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
신마의선-25화(25/500)
신마의선 (25)
“운기를 해 보세요.”
단악선의 말에 한설화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눈을 감은 채 진기의 흐름에 집중하던 단악선이 번쩍 눈을 떴다.
“맞는 것 같아요. 한순간 기맥을 따라 움직이던 진기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졌어요.”
단악선이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구결을 벗어나 진기가 따로 움직이는 순간이 존재해요. 실제로는 심맥이 존재하지 않는 위치인데 의식이 억지로 진기를 이끄니 미묘한 괴리가 발생한 거죠.”
이번에는 범계위의 차례였다.
단악선은 같은 방법으로 범계위의 문제도 잡아냈다.
“음…….”
고심을 거듭하던 단악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았으니 근원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양의 영약이 필요해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올바른 기맥으로 진기를 유도해야 하는데, 실재 기맥은 오랜 시간 사용을 하지 않아 막혀있는 상태예요. 게다가 이미 기존의 심법에 몸이 적응한 상태고요.”
그리고 예시를 들었다.
“원래 존재하던 길은 언덕을 우회해 돌아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을 억지로 만들어 놓은 상황이죠. 덕분에 원래 길은 초목이 무성해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된 거고요. 언덕을 곧장 가로지르면 거리는 짧아지겠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면 그 부담은 훨씬 커지고요.”
“그럼 언덕을 돌아가는 원래의 길을 뚫어야겠네? 우거진 초목을 없애기 위해서 영약이 필요한 거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약 문제만 해결된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이때 한편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풍진성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지난번 곡주님께서 공청석유를 언급하셨을 때, 제가 어쩌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무림맹에 영약이 많습니다.”
“……!”
황실을 제외하면 중원 내에서 가장 많은 영약을 보유한 곳이 무림맹이다. 실제로 맹주의 막내딸을 치료하기 위해 쏟아붓는 영약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만약 곡주님께서 맹주의 막내딸을 치료하신다면 어지간한 영약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단악선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풍진성은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그 아이는 죽게 될 것입니다. 영약을 이용한 연명 치료도 한계에 이른 상태입니다.”
그 순간 범계위가 버럭했다.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한다고? 파사단 놈들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벌써 잊은 거야?”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범계위는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워졌다.
고개를 돌리니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못마땅해하는 초악량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 그게…….”
당황한 범계위가 버벅거리고 있을 때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범계위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산책을 하다가 마을의 사냥꾼과 만났었거든. 그가 알려 줬다. 아주 난리가 났었다며?”
“그랬었죠.”
단악선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범계위는 범계위대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한설화를 바라봤다.
위기에 빠진 순간 그를 도와준 사람은 뜻밖에도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가 전음을 날리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파사단을 박살 냈던 사실을 들키고 말았을 터.
그 순간 한설화에게 다시 한 번 전음이 날아들었다.
―얼간이.
“뭐?”
발끈하는 범계위 앞으로 초악량이 나섰다.
“그렇다면 단 의원이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건가?”
초악량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단악선을 무림맹에 혼자 보내자니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딸을 홀로 타지에 보낼 아비가 어디 있을까. 수행하는 이들을 비롯해 의원과 호위무사들이 줄줄이 딸려 올 것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이곳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다.
“치료를 미룰 수 없는 건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예요.”
“그 문제는 이분들이 함께 동행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음. 그렇긴 한데…….”
방법이 있다고 해도 가장 큰 문제가 남았다.
“무림맹주를 보고 참을 자신이 없는데.”
“눈에 띄면 바로 대가리를 깨 버릴 거야.”
곧바로 초악량과 범계위가 살기를 드러냈다. 누구보다 무림맹에 대한 원한이 깊은 그들이었다.
그때, 풍진성이 단악선을 향해 말했다.
“제가 잠시 이분들과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
“설득을 좀 하려고 합니다.”
단악선에게 허락을 받은 풍진성이 걸음을 옮겨 단악선이 들을 수 없는 곳으로 세 명을 이끌었다.
“곡주님을 위해 이번 일정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진짜 속내가 뭔가?”
초악량이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
“면사특권(免死特權)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무림맹주니까요.”
면사특권.
말 그대로 그 어떤 중죄라도 죽음만은 모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만이 곡주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만약의 사태라.”
자신들이 드러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들과의 관계가 알려지면 단악선 역시 목숨이 위험해질 터. 풍진성이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하자고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악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
“하긴 그렇게 되면 우리가 드러나도 단 의원이 빠져나갈 명분은 생기겠네.”
의외로 범계위가 제일 먼저 인정했다.
“그럼 해야지.”
범계위의 시선을 받은 초악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때려죽이고 싶은 무림맹주지만 단악선에 대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난 상관없어.”
한설화는 애초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곡주님과 함께 가는 걸로 준비하겠습니다.”
“잠깐.”
초악량이 돌아서려는 풍진성을 잡았다.
“이왕이면 즐겁게 가지.”
그리고 단악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단 의원, 우리 여행 갈까?”
“여행요?”
그 말에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까지 단악선은 단 한 번도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 대부분을 신마곡에서 보냈고, 기껏 벗어난다 해도 인근 마을이 전부였다. 강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토록 꿈꾸던 여행이라니.
흥분으로 발개진 단악선의 뺨을 바라보던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이 가고 싶다는데 가야지.”
한설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이 간다는데 환자는 따를 수밖에.”
그날부터 초악량과 범계위는 무척 바빠졌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범계위가 쉬지 않고 목재를 날랐고, 초악량은 날을 세워 목상을 깎았다. 그리고 한설화가 뒷정리를 도왔다.
당장은 여비를 마련할 방법이 그것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풍진성이 모든 여행 경비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들이 나서 거절했다.
“우리 단 의원 첫 여행인데, 맛있는 거 사 줘야지.”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도 동의했다.
적어도 생색을 내려면 자기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 *
목공예점의 주인 임 씨는 오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래를 트기 위해 찾아오는 인근 마을의 상인들 때문이었다.
최근 매입했던 목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문제는 물량의 한계.
덩달아 목상들의 가격도 무섭게 치솟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내가 은자 한 냥을 더 쳐주겠네. 그러니 우리 쪽에 넘겨주게.”
“난 두 냥 더 쳐주지!”
“뭐? 그럼 난 거기에 오 할을 더!”
“이 자식이? 넌 상도덕도 없냐?”
“누가 할 소릴! 거래를 튼 건 내가 먼저야!”
앞다투어 가격을 제시하는 상인들의 과도한 경쟁은 결국 멱살잡이로 이어졌다. 그런 그들을 중재하는 일이 임 씨의 일과가 된 지 오래였다.
“두 분 다 그만하시지요. 여기 있는 물건들은 이미 계약을 마친 것들이라 다른 분들과 거래할 수가 없습니다.”
울상을 짓는 상인들의 모습에 임 씨가 한숨을 흘렸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임 씨가 솔깃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상회에 공급하기로 했던 계약이 한 달 후에 끝납니다. 그 후에 다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다른 분들께도 입찰의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입찰? 경매를 붙이겠다는 말이오?”
“구입하시고자 하는 분들은 많은데 물량은 부족하니 달리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나마 차선책이라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상인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마다 입찰가를 고민하기 바빴다.
만약 계약을 따내 목상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이문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마을의 상인들이 물러가자 임 씨는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상점 문을 닫으려 하는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 어서 오거라.”
임 씨가 반색하며 단악선을 맞았다.
한때는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망해 가던 가게였다.
그런데 단악선과 거래를 튼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맞게 되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손님이었다.
“오늘은 목상이 좀 많아요.”
“나야 많이 가져와 주면 고맙지. 그렇지 않아도 물량이 부족해 난리란다.”
한 수레 가득 실린 목상을 마주한 임 씨는 깜짝 놀랐다.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양이 많이 늘었구나?”
“네. 한동안은 오기 힘들 것 같아서요.”
반색하던 임 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여행을 가기로 했거든요.”
“여행? 어디로?”
“무한이요.”
“호북성의 무한?”
“네.”
임 씨가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언제쯤 돌아올 것 같으냐?”
“글쎄요.”
날짜를 가늠하던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장담하기 어렵네요. 첫 여행이라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후우, 그래.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구나.”
아쉬운 건 둘째 치고 벌써 걱정이 앞서는 임 씨였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물품이 한시적으로 단종된다면 입찰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터. 그렇다고 무턱대고 단악선을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돌아오면 꼭 기별을 주려무나.”
“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임 씨는 그 자리에서 목상의 대금을 치른 뒤, 문밖까지 나와 단악선을 배웅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범계위가 빈 수레에 단악선을 태웠다.
“그렇게 좋아?”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네. 여행 간다고 했더니 값을 높게 쳐주셨거든요. 이제 우리 부자예요.”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기뻐하는 단악선을 보고 있자니 밤새워 목재를 나른 보람이 있었다. 범계위가 이끄는 수레에 몸을 실은 채 단악선이 마을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골목 끝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 나왔다.
“저…….”
두려운 얼굴로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수레 쪽으로 다가왔다.
“어?”
단악선이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다.
목상을 팔기 위해 처음 들렀던 목공예점의 주인이었다.
“뭐야?”
범계위가 한껏 인상을 찌푸리자 사내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이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굽신거렸다.
“그쪽의 소협께 용무가 있어서요.”
“제게 용무가 있다고요?”
단악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우리 쪽에도 목상을 공급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어렵겠는데요.”
“지금 거래하시는 곳의 두 배를 쳐드리겠습니다.”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방금 전 임 씨가 매입했던 목상의 금액이 개당 다섯 냥이었으니, 열 냥을 부른 셈이다.
처음 그가 제시했던 한 냥에 비해 무려 열 배가 오른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세운다 해도 단악선은 그와 거래할 마음이 없었다.
처음 자신을 얕잡아 보고 홀대했던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전 거래처를 바꿀 마음이 없어요.”
“그렇다면 세 배를…….”
단악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신다고 해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그래도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사내를 향해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어이. 귓구멍이 막혔어?”
살기가 실린 범계위의 음성에 사내가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막힌 귓구멍 뚫어 주는 건 내가 전문인데.”
“어떻게요?”
단악선의 반문에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이쪽 귀에 쑤셔 넣어서 반대쪽 귀로 나오게 하는 거지.”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해서 치료가 돼요?”
“그런데 부작용이 심해.”
“어떤 부작용이요?”
“벙어리가 되더라고. 그냥 눈감고 누워서 아무도 말을 안 해.”
“그건 죽은 거 아닌가요?”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의원은 안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