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6)
신마의선-256화(256/500)
신마의선 (256)
화산을 내려와 무위로 향하는 길.
무언가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는 단악선을 뒤따르며 초악량과 한설화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기를 잠시.
―난 봤어.
갑자기 날아든 한설화의 전음에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전음이 날아들었다.
―대초자곤.
“……!”
초악량이 일순 멈칫했다.
그러기를 잠시.
―귀찮은 일은 미연에 막아야지.
미심쩍은 눈빛을 흘리는 한설화를 향해 초악량이 전음을 이어 갔다.
―그게 그 녀석 손에 들어가면 제대로 붙어 보자며 설칠 게 뻔하지 않으냐?
―나중에 알게 되면 어쩌려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초악량이 앞서 걷는 단악선을 힐끔거렸다.
―단 의원은 법료가 대초자곤을 가져온 걸 모르는 눈치니,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녀석이 어떻게 알겠어?
한설화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건네 왔다.
―설마 질 것 같아서?
초악량이 펄쩍 뛰었다.
―사람을 뭘로 보고!
그때였다.
“아!”
단악선이 걸음을 멈추며 탄성을 흘렸다.
“왜 그러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뒤를 돌아봤다.
“내내 뭔가 이상했어요. 마치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괜히 혼자 찔린 초악량이 어색하게 웃었다.
“……알고 있었느냐?”
“초 아저씨도 알고 계셨어요?”
초악량이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 아저씨도 이상했죠? 제갈연을 따라온 세가의 가주들 중에 모용세가의 가주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요.”
“응?”
“……?”
뒤늦게 헛다리를 짚었음을 깨달은 초악량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러고 보니 모용극, 그자가 보이지 않더구나.”
“아무래도 이상해요. 남궁세가를 밀어내고 새롭게 오대세가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반드시 참석하리라 생각했거든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갈연을 따라 화산을 방문한 세가의 가주들.
그 사이에서 의당 있어야 했을 그의 부재가 어째선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요녕 쪽을 주시할 필요가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한설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한설화는 더 이상 대초자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무위에 도착한 지 닷새째.
화산에서의 비무에서 많은 점을 느낀 단악선은 연일 수련에 매달렸다.
의가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넘쳐 났지만 풍진성과 주초운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화산에 다녀온 사이 신마의가는 놀라울 정도로 운영 방식이 달라져 있었다.
두 사람의 감독 아래 의원들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세분화해 환자를 담당했다.
그런 체계적인 방식 덕분에 기존보다 훨씬 많은 환자를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단악선은 오롯이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콰앙!
묵빛 섬광이 작렬하는 순간 커다란 정원석이 그대로 으깨어지며 돌가루를 흩날렸다.
“바로 그거야, 단 의원. 기세를 잘 실어 낸 훌륭한 일격이었어.”
범계위의 칭찬에 이어 초악량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중석몰촉(中石沒鏃), 사석위호(射石爲虎)라.”
“그게 뭔 소리유?”
“사기(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서 언급된 말이다.”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옛날 이광이라고, 활 잘 쏘는 장수가 있었다더군.”
어느 날, 어두운 밤길을 걷던 중 그의 눈앞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이광이 깜짝 놀라 활을 쏘았다.
그런데 화살에 맞은 호랑이가 움직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호랑이가 아닌, 호랑이를 닮은 바위였다.
바위에 박힌 화살이 신기해 이광은 다시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화살은 번번이 튕겨 나왔다.
“그것이 바로 하나로 모아진 일념(一念)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 처음의 화살엔 반드시 호랑이를 쓰러트리고자 하는 일념이 담겨 있었고, 나중에 쏜 화살엔 그것이 없었던 거야. 그리고 단 의원은 방금 전 그걸 해낸 것이고.”
장황한 초악량의 설명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초 형은 그게 문제유.”
“뭐?”
“그냥 잘했다고 하면 되지, 꼭 그렇게 어려운 말 써 가며 잘난 척을 해야겠수?”
“뭐가 잘난 척이야? 제가 무식한 걸 남 탓하는 너야말로 큰 문제다.”
별 시답지 않은 문제로 어김없이 으르렁대는 두 사람을 한설화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을 만류하는 단악선 뒤로 한 사람이 다가온 것도 그때였다.
“곡주님.”
능소밀이었다.
“남궁 가주께서 북쪽으로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다음 지시를 전달했다.
“그럼 신마상단을 통해서 변방 지역 일대에 소문을 내 주세요. 칠절마군이 그 소식을 듣는다면 스스로 남궁 가주님을 찾아올 거예요.”
“그리하겠습니다. 한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과연 그가 칠절마군을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확신할 수 없어요.”
단악선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들 생각은 어떠세요?”
“남궁백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검조(劍祖) 남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아무리 노단양이 강해졌다 할지언정 쉽게 그를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
초악량의 대답에 범계위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에 놈이 보인 신위는 얼핏 봐도 상당한 수준이었어.”
칭찬이 인색한 범계위가 이처럼 선선히 인정할 만큼 남궁백은 그저 그런 고수가 아니었다.
반면 한설화는 약간 입장을 달리했다.
“그래도 만에 하나, 변수가 발생한다면?”
“변수?”
범계위의 반문에 한설화가 단악선을 응시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남궁백의 진정한 무위를 모르잖아. 그와 손을 섞어 본 적이 없으니까. 반면 노단양은…….”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단악선의 얼굴에 한설화가 말끝을 흐렸다.
하나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전달된 뒤였다.
이립을 살해할 만큼 무공이 크게 진일보한 노단양이었다.
문제는 자신들과 비교해 다소 손색이 있다 뿐이지, 이립의 무공 역시 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손을 보탤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악량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남궁백이 자신이 결자해지를 하겠다 선언한 이상 함부로 그의 행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바로 그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라면 적당한 분이 계시잖아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표파자님이요.”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지난번 회의에서 그리 말씀하셨던 거군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의 움직임은 무림맹에서도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악 아저씨가 그곳에 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테죠. 그리고 만약 악 아저씨가 이번 일에 손을 보태 성과를 거둔다면 녹림은 더 이상 무위에 갇혀 있지 않아도 돼요.”
구파일방의 공적과 다름없는 칠절마군 노단양을 처리하는 데 일조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무림맹을 무너트린다면 녹림도 나름의 충분한 명분을 얻게 된다.
더 이상 이곳 무위에 웅크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총표파자님을 불러 주시겠어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능소밀의 안내를 받아 후원으로 들어선 악호군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툴툴댔다.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사람인가?”
“총표파자께서 나설 때가 되었어요.”
하지만 단악선의 설명에 악호군이 내심 침음했다.
단악선을 달리 보게 된 건 한참 전의 일이지만 지금은 살짝 두려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단악선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연에 칠절마군. 심지어 자신까지.
“반드시 혼자 움직이셔야 해요. 남궁 가주님께는 이미 언질을 드렸어요.”
“좋아. 받아들이지.”
악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세가 연합인 무림맹이 와해된다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셈이다.
그날 밤.
악호군이 야음을 틈타 은밀하게 무위를 떠났다.
* * *
북부 초원 외곽에 자리 잡은 작은 촌락.
이따금 오가는 행상들과 떠돌이 부족을 상대로 먹거리와 휴식처를 제공하는 유일한 객잔에 모처럼 손님들이 가득 찼다.
난데없는 모래 폭풍 때문에 발길이 묶였기 때문이다.
이미 몇 순배의 술이 오간 객잔 안은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취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덜컹.
객잔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객잔 입구로 모아졌다.
열린 문을 통해 모래바람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이 없었다.
온몸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한 사내가 흘리는 소름 끼치는 눈빛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가 비어 있는 식탁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의자에 앉는 그 순간까지 장내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만큼 사내의 기도가 심상치 않았다.
잠시 후.
주춤거리며 다가서는 점소이를 향해 사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건량을 가져와라. 그리고 술도.”
“저……. 계산은…….”
점소이의 말에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소매 속에서 은자를 꺼내 들어 탁자 위에 올렸다.
서둘러 은자를 챙긴 점소이가 술부터 내왔다.
“건량은 포장을 마치는 대로 즉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점소이의 말에 사내는 일언반구도 없이 술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독한 화주를 단숨에 비우고 있을 때였다.
멀찍이 떨어진 탁자에서 속닥이는 음성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자, 자.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보게.”
“무슨 이야기? 아! 그거?”
“그래. 중원의 유명한 검객이 근처를 배회한다며?”
“어디 유명하다 뿐인가? 무려 남궁세가의 가주라더군.”
“남궁세가의 가주라면 일 검에 언덕을 베고 다른 일 검에 강물을 자른다는 단능단제(斷陵斷湍) 남궁백 대협 말인가?”
술을 마시던 노단양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만큼 이 궁벽한 오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이 어째서 여길?’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장사치가 분명한 사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유야 모르지. 그런데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 같던데?”
“아! 그 이야기라면 나도 들었네. 요즘 너 나 할 것 없이 그 사람을 만나길 고대한다며?”
“시답지 않은 몇 가지 질문에 답해 주는 것만으로 사례를 하니 그럴 수밖에.”
“어디 그뿐인가? 아는 게 없어도 은자는 꼭 사례한다는군.”
“제길! 왜 난 그런 횡재를 못 누리는 거지?”
신이 나서 떠들어 대던 그들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섬뜩한 살기를 흘리며 입을 여는 노단양 때문이었다.
“그자가 나타난 곳이 어디지?”
* * *
다 무너져 흔적만 남은 오래된 고성(古城) 터.
허리 부근밖에 오지 않는 담벼락에 기대 모래바람을 피하던 남궁백이 희미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끌어안고 있던 검을 조용히 움켜쥔 그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멀리, 모래바람을 뚫고 걸어오는 흐릿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궁백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단양이었다.
핏빛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듯한 그의 두 눈을 응시하던 남궁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껏 달아난 곳이 고작 여기였나?”
남궁백이 모래바람을 가리기 위한 죽림과 두건을 벗자 노단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남궁백……!”
그의 얼굴에 감추기 힘든 희열의 감정이 떠올랐다.
소문을 쫓아 이곳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반신반의했던 그였다.
중원에 처박혀 있어야 할 남궁백이 이 황량한 초원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눈앞에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서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만나러 온 것인가? 그것도 혼자?”
노단양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정녕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군.”
자신만만한 표정의 노단양을 응시하던 남궁백이 입을 열었다.
“듣자니 사고를 크게 친 모양이던데?”
“아아, 그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은 노단양이 농밀한 살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