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7)
신마의선-257화(257/500)
신마의선 (257)
“제갈연의 지시인가?”
남궁백의 물음에 노단양이 섬뜩하게 웃었다.
“거지 두목을 죽여 달라 부탁한 것은 그녀가 맞다. 하지만 너를 죽이는 건 별개지. 오로지 순수한 나의 의지다.”
“그런가.”
스릉.
남궁백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청아한 검명과 함께 서늘한 나신을 드러냈다.
“우리의 해묵은 인연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남궁백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노단양이 웃음을 흘렸다.
“크큭. 처음으로 마음이 통했군.”
서로를 노려보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우우웅.
남궁백의 손에 들린 검이 웅혼한 울음을 토했다.
남궁세가의 심법인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
거기에 중원의 수많은 검법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절학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이 더해진 결과였다.
남궁백은 처음부터 승부를 길게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일격에 끝낸다!’
남궁백의 검 끝에서 솟구친 유백색 서기는 검의 끝자락에 도달한 자들만 다룰 수 있다는 검강(劍罡)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노단양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핏빛 서기를 휘감은 손을 검격 안에 욱여넣었다.
남궁백의 검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얼핏 보기엔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하나 그 안에 담긴 위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일격에 산도 자를 만큼 강력한 패도를 추구하는 중검(重劍).
이를 요체로 하는 제왕검형의 정수를 고스란히 실어 낸 절예, 단하유성(斷霞流星)이었기 때문이다.
꽈앙!
검과 손이 부딪쳤음에도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세찬 경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남궁백은 휘청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섰다.
‘……!’
남궁백이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검을 쥔 손가락을 통해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남궁백이 검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엔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손바닥은 찢어져 핏물이 배어 나왔다.
‘대체 어떻게?’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노단양의 무위에 남궁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 그가 자신을 피해 달아났던 때.
오초지적도 안 되던 당시의 노단양이 아니었다.
단 일 합뿐이었지만 지금은 그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다.
섬뜩한 핏빛 서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목과 가슴을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악문 남궁백이 핏물에 미끄러지는 검파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번뜩이는 차가운 검광 사이로 연달아 서늘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이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난무하는 검광과 경력에 휩쓸린 주변은 삽시간에 폐허로 변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단양의 눈에는 득의의 빛이 떠올랐다.
반면 남궁백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명음마소(冥音魔笑)!’
노단양이 마교의 진산절예인 혈옥수와 혈라강기를 익혔다는 사실은 이미 단악선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한데 그사이에 또 다른 마공을 더 연성했을 줄이야!
명음마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의 기맥을 진탕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서운 음공(音功)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막대한 내력을 소모한다.
용독술과 마찬가지로 일대일의 대결보다는 다수를 상대로 기습을 가할 때 효과적인 마공인 것이다.
그러나 노단양은 처음부터 은밀하게 명음마소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력이 달리지 않을 만큼 교묘하게 혈라강기 안에 섞어 흘려 보냈다.
뒤늦게 남궁백이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몇 번의 공수 교환을 통해 상당한 피해가 누적된 상태였다.
이미 내력은 고갈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부쩍 줄어든 검의 위력 역시 절감하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벼락같은 일갈과 함께 노단양이 번쩍 손을 들어 올린 것도 그때였다.
그그그극.
한순간 허공을 흔들며 나타난 선명한 핏빛 강기의 벽.
이를 마주한 남궁백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노단양이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게 천강마벽(天罡魔壁)일 거라곤 예상치 못한 것이다.
이로써 극멸염륜(極滅炎輪)을 제외하고 무림맹이 거두어들였던 마공 모두가 노단양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잘 가라, 나를 얽매고 있던 과거의 미망(未忘)이여!”
그 말과 함께 노단양이 손을 내밀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남궁백은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사방을 에워싼 채 환상처럼 너울거리는 거대한 핏빛 벽.
하나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겹겹이 응집된 마기가 형상화된 것으로, 지금껏 경험한 그 어떤 무공보다 강력하고 파괴적인 상승 무공이었다.
남궁백이 정면으로 짓쳐 드는 강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남궁백의 검이 부러질 듯 휘청였다.
그러나 핏빛 벽을 베어 낼 수 없었다.
오히려 돌아온 것은 남궁백의 팔을 저릿하게 만드는 충격뿐이었다.
실로 가공할 위력 앞에 남궁백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남궁백은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여기까지인가…….’
그리 길지 않았던 생애.
그사이에 쌓인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분하다거나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문 모를 아쉬움이 느껴지긴 했으나 이 역시 삶에 대한 집착은 아니었다.
그 순간 먼저 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아버지의 눈빛.
비록 생사의 간극에서 마주한 환상일지라도 남궁백은 기꺼웠다.
두 번 다시 뵙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라도 마주한 것 자체가 그저 좋았다.
그러다 이내 침울해졌다.
하다못해 부친이 남기셨던 제왕검형을 완성했더라면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이대로 자신이 노단양의 손에 쓰러지면 아버지의 희생을 바탕으로 힘들게 일으켜 세웠던 세가 역시 다시 기울고 말 터.
그렇게 생각하니 까닭 모를 슬픔과 분노가 가슴을 메웠다.
―심정망정(心定忘情), 심사신기(心死神起).
몇 번이고 외워 이제는 머릿속에서 떨쳐 낼 수 없던 제왕검형의 구결.
그중에서 특히 난해하여 뒤로 미루어 두었던 구결이 벼락처럼 뇌리를 흔든 것도 그때였다.
남궁백은 한순간 정수리의 백회혈에서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한 줄기 벼락이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얄궂게도 절체절명에 처한 끝자락에서 깨달음의 실마리를 거머쥔 것이다.
의미 자체가 모호하여 정확한 해석조차 어려웠던 구결이 이 순간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마음을 정하면 뜻을 잊는다. 이른바 적과 나의 구분을 두지 않는 무아(無我)의 경지!’
자신의 마음을 먼저 죽여 잠들어 있던 신(神)을 깨운다는 의미 역시 마찬가지.
느슨해져 있던 전신의 신경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완전히 고갈되어 텅 비어 있다 생각한 단전에서 한 줄기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전신의 기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남궁백이 정면을 바라봤다.
불과 한 자 남짓한 거리에서 자신을 짓이기기 위해 다가오는 강기 벽이 눈에 들어왔다.
천강마벽의 위력과 노단양의 기세.
거기에 자신의 상태를 모두 감안해도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노단양의 목이나 심장을 노려 반격을 꾀하기에도 거리가 충분치 않았다.
검을 완전히 뻗어 낸다 해도 천강마벽에 의해 으스러진 뒤일 것이다.
피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핏빛 강벽의 범위는 이미 일 장 안의 공간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었다.
피해를 감수하고 어찌어찌 벗어난다 해도 이어질 파상 공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상황만 더욱 나빠질 뿐.’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남궁백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의식이 검극의 한 점에 모이는 순간 남궁백이 전면을 향해 검을 뻗어 냈다.
패색이 짙던 남궁백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자 노단양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천강마벽을 향해 뛰어드는 남궁백의 모습은 모닥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처럼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겹겹이 중첩된 핏빛 강기의 벽이 남궁백을 집어삼킨 것도 그때였다.
노단양의 입매가 희미하게 비틀렸다.
남궁백은 머지않아 갈가리 찢긴 육편(肉片)이 되어 흩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노단양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의당 들려야 할 단말마의 비명도, 자욱한 피 보라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반탄력에 강기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단양이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때.
번쩍!
운무 사이로 한 줄기 섬광이 피어올랐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르른 백광(白光)이 핏빛 강벽과 격렬히 뒤얽힌 것도 동시였다.
“……!”
노단양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운무를 헤집으며 거리를 좁혀 오는 한 자루 검!
그것은 분명 남궁백의 것이었다.
유백색 검광을 흘리는 검이 움직일 때마다 그토록 엄밀하던 강기 벽이 맥없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정신이 흐트러지자 자연 천강마벽을 운용하던 진기 역시 느슨해졌다.
남궁백은 이를 놓치지 않고 위력이 반감된 강기 벽을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갈라 버렸다.
찌이익!
마치 수백 겹의 비단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 따른 충격파로 인해 바닥이 들썩이더니 폭풍 같은 기류를 타고 자욱한 먼지구름이 장내를 뒤덮었다.
이윽고 먼지가 걷히고 장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휘청.
노단양이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어떻게……, 우웩!”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물러선 노단양은 입을 열기 무섭게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길게 찢어진 그의 손바닥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이 너덜거렸다.
남궁백의 상태 역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입가에서 시작된 피가 턱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궁백은 웃고 있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노단양은 소름이 쭉 끼쳤다.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발견한 노단양이 남은 힘을 쥐어짜 남궁백을 후려쳤다.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도 그때였다.
당연히 물러서리라 예상했던 남궁백이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거리를 좁힌 것이다.
콰득.
남궁백의 어깨에서 섬뜩한 파육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남궁백의 어깨에 혈옥수를 박아 넣은 노단양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크르륵.”
피거품을 게워 내며 쓰러지는 노단양의 가슴에는 어느새 남궁백의 검이 박혀 있었다.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남궁백이 벼락같이 검을 휘둘러 노단양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것이다.
피 칠갑을 한 채 웃고 있는 남궁백의 모습에 노단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 미친놈!”
양패구사(兩敗俱死)를 노린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
“같이 죽자는 것이냐?”
“나는 너를 놓아줄 마음이 없다. 그러니 끝까지 함께 가자. 나의 원죄(原罪)여.”
“처음부터 살아 돌아갈 생각이 아니었군!”
“그러기엔 너무 큰 죄를 지었지.”
비로소 남궁백의 의도를 깨달은 노단양이 사색이 되어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이를 순순히 허락할 남궁백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칠절마군을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는 일념을 담아 움켜쥔 검을 더욱 힘껏 찔러 넣었다.
반면 노단양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얻은 무공인데!’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천하를 군림하는 무공을 완성하는 것도 헛된 꿈만은 아니었다.
덥석.
두 손으로 남궁백의 검을 움켜쥔 노단양이 죽을힘을 다해 버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검이 노단양의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