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3)
신마의선-263화(263/500)
신마의선 (263)
닷새에 걸친 집중적인 폭우.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거센 비가 지나간 뒤 선선한 날씨와 함께 가을이 찾아왔다.
신마의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따금 강호의 명숙들이 단악선을 찾아오는 것만 빼면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을 이어 갔다.
그나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악선의 수련 시간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었다.
풍진성과 주초운의 가르침 덕에 크게 실력이 발전한 의원들이 이제는 제법 제 몫을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무실에 들어선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네? 뭐라고요?”
상황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워 반문하는 단악선을 향해 능소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흑경방에서 도박장 운영을 허가해 달라고 합니다.”
“도박장이요?”
당장 그 문제는 둘째치고, 흑경방이라는 생소한 방파는 이전까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능소밀이 열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외곽에 놀리고 있는 공터에 기루와 도박장을 함께 지어 종합 유흥 시설을 만들고자 한다더군요.”
“도박장은 나쁜 거 아닌가요?”
마침 단악선의 집무실에 들어선 사무심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니 무위에 해가 될 것 같진 않더군요. 오히려 이곳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재물과 같은 유형의 이익은 말할 것도 없고,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무형의 이익까지요.”
사무심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일단 무위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만 출입이 가능한 도박장을 운영할 거라 못 박았습니다. 이곳 무위를 드나드는 서역의 상단을 주 고객으로 유치할 계획이라 하더군요. 기존의 도박장처럼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합법적인 형태로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고요.”
“그게 무위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입니다.”
사무심의 눈빛을 받은 능소밀이 한 무더기의 서류들을 단악선 앞에 내밀었다.
“저들이 제출한 사업 계획서입니다.”
서류들을 확인하던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계획서대로라면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겠군요?”
“그대로 충실히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경우입니다만……. 그렇게만 된다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도박장은 유흥을 위한 고객 유치의 일환일 뿐, 실질적인 수익은 고급 객잔을 비롯한 기루와 주루에서 발생하는 구조란 말이죠?”
“서역 상인들과 중원 상단들이 교류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셈으로 먹고사는 이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 중 도박을 싫어하는 자는 없거든요.”
사무심이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서역의 상단 대부분이 희박한 확률과 운에 기대어 사업을 성공시킨 이들인 만큼 그들에게 도박장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입니다. 중원의 상단과는 여러모로 다르지요.”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위에 도움이 된다면 저야 반대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이 계획서를 올린 흑경방 분들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흑점에 부탁해 놈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능소밀이 곧장 다른 서류를 꺼냈다.
“본래 산서에서 활동하던 자들인데, 사업 자체는 깔끔하게 운영하는 편입니다. 본래 백사회(白沙會)의 비호를 받던 자들이었는데, 최근 그들이 요구하는 상납금에 지쳐 그쪽의 사업을 완전히 접은 모양입니다. 이후 이쪽으로 넘어왔고요.”
“백사회라면…….”
단악선이 말끝을 흐렸다.
능소밀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암룡방의 방주 곽언이 몸담았던 곳이지요.”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초악량이 과거의 은원을 청산하기 위해 청산파와 일전을 벌였던 당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암룡방은 초악량의 친우인 염사인의 염직 상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초악량은 청성 속가인 청성제일무관의 관주 반여해를 끌어들여 그들과 상잔(相殘)을 유도했고, 그 과정에서 오래된 은원의 당사자인 청명산인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수는 당연한 수순.
하나 그 일로 인해 초악량이 겪은 고초는 다시 떠올려도 몹시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다른 구대문파와 달리 지금까지도 청성파와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단악선의 표정을 오해한 능소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주 골치 아픈 놈들이죠. 당장 오늘만 사는 족속들이니까요.”
“네?”
“백사회 말입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흑점조차 감히 손대지 않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소금이었다.
소금은 조정이 거두어들이는 세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정의 눈을 피해 밀염(密鹽)을 거래하는 것은 조정의 세금을 착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이는 적발 즉시 극형에 처했다.
역모와 탈세야말로 조정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염효(鹽梟)라 칭하는 백사회 같은 염적(鹽賊) 집단은 지닌바 세력이 상당했다.
독종 중의 독종이라는 사천당가마저 독기에선 한 수 접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사회의 독기와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상당한 수준의 고수를 거느리고 있었다.
남궁백의 무림맹주 시절.
무림맹의 압박에 사파의 고수들은 생존을 위해 녹림이나 백사회에 일신을 의탁했다.
그 결과 백사회는 실질적으로 과거의 사파 세력 대부분을 규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규모나 인원 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문제는 저들의 수입원이 밀염이니만큼 성향이 올곧지 않다는 점이다.
중원에서 일어나는 가장 나쁜 일들.
그 이면을 들추어 보면 그들이 관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돈을 위해 악인으로 살아온 사무심이나, 출세를 위해 정보단체인 신소방을 운영해 온 능소밀조차 놈들의 악행에는 치를 떨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능 단주님?”
“네, 말씀하십시오.”
“그런데 제가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요…….”
“……?”
“왜 제가 이걸 고민해야 하는 거죠?”
“이번에 흑경방도 오십 명이 전부 무위로 왔습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한 채로요. 그놈들도 사활을 건 것이지요. 백사회를 이탈했으니, 저들의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이제 무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무위에 뼈를 묻을 각오로 왔다는 겁니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요.”
단악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허가를 왜 제가 해야 하나요?”
“자신들도 살길을 모색해야 하니 이번 일의 전결권을 지닌 사람을 나름대로 수소문한 모양입니다. 친분이 있던 사파인들의 인맥을 동원해서요.”
“그런데요?”
“모두 같은 대답이었답니다.”
“그게 저라고요?”
“네. 저들이 곡주님께 직접 허락을 구한 이상 제가 임의대로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를 드리는 거고요.”
능소밀의 대답에도 단악선은 여전히 얼굴에서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문제는 제가 아니라 조정으로부터 녹봉을 받는 관리가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제야 단악선이 왜 이토록 어이없어하는지 깨달은 능소밀이 빙그레 웃었다.
“저 또한 혹시 몰라 현승(縣丞)을 통해 지현(知縣)에게 문의를 했습니다만…….”
“……?”
“지현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단 의원님의 생각을 궁금해하더군요.”
“왜죠?”
단악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현은 소위 현령(縣令)이라 하는, 현의 정사를 주관하는 정칠품의 직위를 지닌 관리였다.
비록 하급 관리라 하나 현의 치안을 담당하는 현위(縣尉) 휘하의 포쾌(捕快)들을 거느리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권력을 지닌 직책이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궁금해하다니?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단악선은 무림인들이 소위 육선문이라 부르는 관과 지금껏 그 어떤 교류도 없었다.
“그러니까 두 분께서는 이 사업에 찬성하신다는 거죠?”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위를 지킬 수 있는 아주 큰 기회입니다. 그냥 놓치기는 아깝습니다.”
“도박장이 어떻게 무위를 지킬 수 있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라 단악선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단악선이 생각하는 도박장은 온갖 말썽의 소지가 다분한, 불건전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무위에 들이자니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사무심의 설명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관부와의 연계입니다.”
“관부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무림인이 일반 민초들을 건드릴 수 없도록 강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관부를 깊숙하게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제때 세금을 바치고, 그 세금의 양이 상당하다면 세수 확보를 위해서라도 관은 더욱 치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요. 소금 사업에 조정이 직접 관여하는 이유도 바로 세금 때문입니다.”
“아!”
“설사 마교가 무위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요.”
“도박장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비단 도박장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조정의 국책 사업 수준으로 확장시켜 더 많은 세금을 창출해야지요.”
“세금만으로 관의 협조를 얻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적당한 지분도 쥐여 줄 생각입니다.”
“지분이라면…….”
“각 시설의 관리자들에게 정식으로 관부에서 인정한 직책을 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최대한 많이 관부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할 생각입니다.”
“일반 주민들까지요? 관부에서 받아들일까요?”
“고위 관리는 안 되겠지만, 포쾌처럼 단순 관리직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엄연히 조정의 사람인만큼 마교가 준동하더라도 절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사무심의 말이 끝나자 능소밀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엄청날 것입니다. 비단 세금뿐만 아니라 각종 명목의 뒷돈도 챙길 수 있는 자리죠. 모든 관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리들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 돈이 우리의 뜻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금을 북경에 보낼 수 있느냐가 바로 출세와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위를 담당했던 지현이 조만간 중앙 관직으로 진출한다고 하더군요. 신마상단과 신마의가를 통해 발생한 무위의 발전을 높게 평가받았다 합니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그제야 단악선은 자신에게 현령이 호의를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곧 그 자리도 물갈이가 될 겁니다. 교체되는 지현에 대한 정보는 능 아우가 따로 조사하고 있으니 곧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는 세금이 그렇게 많았나요? 관리의 승진을 좌우할 정도로요?”
사무심과 능소밀이 서로를 보며 쓰게 웃었다.
사실 단악선은 늘어 가는 영약과 약재들로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할 뿐, 상단과 의가의 실질적인 재화나 자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부를 직접 다루는 자신들도 가끔은 그 안에 기재된 숫자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관부와의 관계는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합법적인 건 아니니까요. 당장 서역 상단과의 교역만 하더라도 관부가 적당히 눈을 감아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능소밀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외부에서 이를 문제 삼아 거론하면 골치 아파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막대한 세금으로 어찌어찌 막고는 있습니다만, 차라리 이 기회에 직책과 지분을 활용해 수익 면에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무엇보다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었다.
“그럼 그 사안에 대해서는 두 분께 맡길게요.”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를 보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은 다시 한 번 당부를 잊지 않았다.
“대신 도박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모든 결정에 앞서 무위 사람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감안해 주시리라 믿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미 구체적인 그림을 어느 정도 그려 놓은 듯 능소밀이 즉각 대답했다.
“도박장 이용은 서역 상인들과 외부의 상단만 입장 가능하도록 할 것이며, 그 안에서 쓰는 금액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상한 금액을 정해 두겠습니다. 자세한 사항들은 새로 발령된 지현이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조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단악선의 허락을 얻어 낸 두 사람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