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0)
신마의선-260화(260/500)
신마의선 (260)
수하가 손으로 받쳐 올린 방문첩의 내용을 확인한 모용극이 피식 웃었다.
말이 좋아 방문첩이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중하게 표현한 선전 포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제갈연이 볼 수 있도록 모용극이 서한을 펼쳐 내밀었다.
“소저를 내놓으라 하는군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결과야 정해져 있는 것 아니오?”
“…….”
“설마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는 겁니까?”
제갈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용극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짙은 살기를 그녀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모용극이 슬쩍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오?”
의아해하던 제갈연은 이어진 모용극의 말에 안색을 달리했다.
“바로 개방이 무림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날이오.”
“다른 구대문파가 좌시할 리 없어요.”
“나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을 좋아하오.”
모용극이 꺼낸 엉뚱한 말에 제갈연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흠칫하며 모용극을 바라봤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방과의 일전을 계기로 우리가 지닌 힘을 전 중원이 알게 될 것이오. 저들을 궤멸하고 나면 함부로 우리를 경시하지 못할 터. 우리와 싸우려면 그만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계산을 저들의 머릿속에 때려 박는 것이오.”
구대문파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변방에서 웅크리며 조용히 힘을 길러 온 모용세가의 전력도 그에 못지않았다.
저들이 싸우러 온다면 자신들과 함께 공멸할 뿐이었다.
동귀어진의 개념을 확장한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
“엄밀히 따지자면 개방 방주의 죽음이나 남궁백의 죽음은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삼자의 불행이요. 아무리 명분이 중요하다 한들 이를 위해 자신들의 파멸을 각오할 문파가 과연 존재하리라 생각하시오? 더구나 밖에서는 언제 발호할지 모르는 마교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소.”
구파일방 가운데 일방을 담당하는 개방이 쓸려 나가고 나면 구대문파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것이 모용극의 계산이었다.
“그리고 과(過)는 공(功)으로 덮으면 되오.”
“어떤 식으로 말인가요?”
“조만간 마교가 움직일 것이오.”
“그걸 어떻게 장담하죠?”
모용극이 히죽 웃었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니까.”
“……!”
제갈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
함부로 내려올 수 없었다.
그나마 남은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일리 있는 말이기도 했다.
마교가 발호해 무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다면 당장의 내분보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용세가가 개방을 전멸시킬 정도의 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마교라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싫어도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때의 혼란을 기회로 무림맹을 다시 결속시키면 되는 것이오.”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해 오신 건가요?”
모용극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러기를 잠시.
부복해 있던 외당 책임자를 향해 모용극이 물었다.
“쾌수여의는 어디에 있나?”
“개방의 고수들과 함께 대문 앞에 집결해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모용극이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일어서는 그의 신형을 따라 무형의 압력이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났다.
외당 책임자에게 몇 가지 지시 사항을 하달한 뒤 모용극이 직접 대문 쪽으로 향했다.
서슬 퍼런 눈빛을 흘리고 있는 홍적문을 조우한 모용극이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개방의 장로께서 이 누추한 변방의 촌구석에는 어인 일이신지?”
“제갈연의 신병을 인도 받고자 하오.”
“왜 그녀를 무림맹이 아닌 우리에게 내놓으라 하는 것이오?”
홍적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뭉 떨지 마시오. 이미 그녀가 당신과 동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모용극이 뻔뻔한 미소로 응수했다.
“천하의 모든 정보를 아우른다는 개방도 가끔은 이런 실수를 하는구려. 아마도 개방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거짓 정보를 건넨 것이 아닌가 싶소만.”
홍적문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끝까지 그녀를 비호했다가는 모용세가에 역시 그녀와 동일한 혐의가 적용될 것이오.”
“이미 말했다시피 귀하는 거짓 정보에 헛걸음하신 거요. 그녀는 이곳에 없소.”
최후통첩에 가까운 엄포에도 끝까지 잡아떼는 모용극의 모습에 홍적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정 그러시다니 별수 없군.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하하. 설마 귀하들이 본 가를 직접 뒤지시겠다는 말이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소?”
모용극이 웃음을 거두며 싸늘한 눈빛을 흘렸다.
“본 가가 그리 만만해 보이더냐?”
갑자기 달라진 모용극의 태도에 홍적문이 당황했다.
그러나 이어진 모용극의 말에 애써 눌러 왔던 노기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냄새나는 거지들이 세가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걸 내가 허락할 거라 생각하냔 말이다.”
“모용 가주!”
“여기는 심양이다. 개봉이 아님을 잊지 마라.”
서로를 노려보던 것도 잠시.
홍적문이 뒤쪽에 도열해 있던 개방 방도들을 향해 명령했다.
“이 시간부로 모용세가를 제갈연의 도피와 은닉을 도운 공범으로 판단! 무력 사용을 허가한다!”
“장로님의 명을 따릅니다!”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진열을 갖추는 거지들의 모습에 모용극이 실소했다.
“본 가에 함부로 누명을 씌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이곳에 없다면 내 목을 걸지.”
“보잘것없는 거지 목숨 하나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고작 그걸로 본 가의 명예를 더럽힌 죄가 사라질 것 같은가?”
그때였다.
모용극의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축 늘어진 시신 한 구를 질질 끌고 온 사내가 모용극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부로 잠입을 시도하던 쥐새끼를 잡았습니다.”
털썩.
사내가 손을 놓자 시신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에 홍적문이 눈을 부릅떴다.
누더기를 걸친 시신은 한눈에 봐도 개방의 방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감히 개방 제자를 해치다니!”
우르릉.
웅혼한 우렛소리와 함께 어지러운 장영이 모용극의 전면을 뒤덮었다.
쾌수여의라 불리는 홍적문의 손을 통해 개방의 절학인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이 진정한 신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안 될 게 무어란 말인가!”
모용극 역시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쌍장을 내밀어 응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격돌한 직후.
쩌엉!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음과 함께 홍적문이 다섯 걸음 물러섰다.
반면 모용극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강했다니!’
손속을 교환한 건 일 합에 불과했으나 홍적문은 내심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손목을 타고 올라온 충격이 어깨까지 저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가슴은 거대한 철퇴에 얻어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그 뻐근함은 이내 기혈이 들끓게 만들고 있었다.
‘암경(暗勁)!’
그것도 침투경(浸透勁) 계열의 장공이었다.
이처럼 공수 교환을 틈타 상대의 내부를 진탕시키는 방식의 무공을 홍적문은 과거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정마대전을 통해서였다.
마지막 순간에 모용극이 소매를 털어 내듯 가볍게 앞으로 내민 한 수.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뿐이지 마교의 절학인 혈옥수가 분명했다.
“마공을 익혔구나!”
대경실색하는 홍적문과 달리 모용극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또 이렇게 본 가에 누명을 씌우는군? 우리 모용세가의 독문 무공을 마공이라 폄훼하다니! 어찌 이런 모욕을 그냥 넘길까.”
내공을 실은 모용극의 음성이 쩌렁하게 대기를 뒤흔든 건 그 직후였다.
“본 가를 능멸한 거지들을 죽음으로 징벌할 것이니! 저들의 목숨으로 세가의 오명을 씻어 내라!”
“와아아!”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용세가의 곳곳에서 검은 무복을 걸친 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타구진 개진!”
홍적문의 입에서도 명령이 떨어졌다.
개방의 거지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일정한 진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바로 개방의 절학인 타구진이었다.
나한진, 매화검진과 더불어 가장 오래 명맥을 이어 온 합격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 일견하기에는 합격진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누구는 목이 터져라 각설이 타령을 불러 젖혔고, 누군가는 병자처럼 다 죽어 가는 신음을 흘렸다.
거기에 미치광이 같은 울음소리와 서러운 통곡과 구걸하는 시늉이 더해지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모용세가의 무인들과 개방의 방도들이 순식간에 뒤얽혔다.
홍적문 역시 모용극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연달아 웅혼한 장력을 뿌렸다.
콰콰콰쾅!
모용극과 홍적문 사이에서 연달아 대기를 뒤흔드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홍적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비록 말석이라곤 하나 그는 중원삼대권사 중 한 명.
쾌수여의라는 칭호를 거저 내어 줄 만큼 무림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용극의 무공은 예상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더구나 처음 손을 섞었을 때 입은 내상이 족쇄처럼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팔 하나라도 가져간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 판단한 홍적문이 과감하게 수비를 포기했다.
그리고 저돌적으로 모용극을 향해 달려들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모용극은 쉽게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이미 장내의 상황은 자신들 쪽으로 승기가 기운 상황.
시간은 그의 편이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결과는 뒤집을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제아무리 뛰어난 합격진이라 해도 개개인의 역량이 받쳐 주지 못하는 타구진은 백 명의 고수로 이루어진 무천대(武川隊)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타구진을 운용하던 개방 측에서 처음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모용극!”
마음이 급해진 홍적문이 전력을 실어 일 장을 쳐 냈다.
비룡재천(飛龍在天)에 이은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절초였다.
천하의 모용극마저 경시할 수 없어 직접 받아 내지 못하고 물러설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렇게 모용극과 약간의 거리를 벌린 홍적문이 개방의 방도들을 향해 남은 힘을 쥐어짜 외쳤다.
“대열을 투석진(投石陣)으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개방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용세가의 무천대를 향해 암기들이 날아든 것도 동시였다.
돌멩이를 비롯해 깨진 기와 조각, 하물며 오물이 섞인 진흙 더미까지…….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개방도들의 모습에 무천대 소속의 무인들이 어이없단 눈빛을 흘렸다.
이미 개방을 압도하고 있던 그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고작 돌팔매질 따위로…….”
개방의 거지들을 비웃던 무천대의 사내는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퍼헉.
어디선가 날아든 돌멩이에 그대로 머리가 터져 나갔기 때문이다.
“……!”
무천대의 무인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빠악!
퍽!
그러나 그 와중에도 또다시 두 명의 동료가 주검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게 대체?”
퍽!
당황해 외치던 무천대의 무인 한 명의 머리가 그대로 으스러지며 숨을 거두었다.
무천대 무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돌의 비.
그 안에 섞여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긴 돌멩이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온갖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거지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 소음을 뚫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모용가가 언제 이렇게 사나운 개들을 길렀지? 이빨이 제법 날카롭네?”
“그러니 개방이 나설 수밖에. 개 때려잡는 데 거지만큼 도가 튼 자들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서 개를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있다면 바로 거지들이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무공명에 타구(打狗)가 들어가겠어?”
“그래도 개를 좋아하는 거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수?”
“거지들에게 좋은 개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유일하게 예외를 둔다면 이미 죽어 솥에 들어가 있는 개 정도겠지.”
잠시 후 개방 방도들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한 모용극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어떻게 당신들이 여기에!”
초악량과 범계위를 알아본 모용극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범계위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너, 나 아냐?”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를 어찌 몰라볼 수 있겠소?”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닌데?”
“그게 무슨……?”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용극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나는 석두.”
그 말을 초악량이 받았다.
“나는 왕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