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5)
신마의선-265화(265/500)
신마의선 (265)
“무엄하기 짝이 없구나! 현시조차 치러 보지 않은 민초가 감히 본관을 가르치려 들어?”
왕사진은 어이가 없었다.
보아하니 제법 글문 꽤나 읽은 모양인데 어디 진사인 자신 앞에서 부자(夫子)의 말씀을 운운한단 말인가.
소위 동생이라 불리는 학생 시절을 거쳐 동시와 과시를 통과하면 생원이나 수재(秀才), 혹은 거자가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나름 학식을 자부할 수 있었다.
비로소 국자감에 입학하여 하위 관직에 오를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수재들은 관원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었고 사실상 불체포 특권을 지녔으며, 장형이 면제되는 사대부 취급을 받았다.
하나 자신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상위 과정의 시험인 향시마저 통과해 거인(擧人)이 되었다.
거인의 합격자는 매우 드물어서, 향시에 낙방한 수재들도 상당한 존중을 받았다.
그 거인만 하더라도 보통 이십 년은 족히 걸렸다.
이때부터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지방 관청의 관리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인들끼리 진검승부를 펼치는 회시에 도전했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천하의 인재들이 지식과 지혜를 겨루는 경합.
그 치열함은 말로 다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 회시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진사라는 호칭이 허락되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합격과 동시에 고위 관료 임용이 보장된 고위 신분이 된 것을 의미했다.
회시를 통과하면 전시라 불리는, 회시의 합격자 중에서 순위만을 가리는 마지막 시험을 치르게 된다.
각각 장원(壯元), 방안(榜眼), 탐화(探花)의 순서로 순위가 매겨지는데 거기에서 탐화를 거머쥔 사람이 바로 그였다.
남경과 북경에서 나뉘어 열리는 회시 합격자가 치르는 전시는 무려 황상의 어전 앞에서 치러진다.
또한 황상께서 친히 따라 주는 술을 받기도 했다.
이는 전시 상위 합격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으로, 친왕(親王)이라고 할지라도 받지 못하는 대접이었다.
그만큼 진사를 황실과 조정에서 예우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왕사진 자신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고, 몇 대에 걸칠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니 더욱 일개 백성 따위가 공자의 말을 운운하는 꼬락서니가 우스울 수밖에.
왕사진의 호통에도 사무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싸늘한 눈빛으로 그 말을 받아쳤다.
“주역의 육십사 괘 가운데 오직 겸(謙)괘에만 흉사가 없습니다. 나머지 다른 괘에는 모두 길흉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과 대비적이지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 모든 흉험한 일도 비껴간다는 교훈을 시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무심의 눈빛이 스산해지자 왕사진이 움찔했다.
“가, 감히 황상의 지엄한 명을 수행하는 관리를 겁박하는 것이냐?”
아무리 그가 뛰어난 학식과 배포를 지녔다 한들 어디까지나 일반인.
무인의 살기가 담긴 기파를 정면에서 마주하고도 멀쩡할 리 없었다.
순식간에 등골이 서늘해지며 온몸이 얼어붙었다.
보다 못한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그럴 리가요.”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단지 성현들의 가르침을 언급한 것뿐인걸요.”
그제서야 창백하던 왕사진이 다시 신색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내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이내 분노가 되었다.
“공자의 말씀을 입에 담는 자가 어찌 이토록 무례하단 말인가! 공자께서는 그토록 예(禮)를 강조하셨거늘!”
왕사진의 질책에도 단악선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공자님께서는 예(禮)를 논하기 앞서 인(仁)과 의(義)를 언급하셨죠.”
“뭐?”
“그분께서는 사람다운 따듯한 마음, 즉 인(仁)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
“그러니 집필하신 논어에서도 인자애인(仁者愛人)을 언급하셨겠죠.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조건 없이 타인을 챙기고 아끼는, 그런 마음이요.”
“허……. 그래서?”
“인자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는데, 주변의 수많은 신뢰를 바탕으로 무리의 장(長)이 돼요.”
이로써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생기게 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모범이 되어 가르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본받아 배운다.
“이러한 상하 관계에서의 올바름이 바로 의(義)라고 하셨죠. 또한 상하 관계의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있어서 순서가 없으면 가르침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니, 상하 관계에서는 일정한 규범을 두고 따르게 하는 형식이 예(禮)라고 하셨고요. 결국 예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의고, 의 역시 인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곳 무위를 다스릴 지현대인께서도 부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만.”
단악선의 말을 자른 왕사진이 마른 웃음을 풀썩였다.
“듣자 듣자 하니 갈수록 가관이로군. 돈 좀 쥐고 있다고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나? 미리 말하건대, 나는 물렁한 다른 관리들과는 다르다.”
단악선을 노려보던 왕사진이 뒤에 시립해 있던 하급 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마의가, 신마상단이 부정하게 부를 축적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이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이니, 장부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 만약 장부에 거짓이 있다면 대명률에 따라 엄히 다스릴 것이다.”
“……!”
그 말에 왕사진을 보좌하는 위치인 현승, 이곽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하나 이를 보지 못한 왕사진은 의기양양하게 거드름을 피워 댔다.
“네놈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왕사진이 돌아섰다.
쿵.
눈앞에서 닫힌 관아의 문을 바라보던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오랜만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도 이만 돌아가요.”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말없이 대문을 노려보는 사무심을 다독였다.
“대체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걱정 가득한 이곽의 표정에 왕사진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네놈도냐?”
“예? 그게 무슨……?”
“저 무도한 놈들 편을 드는 것을 보니 네놈도 뒤가 구린 게 많은 모양이구나.”
이곽이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소인은 결코…….”
“흥! 아니기는. 그동안 놈들이 가져다 바친 재물이 적지 않았을 터. 그 과정에서 흘린 부스러기를 주워 담느라 바빴겠지. 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도 필시 그 때문일 터.”
이곽이 한숨을 삼키며 조언했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테니 당장은 정무를 수행하시는 것보다 쉬시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내일은 취임식이 있는 날 아닙니까?”
“오호라! 역시 그렇군. 내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을 보니 필시 네놈도 저들에게 받아 처먹은 것이 있는 게야. 내 너부터 조사해 봐야겠구나.”
그사이 술기운이 더 오른 것인지 혀까지 꼬인 왕사진의 모습에 이곽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껏 이곳 무위에서 나고 자란 그였다.
관직에 오른 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지현들을 보필해 왔지만 이처럼 안하무인인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자신의 험한 관직 생활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그런데 이는 자신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무위의 치안을 담당하는 종칠품의 현위, 노우삼 역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관아 앞에서 벌어진 소요를 지켜본 이가 이미 한둘이 아니었다.
마른 짚에 불이 번지듯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 나갈 터.
벌써부터 불안한 눈빛을 흘리는 병사들과 포쾌를 지휘해야 하는 그였던지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자신들의 걱정도 모른 채 어느새 곯아떨어진 왕사진의 모습이 그렇게 한심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취임식에 맞추어 의관을 정제한 왕사진이 청사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청사에 들어선 그의 눈에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이게 대체?”
황량하리만치 썰렁한 청사 내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사 몇 명이 한편에 자리하고 있을 뿐,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의당 있어야 했을 빈객들도 없었고 시끌벅적하게 축하연을 북돋고 흥을 끌어낼 기녀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아 내외를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어야 할 관아의 병졸들도 어째서인지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던가?”
당황한 왕사진의 말에 그의 눈치를 살피던 노우삼이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전부 그만뒀습니다.”
“뭐라? 그만두다니?”
관아 소속의 병사들은 징집되어 군적에 이름을 올리고 병역을 이행하는 병부(兵部) 소속이 아니었다.
정해진 녹봉을 받고 명을 수행하는 일종의 하급 관리인 셈.
따라서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모두가 그만둬 버린다니?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왕사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를 보좌하는 이곽이었다.
“대체 취임식을 어찌 이토록 허투루 준비한단 말인가!”
다짜고짜 일갈을 터트리는 왕사진을 향해 이곽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뭔가?”
왕사진의 물음에 이곽이 대답했다.
“사직서이옵니다.”
“뭐라?”
“대인을 모시기에는 소인의 능력이 미흡함을 절감하나이다. 하여 저보다 더욱 유능한 현승을 천거해 주십사 참의대인께 보고를 올렸으니 조만간 다른 이를 파견해 주시리라 사료됩니다.”
왕사진이 당혹감을 금치 못하는 사이.
“저도 사직서를…….”
“소인도 금일부로 그만두려 합니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다른 하급 관리들이 앞다투어 사직서를 던져 대자 왕사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 내게 반항을 하는 것인가?”
화를 누르지 못하고 버럭 하는 왕사진을 향해 이곽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어찌 소인이 감히……. 다만 제가 지병이 있어 대인의 정부를 제대로 보필하기 어렵나이다.”
“지병?”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뛰고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해 의원을 찾아 증상을 말하니 심화상염(心火上炎)이라 하더이다.”
“심화상염?”
“소위 화병이라 불리는 병이옵니다.”
“……!”
왕사진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은 사이, 사직서를 제출했던 하급 관리들도 저마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꿈이 대장장이라 가업을 이으려 합니다.”
“선산에 금맥이 터져 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어젯밤 꿈에 조상님께서 나오셔서 액을 피하려면 당장 일을 그만두라 호통을 치셔서…….”
하나같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유들이었다.
왕사진이 어이없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럼 저희들은 이만.”
이곽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자, 눈치를 살피며 내뺄 기회만 엿보고 있던 하급 관리들이 우르르 관청을 빠져나갔다.
넓디넓은 청사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왕사진이 이곳에 부임하며 함께 데리고 온 아홉 명과 악사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저희들도 명령에 따라 이만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사진을 호위했던 총기(總旗)가 쓰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들은 처음부터 왕사진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관아 소속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군정 기관인 오호도독부 소속.
그것도 종이품의 도독첨사(都督僉事) 아래서 실무를 관장하는 경력사(經歷司)의 명령만을 따르는 정예군이었다.
왕사진을 무사히 무위에 도착시켰으니 이제 자신들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총기를 위시한 병사들마저 사라지자 청사 내부는 말 그대로 텅텅 비어 버렸다.
“저, 저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울상을 짓고 앉아 있던 악사들이었다.
“연주 시작할까요?”
왕사진의 노여움 가득한 눈빛에 악사들이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흥! 그만둘 놈들은 그만두라고 해라. 당장 방을 붙여 새로운 포병과 포쾌들을 뽑는다고 해라.”
녹봉이 보장된 관아에 적을 두길 바라는 사람은 지천으로 널리고 널려 있었다.
그 말에 노우삼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는 현승의 업무이지 관아의 병사들과 포쾌를 지휘하는 현위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슬 퍼런 왕사진의 표정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취임식은…….”
“내일 다시 하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왕사진의 뒷모습을 보며 노우삼이 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