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8)
신마의선-258화(258/500)
신마의선 (258)
살기 위해 버둥거릴수록 남궁백의 검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고, 그때마다 노단양의 가슴에서는 울컥울컥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
남궁백의 눈빛이 흔들린 것도 그때였다.
실낱처럼 이어지던 진기가 돌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더불어 검을 움켜쥐고 있던 손가락도 점차 힘을 잃고 풀려 가고 있었다.
‘조금 비껴갔나?’
정확히 급소를 찌르지 못한 것을 인지한 남궁백이 탄식을 흘렸다.
애석하게도 하늘은 노단양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흥건한 핏물에 손이 미끄러지자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남지 않았던 남궁백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퍽!
무너지는 남궁백을 힘껏 걷어찬 노단양이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움켜쥔 검을 천천히 뽑아내기 시작했다.
“끄어어!”
숨넘어가는 비명과 함께 결국 검을 뽑아낸 노단양이 자신의 핏물로 번들거리는 검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챙그랑.
“헉헉.”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던 노단양이 쓰러져 있는 남궁백을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단매에 처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죽음을 도외시한 놈의 동귀어진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공포의 감정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이미 놈의 눈빛은 산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냥 둬도 죽을 놈.
이미 염왕의 부름을 듣고 있을 놈을 상대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노단양이 히죽 웃었다.
조롱을 한마디 더 해 주고 싶었지만, 그 역시 말을 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이겼다.’
일어서지 못하는 남궁백을 보며 노단양이 몸을 돌렸다.
당장 치료를 하지 않으면 자신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일단 몸을 숨길 장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
그렇게 한 발씩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돌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노단양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검에 의지한 채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남궁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두 발로 우뚝 선 남궁백이 하얗게 웃으며 노단양을 향해 다가섰다.
“끝까지 함께 가자 하지 않았더냐?”
남궁백이 검을 들어 노단양을 가리켰다.
출혈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심맥과 기맥 역시 크게 진탕되어 엉망으로 뒤엉킨 상태.
숨이 붙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단악선이 아닌, 대라신선(大羅神仙)이 온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기운이 급격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백은 걷고, 또 걸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옥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렇게 조금씩 노단양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결국 노단양은 달아나는 것을 포기했다.
‘죽인다!’
그것만이 저 괴물을 떼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둘 사이의 거리가 세 걸음으로 좁혀졌을 때.
“죽어!”
노단양이 괴성을 지르며 남궁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역시 상승무공을 쓸 수는 없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날카롭게 세운 수도는 정확히 남궁백의 목을 노리며 틀어박혔다.
퍽!
정확히 들어간 일격에 노단양은 상대의 죽음을 확신했다.
‘끝났다!’
그걸 증명하듯 남궁백의 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동시에 노단양의 가슴에서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리를 하는 바람에 상처가 더욱 크게 벌어진 것이다.
노단양이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눌러 지혈을 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
가슴 부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대체 언제 박혔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서늘한 날붙이를 따라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그제야 쓰러진 남궁백의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노단양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게 노단양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되었다.
쿵!
힘을 잃은 노단양의 몸이 무너졌다.
마치 사죄를 하듯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그의 심장에 틀어박힌 검에서 흘러내린 피가 이내 그의 주변에 피 웅덩이를 만들어 냈지만 그조차도 이내 마른 흙바닥이 빨아들였다.
휘잉.
치열했던 싸움의 뒤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위에 내려앉은 짙은 적막을 깨며 그곳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주위를 살피며 상황을 파악한 사내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너무 늦었군.”
악호군이었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남궁백과 노단양의 조우가 너무 빨랐다.
“동귀어진인가?”
그 말을 하는데,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약한 숨소리였다.
“살아 있었나?”
남궁백을 향해 다가선 악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더없이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남궁백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남궁백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벌렸다.
그러나 노단양의 마지막 일격으로 목이 크게 다쳐 소리를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악호군은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고개를 숙여 귀를 가져다 댔다.
“내가 당신의 유언을 들어야 한다니.”
그 말에 남궁백이 마지막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며 말했다.
“지난날의…… 내 과오는…… 모두 내가 안고 가리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주로 위세를 떨쳤던 남궁백.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런 남궁백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던 악호군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제갈세가는 촉한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문이었다.
호북성의 한중에 터를 닦은 이유 또한 이 때문이었다.
제갈량이 살았던 형주 융중(隆中)이 지금의 호북성이고, 사후에 그가 묻힌 묘지인 무후묘(武侯墓) 역시 가까운 까닭이다.
실제로 중원의 유수한 가문들 중에서도 공자의 후손인 공가(孔家)와 더불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문으로 손꼽히고 있었고,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 불리며 오랜 역사에 걸쳐 무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런 만큼 규모도 상당해서, 평소 세가에 상주하는 인원만 수백 명을 헤아렸다.
하나 오늘만큼은 세가가 텅 빈 것처럼 고요했다.
바로 차기 가주를 결정하는 가주의 조령(詔令)이 발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주의 집무실인 공명전(孔明殿).
당금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경은 자신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과 딸을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거운 침묵을 깨며 제갈경이 입을 열었다.
“내 뒤를 이어 세가를 책임질 다음 가주는…….”
“……”
“……”
제갈연과 그녀의 오라비인 제갈진은 이어질 부친의 말을 기다리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 두 사람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떨어진 건 그 직후였다.
“바로 산이다.”
부복하고 있던 맏이, 제갈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반면 제갈연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제가 아닌 이 자리에도 없는 그 녀석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신다는 거죠?”
제갈연이 입술을 깨물며 부친인 제갈경을 향해 따지듯 외쳤다.
“아무리 산이가 천기신산(天氣神算)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우리 세가의 명성을 드높인 것은 저입니다. 그토록 노력했는데! 심지어 늘 이인자 신세를 면치 못하던 우리 가문에 무림맹주의 자리까지 가져왔는데 왜 제가 아닌 그 녀석입니까?”
제갈연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눌러 왔던 분노를 터트렸다.
“제가 여인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소외감을 느껴 왔던 걸까요? 왜 가문의 모든 주요 직책은 남자인 오라버니와 동생에게 주어진 것이고요? 심지어 저는 그들처럼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적도 없어요!”
“아니, 너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딸의 말을 자른 제갈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너는 네가 얼마나 잘못된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 깨닫지도 못하고 있구나.”
“……?”
“너의 가장 큰 잘못은 너 스스로에게 매몰된 것이다. 네 아집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헛된 목표에 사로잡혀 너만의 작은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었단 말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제갈연을 향해 제갈경이 꾸짖듯 말을 이어 갔다.
“제갈의 이름이 허락된 자는 결코 그렇게 움직여선 아니 된다.”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제갈연의 모습에 제갈경이 나직이 한숨을 터트렸다.
“딸아.”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제갈경이 입을 열었다.
“너는 제갈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그건 네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성일 뿐이다. 자신의 이름 앞에 제갈의 성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자격을 얻어 낸 자뿐이다.”
“…….”
“진정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이냐?”
이어진 제갈경의 말에 제갈연이 멈칫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걸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걸 타고난 자이지. 재능이 부족하다면 하다못해 노력을 통해 그 방법을 깨달아야 하건만, 너는 그러한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더구나.”
비로소 제갈연은 가주인 아버지가 이미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악선.
바로 그 빌어먹을 꼬맹이였다.
제갈경이 다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바꿀 수 없다면 나서지 않는다. 하나 제갈의 이름을 걸고 나섰다면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제갈연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그리고 새롭게 선 이념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그것이 제갈가의 시조인 공명의 이념이었다.
“지남철(指南鐵)이 되어 방향을 가리키고 그 사람들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오직 민초를 위해! 그것이 제갈이란 성을 물려받은 인간들의 존재 이유다.”
뭐라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제갈경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것이 너희 둘과 산이의 차이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가엾은 혈육을 마주해야 하는 이 아비가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이유다.”
“…….”
제갈연은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떨구는 한심한 오라비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제갈연이 차가운 불꽃이 일렁이는 눈을 들어 제갈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가주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알겠습니다. 이로써 저는 더 이상 가주님의 자식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없겠군요.”
제갈연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세가를 나서기 무섭게 대문 앞에 도열해 있는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을 향해 제갈연이 외쳤다.
“무림맹으로 간다. 다음 계획을 이행할 것이니, 이를 가주들에게도 신속히 전달하도록.”
“아직 너무 이른 것이 아닙니까?”
그녀의 심복을 자처하는 새로운 천이단주가 조심스럽게 조언을 이어 갔다.
“제갈세가의 전폭적인 협력 없이는 아무래도…….”
“아니.”
수하의 말을 자른 제갈연이 차가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제갈세가는 제외한다. 철저히 고립되어 남궁세가 꼴이 되고 나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겠지.”
“하오나…….”
“그만!”
제갈연이 천이단주를 노려보았다.
“그대도 내가 우스운 것인가?”
“소, 속하가 어찌 감히…….”
그때였다.
도열해 있던 무림맹 무인들이 썰물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왔다.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극이었다.
“이곳에는 어쩐 일로?”
제갈연은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처음에는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안색을 달리했다.
“개방이 이곳 제갈세가를 향해 오고 있소. 그것도 구파의 고수들을 대거 이끈 채 말이오. 아무래도 저들이 무언가를 알아낸 듯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