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7)
신마의선-267화(267/500)
신마의선 (267)
“그게 무슨 뜻이오?”
“역모와 관련된 무고는 그 형이 결코 가볍지 않소.”
멈칫하는 왕사진을 향해 위일립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실제로 역모와 관련된 불온한 움직임이 있었다 칩시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 모르시는 게요?”
이어진 위일립의 말에 왕사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는 지현께서 민심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니 스스로 자처한 꼴 아니오?”
“……!”
그 말대로였다.
실제로 진사라 할지라도 관운이 트이지 못하면 제독, 순무, 학정, 안찰사, 포정사 따위의 지방 고위직에도 오르기 힘들었다.
일단 무능의 낙인이 찍히면 평생을 따라다닐 터.
그야말로 출셋길을 걷어차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승진은커녕 평생 한직만 떠돌다 운남이나 해남도 같은 벽해 변방에서 풍토병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 뻔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그걸 왜 내게 물으시오? 이곳을 다스리는 자는 내가 아니오.”
“방법을 찾으시오! 군문에 오래 몸담은 귀관이라면…….”
“하.”
짧게 코웃음 친 위일립이 정색하며 왕사진을 노려봤다.
“우리가 귀관의 사병이오?”
위일립이 정색하며 응시하자 왕사진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상대는 정오품.
반면 자신은 정칠품에 불과했다.
품계를 떠나 서로 존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로에게 명령권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 관제는 일반적으로 행정 기관인 승선포정사사와 군사를 통괄하는 도지휘사사, 감찰 및 사법을 담당하는 제형안찰사사로 권력이 나뉘어 있었다.
이 세 기관은 서로 독립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예우할 뿐이지 상대는 결코 자신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일립이 왕사진을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래서였군. 도사께서 직접 확인하라 명령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짧게 혀를 찬 위일립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왕사진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왕사진은 단단히 봉해져 있는 서신 끄트머리에 쓰여 있는 수결을 발견하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분의 서신을 귀관이……?”
숙대(叔大)라 쓰인 수결.
이는 그의 유일한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스승의 호였다.
“파발을 통해 전해진 것이라 자세한 내용은 본관도 모르오. 이전의 서찰에 대한 답신이라 하면 아실 것이라 하더이다.”
“아!”
왕사진이 반색하며 조심스럽게 봉서(封書)를 뜯었다.
얼마 전 그는 나름 중앙의 요직인 국자감(國子監)의 감승(監丞)인 스승에게 이곳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왕사진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서신의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서신을 확인하는 즉시 신마의가로 달려가 사과해라! 네놈의 어리석음 때문에 내게 화가 미친다면 결단코 네놈을 오지로 좌천시켜 두 번 다시 중원 땅을 밟지 못하게 하리라!
서신을 모두 읽은 왕사진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 꼬맹이가 대학사(大學士)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이지?”
비록 품계는 정오품에 불과했지만 내각의 수장 격인 대학사는 황제의 보좌와 주요 행정 기관의 알력을 조정하는 중책 중의 중책.
중앙 정계의 핵심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서신에는 그 대학사가 직접 자신의 스승에게 경고했다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찰원(都察院)을 동원해 감찰에 나서겠다는 것을 간신히 뜯어말렸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상황이 이쯤 되니 왕사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체 놈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잠자던 호랑이 수염을 뽑았다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왕사진을 향해 위일립이 혀를 찼다.
“보아하니 이번 일을 해결하는 건 오직 귀관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 같구려.”
위일립은 내심 기가 막혔다.
‘진사 정도나 되는 사람이 어찌 이리 상황 파악이 늦단 말인가.’
원래대로라면 그는 평생 지방 관리를 전전할 사람이 아니었다.
가만히 자리 보전만 해도 적당한 시기에 한림원에서 부를 터.
그곳에서 황제의 칙서나 외교 문서 같은 공문서를 작성하다 연차가 쌓이면 지방급 향시 시험 감독관으로 인맥을 쌓고, 이후 요직에 등용되는 것이 전형적인 출세 방법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저 스스로 앞날을 꼬아 버리다니.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시오, 지현.”
“……?”
“내 돌아가 무어라 보고하면 되겠소이까?”
위일립의 물음에 왕사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본관의 착각……이었소이다.”
“확실하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왕사진을 향해 위일립이 엄중히 경고했다.
“이와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아니 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위일립이 돌아섰다.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왕사진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내가 아주 큰 착각을 했구나.”
왕사진이 노우삼을 향해 말했다.
“단 의원을 불러라.”
“지현대인…….”
“아니다. 내가 가야겠군.”
왕사진이 서둘러 청사를 나섰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비로소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말도 타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 신마의가에 도착한 왕사진은 인산인해를 이룬 환자들의 행렬에 깜짝 놀랐다.
말로는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이때 환자들의 접수를 맡고 있던 아두가 의가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왕사진을 향해 다가섰다.
“어떻게 오셨나요?”
“단 의원을…… 뵈러 왔소.”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
차마 사과를 하러 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왕사진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때.
“어?”
마침 근처를 지나던 능소밀이 왕사진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지현대인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말씀하신 장부들은 이미 관아로 모두 보낸 것으로 아는데요?”
왕사진이 한숨을 흘렸다.
분명 자신이 지시했던 장부들은 다음 날 곧장 관아에 도착했다.
한데 수레 두 대 분량에 달하는 막대한 장부를 살펴보고 확인할 인력이 없었다.
“사과를 하러…….”
“네? 뭐라고요?”
“단 의원께 사과를 드리러 왔소!”
능소밀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님을 뵈려면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위중한 환자를 치료 중이시거든요.”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소?”
“한 스무 시진 정도?”
왕사진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럼 내일……. 아니, 내일모레 다시 오리다.”
왕사진의 말에 능소밀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때는 아마 더 기다리셔야 할 텐데요?”
그제야 왕사진은 능소밀이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이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실책으로 일어난 일인 것을.
“기다리겠소. 그러니 내가 왔다는 것만 전해 주시오.”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아두를 낚아채 의가 안으로 들어섰다.
“왜 그러셨어요? 곡주님은 지금 한 아주머니와 무공 수련 중이시잖아요.”
“열 배다.”
“네?”
“단 의원님께 무례를 저지른 놈은 그게 무엇이든 열 배로 돌려준다. 저자가 단 의원님을 두 시진 동안 기다리게 했거든.”
“아!”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저자가 왔다는 사실을 의원님께는 알리지 마라. 난 급한 볼일이 있어 상단에 다녀오마.”
고개를 끄덕이는 아두를 뒤로한 채 능소밀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앗!”
아두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온 건 그 직후였다.
어슬렁거리며 입구 쪽으로 향하는 두 사람.
초악량과 범계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아두가 황급히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홀로 단악선을 기다리던 왕사진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백성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이 감내해야 할 몫임을 알기에 꼿꼿하게 선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뭐야? 이 자식이 왜 여기서 어슬렁거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진다 싶어 의아해하던 왕사진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열흘 전 보았던 거구의 악귀가 잡아먹을 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옆에 마주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눈빛을 흘리는 날카로운 눈매의 초로인이 함께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였다.
그런데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던 상대가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환자가 의가를 찾아오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무슨 소리요? 환자라니?”
“마음이 병든 것은 육신이 아픈 것보다 더 큰 화를 부르지. 자신뿐만 아니라 전염병처럼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하니까.”
“그렇네. 환자 맞네.”
왕사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자, 잠깐.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
왕사진이 당황해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명치 부근이 따끔하더니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온몸이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의가에 왔으면 치료를 받아야지?”
어느새 성큼 다가온 범계위가 왕사진의 맥문을 덥석 움켜쥐었다.
“이건 치료야. 다른 사람들은 돈 주고 받는 거지.”
“……!”
왕사진이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돌연 뜨거운 무언가가 몸속을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글 실력을 자부하는 그조차 도저히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시뻘건 쇳물이 온몸을 휘젓는 기분.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그는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범계위는 이미 일대종사급의 내가 고수.
어떻게 진기를 운용하면 상대가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약도 악용하면 독이 되듯, 치료법도 달리 쓰면 더할 나위 없는 고문 수단이 된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범계위는 왕사진이 혼절하기 직전에서야 내공을 거두고 물러났다.
사색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왕사진을 향해 이번에는 초악량이 다가섰다.
그러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막혀 있던 혈도를 풀었다.
“억울한가?”
왕사진은 무언가 대답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에게 초악량이 서늘한 미소를 건넸다.
“관무 불가침.”
“……?”
“우린 방금 그 불문율을 어겼다.”
그 말에 범계위가 발끈했다.
“초 형, 치료해 준 거라니까?”
“우리가 굳이 속내를 숨길 필요가 있느냐?”
“하긴. 듣고 보니 그러네.”
범계위가 수긍하자 초악량의 시선이 다시 왕사진을 향했다.
“이제 어쩔 텐가?”
위엄 어린 눈빛과 당당한 음성.
이를 마주한 왕사진은 감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 * *
아두가 도착한 곳에서는 단악선과 한설화가 차를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기를 싣는 게 익숙해졌구나. 조금만 더 능숙해지면,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도 쓸 수 있을 게다.”
“아직도 정확히 감이 오지 않아요. 호신강기를 만드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차차 익숙해질 게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기공은 양날의 검과 같아, 실수가 곧장 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네. 명심할게요.”
그러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아두를 발견한 단악선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두 형. 어서 와.”
단악선과 한설화에게 인사를 한 아두는 방금 일어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래?”
한숨을 쉰 단악선이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두도 그에 맞춰 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단악선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두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 아두 형. 내가 나중에 갈게.”
다시 자리에 앉은 단악선이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바쁘거든.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말이야.”
그 말에 한설화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래. 꽤 긴 이야기가 될 듯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