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2)
신마의선-262화(262/500)
신마의선 (262)
모용세가 내부로 들어선 초악량은 곧바로 제갈연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갈연만큼은 범계위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마침 범계위는 달아난 무천대를 추적하고 있었다.
녀석이 거기에 정신이 팔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모용세가의 내당을 호위하는 무인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초악량 앞을 막아서는 이가 없었다.
가주였던 모용극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세가의 최고 정예인 무천대가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갈려 나가는 것을 이미 두 눈으로 목도한 뒤였기 때문이다.
“제갈연은 어디에 있지?”
초악량의 물음에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도 잠시.
전의를 상실한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순순히 한 곳을 가리켰다.
월동문을 넘어 후원으로 향한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살려 주세요.”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바닥에 엎드린 채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떠는 시녀들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뒤로한 채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초악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다른 시녀들과 달리 유독 새하얀 목덜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유심히 살펴보니 거칠고 갈라진 다른 시녀들의 손과 달리 그녀만 고운 섬섬옥수(纖纖玉手)를 지니고 있었다.
초악량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한신(韓信)은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남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마저 감내했거늘, 어찌 무림맹주라는 자는 이토록 졸렬한 수법으로 위기를 넘기려 한단 말인가.”
하인들 틈에 숨어 있는 제갈연이 그 말에 움찔했다.
한 줄기 달짝지근한 향이 초악량의 코끝을 스친 것도 그때였다.
‘이건?’
깜짝 놀란 초악량이 소매로 코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하독을 했구나!”
그 순간.
풀썩.
모용세가의 시녀들이 일제히 힘없이 쓰러졌다.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한 그녀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죽은 시녀들 사이에서 제갈연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신선폐(神仙廢)예요.”
그 말과 함께 제갈연이 초악량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건넸다.
“대부분의 절독이 그러하듯, 인지했을 때는 이미 중독이 된 상태죠. 당신도 예외는 아니고요.”
초악량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제갈연을 노려봤다.
그러나 제갈연은 여유있게 그 눈빛을 받아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랍니다. 당신을 죽이는 건 극독이 아니에요. 바로 마지막 순간에 당신에게 깃든 방심이죠.”
일단 중독된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이 신선폐였다.
산공독(散功毒)의 일종인 신선폐는 학정홍(鶴頂紅), 부시독(腐屍毒)과 더불어 절대금용독(絕對禁用毒)으로 분류되며 사용 자체가 금기시되는 절독이었다.
바로 해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초악량의 반문에 제갈연이 하얗게 웃었다.
“신선폐가 강호에 등장한 지 삼백 년이 넘었어요. 스스로에게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을 당가가 그대로 방치할 리 없잖아요? 다른 독은 아직까지 성과가 없지만 신선폐만큼은 최근 해약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더군요. 당령은 그것을 구혼을 위한 선물로 신선폐와 함께 제게 건넸고요.”
“제 목숨을 위해 애꿎은 일반인마저 희생시키다니……. 끝까지 악랄하기 짝이 없구나.”
초악량의 질책에 제갈연이 하얗게 웃었다.
“혈수존자라 불리는 당신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너는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먼저 가실 분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고요.”
비웃음을 던지던 제갈연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미 쓰러질 시간이 지났음에도 너무나 멀쩡한 초악량의 모습 때문이었다.
당혹감에 휩싸인 제갈연을 향해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이번에도 단 의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군.”
“……?”
의아해하는 제갈연을 향해 초악량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보였다.
“그건?”
제갈연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초악량의 손에 들려 있는 구슬.
바로 피독주였다.
“당령과 가까운 사이였던 만큼 혹시 모른다며 단 의원이 이것을 지니고 가라 하더군.”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다가선 초악량이 제갈연의 목을 움켜쥐었다.
콱.
“컥!”
초악량의 손아귀에 붙들린 제갈연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제갈연이 가까스로 입을 열어 애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기 짝이 없는 음성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나…….”
초악량이 다른 손을 들어 제갈연의 어깨와 팔을 훑어 내려갔다.
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제갈연의 어깨뼈와 팔이 그대로 조각조각 내부에서 부서졌다.
“꺄아악!”
처절한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진 것은 그 직후였다.
뒤늦게 엄습한 끔찍한 고통에 제갈연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동안 우리 단 의원을 귀찮게 한 대가를 받아야겠지.”
초악량이 제갈연의 턱 근처 아혈을 점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된 제갈연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목을 움켜쥔 채 초악량이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모용세가를 나선 초악량이 제갈연을 집어 던졌다.
털썩.
바닥에 널브러진 제갈연은 밀려드는 고통에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더없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홍적문 때문이었다.
“마무리는 개방이 직접 해야 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초악량의 말에 홍적문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까안!”
쿠웅!
쩌렁한 고함 소리와 함께 장내에 유성처럼 내리꽂히는 거대한 인영이 있었다.
범계위였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섬뜩한 웃음을 흘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제갈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제갈연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넘겨줄 때 넘겨주더라도 우리 단 의원을 귀찮게 한 빚은 받아야지.”
“그건 이미 내가…….”
우드득.
초악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범계위는 이미 제갈연의 두 다리를 밟아 으스러트리고 있었다.
“……받아 냈다.”
“응? 일찍 말하지 그랬수.”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연이은 고통과 충격에 정신을 놓고 혼절해 버린 제갈연을 범계위가 툭 차서 홍적문 앞으로 굴려 보냈다.
“이걸로 개방에 진 빚은 갚았다? 우리 이제 거지 아니야!”
초악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청의빈객(淸衣賓客)의 직책도 반납한다.”
홍적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번 개방은 영원한 개방입니다.”
“뭐? 그런 게 어딨어?”
발끈하는 범계위를 향해 홍적문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아니라 이립 방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따지려면 그분께 따지시지요.”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따져!”
씩씩대던 범계위를 향해 홍적문이 곤혹스러운 미소를 건넸다.
그러기를 잠시.
발밑에서 꿈틀대는 제갈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맹세컨대 단번에 목이 잘려 나가거나, 일 검에 심장이 꿰뚫리는……. 그런 편안한 죽음은 결코 네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이 강호에 죽음보다 더욱 끔찍한 것이 있음을 몸으로 직접 깨닫게 해 주마.”
싸늘한 눈으로 제갈연을 내려다보던 홍적문이 개방 방도들을 향해 외쳤다.
“개봉으로 돌아간다.”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진 모용세가를 뒤로한 채 개방의 거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리도 이만 가자.”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조용해지겠군.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수.”
* * *
요녕 혈사라 불리게 된 모용세가의 멸문.
이후 무림맹의 해체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에 불과했다.
그동안 제갈연이 뒤에서 꾸며 왔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났고, 그녀의 악행이 낱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무림은 모용세가와 제갈연의 결탁에 분노했고, 덩달아 다른 세가들 역시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한 채 자숙하는 태도를 취했다.
특히 제갈세가는 가주가 직접 개방을 방문해 이립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죄하는 한편, 막대한 보상안을 제시하여 공식적으로 제갈연이 자신들의 가문과 절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사천당가 역시 비슷한 행보를 취했다.
당가타주였던 당령을 축출한 당가의 가주는 구파일방을 비롯해 무위에도 서한을 보내 사죄와 보상을 약속했다.
또한 황보세가와 함께 향후 오 년간의 봉문을 선언했다.
한편 노단양과 동귀어진 한 남궁백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개방에서는 남궁세가에 사절을 보내 애도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거기에 개방과 뜻을 함께한 구대문파와 단악선의 추모가 더해지며 남궁세가는 다시금 명예를 회복하고 오대세가의 지위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개방의 거지들은 상복을 벗었다.
그렇게 크나큰 생채기가 휩쓸고 간 무림은 다시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단악선의 명성이 높아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제갈연이 야기한 혼란을 해결한 것이 단악선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산파에서 있었던 비무까지 소문이 나면서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
호사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신마의선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심지어 떠돌이 악사와 기루의 가기(歌妓)들마저 단악선의 이야기를 소재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같이 뜻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파와 사파를 하나로 묶는 유일무이한 인물.
소림과 화산을 위시한 구대문파와 개방과의 친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천하오절 중 세 명이 이미 단악선을 지지하는 상태.
이번 일로 오대세가를 비롯한 중원의 유력한 가문들은 단악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금지로 선포된 무위에 결집한 사파의 고수들이 제 목숨처럼 단악선을 따르고 있었다.
거기에 의원이라는 신분이 더해지고 지금까지의 선행들이 알려지며 어느새 단악선은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는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단악선이 건넨 미소에 악호군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소.”
드디어 무위를 벗어나게 된 악호군이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좋단다. 한 것도 없으면서 밥만 축낸 놈이.”
“놔둬라.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느냐? 자고로 능력이 부족한 건 탓하는 게 아니라 했다.”
범계위와 초악량의 핀잔에 악호군이 와락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성질대로 날뛸 수 없었다.
자신이 감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무공을 지닌 신마삼존이었다.
거기에 단악선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단악선의 위상에 삼만 녹림도의 수장인 자신조차 이제는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뒤에서 툴툴대는 수하들의 목소리에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아. 가기 싫은데…….”
“그냥 여기서 눌러살면 안 되나?”
무위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던 녹림도들은 이곳을 떠나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것들이?”
험악해진 악호군의 눈빛에 채주들이 찔끔했다.
뒷산의 호랑이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눈앞의 늑대가 더 무서운 법.
진땀을 빼며 수하들의 기강을 잡는 채주들을 뒤로한 채 악호군이 단악선과 신마삼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약속은 잊지 말아 주세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무위와 관련된 이들은 언제든 녹림의 보호를 받을 것이오.”
“그리고 하나 더요.”
악호군이 내심 쓴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흘렸다.
“향후 십 년간 남궁세가 산하의 표국 물건들은 건들지 않겠소.”
단악선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약속은 지키시리라 믿어요.”
일구이언 견부지자 어쩌고 하는 말은 둘째 치고, 단악선과 척을 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악호군이었다.
특히 단악선 주변의 저 괴물들과는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악호군이 수하들을 거느린 채 무위를 떠났다.
녹림도들 상당수가 끝까지 아쉬운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중에는 수하들을 다그쳤던 몇몇 채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무림은 다시 평화를 되찾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