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9)
신마의선-247화(249/500)
신마의선 (247)
이어지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황보언은 저도 모르게 위축된 자신과 마주했다.
주도권이 완벽하게 단악선에게 넘어갔다는 문제는 둘째 치고 어느 순간부터 눈앞의 아이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을 종용하는 단악선의 눈빛은 그만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황보언은 생각했다.
단악선의 말대로 무림맹이 자신들의 손을 놓는다면?
‘멸문지화는 피할 수 없다.’
운이 좋아 가까스로 이를 모면한다 해도 성세는 이전 같지 않을 터.
만에 하나 무림맹이 도와준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저들의 손에 있는 이상 가장 먼저 공격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그가 빠져나갈 틈은 전무했다.
결국 마음을 굳힌 황보언이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무엇을 원하느냐?”
“아는 걸 전부 말씀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황보언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황보언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칠절마군이 제갈연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개방 방주의 장례식 이후에 알았다. 만약 그걸 알았다면 뻔뻔하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변명이 되지 못해요.”
“변명이 아니라…….”
“가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제갈연을 도와 협력하셨잖아요. 진실을 밝히는 대신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신 거죠.”
그 말에 황보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야말로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말없이 서 있던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궁지에 몰리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했었나?”
“…….”
“이미 자네는 충분히 궁지에 몰린 것 같군.”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황보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궁조입회(窮鳥入懷)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궁지에 몰린 새가 사람의 품으로 날아든다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힘든 상황에서는 적에게도 의지한다는 뜻.
“이미 녹림도 우리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네. 거기 하나 더 싣는다 해서 무위는 쉽게 가라앉을 배가 아닐세.”
초악량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하나 뱃삯은 제대로 치러야 할 걸세.”
흔들리는 눈빛으로 초악량을 응시하던 황보언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립의 죽음에 대해 나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그였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개방 방주의 장례식을 다녀온 이후였습니다.”
제갈연이 은밀하게 그를 찾아왔고, 밀담을 통해 칠절마군을 회유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 사실을 알고 바로 무림맹을 떠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녹림 때문이었다.
더구나 새롭게 무림맹의 적대 세력으로 급부상한 무위의 존재 역시 무림맹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연합하고 있는 다른 세가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먼저 등을 돌린다는 것은 철저한 고립을 의미했다.
“제갈연……, 그 여우 같은 계집은 칠절마군을 이용해 무위의 고수들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흥! 고작 노단양 따위로?”
범계위가 코웃음을 치자 황보언이 한숨을 흘렸다.
“직접 상대를 하지 않더라도 무위 근처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만으로도 선배님들을 그 안에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무엇보다 세 분께서 신마의선의 안전을 우선할 것이라면서요. 게다가…….”
찻잔을 들어 차로 메마른 입술을 적신 황보언이 말을 이어 갔다.
“노단양은 더 이상 과거의 칠절마군이 아닙니다.”
처음 혈라강기를 익혔을 때만 해도 놀라우리만큼 무위가 높아진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또 다른 마공을 하나 더 연성한 상태입니다. 이 속도로 계속 무공이 높아진다면 머지않아 천하오절에 근접한 수준이 될 것이라 단언하더군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피식했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만큼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복이나 재주를 모두 갖출 수는 없다는 뜻이다.
특히나 무공이 그랬다.
천 개의 초식을 익힌 자는 두렵지 않으나 한 개의 초식을 완성한 자는 경계하라 했다.
그런 격언이 있을 만큼 하나의 무공조차 제대로 끝을 보려면 평생의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했다.
고작 마공 몇 개 더 익혔다고 단번에 한계를 넘어 고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일반적인 무리고, 상식이었다.
“제갈연이 그런 헛소리를 지껄였단 말인가?”
물론 사무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그가 알던 노단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공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황보언의 말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극 역시 비슷한 말을 했었습니다.”
“모용극?”
초악량은 언뜻 장례식장에서 마주했던 그를 떠올렸다.
확실히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기도를 지닌 그였다.
그 정도 고수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면 확실히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었다.
‘무공에 대한 놈의 집념과 탐욕을 얕잡아 본 것인가?’
어쩌면 그 이면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때 황보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른 세가의 가주들이 제갈연과 노단양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비슷한 방식으로 모든 가주를 회유했을 수도 있겠군?”
“한 가지 확실한 건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극과 당가타주인 당령이 가장 적극적으로 제갈연을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약점만으로 압박하진 않았을 테죠?”
단악선의 물음에 황보언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라면 분명 회유책도 병행했을 텐데요? 어떤 조건을 내걸던가요?”
“훗날 무림맹이 강호의 중심에 서면, 다음 무림맹주는 우리 세가에서 나올 것이라고 넌지시 제안해 왔다.”
잠시 동안 말없이 황보언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칠절마군을 찾을 때까지 오늘 만남은 비밀로 해 주세요.”
황보언이 쓰게 웃었다.
사실 어디 가서 떠들어 댈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만약 수상한 동향을 발견하더라도 섣불리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서는 안 돼요. 그 자체가 내부의 적을 솎아 내기 위한 제갈연의 함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우리가 한배를 탔다는 것만 기억하고 계시면 돼요.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청할 테니 그때 저희와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말이 좋아 도움이지, 사실상 지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황보언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별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황보언이 돌아가자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이제 그 계집애를 칠 수 있는 거야?”
“네. 증인까지 있으니 구파일방과 협력하면 충분히 그녀를 무림맹주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 거예요. 개방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흑점을 통해서도 정보를 모으면 관련된 증거 역시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을 테고요.”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수고했다.”
무엇보다 황보세가의 가주를 설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당장은 아니에요. 아직 한 가지 조건이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조건?”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서늘한 눈빛을 흘렸다.
“모든 일에 앞서 칠절마군 그자를 붙잡는 게 우선이에요. 만약 우리가 섣불리 움직여 행보가 노출된다면 그자는 필시 종적을 감추고 숨어 버릴 테니까요.”
“으음…….”
뒤늦게 문제점을 깨달은 초악량이 미간을 찡그렸다.
“제갈연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죠.”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노단양의 정보를 움켜쥔 그녀가 이를 협상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구나. 칠절마군을 꾀어내려면 제갈연을 이용해야 할 테니까.”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그녀도 몸을 사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노단양을 추적할 방법이 없지 않으냐?”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
“새로운 연락책을 구하기 전까지는 노단양과 제갈연 모두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분명 공백이 생길 거예요. 그 상황을 이용해 노단양에게 미끼를 던지면 돼요. 아마 그로서는 결코 거부할 수 없을 거예요. 무공이 높아진 지금이라면 특히 더요.”
* * *
안휘제일 가문 남궁세가.
남궁백의 처소에 모인 남궁호와 남궁향 남매는 더없이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침울함을 금치 못했다.
이립의 장례식장에서 부랴부랴 돌아온 남궁호는 노단양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무림맹이 남궁세가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로 인해 남궁백은 폐관 수련마저 중단한 상태였다.
특히 남궁백은 며칠 전에 다녀간 홍적문으로부터 저간의 상황에 대해 전해 듣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다기를 사이에 둔 채 침묵하기를 잠시.
오랜 고민 끝에 무언가를 결심한 남궁백이 입을 열었다.
“한동안 세가를 떠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
“하지만…….”
동요하는 자녀들의 눈빛을 마주했음에도 남궁백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이 내린 결정을 번복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 없다. 그자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
남궁백이 세가의 총관인 단리웅풍에게 떠날 채비를 서둘러 달라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궁백의 처소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창천대주 시절부터 남궁백을 호위해 온 양불위였다.
“사냥을 떠나신다 들었습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궁백이 양불위를 향해 말했다.
“자네는 이곳에 남게.”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이 없는 양불위를 향해 남궁백이 희미한 웃음을 건넸다.
“만에 하나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저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네.”
“명령입니까?”
“아니.”
“……?”
“친구로서의 부탁일세.”
양불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처소 밖에서 단리웅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손님?”
남궁백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굳어졌다.
이 시기에 손님이라니.
썩 그리 달갑지 않았다.
특히나 청하지 않은 손님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단리웅풍의 말에 반색하며 밖으로 나섰다.
“무위의 단 의원님께서 가주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남궁백은 친히 정문까지 나가 단악선을 맞이했다.
단악선과 인사를 나눈 남궁백은 초악량과 범계위에게도 예의를 갖춰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적한 후원의 정자로 그들을 안내했다.
한잔의 차를 나누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길 잠시.
남궁백은 홍적문이 방문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당시 홍 장로에게도 말했지만 저는 어째서 그자가 마공을 익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미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초악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품속에서 타다 만 서찰을 꺼내 든 것도 그때였다.
“제갈연의 필체가 맞나요?”
“……!”
서찰의 내용을 알아본 남궁백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맹주 시절 천이단주인 그녀에게 보고서를 받아 왔기에 필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마공의 핵심 구결이 제갈연의 필체로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필사본을 만들었던 것인가…….”
남궁백이 무거운 얼굴로 침음했다.
아무리 그 나름대로 철저히 관리를 했다 자부해도 정보를 관리하던 제갈연은 언제든 비급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렸다.
“칠절마군이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제갈연이었고, 그 길로 사라졌습니다. 칠절마군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기에 미련 없이 떠난 것이군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종의 거래가 있었겠죠.”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남궁백이 입을 열었다.
“그가 나머지 마공을 모두 익히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겠군요.”
남궁백은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급의 관리가 소홀했던 점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제갈연을 천이단주에 임명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남궁백의 물음에 단악선이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우선은 암중에 숨어 있는 그자를 끌어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주님의 용단이 필요하고요.”
그 말을 이해한 남궁백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미끼가 되어 달란 뜻이군요.”
“노단양이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상대가 있다면 가주님이 유일할 테니까요.”
남궁백은 이립의 죽음에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다.
사달의 연유야 어찌 되었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의 결정으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남궁백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태의 시작이 저로 인한 것이니, 제가 결자해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