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59)
신마의선-259화(259/500)
신마의선 (259)
제갈연이 눈살을 찌푸린 채 모용극을 빤히 응시했다.
“그들이 무엇을 알아냈다는 거죠?”
그 말에 모용극이 멈칫했다.
주변의 이목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노단양과 그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
이처럼 공공연한 자리에서 입에 담을 사안이 아니었다.
모용극이 에둘러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무위 쪽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닐까 싶소만…….”
제갈연이 아미를 찡그렸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무위 쪽의 동향에 관련된 보고는 늘 직접 챙기는 그녀였다.
단악선을 포함해 신마삼존 그 누구에게서도 아직까지 특별한 전조나 징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 이어진 모용극의 말에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연유야 나 또한 알지 못하나, 이대로 저들과 조우하는 건 그리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 같소. 저들이 진화타겁(趁火打劫)의 기세로 몰아쳐 오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그 말대로였다.
만에 하나 자신이 모르는 변수가 존재한다면 아무런 대책 없이 불리한 상황을 자초하는 셈.
그렇다고 무작정 무림맹으로 향할 수도 없었다.
이미 도처에 개방의 감시망이 깔려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우선 본 가로 함께 이동합시다.”
모용극의 제안에 제갈연이 침음했다.
하나 지금으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개방의 정보망이 촘촘하다 한들 요녕으로 향하는 길목은 상대적으로 한산할 터.
주위상계(走爲上計)의 병법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불리한 상황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당장은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죠.”
결국 모용극의 제안을 받아들인 제갈연이 모용세가가 있는 요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구파일방의 고수들과 함께 제갈세가에 도착한 홍적문은 가주인 제갈경과 마주 섰다.
“경황이 없다곤 하나 귀한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미흡하니, 주인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한 듯 제갈경은 침통한 눈빛을 흘리며 예의를 갖추었다.
그런 그를 향해 홍적문이 마주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좋은 일로 찾아뵙지 못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홍적문의 태도는 지극히 정중했으나 눈빛은 더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구파일방을 대표해 귀가의 여식인 제갈 소저의 신병을 구속하고자 합니다.”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소?”
“내란 획책과 개방 방주의 살인 교사 혐의입니다.”
“귀측에서 주장하시는 혐의에 대한 증좌를 확인하고 싶소만.”
홍적문이 품속에서 타다 만 서신을 꺼내 내밀었다.
“방주님을 살해한 흉수인 칠절마군 노단양. 그자에게 건넨 마공의 핵심 요결입니다. 거기 적힌 필체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눈에 익은 필체.
그것이 제갈연의 것임을 알아본 제갈경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홍적문이 품속에서 다른 서류들을 꺼내 제갈경에게 건넸다.
“진술서의 필사본입니다.”
진술서 안의 내용을 확인한 제갈경이 참담한 표정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언과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곡.
그들이 직접 작성한 증언들은 직접적으로 제갈연을 지목하고 있었다.
“황보세가의 가주는 제갈 소저와 노단양의 연락책으로 세가 휘하의 무인을 동원했다 밝혔습니다. 당가 역시 개방의 조사가 시작되자 무림맹의 권위를 등에 업은 제갈 소저가 자신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명시했지요.”
어찌 된 상황인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가의 가주는 제갈연과 음모를 획책한 주체를 당령으로 한정 지었을 것이고, 가문의 의지와 상관없는 개인의 일탈로 몰아갔을 게 분명했다.
실질적인 권위는 없지만 당가타주는 당가의 직계 혈족에게만 허락되는, 상징적인 직책이었다.
그런 만큼 당가 내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가의 가주는 이 기회에 당가타주를 희생양으로 내어 주고 그 자리를 자신의 사람으로 채워 당가 내의 권력을 독점할 의도가 분명했다.
“사천 당가는 현 무림맹주에게 칠절마군과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소. 그리고 그들은 그녀에게 협력하는 대신 우리에게 사실을 고하는 길을 택했소.”
지금껏 혼담을 명분으로 빈번하게 매파를 보내왔던 당가였다.
그런데 이제 와 발을 빼다니.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제갈연을 궁지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증좌를 제공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세가 연합인 현재의 무림맹이 단악선을 중심으로 한 무위와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배신감과 모욕감에 치를 떨고 있을 때.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귀천하셨습니다.”
홍적문의 한마디에 제갈경의 머릿속에서 천둥이 쳤다.
“노단양과 양패구사 하셨소.”
‘이거였나!’
비로소 사천당가가 입장을 달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미 무림맹을 침몰하는 배라 판단한 것이다.
전대 맹주였던 남궁백의 죽음에 현 맹주가 관여했다?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의혹 자체만으로도 무림맹은 존재의 당위성 자체가 흔들린다.
제갈경이 눈을 감은 채 깊은 탄식을 터트렸다.
“그 아이는 이미 제갈가의 사람이 아니오.”
먼저 절연을 선언한 사람은 제갈연이었으나 그 사실을 재차 입에 담는 아비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이로써 제갈세가는 제갈연의 신병을 구속하는 데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홍적문을 향해 누군가가 급히 달려왔다.
주변을 탐문하던 개방 소속의 고수였다.
“모용극과 함께 떠나는 제갈연을 목격한 자가 있습니다.”
홍적문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렇다면 요녕으로 향한 것이겠군.”
차라리 잘되었다.
‘단 의원의 말대로군.’
제갈세가로 향하며 구대문파의 고수들을 대거 이끌고 온 목적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이는 구파일방이 한뜻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대외에 보여 주기 위한 무력시위.
다른 세가들이 섣불리 제갈연에게 동조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기 위한 목적이었다.
만약 그녀가 무림맹으로 향했다면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구파일방과 세가 연합의 전면전으로 발전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적인 마교는 아직도 몸을 숨긴 채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를 갉아먹는 내전은 마교에게 어부지리를 안겨 줄 뿐이었다.
홍적문이 자신과 함께 이곳까지 동행한 구대문파의 고수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제부터는 본 방의 힘만으로 결착을 지을까 합니다.”
홍적문의 말에 나한들을 이끌고 이곳까지 함께한 법료가 우려를 드러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비록 머릿수는 중원제일을 자랑하나 무력만으로 따지자면 구파일방 중 가장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개방이었다.
아무리 홍적문이 중원삼대권사라 불린다곤 하지만 자신이나 초악량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것도 사실이었다.
더구나 최근 마주쳤던 모용극은 지닌 기도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적어도 홍적문보다는 확실하게 높은 경지의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홍적문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오직 개방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방주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니까요. 모용세가만이라면 현재 개방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 그 피해가 적지 않을 텐데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홍적문이 드러낸 자신감에 법료는 일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홍적문은 흰소리를 입에 담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처럼 호언장담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부디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법료의 반장에 홍적문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법료를 위시한 나한들과 구대문파의 고수들을 뒤로한 채 홍적문은 개방도들과 함께 곧장 요녕으로 향했다.
* * *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감도는 모용세가의 내당.
가주의 집무실인 무천각(武川閣)에서 찻잔을 기울이던 모용극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제갈연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소저의 계획은 실패했소.”
맹주 대신 소저라 부르는 모용극의 호칭에 제갈연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이를 마주한 모용극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황보세가와 사천당가, 그리고 제갈세가마저 등을 돌렸소.”
“…….”
“그래서 내 누누이 충고하지 않았소?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소저의 성급함이 결국 이 모든 사단의 야기했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곤 하나 소저는 이미 여러 번의 실수를 저질렀소.”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며 모용극이 말을 계속했다.
“남궁백을 적으로 돌린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당령이나 노단양 같은 자들과 큰일을 도모하려 한 것 역시 큰 실책이 아닐 수 없소. 무엇보다…….”
“……?”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요. 손자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소?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병법에 그리 밝으신 분이 왜 아직도 저와 뜻을 함께하는지 모르겠군요.”
다소 날이 선 제갈연의 비아냥에도 모용극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고로 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아니겠소?”
제갈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주도권은 모용극에게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지금으로서는 모용극 외에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
그런 제갈연을 향해 모용극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듣자니 이곳으로 향하는 이들은 개방의 인물들뿐이라 하더이다. 그러니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소.”
모용극의 눈빛과 표정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개방에서 나를 감당할 수 있는 고수는 전무하오. 더구나 우리가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소?”
“…….”
그 말대로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현재의 모용세가가 지닌 저력은 중원의 다른 세가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바로 그녀의 안배 덕분이었다.
마교의 비급을 확보한 남궁백은 이를 연구해 마공의 파훼법을 찾으려 했다.
나아가 마공과 상극인 반마공(反魔功)을 창안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했고, 남궁백은 이를 철회했다.
그렇다고 아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공의 구결 가운데 핵심이 되는 요결 일부를 얻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연은 비밀리에 모용극과 접촉해 마공과 연구 내용들을 넘겨주었다.
그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이보다 훌륭한 미끼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용세가는 대대로 호한혼혈(胡漢混血)과 문무합일(文武合一)을 가풍으로 삼을 만큼 무공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곳이었다.
세가로서의 역사는 다른 세가에 미치지 못하나, 모용 씨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모용세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의 한 부족인 모용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모용부는 오호십육국시대에 전연과 후연, 뒤이어 남연과 북연을 건설하여 중원 일대를 거의 제패할 정도의 위세를 떨쳤던 세력.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세상 각지의 무공을 수집하고 집대성해 무공에 대한 이해만큼은 그들을 따라갈 자들이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모용세가만의 가전무공인 두전성이(斗轉星移)였다.
북두칠성을 옮겨 버린다는 광오한 의미에 걸맞게 외부의 그 어떤 공격도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려 공격하는 절학이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초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무공으로 창안해 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모용극은 제갈연의 제안을 수락했고, 이후 외부의 이목을 피해 오랜 밀월 관계를 이어 왔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놀랍게도 모용극은 마교의 심법을 배제한 채 자신들만의 독문심법으로 마공의 장점만을 집대성한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 낸 것이다.
심지어 주화입마와 같은 부작용도 없었고, 마공 특유의 마기를 흘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모용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렇게 창안한 무공을 세가의 혈족에게 전수했다.
백 명의 고수로 이루어진 무천대(武川隊)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모용극이 그토록 자신하는 이유였다.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가주님께 보고드립니다.”
“무슨 일인가?”
모용극의 반문에 외부인의 접객을 담당하던 외당 책임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개방의 장로 쾌수여의가 방문첩을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