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
신마의선-26화(26/500)
신마의선 (26)
“음.”
단악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던 단악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범 아저씨, 합격.”
“좋아!”
어깨를 으쓱하며 앞으로 걸어 나온 범계위가 단악선 옆에 나란히 섰다.
시장에서 구입한 가발을 쓰고, 거친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 버린 범계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설화 역시 자연스럽게 단악선 옆에 섰다.
“넌 왜 이쪽에 서는 거야? 변장도 안 했으면서.”
범계위의 핀잔에 한설화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난 변장이 필요 없으니까.”
“왜?”
“누구처럼 얼굴 팔릴 짓은 안했거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는 악인으로 불리지도 않았기에 숨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오직 한 명 뿐.
“초 아저씨가 문제인데…….”
“내가? 그럴 리가…….”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청수한 느낌의 심의(深衣)를 입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로는 문사건까지 제대로 갖춰 쓰고 있었다. 게다가 한 손에는 고풍스러운 섭선까지 쥐고 있었다.
어딜 봐도 영락없는 서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단악선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복장 자체는 완벽한데…….’
초악량의 날카로운 눈매가 문제였다.
여기에 특유의 위협적인 기도가 더해지니 오히려 사이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범한 복장이 반대로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어쩌죠?”
고민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발을 하나 자르면 어때? 돌아와서 단 의원이 붙여 주면 되잖아.”
“그건 저도 못 하죠.”
“아, 그래? 그거 아쉽네. 자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데.”
초악량의 눈에서 자욱한 살기가 일렁였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끓어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억눌렀다.
그때 한설화가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어.”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한설화가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장을 하면 돼.”
초악량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반면 범계위는 진심을 담아 탄성을 터트렸다.
“오! 그거 훌륭한 방법인데? 천하의 혈수존자가 여장을 한다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
결국 초악량이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초악량이 범계위와 한설화를 노려봤다.
“지금 웃음이 나와? 내가 못 가면 너희들도 못 가는 거야.”
그제야 두 사람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악량의 말대로였다.
단악선 성격에 초악량만 남겨 두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생각났어!”
범계위의 외침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하지 마. 네가 좋은 생각 같은 걸 해낼 리가 없어!”
“진짜요! 나도 놀랄 정도로 대단한 발상이라니까!”
범계위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난 머리카락이 생겼으니, 초 형은 반대로 머리카락을 없애 버리는 거요! 그것만으로도 초 형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걸? 코 옆에 먹물로 점 하나 찍어 놓으면 더 완벽하고!”
초악량은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았다.
범계위야 원래 바보니 그렇다 치고,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의 모습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후우…….”
결국 긴 한숨을 터트린 초악량이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내가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잠시 후 초악량이 무언가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것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인피면구였다.
그렇게 인피면구를 착용하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참 재주도 좋으슈. 그런 건 언제 만든 거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럼?”
“귀면마자(鬼面魔子). 그놈에게서 빼앗은 거다.”
“그 역용술의 귀재라는?”
반문하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네? 은거라도 했나?”
“죽었다.”
“어? 언제 말이오?”
“한 오 년 정도 됐다.”
“초 형은 그걸 어찌 아는 거요?”
“내가 죽였으니까.”
“아하! 그래서 그 인피면구가 초 형 손에 있는 거로군.”
범계위가 변장한 초악량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하긴. 탐날 만도 하네.”
초악량은 어이가 없었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냐? 고작 이딴 물건 때문에 놈을 죽였을까!”
“에이, 괜찮소. 우리끼린데 뭐 어떻소?”
“뭐, 인마?”
“그러다 한 대 치겠수?”
“이게 뚫린 입이라고!”
벌게진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사이로 단악선이 끼어들었다.
“제가 아는 초 아저씨는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분이 아니에요.”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 아얏! 발은 왜 밟아!”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계속 이렇게 떠들다 하루 다 보낼 거야?”
차가운 한설화의 음성에 범계위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때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어떤 놈이 네 얼굴을 하고 다니면서 자신이 망산초자라고 사기 치고 다닌다면 어떻게 할래?”
“뭐? 그럼 당장 그놈 대가리를 깨 버려야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게 된 거다.”
그제야 범계위가 수긍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와!”
초악량의 새로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단악선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건 알고 봐도 모르겠네요.”
얽힌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인피면구 자체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로써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단악선이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우리는 진성의가의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미 이름까지 정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범계위가 씩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진가휘. 제법 그럴싸한 이름 아니냐?”
한편에 서 있던 한설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냥 악일, 악삼으로 하지?”
“그게 무슨 뜻인데?”
“악인 일등, 악인 삼등.”
그 말에 범계위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왜 삼등이야! 내가 일등이지! 원래는 이등이었고! 지금은 초 형이 저 꼬라지니까 내가 일등이라고!”
초악량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다 죽고 꼴랑 네 명만 살았는데 거기서 굳이 일등이 하고 싶냐?”
“몰라! 일단 일등 하고 봐야지! 내가 악일로 하겠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범 아저씨 이름은 앞으로 악일이에요.”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결정했다.
“그럼 난 악공으로 하지.”
그 말에 단악선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두 분 이름이 비슷하니 형제라고 하면 되겠네요.”
그 말에 범계위가 정색했다.
“뭐? 그건 싫은데.”
“나라고 좋겠냐?”
다시 두 사람이 으르렁대려는 순간.
때맞춰 풍진성이 다가왔다.
“출발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출발해요, 우리.”
그렇게 단악선의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 * *
호북에 위치한 무림맹 총단.
그곳을 향한 여정에 나선 지 사흘째 되던 날, 일행은 드디어 넓은 길로 접어들었다.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소로를 벗어나 탁 트인 관도로 들어선 것이다.
“와!”
단악선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저마다 무리를 이뤄 이동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큼직한 행낭을 짊어진 보따리 상인.
소 한 마리가 이끄는 수레에 온갖 가재도구를 싣고 이사를 떠나는 가족들.
간혹 관부의 관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말을 달려 지나가기도 했고, 하인 넷이 짊어진 사인거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노인도 있었다.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단악선은 한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기 때문이다.
“여행 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요.”
잔뜩 들떠 있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운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묘미지. 앞으로 재미있는 걸 더욱 많이 보고 겪게 될 것이다.”
범계위 역시 재빨리 한마디를 보탰다.
“단 의원은 우리만 믿으면 돼.”
“헤헤. 기대할게요.”
초악량이 일행을 둘러보며 앞으로의 여정을 설명했다.
“우선은 풍 가주와 만나야 하니 난주로 가자.”
풍진성은 무림맹과의 약속을 잡기 위해 한발 앞서 출발한 상태였다.
“풍 가주가 합류한 뒤 섬서성의 서안을 거쳐 무한으로 가면 될 것이다. 서안까지 가는 길에 보계와 미현이 있으니 잠시 들르도록 하고. 서안에 도착하면 며칠 쉬어 가도록 하자꾸나. 사흘 정도 떨어진 곳에 장안이 있으니 거길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고.”
장안은 당나라 때 수도였을 만큼 역사가 깊은 고도(古都)다. 그만큼 먹을거리, 볼거리가 풍부했다.
단악선의 첫 여행이니만큼 조금 돌아가더라도 가급적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때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초 형. 잠깐. 청주는 왜 빼먹은 거요?”
초악량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청주는 호북으로 향하는 경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긴 왜?”
“꼭 가야 할 곳이 있잖수. 단 의원이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하는 곳.”
“거기가 어딘데?”
“미향루.”
초악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거긴 기루잖아.”
“그러니까 반드시 들러야 할 것 아니오. 최근 그쪽이 소항의 기루들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못 들어 보셨수? 게다가…….”
범계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 한순간 차디찬 바람이 몰아치나 싶더니 입술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읍? 으읍!”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누구의 소행인지 뻔했기 때문이다.
치익.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리자 얼굴 위로 내려앉은 새하얀 서리가 사라졌다.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범계위가 한설화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한심한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한심하다니! 나의 미향루는 절대 한심하지 않아! 얼마나 끝내주는데!”
범계위가 도움을 청하듯 초악량을 바라봤다.
“초 형, 뭐라고 말 좀 해 보슈. 초 형의 애인도 거기서 일했잖소.”
초악량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 결국 네놈이 낚아채 갔잖아!”
“그건 초 형이 바람피워서 그런 거고.”
“그런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색공을 쓰는 여자를 상대하느라 미혼공(迷魂功)에 홀린 척 연기한 것뿐이라고!”
“연기치곤 너무 좋아하던데? 침까지 질질 흘려가면서 말이오.”
“속고만 살았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믿어!”
“그걸 누가 믿소?”
“너만 빼고 다 믿거든?”
“아닌 것 같은데?”
범계위가 턱짓으로 한설화를 가리켰다.
한설화는 두 손으로 단악선의 귀를 막고 있었다. 비록 면사로 눈 아래를 가리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드러난 눈빛에 담겨있는 감정만큼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
“…….”
결국 민망해진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다시금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
단악선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단 의원.”
“무슨 일이냐?”
범계위와 초악량의 질문에 단악선은 대답 대신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관도 옆의 숲으로 뛰어들었다.
초악량과 범계위도 황급히 뒤따라 신형을 날렸다. 수풀 속을 헤매던 단악선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찾았어요!”
높게 들어 흔드는 단악선의 양손에 풀이 들려 있었다.
“뭐야? 그 풀때기는?”
“풀이 아니라 잎사귀 같은데?”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귀예요. 이런 곳에 자생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군락지를 이뤄서요.”
“그것도 약초야?”
“그럼요. 이름부터가 당귀(當歸)잖아요.”
풀이하면 마땅히 돌아온다는 뜻.
“옛날부터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아내가 준 당귀를 품에 넣고 나갔대요. 그러다 전쟁에서 기진맥진했을 때 당귀를 먹고 기운을 차려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해요. 그만큼 기력 회복에 좋은 약재예요. 향도 근사하고요.”
당귀잎을 뜯어 냄새를 맡던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알싸한 향이 나네? 그런데 이걸 그 멀리서 냄새로만 찾은 거야? 개도 이렇게는 못 할 텐데.”
초악량이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단 의원이 개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