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4)
신마의선-264화(264/500)
신마의선 (264)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저녁 무렵.
무위로 향하는 관도로 들어서는 십여 명의 일행이 있었다.
서른 살쯤 되었을까.
말을 탄 채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사내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무위와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안 좋아지던 사내가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기껏 어렵게 잡은 줄이 썩은 동아줄이었다니! 친목을 다지기 위해 그토록 성심성의를 다한 결과가 고작 이런 변방의 촌구석 지현이라고? 이게 좌천과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그를 호위하며 뒤따르던 포두가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다.
“듣기로는 이곳 무위가 기회의 땅이라 하더군요. 이전 지현을 맡았던 장 지부대인께서도 이번에 정사품으로 품계가 크게 올라 영전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 성의 통치를 담당하는 승선포정사사 아래로는 부와 주, 현의 순서로 행정 단위가 세분화된다.
부를 다스리는 지부대인은 정사품, 그 아래 현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지현은 정칠품으로, 품계 차이가 상당했다.
그러나 사법이나 군사에 대한 권한이 없는 지부대인과 달리 지현은 치안을 담당하는 현위를 자체적으로 거느릴 수 있어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무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위에 새로 부임하게 된 현령, 왕사진을 달래던 노우삼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무위에 큰 영향력을 지닌 유력자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신다면 대인께서도 중앙으로 진출하실 교두보를 마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력자?”
“신마의가와 신마상단 말입니다. 근래 들어 강호에 그들과 관련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말에 왕사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비록 정칠품에 불과하나 그래도 엄연히 지엄한 황상의 명을 받들어 공무를 수행하는 문관이거늘, 어찌 강호의 무뢰배들과 친목을 도모한단 말인가?”
권위 의식에 찌들 대로 찌든 상관의 태도에 노우삼이 내심 한숨을 흘렸다.
치안을 위해 현장의 최일선에서 부대끼는 자신들과 달리, 책상물림으로 책만 파먹던 그가 무림인에 대한 두려움을 알 리 없는 것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까울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할 필요는 더욱 없는 것이 그들과의 관계였다.
당금 무림에서 무위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설명하려던 노우삼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여전히 불퉁스러운 상관의 표정 때문이었다.
괜히 말을 꺼내 봐야 빈축만 살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황상의 명을 받잡는 본관의 권위 아래로는 어디까지나 일개 백성. 저들 스스로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것이다. 만약 본관을 거역한다면 조정의 무서움을 알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자네들의 역할 아닌가?”
세상 물정 모르는 상관의 생각에 포쾌들은 저마다 곤혹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무림인.
그것도 무위에 모여든 사파의 실력자들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려면 적어도 수도의 어림군(御臨軍)을 총동원해야 할 터.
하물며 신마삼존이라 불리는 괴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며 무위로 들어서는 순간.
멀리 자신들을 마중 나온 관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지현대인. 소인은 앞으로 대인을 보좌할 이가 곽이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곽이라 밝힌 사내의 뒤에 늘어서 있는 관아의 하급 관리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지현대인! 무위에 부임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래. 잘 부탁하지.”
왕사진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고삐를 잡아 가는 이곽을 내려다보았다.
“자네가 장 지부대인을 보좌했던 현승인가?”
“그렇사옵니다. 영광스럽게도 지난 삼 년 동안 그분을 모셨지요.”
“그런데 이상하군? 보통은 품계를 밟아 영전하는 상관을 따라가지 않는가?”
“주부(主簿)에서 종사(從事)로 진급한 지 채 삼 년을 채우지 못했나이다.”
“그런가? 하긴…….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하나쯤은 곁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성심성의를 다해 지현대인을 보필하겠나이다.”
그렇게 이곽이 앞장서 말을 이끄는 동안 왕사진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왕사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는 어째서 저리 고개가 뻣뻣한 것인가?”
오가는 무위의 백성들은 자신이 착용한 관모와 정복을 보고 깍듯하게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명.
포목점 앞에 서 있는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입에 물고 질겅이던 나뭇가지를 뱉더니 그대로 포목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런 무엄한 놈을 보았나?”
황당해하는 왕사진을 향해 이곽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러려니 하십시오.”
“이곳의 현령인 내게 범한 무례를 그냥 보아 넘기란 말이냐?”
“저자는 곡운경이라 하는 자이온데, 강호에는 추비무랑(追比武郞)이라는 명호로 더욱 유명한 사파의 고수입니다.”
“무림인이라는 뜻이냐?”
“그러하옵니다. 이곳 무위는 사파 무림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옵니다. 괜히 저들과 갈등을 빚어 봐야 득 될 것이 없사옵니다.”
왕사진은 내심 불쾌했으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관아로 가서 여독을 푸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위 거리를 가로질러 관아로 향하는 동안 왕사진의 얼굴에는 서서히 놀라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곳이 정말 현이 맞느냐?”
저자를 가득 메운 상점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곳곳에 자리 잡은 객잔과 기루의 숫자만 해도 여러 개의 현을 묶은 행정 구역인 주를 넘어서는 규모였다.
게다가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상단과 의가 덕분입니다. 이곳에 상주하는 가구만 해도 이미 일만 호(戶)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수가 늘어나는 중입죠.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부로 승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곽의 말에 왕사진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는 건?’
큰 사고 없이 자리 보전만 해도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의미다.
부로 승격되면 행정부의 수장인 그의 품계 역시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사품인 지부만 하더라도 자력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
이후부터는 고위 인사와의 인맥이나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어쩌면 횡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왕사진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곳에는 유독 고개가 뻣뻣한 자들이 많군.”
불쾌함이 역력한 왕사진의 목소리에 이곽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곤 쓰게 웃으며 정중하게 조언했다.
“저자도 무림인입니다.”
“본관의 눈에는 그저 목수로 보이네만?”
“지금은 호구지책으로 목수를 하고 있으나 강호에서는 팔비요수(八臂搖手)라는 명호로 이름 높던 수공의 고수입니다.”
“그럼 저자 역시?”
왕사진이 가리킨 노점상을 슬쩍 바라본 이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사파에서 나름 이름 높던 고수입니다. 명호가…….”
“쯧. 되었네.”
이곽의 말을 자른 왕사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마뜩잖은 눈빛을 흘렸다.
“도대체 이 시골구석에 무슨 무림인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관아로 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체 지부대인께서는 이곳을 어떻게 관리하셨길래 이토록 관부의 위엄이 바닥에 떨어졌단 말인가? 내 조만간 이를 다시 세울 것이야.”
왕사진의 말에 이곽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황급히 입을 열어 설명을 이어 가려던 이곽은 맞은편에서 고개를 젓는 현위, 노우삼의 표정에 쓴 입맛을 다셨다.
다음 날 아침.
풍진성, 주초운과 함께 단악선이 아침 진료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곤란한 표정으로 들어선 사무심이 단악선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새로 부임한 현령이 곡주님을 만나 뵙길 청했습니다.”
“그래요? 언제든 오시라고 전해 주세요. 여기 계신 두 분만으로도 환자들의 진료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요. 시간을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선뜻 대답한 단악선이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는 사무심의 태도가 어딘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러세요?”
“그게…….”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사무심의 모습에 단악선은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저더러 관아로 오라는 말이었군요?”
“일단은 아무래도 저쪽이 천자를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입장이니까요.”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겠지요.”
선물로 보양환과 독계산을 챙긴 단악선이 사무심과 함께 의가를 나서 관아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관아에 도착하자 쉽게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기별한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들어오라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일각을 지나 반 시진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참다못한 사무심이 관아의 문을 두들겼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포졸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벌써 반 시진째요. 지현 대인에게 우리가 도착했다 전하기는 한 것이오?”
“말씀은 전했지만 아직 들이라는 명이 없으셔서…….”
곤란한 기색이 역력한 포졸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아무래도 처음 부임하셨으니 인수인계할 부분이 많겠죠.”
“예? 예, 뭐…….”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못내 수상했으나 사무심은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며 다독이는 단악선 때문이었다.
“아랫분들을 다그쳐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죠.”
하지만 단악선도 사람이었다.
대문이 닫히고도 다시 반 시진이 지나 한 시진을 꽉 채우고 나자 단악선도 살짝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담벼락 너머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와 노랫가락,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아무리 봐도 공무 중이라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무심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만 돌아가시지요. 지현과의 약속은 제가 다시 잡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좀 더 기다려 봐요. 두 번 오고 싶지는 않거든요.”
단악선의 말투가 차갑게 식었다. 이 말을 들은 사무심의 심장은 반대로 뜨거워졌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이 지났다.
두 시진을 그 자리에 머문 것이다.
“기 싸움을 하려는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은 지나치네요.”
사무심이 분노를 꾹 참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총관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새로 부임한 현령이 뭔가 크게 잘못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악선이 무표정한 얼굴로 닫힌 문을 응시하던 그때.
덜컹.
관아의 대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중천에 걸린 대낮인데도 이미 얼굴이 불콰해진 것을 보니 아침부터 거나하게 술을 걸친 모양이었다.
“그대가 소문의 그…… 뭐더라? 신마의선?”
어딘가 깔보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지만 단악선은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부족하나 강호의 동도들은 저를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듣자니 신마상단도 그쪽이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거만한 왕사진의 표정에 사무심의 눈빛이 대번 험악해졌다. 당장 손을 쓰고 싶었지만 단악선의 대답이 빨랐다.
“고맙게도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왕사진이 피식 웃으며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이곳 무위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다길래 얼마나 대단한 자인가 싶었는데, 고작 이런 꼬맹이였다니. 어이가 없군.”
그 말에 사무심이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왕사진의 언행도 얼마든지 여유 있게 받아넘길 수 있었다.
하나 그 대상이 단악선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탐화(探花)로 전시를 통과하신 분께서 어찌 공자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시는지 모르겠군요.”
의아해하던 왕사진은 이어진 사무심의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람은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