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0)
신마의선-250화(250/500)
신마의선 (250)
화산 장문인인 진명진인과 소림의 방장인 법연이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을 때였다.
법연 뒤에 말없이 서 있던 법료가 단악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법료가 빙긋 웃더니 단악선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더없이 정중하게 한 손을 세워 반장했다.
스스로 팔을 잘라 달마로부터 입문을 허락받은 혜가.
그의 단비구법(斷臂求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소림만의 전통적인 예법이었다.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소림의 최고 고수인 법료가 자신의 가슴팍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년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모습에 중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법료는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덕분에 억겁의 삼매(三昧)에서 벗어나 다시금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구산(九山)이 닳고, 팔해(八海)가 마른다 해도 대부(大夫)께서 베푸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불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성산(聖山), 수미산.
그 수미산을 중심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아홉 산과 여덟 바다를 총칭하는 말이 구산팔해(九山八海)다.
불가의 제자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칭송인 셈이다.
더구나 법료는 시주나 의원 대신 단악선을 대부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의원은 일반적으로 의생(醫生)이라 한다.
의술을 업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의원은 낭중(郎中), 혹은 대부라는 관명을 붙여 불렀다.
그만큼 단악선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한 것이다.
“환자를 앞에 두고 그냥 지나친다면 어찌 의원이라 할 수 있겠어요? 제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런 과례를 거두어 주세요.”
단악선의 말에 법료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그와 같은 의술을 지니셨음에도 이토록 겸손하시니, 무위에 행림춘만(杏林春滿)이 머지않아 도래할 듯합니다.”
법료의 칭찬에 단악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살구나무에 봄이 가득하다는 의미가 담긴 행림춘만은 인품과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칭송하는 고사성어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뛰어난 의원이었던 동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의가는 늘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치료비 대신 완치 후에 자기 집 주위에 살구나무를 심게 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그의 집 둘레에는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 숲이 조성되었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불렀다.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사를 행림(杏林)이라 하고, 의사들의 사회를 행림계(杏林界)라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다못해 의학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곳을 행림 서점이라 하는 것도, 의원을 개업했을 때 살구나무를 마당에 심어 번창을 기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면 초악량은 실소하며 법료를 노려봤다.
“누군가 그러셨다더군. 머리만 빡빡 밀면 강해진다고 믿는 무식한 놈들이라고. 그런 것치곤 언변이 제법이야?”
“……!”
단악선이 깜짝 놀라 초악량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과거 어머니인 마의가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법료 역시 이를 알고 있었는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생사마의께서 한때 저희 무승들을 가리켜 그리 말씀하신 적이 있다 들었습니다.”
“초 아저씨, 갑자기 왜…….”
당황한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쓰게 웃었다.
행림춘만의 전설에는 이어지는 또 다른 일화가 존재했다.
살구나무 숲이 완성되자 동봉은 그 숲에서 뭇 짐승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살구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이후 살구가 익을 때면 인근의 백성들에게 곡식과 살구를 바꾸어 가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 반 바가지의 곡식을 놓고, 살구 한 바가지를 따 가는 사람이 있었다.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숲에 사는 호랑이가 나타났다.
삿된 뜻을 품고 접근한 이는 그대로 줄행랑을 놓을 수밖에.
살구와 바꾼 곡식을 동봉은 빈곤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렇게 오랜 선행을 하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게 된다.
행림춘만의 고사성어를 통해 법료는 단악선을 추켜세웠지만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범계위와 한설화를 동봉이 만든 숲에서 지내는 호랑이로 비하한 것이다.
하나 굳이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다.
법료와 중요한 이야기를 앞두고 있었기에 크게 엇나가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법료와 단악선의 대화에 중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법료가 와병 중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듣자니 단악선이 이를 치료한 것이 분명했다.
‘천하오절 가운데 이미 세 명이 신마의선을 지지하고 있구나!’
그게 중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혈수존자는 이미 단악선과 가족이나 다름없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화산신검이라 불리는 진명진인 역시 단악선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법료는 공석에서 단악선을 자신의 은인이라 스스럼없이 공표했다.
이때 어수선해진 주변의 분위기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법료에게 다가섰다.
“모처럼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진맥을 해 봐도 될까요?”
“빈승은 이제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만?”
법료의 반문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으로서의 노파심 때문이에요. 직접 확인하면 제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법료는 스스럼없이 완맥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중인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천하오절씩이나 되는 고수가 타인에게 이토록 쉽게 요혈을 허락하다니!
어지간한 믿음을 지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법료의 손목에 손가락을 올리고 맥을 확인한 단악선이 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건강해지셔서 다행이에요.”
천상 의원다운 모습에 법료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벽을 깨신 것도 축하드리고요.”
“……!”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이 곤혹스러웠으나 법료는 이내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 역시 불자인 이상 불망어(不妄語)의 계율을 어길 수는 없는 법.
확실히 단악선의 말대로였다.
심마를 극복한 법료는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도약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단 의원님 덕분입니다.”
이미 단악선이 거절했기에 더 이상 대부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빛과 목소리에는 단악선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했다.
이때 진명진인과 인사를 마친 법연이 단악선을 향해 다가왔다.
“잘 지내셨소? 단 시주.”
“네. 방장님께서도 잘 지내셨죠?”
“허허, 노납이야 단 시주 덕분에 평안하게 보냈소이다.”
법연 역시 예전과 다른 혈색이 돌고 있었다.
이미 단악선에게 치료를 받은 데다, 병인이었던 마음의 우환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혜공 선사님께서도 잘 지내시죠?”
“물론입니다. 안부 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던 법연이 어딘가를 향해 묘한 시선을 던졌다.
“소림은 늘 단 시주의 뜻을 존중할 것입니다.”
“네?”
의아해하던 단악선이 법연의 시선을 따라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산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비로소 단악선은 법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을 거느린 채 선두에 선 여인.
바로 제갈연이었다.
단악선에게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그녀에게 들으라 한 말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단악선은 제갈연 뒤에 서 있는 인물 중 눈에 익은 몇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만났던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언과 사천당가의 당가타주인 당령이었다.
제갈연은 태연하게 진명진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희를 맞이하신 것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빈도 역시 맹주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진명진인이 태연하게 제갈연의 인사를 받았다.
적벽의 주인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눈빛과 태도였다.
반면 진실을 아는 초악량과 한설화는 그런 제갈연이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눈빛을 느낀 것일까.
제갈연이 단악선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우리 꼬마 의원님도 잘 지냈나요?”
다소 얕잡아 보는 듯한 제갈연의 말투에 초악량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오히려 담담한 눈빛으로 제갈연을 마주했다.
“네, 덕분에요.”
차분한 단악선의 응대에 제갈연은 다소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살짝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건네 왔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부디 그 평온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그럴 거예요. 저 역시 맹주님의 앞날이 순탄하길 기원하죠.”
제갈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단악선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가?’
제갈연의 시선이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초악량과 한설화에게 향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따로 없군.’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고 무서운 것 없는 여우의 꼴이라니.
‘오히려 고맙지.’
그 오만과 어리석음이 스스로의 목을 죄는 올무가 될 터.
그녀는 아직 드러내지 않은 여러 개의 패를 지니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산문 쪽이 요란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표홀한 신법으로 허공을 가르며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악선아!”
“어?”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에 익은 운룡대팔식의 신법.
무엇보다 그걸 펼치는 청년의 음성이 귀에 익었기 때문이다.
“굉성자 형?”
“하하하! 거기 있었구…… 케흑!”
단악선을 향해 달려오던 굉성자가 그대로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기 때문이다.
“예의를 지켜라! 이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천둥벌거숭이 녀석아!”
버둥대는 굉성자를 완력으로 찍어 누른 그의 대사형, 굉도자가 진명진인을을 향해 예의를 갖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삼성요를 떠나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제게 장문인의 고희를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전하라 소임을 맡기셨습니다.”
진명진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오시오. 광진도장께는 내 따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리다.”
최근 마교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 데다, 지척에서 마교와 코를 맞대고 있는 곤륜인지라 장문인인 광진도장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대제자인 굉도자와 막내 제자인 굉성자를 사절로 보낸 것이다.
“켁! 사형, 저 죽어요.”
굉성자의 앓는 소리에 굉도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굉도자가 손을 풀자 굉성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악선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 그대로 얼싸안았다.
“이야! 우리 악선이 그새 이렇게 키가 컸어? 이제 조금만 지나면 내 키도 따라잡겠는데?”
이미 곤륜에서 호형호제한지 오래라 단악선 역시 반가움이 앞섰다.
“형도 잘 지냈지?”
“으하하. 나야 뭐, 늘 똑같지.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먹고 똥 싸고 자는 것 빼면 계속 수련이 일상이야.”
“하하. 여전하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온 거야?”
배분으로는 이대 제자이니 자격은 충분하지만 아직 약관을 채우지 못한 굉성자였다.
깐깐하고 고리타분한 곤륜의 웃어른들이 외유를 쉽게 허락할 리 없었다.
“흐흐…….”
굉성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안 보내 주면 혼자 천마 잡으러 기련산 올라간다고 했더니 차라리 여기나 다녀오라며 보내 주시던데?”
딴에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고 한 말이었지만 원래부터 큰 목소리를 타고난 탓에 중인들은 모두 굉성자가 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형답네.”
살짝 어이없어하는 단악선을 향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던 굉성자가 흠칫했다.
단악선 뒤에 서 있는 초악량과 한설화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범계위를 포함한 세 사람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끔찍한 비무가 뇌리를 스쳤다.
“하하……. 강호말학 굉성자가 두 분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굉성자의 모습에 초악량이 피식했다.
얼핏 경박해 보이는 행동과 달리 눈빛과 자세에서 확연히 달라진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라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발전이었다.
“꽤 성장했구나.”
“그렇게 처맞……. 아니, 배우고도 제자리면 안 되지요.”
초악량은 그런 굉성자가 마음에 들었다.
문제가 터진 건 그 직후였다.
강호 견식이 부족한 굉성자가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제갈연을 본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는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