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7)
신마의선-249화(247/500)
신마의선 (249)
화산을 설명하는 수많은 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기험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이다.
오악 가운데 가장 기이하고 험하며, 그럼에도 천하제일의 명산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화산은 범인이 쉽게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남봉(南峯)에 해당하는 낙안봉(落雁峰)은 화산에서도 가장 높은 험지였다.
화산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봉우리 끝자락.
그 극정(極頂)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선풍도골을 연상케 하는 고아한 분위기의 노도사였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낙안봉 아래로 끝없이 밀려드는 운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문 사형.”
그를 부르는 음성에 노도사가 천천히 돌아섰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제의 모습에 진명진인이 쓰게 웃었다.
“사제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군.”
그 말에 진현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적벽의 청심홍매라 불리며 강호의 명숙으로 존경받는 그였지만 눈앞의 노도사 앞에서는 늘 언제나 철부지 사제였다.
“제발 좀 살려 주십시오, 장문 사형.”
천하오절 중 한 명이자 화산신검이라 불리는 당대 화산파의 장문인을 향해 진현진인이 푸념을 쏟아 냈다.
“사형께서 고희연을 취소하시는 바람에 기껏 어려운 걸음을 한 강호 동도들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진명진인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는 것은 나와도 안면이 있다는 의미일 터. 역정을 내거나 불만을 드러낼 사람들이 아닌데?”
하물며 개방 방주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자는 그의 진의를 모를 리도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면 다행이죠.”
진현진인이 울상을 지었다.
“그냥 본산 입구에 죽치고 있습니다. 화산의 절경을 감상 중이라고 둘러대면서요. 유람을 핑계 대고 있으니 저희도 딱히 축객령을 내릴 명분이 없어서 내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손님들이 하나같이 무림에서 명성 자자한 명숙들이라는 점이었다.
“허허, 그 사람들 고집도 참…….”
“어차피 한 번은 모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개방의 홍 장로도 방문첩을 보내왔습니다.”
“쾌수여의가?”
“무림맹에서도 방문첩을 보내왔고요.”
“으음.”
가슴까지 내려온 새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진명진인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이립의 장례식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사안.
각 문파에서 행방불명된 인물들의 명단을 공유하자 했기 때문이리라.
“알아봤는가?”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지만 진현진인은 곧바로 사형의 의중을 파악했다.
“세 명이었습니다. 풍 자 배의 이대 제자 한 명과 명 자 배의 삼대 제자 둘입니다.”
“그렇다면 셋인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
진명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을 정중히 안으로 모시게.”
“알겠습니다. 소란스럽지 않게 준비하겠습니다.”
속속 화산파의 산문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구대문파 내에서도 높은 명성과 직책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상중인 개방을 위해 예정되어 있던 고희연을 철회한 진명진인이었다.
그런 그를 존중하는 의미로 번잡스럽게 많은 인원을 보내지 않고 의사 결정권을 지닌 최소한의 인원에 소수의 수행 제자들만 딸려 보낸 것이다.
화산파 역시 대대적인 연회 대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장문인인 진명진인이 직접 산문에 나와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성의를 보였다.
“화산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홍적문이 건넨 인사에 진명진인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여전히 홍적문은 상복을 벗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걸음 하셨소. 가뜩이나 바쁠 터인데…….”
“아직 새로운 방주 자리가 공석인지라 부득이하게 제가 대신 참석했습니다.”
“노도가 참으로 염치가 없구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우리 거지들이야 어디가 되었든 잔치가 열리길 바랍니다. 그래야 얻어먹을 게 조금이라도 더 많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굳이 청승맞게 초상집 분위기 내지 마시고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말을 전하러 온 것입니다.”
홍적문의 너스레에 진명진인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직접 이곳에 온 홍적문의 성의를 아는 까닭이다.
“그러시다니 안으로 드시지요.”
평소의 친분을 떠나 개방의 방주를 대신해 온 홍적문이었기에 진명진인은 한껏 예의를 갖추었다.
“그래야지요. 거지가 잔칫집에 왔는데 어찌 음식을 마다하겠습니까.”
호탕하게 웃은 홍적문이 화산 제자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각파의 주요 인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손님들이 화산에 들어섰다.
진명진인 곁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던 진현진인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장문 사형, 혹 기다리는 손님이 계십니까?”
“그리 보였나?”
사제의 질문에 머쓱한 웃음을 흘리던 진명진인의 얼굴이 환해진 것도 그때였다.
산문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단악선 일행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진명진인의 환대에 한설화가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벌써 칠순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군.”
“허허. 참 야속한 녀석이지요.”
“……?”
“빈도에게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놈이 선자만큼은 비껴가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세월을 두고 건넨 진명진인의 농담에 한설화가 씁쓸하게 웃었다.
“복이라는 게 달리 있는 게 아니지.”
천수를 온전히 누리는 그가 한설화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진명진인이 그제야 한설화 뒤에 서 있는 단악선과 초악량을 향해 시선을 건넸다.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뜻 자신을 환영하는 진명진인의 모습에 초악량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마주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친히 산문 안으로 안내하는 진명진인을 따라 일행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네요.”
화산에서의 이번 회합에 대해 홍적문이 미리 알려 왔기에 서둘러 달려온 단악선이었다.
홍적문이 전한 전언에는 제갈연도 이 자리에 참석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이게 누구신가?”
“오오! 단 의원!”
산문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연판장을 받는 과정에서 안면을 텄던 구대문파의 인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인사를 건네 왔기 때문이다.
한데 분위기가 나름 묘했다.
대부분은 단악선을 환영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반면, 청성파의 인물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나 몇몇 인물은 단악선과 동행한 초악량의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공동파 역시 애써 초악량을 외면하느라 바빴다.
“허허, 도가제일의 성지인 이곳 화산에 십대악인의 수좌가 당당히 걸어 들어 오다니.”
그중 누군가가 불만 섞인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산은 중화의 상징과도 다름없었다.
중원의 중(中)과 화산의 화(華)를 합친 말이 중화(中華)였기 때문이다.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
그들은 하나같이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삼백 리 안에서 터를 닦았고, 이들로부터 한민족의 모든 역사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산이 중화 민족의 뿌리라는 말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중원 천하를 통일한 황제는 반드시 화산에 오르거나 화산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만큼 화산은 당금 무림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초악량은 그 말에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자들과 말을 섞어 봐야 격만 떨어지는 것이다.
“거, 적당히 좀 하쇼. 그게 다 주인장 체면 깎는 소리라는 걸 왜 몰라?”
“……!”
홍적문의 핀잔에 불만을 터트렸던 청성파의 인물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말대로였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진명진인이 직접 안내를 자처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손님인 자신들이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큰 실수고 실례였다.
“홍 장로님!”
홍적문을 발견한 단악선이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미리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홍적문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자, 앉아라. 먼 길 오느라 고생했을 테니 일단 배부터 채워라.”
자신 앞에 놓인 음식들을 밀어 주는 홍적문의 모습에 단악선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악선이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그때였다.
음식 일부를 따로 덜더니 그 위에 젓가락을 꽂은 것이다.
사잣밥이라 불리는 도두반(倒頭飯)이었다.
음식 위에 꽂은 젓가락은 타구봉(打狗棒)이라 하여, 저승길에 개가 밥을 빼앗으려 하면 때려서 쫓아내라는 의미였다.
중인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래도 명색이 화산파 장문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불길하게 도두반이라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을 뒤늦게 깨달은 단악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습관이 되어서 그만…….”
반면 홍적문은 감동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방주님을 위해 매번 이리 해 왔던 것이냐?”
“네…….”
뒤늦게 단악선의 진의를 깨달은 명숙들이 저마다 탄성을 흘렸다.
“그렇다면 이게 빠져서는 안 되겠지.”
턱.
누군가가 이립을 위한 도두반 앞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앞서 도착해 있던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명숙들이 저마다 이립이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을 도두반 앞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적문이 붉어진 눈시울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영 헛산 건 아니었던 모양이오, 방주.”
장내에 일순 숙연함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과 한설화의 시선이 마주쳤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존재감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문 아래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화산파의 제자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언젠가 무한에서 본 적이 있었던 삼대 제자.
매화검수를 이끄는 매화총검(梅花總劍), 명검이었다.
명검은 곧장 진명진인을 향해 예를 갖춘 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림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소림에서?”
진명진인의 반문에 명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것도 뜻밖이었는데, 명검의 입에서 더욱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소림의 방장이신 법연 스님께서 계율원주인 법료 스님과 함께 이곳을 찾으셨습니다.”
웅성.
사람들 사이로 작은 소요가 번져 갔다.
바로 법료라는 법명 때문이었다.
진명진인, 그리고 초악량과 더불어 당금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 알려진 천하오절.
걸어 다니는 장경각이라는 의미를 지닌 보장경(步藏經)이 바로 법료였다.
소림의 최고 고수라 알려진 법료가 숭산을 내려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천하오절 중 셋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니 중인들의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마대전 이후 모습을 감춘 신비문파인 이화궁(李花宮).
그곳의 궁주인 월령궁주(月靈宮主) 연옥상과 주광도귀(酒狂賭鬼)라는 별호만큼 기행을 일삼다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강위룡을 제외하면 천하오절 모두가 모인 것이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중인들의 양해를 구한 진명진인이 산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진명진인의 안내를 받아 장내로 들어서는 두 명의 승려가 있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위의 선명한 계인.
거기에 이조 혜가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승포를 걸친 노승은 당금 소림의 방장인 법연이었다.
그리고 공손한 태도로 그 뒤를 따르는 장대한 체구의 승려가 바로 법료였다.
“이로써 중원 삼대권사가 모두 모인 것인가?”
누군가의 말에 홍적문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어쩌다 보니 함께 엮였고, 말이 좋아 삼대권사지 애초에 초악량과 자신 사이에는 무엇으로 메울 수 없는 무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료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
눈빛과 기도만 보더라도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어?’
반면 초악량은 내심 당혹성을 삼켰다.
선장을 짚으며 나타난 법료의 등 뒤로 그에 못지않게 크고 길쭉한 무언가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꺼운 천으로 감싸고는 있었지만 초악량은 단번에 그 물건의 정체를 깨달았다.
범계위의 성명병기인 대초자곤이 분명했다.
단악선 일행에게 돌려주기 위해 가져온 것이리라.
‘저게 그 자식 손에 돌아가면 당장 비무를 하자며 달려들 텐데…….’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초악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