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3)
신마의선-253화(253/500)
신마의선 (253)
진악궁 안에 일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를 잠시.
“그 말 어디에도 틀린 부분은 없군.”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홍적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신뢰라는 단어를 빌미로 단악선을 공격했던 제갈연은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몸을 던진 꼴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
그 외에는 달리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입술을 깨문 상태로 자신을 노려보는 제갈연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강명 객잔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 게 먼저겠군요.”
단악선은 그동안 모아 온 정보를 자세하게 언급했다.
“놈들이 치밀하게도 계획을 짰군.”
누군가의 침음성에 진악궁에 모인 구파일방 인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칠절마군은 마교와 결탁한 건 아닌 듯싶어요. 최근 그가 혈운사의 부족을 잇달아 습격했거든요.”
단악선의 설명에 홍적문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가 어째서 혈운사를 공격하는 거지?”
“아마 자신이 지닌 비급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앞서 혈운사는 핵심 요결이 빠진 반쪽짜리 마공 비급을 중원에 퍼트려 왔으니까요.”
비급을 요구한들 그들이 순순히 내놓을 리 없으니, 선택지는 하나뿐.
혈운사와 마찬가지로 죽이고 약탈하는 것이다.
폭급한 노단양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진명진인이 감탄성을 흘렸다.
“단 의원께서 꽤 많은 것을 알아내셨군.”
“계속 조사하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새외를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단 몇 마디 말로 회의의 주도권을 되찾아 온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확보한 정보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유할 계획이에요.”
“고맙네. 언제든 우리 화산파의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만 하시게.”
“아미타불. 소림도 협조하겠소.”
진명진인과 법연을 시작으로 구대문파의 책임자들이 단악선에게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이때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제갈연을 바라봤다.
“혹시 저희가 제공한 정보들 중 잘못되거나 의심 가는 점이 있나요? 아니면 저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추가적인 정보는요? 뭐든 좋으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세요.”
“…….”
“없는 건가요?”
상황이 이쯤 되자 제갈연만 입장이 난처해지고 말았다.
당장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단악선이 자신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이단에게는 이래저래 실망이 크군. 대체 어떻게 무림 최고의 정보 단체라 불린 것이오?”
얄밉게 날아든 홍적문의 노골적인 비아냥.
말이 좋아 천이단이지 사실상 오랜 시간 책임자를 맡고 있던 자신의 무능을 비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명진인이 웃으며 좌중을 돌아봤다.
“자, 자. 그럼 이제 식사들 하시지요. 무거운 이야기를 하느라 음식이 다 식어 버렸습니다.”
제갈연도 자리에 앉아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식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말없이 제갈연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묘한 눈빛을 건네 오는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언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은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제야 황보언도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연무장 일대가 분주했다.
정오부터 치러질 후기지수들의 비무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급하게 결정된 비무 대회인 만큼 화려한 장식이나 거창한 시상대는 필요하지 않았다.
심사와 판정을 맡을 명숙들은 비무대 옆에 마련된 의자에 자리를 잡았고, 그 앞에 위치한 작은 단상에는 그들이 우승 상품으로 내건 각파의 영단을 올려 두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격식은 갖춰야 했기에 대회를 주최하는 화산파 제자들의 손발이 바빠졌다.
“한데 이번 비무 대회는 소림이 너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진명진인이 건넨 말에 법료가 빙그레 웃었다.
소림 측에서는 이번 회의에 법연과 법료, 단둘이 참석한 상황.
명색이 후기지수의 비무 대회인 만큼 그들이 참가할 수는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십 년 전에 이런 자리가 있었다면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빈승도 참으로 아쉽습니다.”
법료의 농담에 명숙들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한 사람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걸 걸지.”
한설화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목갑을 단상 위에 올렸다.
“성수신단이다.”
그 말에 중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허. 이거 비무 대회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겠군요.”
진명진인의 탄성에 한설화가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하나 가져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한설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구파일방의 명숙들은 한쪽에서 몸을 풀고 있는 단악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설화 정도 되는 고수가 이처럼 자신감을 드러내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진명진인은 문득 단악선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둥둥둥.
비무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그럼 우리 중원 무림을 이끌어 갈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의 향연을 지켜봅시다.”
이때 세 번의 북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으음?”
연무장 옆에 자리해 있던 명숙들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비무대 위에 선 사람은 사천당가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당가타주, 당령이었기 때문이다.
당가타주는 가주를 제외하고 당가 내에서 가장 높은 직책.
일반적인 문파로 따지면 부문주직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이 대회가 후기지수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임을 잊으셨소?”
진명진인의 완곡한 질책에 당령은 뻔뻔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이로만 따진다면 저 역시 후기지수의 반열에 포함되지 않을는지요?”
“하나 당가타주는 당가의 가주 대리 자격으로 화산을 오르지 않으셨소?”
“그럼 가주 대리 자격을 포기하면 되겠군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구파의 명숙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불순한 의도가 뻔히 보였다.
연무장에 오른 이후 그의 시선은 단악선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전날 단악선과 제갈연 사이에서 오간 언쟁의 결과에 앙심을 품은 것이 분명했다.
이번 대회의 주최자인 진명진인이 제갈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이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제갈연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전에 당령과 그녀 사이에 따로 주고받은 언질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체 무슨 짓을!’
제갈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당령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입지만 더욱 곤란해진 것이다.
끈질긴 그의 구애를 지금껏 완곡하게 거절해 온 그녀였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에 앞서 능력을 증명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렇지만 이건 그녀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문파의 후기지수들에게 그가 패배할 리 없었다.
그만큼 뛰어난 기재였고, 당가 내에서도 인정받는 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무림맹의 위신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맹주로서 그녀가 무림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겨도 본전.’
만에 하나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고작 저런 꼬맹이 하나 때문에…….’
제갈연이 비무를 준비하는 단악선을 노려봤다.
이때 비무대 위에 선 당령이 입을 열었다.
“물론 저 역시 맨입으로 용봉비무에 참석할 만큼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그래서 참가비 명목으로 영단에 버금가는 상품 하나를 걸까 합니다.”
당령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커다란 진주를 연상시키는 백옥빛 구슬이었다.
“피독주(避毒珠)!”
그것을 알아본 몇 명이 탄성을 흘렸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현존하는 대부분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피독주는 당가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지니고 있다 알려진 무가지보(無價之寶)였다.
항상 독과 암기를 다루는 게 일상인 당가인에게는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귀물(貴物)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있을 때는 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적의 손에 들어가면 큰 해악이 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독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피독주를 기꺼이 내놓겠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
당령이 단악선을 향해 도발하듯 웃음을 건넸다.
“나와의 승부에서 이기면 피독주는 귀하의 것이오.”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짐짓 선심 쓰듯 말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와 내기를 하자는 말씀인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당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껏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 그만한 게 또 어디 있겠소?”
“그럼 전 뭘 걸면 되죠?”
당령이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절명전을 거시오.”
“절명전이요?”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래전, 연판장을 완성하기 위해 아미파를 방문했을 당시 당령이 절명전을 돌려 달라며 떼를 쓰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건 제 물건이 아니에요.”
단악선의 말에 당령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혈수존자께 직접 무공을 사사했다 들었소.”
“그런데요?”
“무인에게 있어 목숨과도 다를 바 없는 진산절예를 전수했다면 그만큼 정이 깊다는 의미 아니겠소?”
“……?”
“단 의원께서 원한다면 기꺼이 내어 주실 것 같소만?”
초악량이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당령을 노려봤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투가 떠올랐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욱여넣은 나한당주의 사자모니인.
그로 인해 한순간 호신강기가 무너졌고, 당시 당가의 가주였던 천수암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어깨에 그 망할 강전을 쑤셔 박았다.
어깨를 파고들던 끔찍한 고통이 아직까지 뇌리에 선명했다.
반면 제갈연은 다른 의미로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저 작자가?’
당령이 비무대 위에 오른 이유는 무림맹을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오직 자신을 위한 사욕 때문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확실히 당령은 능력도 있었고, 당가 내부에서도 가주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박함이 그 모든 장점을 깎아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제가 내기에 응하지 않는다면요?”
단악선의 말에 당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피독주를 마다할 무림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왜 이토록 절명전에 연연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건…….”
황급히 둘러대려는 당령의 말을 자르며 단악선이 질문을 던졌다.
“바로 절명전에 묻어 있던 독 때문 아닌가요?”
“……!”
“초 아저씨를 노렸던 암기이니만큼 묻어 있던 독 역시 당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테죠.”
문제는 단악선이 해독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성수신의의 후인이라는 점이었다.
비전 독은 오직 자신들만 해독할 수 있을 때 가치를 지닌다.
성수신의가 생전에 그러했듯이, 단악선이 독을 분석해 해독제를 만들어 뿌리면 당가 입장에서는 비장의 무기 하나가 사라지는 셈.
그래서 이처럼 기를 쓰고 절명전을 회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고 계시는 것이 있어요.”
의아해하던 당령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수암제라는 분의 공격은 성공했어요.”
“말도 안 돼!”
당령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그 독은 강호에 전혀 알려진 적이 없었다.
만약 암기에 당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계시냐고요?”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해독했으니까요.”
“뭐?”
“그러니 절명전에 발라져 있던 독은 이제 무용지물이라는 뜻이에요. 절명전을 회수한다 한들 의미가 없어요.”
당황해 입술만 달싹이는 당령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당가타주께서 상대하셔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단악선이 대답 대신 손을 들어 당령의 뒤쪽을 가리켰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당령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어슬렁거리며 비무대 위로 걸어오는 청년 도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곤륜의 이대 제자 굉성자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굉성자가 히죽 웃으며 당령을 응시했다.
“비무를 하려면 나도 뭔가를 걸어야 합니까?”
굉성자가 소매와 품속을 뒤졌다.
그러나 나오는 건 풀썩이는 먼지뿐이었다.
굉성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밖에 없는데, 혹시 이것도 받아 줍니까? 그래도 그쪽이 건 건 구슬 하나, 제 건 두 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