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6)
신마의선-266화(266/500)
신마의선 (266)
노우삼의 보고에 왕사진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놈들이 협박이라도 한 모양이군. 내 직접 둘러봐야겠다.”
몇 번에 걸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시찰에 나선 왕사진은 그나마 남은 포쾌를 데리고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네 명이 떠받치는 사인거를 타고 이동해야 했지만 지금은 이를 수행할 관아의 일꾼들이 전무한 상태.
그래서인지 좀처럼 위엄이 서질 않았다.
반면 노우삼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마주치는 백성들마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거리에는 단악선과 왕사진 사이에 있었던 일과 관련해 소문이 파다했다.
누구보다 단악선을 존경하는 무위 사람들에게 왕사진이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무림인은 아예 대놓고 왕사진을 노려보며 살기를 뿌리기도 했다.
졸지에 왕사진을 수행하던 포쾌들만 불안한 눈빛으로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나무 지게를 짊어지고 바삐 걸음을 옮기는 청년이 왕사진의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어이, 거기.”
의아한 얼굴로 돌아본 청년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숙였다.
그런 청년을 손짓으로 가까이 부른 왕사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느냐?”
“천자문 정도만 겨우 뗐습니다.”
청년의 대답에 왕사진이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관아에서 근무할 사람을 구한다는 방을 보았겠군?”
“저것 말입니까?”
청년이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왕사진은 저자의 담벼락에 공고된 벽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청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보긴 했습니다만 지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지? 지금 하는 일보다야 훨씬 나을 텐데?”
“그야…….”
곤혹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는 청년을 응시하며 왕사진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신마의가나 신마상단에서 협박이라도 받았느냐?”
“예?”
“사실대로 고하라. 그리하면 본관이 너를 꾸짖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추궁하듯 묻는 그의 태도에 청년이 얼굴이 벌게졌다.
“그분들은 그럴 분들이 아닙니다!”
발끈한 청년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분들 덕분에 저희 가족이 굶지 않고 먹고살 수 있습니다. 저와 제 아버지께 일자리를 주셨고, 병든 제 동생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평생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었는데, 협박이라니요!”
감정이 격앙된 청년이 되레 왕사진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토록 선량하고 인자하신 분들을 핍박하신 분은 오히려 나리라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찌 단 의원님을 그리 함부로 대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억하심정을 쏟아 내는 청년의 열띤 음성에 왕사진이 깜짝 놀랐다.
“이 건방진! 보잘것없는 필부 따위가 감히 황상의 명을 받드는 관리를 능멸해?”
왕사진이 노기 가득한 음성으로 노우삼에게 명령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을 포박하라!”
그러나 노우삼과 그가 이끄는 포쾌들은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들이 포승줄을 꺼내 들기 무섭게 청년 근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살기등등한 눈빛을 흘리는 모양새가 심상치가 않았다.
결코 범인이 지닐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저들이 이곳 무위에 자리를 잡은 사파의 무인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눈빛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청년을 에워싼 채 자신들과 대치한 사람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불어나 이십여 명에 이르렀다.
‘이게 아닌데…….’
비로소 뒤늦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한 왕사진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노우삼 역시 바짝 긴장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불안한 대치를 이어 가던 그때.
하늘이 잠시 어두워지나 싶더니, 갑자기 거대한 무언가가 뚝 떨어져 내렸다.
쿠웅.
난데없는 충격음에 왕사진이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십 장쯤 떨어져 있는 저자 한복판.
도저히 사람이라 믿어지지 않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거한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범계위였다.
“새로 부임해 왔다던 육선문의 나부랭이가 바로 너냐?”
악귀 같은 두 눈에서 줄기줄기 흘러내리는 자욱한 살광을 마주한 왕사진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노우삼이 황급히 왕사진 앞을 막아섰으나 온몸을 찍어 누르는 듯한 태산 같은 기도를 마주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망산초자!’
비록 미관말직인 현위라 하나 일단은 그 역시 무공을 익힌 자.
염왕이 쫓아오면 신발을 들고 달아나고, 범계위가 쫓아오면 신발을 버리고 달아나라는 강호의 격언은 일찍부터 들어 왔다.
그런데 그 격언 속 당사자를 직접 맞닥뜨리자 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알 수 있었다.
당장 달아나야 한다는 본능이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려 댔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달아나는 건 고사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애써 삼키며 후들대는 다리로 겨우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선배님! 안 됩니다!”
“참으십쇼!”
어디선가 달려온 두 사람이 범계위의 허벅지 양쪽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비켜! 저 건방진 눈깔을 뽑은 뒤 팔다리를 꺾어 관아 대문에 걸어 둘 테니까. 그래야 두 번 다시 우리 단 의원에게 감히 건방을 떠는 놈들이 안 나오지.”
“관무 불가침입니다!”
능소밀의 처절한 외침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그게 뭐?”
“예?”
웃고 있는 범계위의 눈 위로 광기에 가까운 광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를 마주한 순간 노우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저 단순한 엄포가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왕사진 역시 아연실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자칫 이로 인해 곡주님께서 고초를 겪으실 수도 있습니다!”
“능 아우 말대로입니다. 곡주님을 위해서라도 진노를 거두십시오!”
결국 두 사람은 단악선을 언급하며 거듭 범계위를 말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아, 귀찮아.”
“컥!”
“헛!”
우악스럽게 능소밀과 사무심을 떼어 낸 범계위가 그들의 마혈을 짚어 버렸다.
그러곤 우두둑 소리를 내며 손가락 관절을 꺾더니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며 왕사진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아아!”
도저히 범계위를 말릴 수 없다 판단한 능소밀이 탄식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제가 하겠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눈을 뜬 능소밀은 어느새 범계위 앞을 막아선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유음소(九幽吟嘯) 장곡이었다.
몇 년 전부터 겪고 있던 주화입마의 전조 증상을 단악선이 대가 없이 치료해 준 이후 누구보다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한때 사파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던 그였다.
하지만 단악선을 만나기 전에는 무공 사용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매번 적을 피해 달아나야만 했다.
하지만 단악선 덕분에 제약을 벗어 던진 지금은 우울했던 과거를 떨쳐 낼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범계위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했을 그가 당당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단 의원님을 지키셔야 하니, 모든 악업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장곡은 이미 자신의 성명병기인 기다란 철조(鐵爪)를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제가 저자를 죽이고 자수하겠습니다.”
그 말에 왕사진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가, 감히 백주에 조정의 관리를 해친다고? 그 죄는 대명률에 의거…….”
“사형밖에 더 있겠어?”
“……!”
태연한 장곡의 대꾸에 왕사진은 그저 겁먹은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왕사진을 노려보던 장곡이 고개를 돌려 범계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중히 포권했다.
“짧았지만 이곳 무위에서의 생활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단 의원님 곁에 머물며 그분을 지켜 주시길…….”
진심의 묻어나는 그의 진중한 음성에 무위 사람들은 마음이 울컥했고, 왕사진은 심장이 덜컥했다.
그때였다.
“그만두세요.”
“단 의원님!”
서둘러 달려온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다고 제가 기뻐할 거라 생각하셨나요?”
“저는 그저…….”
“분명 저는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했을 텐데요?”
단악선의 질책에 장곡이 철조를 거두며 고개를 숙였다.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능소밀과 사무심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던 왕사진은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노우삼의 손짓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단악선의 등장으로 인해 험악했던 장내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변해 있었다.
잡아먹을 듯이 자신을 노려보던 사파의 무인들은 온순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감사의 말을 올리며 고개를 숙여 댔다.
자신을 대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노우삼의 재촉에 왕사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 날 아침.
왕사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평소와 다르게 머리가 답답했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사지가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어째서 세상이 뒤집어져 있는가?’
눈을 뜨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발목 부근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
뒤늦게 자신의 발목에 밧줄이 걸려 있고 자신은 처마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왕사진이 해연히 놀라 부르짖었다.
“여,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오늘도 역시나…….”
어김없이 처마에 매달린 채 눈을 뜬 왕사진이 한숨을 터트렸다.
이로써 벌써 열흘째였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스스로 혼자 발목에 묶여 있는 줄을 풀 수 있었다.
힘겹게 처마에서 내려온 왕사진이 주위를 둘러보다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처마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노우삼이 울상을 지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노우삼과 함께 이곳에 따라온 다른 포쾌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끌어 내린 왕사진이 휑한 청사 안을 둘러보며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공고를 낸 지 열흘이 지났건만 어느 누구 하나 지원을 하는 자가 없었다.
꼬르륵.
갑자기 밀려드는 허기에 난감해하고 있던 그때.
“지현대인…….”
노우삼이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이만 사직할까 합니다. 부디 재가해 주십시오.”
“…….”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 노모를 모시고 농사나 지으며 살까 합니다.”
그런 그를 만류하며 왕사진이 대답했다.
“조금만 참아라. 내가 방법을 모색해 두었으니 그 결과를 확인한 뒤 떠나도 늦지 않는다.”
이때 관아로 들어서는 사십 대의 무관을 발견한 왕사진이 반색하며 그에게 달려갔다.
“혹시 위소(衛所)에서 오시었소?”
단단한 체구에 의지가 묻어나는 날카로운 눈빛.
거기서 묻어나는 존재감은 한눈에 봐도 낮은 관직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역시나였다.
“처음 뵙겠소. 나는 절충교위(折衝校尉)를 겸하고 있는 정천호 위일립이오.”
“드디어!”
정천호라면 정오품의 무관.
위지휘사사 밑에서 천 명이 넘는 병사를 지휘하는 직급이었다.
기본적인 지방 군제는 위(衛)를 기준으로 한다.
현보다 작은 단위인 군(郡)에 일개 소(所)가 주둔하는데, 백호소의 병력은 백이십 명, 그보다 큰 천호소는 천백이십 명의 군병이 상주한다.
그리고 그 소들을 합쳐 위(衛)로 편성하는데, 그 병력은 오천육백 명에 달했다.
천하에 퍼져 있는 위만 백칠십여 곳.
이들은 모두 군을 통솔하는 오호도독부의 지휘를 따르며, 흔히 도사(都司)라 부르는 정이품의 도지휘사에게 예속된다.
한마디로 위립이라 자신을 밝힌 무관은 천 명이 넘는 군병을 이끄는 지휘관인 것이다.
썰렁한 청사 안을 둘러보던 위일립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곤 왕사진을 향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본관이 직접 지현께서 보내온 협조 서한을 확인코자 이곳에 왔소. 정말 이곳 무위에서 역도들이 발호할 징후가 있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왕사진은 이곳에 부임한 이래 자신이 겪은 수모와 고초를 열 올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위일립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고작 그 정도 일로 위소의 병력을 파견해 달라 요청한 것이오?”
“고작? 황상의 명을 받드는 관리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소! 그런데 고작이라니! 이게 역모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소?”
“이것 보시오, 지현.”
“……?”
“정말 감당할 수 있으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