 아두를 응시하던 풍진성이 아두의 손을 감싸 쥐었다.
“혹시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소년등과요?”
“그래. 말 그대로 어려서 과거에 급제한 것을 뜻한다.”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아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빈곤(老年貧困)과 함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삼 대 원인으로 꼽히는 인생의 악재지.”
“어째서요? 어려서 급제를 하면 개인이나 가문에는 더없이 큰 영광 아닌가요?”
중년에 배우자를 잃는 것이나 늙었을 때의 가난은 그렇다 치고, 그게 어째서 인생이 불행해지는 원인이 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과거 송(宋)나라의 학자 정이천(程伊川)은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 말을 남겼다. 거기에 소년등과(少年登科) 부득호사(不得好死)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지.”
너무 일찍 과거에 합격하면 좋게 죽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옛사람들이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벼슬을 하거나 재물을 많이 얻는 등 성공하는 일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아두를 위해 풍진성이 설명을 이어 갔다.
“옛사람들이 이를 경계한 이유는 조금만 생각하면 명확해진다.”
인격이 성숙하기도 전에 출사하게 되면 자칫 오만과 편견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인격이 완성되기 전에 주어진 권력과 부는 그 자체로 더없이 위험한 독(毒)인 셈이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욕망에 휘둘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거둔 성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를 뿐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지.”
그로 인해 더 큰 성공에 욕심을 내며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 되거나, 성취감에 분수를 잃어 남에게 함부로 굴고 득의양양하다 미움을 받는다.
그러다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소년등과 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쏟아 내야 하는 언행이 많아지고 심신을 채울 시간은 부족해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관계만 넓히다 보면 바깥 세계는 커지지만 그만큼 내면은 비어 가는 법.
결국 교만하게 되고, 사리 판단에 무리가 따른다.
“일찍 큰 성취를 이루어 도달할 목표가 사라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작용 중 하나지.”
인생의 큰 목표 없이 표류하는 삶은 결국 주색잡기에 빠지거나 자신과 타인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권력욕에 사로잡히기 마련.
“그만큼 소년등과는 중년에 처를 잃고 홀아비가 되는 것이나 노년에 돈이 없어 겪는 고통에 견줄 만큼 큰 화근이다.”
“저, 그런데 스승님……?”
“응?”
“저는 소년등과와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는데요.”
풍진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바로 그거다.”
“네?”
“너는 반대로 어린 나이에 이미 충분한 불행을 겪지 않았더냐? 그것으로 액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가지고 앞서 걱정할 필요 없다.”
“아!”
뒤늦게 풍진성이 소년등과를 언급한 이유를 깨달은 아두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흠칫하며 풍진성을 바라봤다.
“왜 그러느냐?”
“아, 아닙니다.”
황급히 얼버무리는 아두의 모습에 풍진성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서 말해 보래도?”
“그, 그게…….”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풍진성의 눈빛에 아두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곡주님께서도…… 소년등과와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요?”
그 말에 풍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하고 말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단악선이었지만 지닌 의술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출중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금 강호에 지닌 영향력만 놓고 보아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무공 역시 마찬가지.
신마삼존 모두 한목소리로 입을 모아 공언할 만큼 명실상부 고수의 반열에 들어서 있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 정도 의술과 영향력, 무공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소년등과와 비견할 수 있는 성취였다.
그렇지만 아두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분 또한 너와 마찬가지로 일찍 불행을 겪으셨다. 조실부모(早失父母) 역시 그 무엇 못지않은 아픔이니까.”
그래서일까.
단악선은 소년등과 한 천재들이 으레 저지르는 경조부박(輕兆浮薄)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인내하며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 자중자애(自重自愛)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쪽이었다.
그때였다.
“그런데 곡주님 부모님께서는 왜 돌아가신 건가요?”
“……!”
난데없는 아두의 질문에 풍진성이 흠칫하며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오히려 아두가 당황할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그럼 편히 쉬십시오, 스승님.”
눈치 빠른 아두가 서둘러 인사를 올린 뒤 그대로 돌아갔다.
“…….”
아두가 사라지고 나서도 풍진성은 잠시 멍하니 앉은 채 자신만의 생각에 골몰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후우.”
긴 한숨과 함께 풍진성이 신형을 일으켰다.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서고를 향해 걸어간 풍진성이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 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서신을 응시했다.
너무 오래되어 낡고 바랜 서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서신을 조심스럽게 펼치자 눈에 익은 필체가 더없이 아프게 눈에 새겨졌다.
‘스승님…….’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읽은 서신이다.
그런데도 매번 읽을 때마다 지금처럼 가슴이 미어졌다.
―그 아이에게는 절대 알리지 마라.
특히나 유독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문장.
한참 동안 서신을 들여다보던 풍진성이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곡주님도 진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풍진성의 고민은 깊어졌다.
얼마 전, 우연히 나눈 능소밀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바트얼지라 스스로 이름을 밝힌 달자.
해남도로 돌아가던 벽화령을 습격하다 범계위에게 잡혀 온 놈이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혈운사 출신임에도 마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놈은 단악선을 암살하기 위해 독을 복용한 일반인을 살수로 보낸 전력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단악선을 방해하기 위해 곤륜 문하를 살해하고 공동 문하도 납치했다.
그랬던 그자는 정작 단악선에게 이렇게 저주를 퍼부었다고 했다.
―모두 네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니 그 책임을 통감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쳐라! 네 아비와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게다가…….
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단악선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했다.
―혹시 신의와 마의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이제는 단악선 역시 두 분 스승님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되었을 터.
아직 자신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잡아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교가 단악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 스승께서 남기신 유언은 그 의미 자체가 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무심코 창밖에 시선을 던진 풍진성이 깜짝 놀랐다.
얼마나 고민이 길었던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처마 끝에 걸려 있던 달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가는 능소밀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능 단주님? 어째서 이 시각에?”
풍진성과 시선을 마주친 능소밀이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의원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죠?”
“예? 그야 의원이니까요.”
“그럼 저를 못 보신 걸로 해 주십시오.”
“……?”
영문 모를 말에 풍진성이 의아해하는 사이 능소밀이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씩씩대며 걸어 들어오는 범계위의 모습 때문이었다.
“범 선배님? 벌써 돌아오신 겁니까? 그런데 왜 혼자십니까? 곡주님은요?”
풍진성의 질문에 범계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화산에 갔다.”
“지금 이 시각에요?”
“서둘러야 한대. 그래서 여기 오자마자 몇 가지만 챙겨서 바로 갔어.”
“그런데 선배님은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셋 중 한 명은 이곳을 지켜야 하니까.”
“한설화 선배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나 대신 단 의원을 따라갔어. 화산에는 자신이 꼭 가야 한다더라고. 단 의원도 동의했고.”
“초 선배님은요?”
“내가…… 졌어.”
“네?”
“제비뽑기에서 내가 졌다고!”
풍진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왜 그렇게 능소밀이 절박한 눈빛을 건넸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마도 제비는 능소밀이 만들었을 터.
지금 범계위의 분위기를 보니 평소에도 능소밀이 제비뽑기라면 학을 떼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