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1)
신마의선-251화(251/500)
신마의선 (251)
“……!”
굉성자의 말에 제갈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없고 황당했다.
아무리 어리숙한 무림 초출이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무림맹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아아, 그러시구나. 난 또 누구라고.”
쩌렁한 일갈이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노옴! 언행을 가벼이 하지 말라 그렇게 일렀거늘!”
사부만큼 무서운 대사형의 노성에 굉성자가 움찔했다.
“저분이 바로 현 무림맹주시다.”
“이 아줌마가요?”
퍽.
“윽!”
갑자기 날아든 발길질에 정강이를 움켜쥐고 주저앉은 굉성자가 억울한 눈으로 굉도자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에게 짐짓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 굉도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제갈연을 향해 깊게 읍을 했다.
“불민한 저희 막내 사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철없고 어리석은 말학의 실수를 부디 너그러이 해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견식이 부족한 것을 탓할 일은 아니지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제갈연이 마지못해 웃으며 사과를 받아넘겼다.
아픈 정강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리는 굉성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악선이 옆에 있길래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제갈연이 굉성자를 노려봤지만 이미 굉성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어느새 단악선 곁에 이르러 있었다.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친근한 태도로 단악선의 어깨에 팔을 올린 굉성자가 씨익 웃었다.
“무공은 좀 늘었어?”
단악선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 굉성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 그럼 어디 오랜만에 한번 붙어 볼…… 켁!”
소매를 걷어붙이던 굉성자가 다시 한 번 허공에 매달렸다.
굉도자가 뒷덜미를 낚아채 들어 올린 것이다.
“내가 혼낸 지 일각도 안 지났다! 곤륜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고 네놈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아니, 사형. 제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여긴 곤륜이 아니다. 화산파에 왔으면 화산파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어느 손님이 주인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단 말이냐!”
제갈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다.
저들 사제와 가까이 있어 봐야 자신의 체면만 깎일 뿐이었다.
그사이 굉성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래도 명색이 고희연이잖아요. 악사도 없고, 춤도 없고……. 구대문파가 모처럼 한곳에 모였는데 하다못해 비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아요?”
“이놈이 그래도?”
“쟤 봐요! 쟤! 저기 화산파 도사도 비무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이잖아요.”
“뭐?”
굉도자가 홱 고개를 돌려 굉성자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
화산파의 삼대 제자 명검은 깜짝 놀랐다.
졸지에 중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일제히 모아졌기 때문이다.
당황한 마음에 황급히 입을 열려 했으나 굉성자가 조금 더 빨랐다.
“아까부터 계속 비무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명검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슴속을 채우는 호승심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었다.
바로 굉성자 때문이었다.
실제로 최근 구대문파의 후기지수들 가운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두 사람이었다.
명검은 사실 굉성자보다 서너 살이 많았다.
그만큼 무림 출두가 빨랐고, 매화검수를 이끄는 매화총검의 자리에 있다 보니 강호에서의 명성 역시 비교할 수 없었다.
화산이 품고 있는 와룡(臥龍).
서악일기(西岳一器)라는 명호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사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곤륜에서도 뛰어난 인재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려오곤 했다.
비슷한 연배의 후기지수 중에서는 딱히 이렇다 할 경쟁자를 만나 보지 못한 명검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은 점차 묘한 경쟁의식으로 바뀌어 갔다.
아직 이렇다 할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자신과 달리 굉성자는 마교도와의 치열한 생사결을 통해 곤륜투룡(崑崙鬪龍)이라는 무명을 얻어 냈기 때문이다.
굉성자가 산문을 넘는 순간 눈을 떼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쟤라니?’
괘씸한 건 둘째 치고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굉성자의 태도는 황당함을 넘어 허탈할 정도였다.
나름 강호 후기지수들의 선망을 받던 그로서는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속도 모르고 굉성자가 투덜댔다.
“원래 이런 모임에서는 용비봉무(龍飛鳳舞)도 하고 그런 거라면서요? 언제는 그게 중원의 낭만이라더니?”
“용비봉무는 수려한 산세를 가리키는 말이고! 후기지수들이 비무를 통해 자웅을 겨루는 건 용봉비무(龍鳳比武)다!”
“엎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죠. 뜻만 통하면 됐…….”
굉도자가 버럭 했다.
“이 순간부터 너는 그냥 입 닫고 있거라!”
“왜요?”
“너랑 대화하면 속 터지니까! 어디 가서 곤륜 문하라 하지도 말고!”
굉성자가 풀 죽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이때 한 곳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무를 통한 후기지수들의 교류야말로 구대문파의 전통이고 중원의 낭만이지. 곤륜의 소협이 진정한 풍류를 제대로 알고 있군.”
중인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아졌다.
그 말을 한 사람이 고희를 맞이한 당사자인 진명진인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한 채 서로의 무공을 겨루고, 승패에 상관없이 술잔을 나눈다. 무인으로서 우호를 다지기에 비무친선(比武親善)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진명진인이 빙그레 웃으며 명검을 향해 물었다.
“네 뜻은 어떠냐? 곤륜의 검을 한번 견식해 보고 싶지 않으냐?”
명검의 눈에서 투지가 일렁였다.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무릇 비무란 서로의 성장을 위한 배움이다. 안 될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겨뤄 보고 싶습니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명검의 모습에 진명진인이 웃으며 굉도자의 허락을 구했다.
“곤륜의 의향은 어떠신가?”
굉도자가 잠시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굉성자를 노려봤다.
그 와중에도 희희낙락하던 굉성자가 움찔하며 굉도자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 모습에 결국 굉도자는 고소를 머금었다.
“고매한 적벽의 검을 견식할 기회를 주신다면 저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 제 막내 사제에게 큰 교훈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허허, 가르침은 우리가 청해야지요. 실전을 통해 발전을 거듭한 곤륜의 무학을 견식할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까요.”
진명진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제안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우리가 의논해야 할 무거운 주제는 어차피 우리 늙은이들의 몫. 젊은 후기지수들에게까지 괜히 불편한 분위기를 강요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이 웃으며 화답했다.
“구파일방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후기지수의 친목을 도모할 필요가 있지요. 저는 장문인의 말씀에 찬성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대부분이 진명진인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가운데 오직 제갈연만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교활한 늙은이가 꾀를 쓰는군.’
진명진인의 의도야 뻔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명숙들은 후기지수들을 대동한 상태였다.
강호의 견식도 넓히고 자연스럽게 명숙들과 인맥을 다져 두기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이다.
반면 무림맹 측의 인사들은 후기지수라 부를 만한 위인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나 당령 정도?
아직 이립을 넘기지 않았으니 비무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은 무림맹주직을 맡고 있었고, 당령은 당가타주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용봉지회 같은 후기지수들의 비무 행사에 참여하는 건 스스로 체면을 깎는 일.
그렇다고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구경만 하고 있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구대문파를 중심으로 치러지는 저들만의 행사에 자연스럽게 무림맹은 소외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심을 거듭하는 제갈연과 달리 화산에 오른 각파의 후기지수들은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명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최근 들어 빠른 무공의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한설화와의 만남 이후 절치부심 노력한 결과였다.
하나 외부의 무인들과 무공을 겨루며 검증받을 기회는 좀처럼 드물었다.
그래서 더욱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진명진인이 한 가지 선언을 한 것도 그때였다.
“그러면 정식으로 비무대를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파에서 주최되는 용봉비무인 만큼 주인으로서 염치없이 맨입으로만 후기지수를 독려할 순 없는 노릇. 해서 빈도는 본 문의 영약인 자소단을 우승 상품으로 걸겠습니다.”
“오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자리를 지키던 무당파의 장문인, 단금진인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화산이 먼저 제안했으니 우리 무당이라 해서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요. 빈도 역시 본 문의 영단인 태청신단을 보태 드리리다.”
소림의 법연과 법료 역시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도가 양대 문파가 크게 선심을 베풀었는데 불문인 우리가 빠진다면 염치없는 중들이라 분명 뒤에서 욕하시겠지요?”
법연의 너스레에 이어 법료가 반장을 하며 그 말을 받았다.
“방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폐사의 대환단을 우승자에게 내어 드리겠습니다.”
웅성.
일대에 번진 소요가 뜨거운 열기로 이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림의 대환단과 매화신단이라 불리는 화산의 자소단.
거기에 무당의 태청신단까지.
그 하나만으로도 강호가 들썩일 만큼 무가지보(無價之寶)의 가치를 지닌 영단들이었다.
자연히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을 뒤로한 채 제갈연이 침음성을 삼켰다.
‘이 늙은이들이?’
철저하게 자신들을 배척하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느껴졌다.
후기지수들을 독려하기 위한 것치고는 과하다 싶은 성의를 내보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비무 방식은 어떻게 치르는 것이 좋겠습니까?”
진명진인의 물음에 구대문파의 명숙들이 한곳을 응시했다.
모두에게 묻는 것 같았지만 진명진인의 시선은 한설화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친분을 떠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상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배분을 지닌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설화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승자전이 좋겠군.”
말 그대로 승자가 계속 다음 상대를 대진하는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좋군요.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진명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달리 이견을 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후기지수들의 용봉비무가 결정되었고 개최는 다음 날 정오로 정해졌다.
이후 진명진인은 따로 진악궁(鎭嶽宮)에 자리를 마련해 각파의 장문인들과 전권을 위임받은 대리인, 그리고 무림맹 소속의 가주들을 따로 안내했다.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 가운데 유난히 어린 단악선은 당연히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 측 인사들은 내심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지만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단악선 역시 무위라는 금지의 엄연한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청성파 역시 마찬가지.
초악량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던지 그들은 가장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먼저 부족한 빈도를 축하해 주기 위해 험산을 오르신 강호 동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그렇게 말문을 연 진명진인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 약조했던 대로 당금 강호를 둘러싼 사안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정보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제갈연이 치고 나왔다.
“무림맹에 속해 있는 세가에서 실종된 사람들이에요.”
제갈연이 공개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다섯.
이를 시작으로 각 문파마다 내부적으로 조사한 실종자들에 대한 정보와 자체적으로 파악한 미심쩍은 상황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열 명까지.
다만 그들 중 마교로 투신했다는 것이 확인된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가담 여부가 확실치 않았다.
다만 증거가 없다뿐이지 심증은 어느 정도 굳어진 상태였다.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데다, 실종자들 대부분이 권력이나 무공에 집착하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 유일하게 곤륜파만이 실종자가 없었다.
의아해하는 중인들을 향해 굉도자가 씁쓸한 눈빛을 흘렸다.
“저희에게 있어 실종자는 곧 사망자를 가리킵니다. 과거부터 숱하게 있어 온 일인지라 집계 자체가 무의미했습니다.”
가장 외진 변방에서 마교의 잔당들과 지속적인 싸움을 벌이는 유일한 문파가 곤륜이었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인 만큼 곳곳에서 안타까운 탄성을 흘러나왔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제갈연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 일은 이미 팔 년 전부터 시작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