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8)
신마의선-232화(248/500)
신마의선 (232)
범계위의 서슬 퍼런 눈빛을 마주한 제갈연이 움찔했다.
이는 세가의 가주들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디찬 눈빛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온몸이 그대로 서걱서걱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초악량과 범계위가 뿜어 대는 살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전율스러웠다.
그나마 그들 중 유일하게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극만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태연히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한편 이립의 시신 앞에서 단악선은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숨죽여 오열하는 단악선의 모습을 지켜보는 홍적문의 눈에도 어느새 뿌연 습막이 차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틀거리며 일어난 단악선이 이립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곤 다시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홍적문이 입을 열었다.
“보여 줄 것이 있다.”
홍적문이 이립의 시신을 덮고 있던 무명천을 거두었다.
“너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홍적문이 무엇을 부탁하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검시(檢屍)를 부탁하고 있었다.
홍적문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단악선만큼 경험이 많고 눈썰미가 뛰어난 의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의원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단악선이 이립의 시신을 자세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
이립의 온몸에 새겨진 참혹한 흔적에 단악선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이립의 직접적인 사인은 교살(絞殺)이었다.
양팔과 다리뼈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힘줄과 근육 역시 잘리고 뒤엉켜 있었다.
흉수는 그렇게 이립을 무력화한 뒤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잔혹한 성정에 단악선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시를 이어 가던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마공이군요.”
“혹시 흉수를 짐작할 수 있겠느냐?”
단악선은 대답 대신 더욱 자세히 이립의 몸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움켜쥐듯 주먹을 거머쥔 이립의 왼손이었다.
이를 눈치챈 홍적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을 해 봤지만 펼 수가 없더구나. 얼마나 원통했으면…….”
단악선이 이립의 주먹을 펴 보려 했으나 이미 사후 경직으로 인해 굳어진 뒤라 쉽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적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 의원이 왔소, 방주. 방주가 그렇게 좋아하던 단 의원이……. 지금 방주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단 의원이오.”
단악선도 달래듯 이립을 향해 말을 건넸다.
“저예요, 방주님.”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그래도 단악선은 말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감사했어요. 저를 위해 애써 주신 방주님의 마음……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그러니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투두둑.
단악선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이립의 주먹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멈추지 않을 것처럼 반복해서 천천히 이립의 주먹을 주물렀다.
강요하지 않고 마치 달래듯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던 이립의 주먹도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홍적문은 그 광경에 애써 눈물을 삼켰다.
“어지간히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홍적문과 달리 단악선은 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심상치 않은 단악선의 표정에 홍적문이 황급히 다가섰다.
“왜 그러느냐?”
“단서를 남기셨어요.”
단악선이 이립의 손바닥을 가리켰다.
이립의 손바닥을 확인한 홍적문이 흠칫했다.
최후의 순간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립은 손바닥에 흉수로 짐작되는 자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새겨 넣은 것이다.
그것도 손톱으로 피부를 찢으면서…….
이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먹을 움켜쥐어 그 흔적을 감추었다.
“끝까지…… 방주답군.”
단악선과 홍적문이 이립의 손바닥에 남겨진 글자를 확인했다.
칠(七).
그 순간 단악선은 흉수가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초 아저씨를 불러 주세요.”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향하던 홍적문이 복잡한 미소를 건넸다.
“고맙고, 또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아닌, 방주님 일인걸요.”
“언젠가 방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떤 말씀이요?”
홍적문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네가 무림의 희망이라고.”
잠시 후 홍적문을 따라 들어온 초악량이 와락 미간을 찡그렸다.
이립의 시신에 새겨져 있는 마공의 흔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흔적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혈라강기로구나.”
칠절마군 노단양.
그가 바로 이립을 살해한 흉수였다.
검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홍적문은 흉수의 정체에 대해 곧바로 공표했다.
“칠절마군이라면 십대악인 중 한 명인 바로 그자 아닌가?”
중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초악량과 범계위에게 모아졌다.
그들 역시 십대악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홍적문은 뚫어져라 제갈연을 응시했다.
이미 노단양이 제갈연과 연관이 있다는 정황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갈연은 태연히 홍적문의 시선을 받아 냈다.
“혹 소저께서는 아는 것이 있으시오?”
홍적문의 물음에 제갈연이 짐짓 난색을 드러냈다.
하나 홍적문은 직감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당황하거나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무언가 목적을 지닌, 지극히 의도적인 연출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걸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묘하게 말끝을 흐리던 제갈연이 중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칠절마군, 그자와 가장 관련이 깊은 인물이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 말과 함께 제갈연이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중인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청년 한 명이 멈칫했다.
한눈에 봐도 남궁백과 부자지간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수려한 이목구비와 진중한 분위기를 지닌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호였다.
남궁백이 폐관 수련을 들어간 관계로 그가 임시 가주로서 대리 직책을 맡고 있었고, 그래서 부친을 대신해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중인들이 술렁였다.
“그러고 보니 무림맹의 파사단을 그가 이끌었지.”
지금은 비록 해산했다지만 과거 파사단은 악명이 자자했다.
당황한 남궁호가 이내 분노한 눈빛으로 제갈연을 응시했다.
뒤늦게 부친에게 화살을 돌리려는 제갈연의 의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남궁호의 반문에 제갈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칠절마군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전 무림맹주셨죠.”
“지금 본 가와 흉수를 엮으려 하는 겁니까? 그자와 관계가 틀어진 건 전 무림이 다 아는 사실일 텐데요?”
발끈하는 남궁호를 향해 제갈연이 실소했다.
“소가주께서는 노단양이 어째서 전 무림맹주의 명령을 따라 파사단을 이끌었는지 알고 계신가요?”
“그건…….”
남궁호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그 역시 부친에게 들어 아는 사실이었지만 공개 석상에서 언급하기에는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중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제갈연의 말을 기다렸다.
십대악인이었던 노단양이 무림맹 소속이 되어 사파인들을 추살했던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 무림맹주셨던 남궁 대협은 정마대전 당시 입수했던 전리품으로 노단양과 거래를 하셨어요.”
중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반대로 남궁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 여세를 몰아 제갈연이 홍적문을 향해 질문했다.
“검시를 하셨으니 방주님을 살해한 흉수가 쓴 무공도 밝혀내셨겠죠?”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라강기였소.”
“그것 참 공교롭군요. 남궁 대협께서 노단양과 거래하기로 약조한 마교의 비급이 바로 혈라강기가 수록된 혈라진경이었거든요.”
“그 말이 사실이오?”
중인들 중 몇몇 사람이 묻자 제갈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대협께 확인하면 쉽게 밝혀질 사안을 두고 굳이 거짓말을 꾸며 낼 이유가 있을까요? 당장 저기 서 계시는 소가주님의 표정만 봐도 제 말의 진위는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반박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는 남궁호의 모습에 중인들은 제갈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이어진 제갈연의 말에 가뜩이나 격앙되어 있던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중원에 마교의 비급들이 떠돌고 있어요.”
놀란 중인들을 향해 제갈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 일이 진행된 지 이미 십 년이 넘었죠. 저와 무림맹은 오래전부터 이와 관련된 모종의 계략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곤륜파의 장문인인 광진도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중원에 마교의 비급이 퍼져 있다니!
눈에 불을 켜고 기련산만 노려보던 그였건만, 이건 눈 뜨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실이오?”
광진도장의 반문에 제갈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문파에 갑자기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몇몇 문파 수장들의 얼굴에 스치는 당혹감을 제갈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 마교에 귀의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때.
제갈연의 시선이 홍적문에게 향했다.
“개방도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아닌가요?”
홍적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께서도 이미 그에 대해 조사하고 계셨소.”
“그렇다니 흉수의 의도가 짐작되는군요. 아마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겠죠. 이와 같은 음모가 공론화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했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장내의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한 제갈연이 남궁호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하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우선은 남궁 대협과 칠절마군의 관계부터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이후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죠.”
말없이 상황을 주시하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지금부터는 돌아가신 방주님을 애도해도 될까요?”
제갈연의 행동이 불만스러웠던 단악선이 말했다. 하지만 제갈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고 보니 가장 조사가 시급한 곳은 따로 있었군요. 마공을 연성하다 주화입마에 빠진 녹림도. 무위에 머물고 있는 그에 대한 언급이 빠졌네요. 본 맹이 정중히 요청했으나 거기 계신 어린 의원님께서 신병 인도를 거절하셨던 그자 말이에요.”
단 몇 마디 말로 제갈연은 자연스럽게 중인들의 관심을 단악선에게 쏠리게 만들었다.
“어째서 마공을 익힌 자를 보호하는 거죠?”
제갈연의 물음에 단악선은 당당히 대답했다.
“의원인 제가 환자를 치료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더구나 이번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 건 무림맹만이 아니에요. 저희 쪽에서도 이미 독자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독자적인 조사 말인가요?”
“전 무림맹을 믿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보여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제가 무림맹의 요구에 따라야 하죠?”
단악선의 반문에 제갈연은 일순 당황한 듯싶었으나, 이내 태연한 신색을 회복했다.
“바로 무위의 특수성 때문이죠. 방주님께서 돌아가신 이상, 이 일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에요. 무림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어요. 한데 무위에서 그에 대한 조사가 가능한가요? 정파인들은 들어설 수 없는 금지인 그곳에서?”
제갈연이 비웃듯 단악선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