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68)
신마의선-268화(268/500)
신마의선 (268)
그야말로 고두백배(叩頭百拜).
몇 번이고 반복해 고개를 조아려 사죄한 왕사진을 돌려보낸 뒤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능소밀을 바라봤다.
“그런데 우리가 중앙 정계에 인맥이 있었나요?”
사과를 하던 도중 왕사진이 언급했던 대학사.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금시초문이었다.
그 같은 고위 관리와 이렇다 할 교분을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탄성을 흘렸다.
“지금도 가끔 묵비철장의 장주이신 묵비 님과 서신을 주고받지 않으십니까?”
“그렇죠?”
“그분과 대학사의 교우 관계가 무척이나 두텁다 하더군요.”
“아! 그랬었죠.”
형산파로부터 건네받은 운철석을 맡기기 위해 찾았던 묵가철장.
그곳의 장주인 묵비는 한사코 운철석을 다루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동행했던 가두달이 직접 나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묵비가 중앙 정계의 인사들과 교류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 적이 있었다.
당시 묵비는 부친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현실에 좌절하여 망치를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단악선을 만나며 묵룡과 묵룡아 같은 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부친을 뛰어넘는 업적을 이뤄 냈다.
그가 단악선을 은인으로 여기며 끔찍하게 아끼는 이유였다.
게다가 단악선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의 명성 역시 덩달아 치솟고 있었다.
“그런데 묵비 아저씨가 어떻게 이곳 상황을 아셨을까요?”
“커흠.”
어색하게 헛기침을 흘리며 애써 시선을 외면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단악선은 비로소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능 아저씨께서 애쓰셨군요.”
“하하. 제가 하는 일이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제아무리 진사 출신이라 한들 무림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어 온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진 못했다.
궁지에 몰린 그가 자신의 배경과 인맥을 동원하리라는 건 뻔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제대로 혼쭐이 났으니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경거망동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그래야 할 텐데요.”
단악선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조용하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조용…….”
황급히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할 리가 없지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달려오는 소적산을 확인한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인가?”
“초 선배님을…….”
“……?”
“초 선배님을 죽이겠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뭐?”
놀란 능소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대체 당금 강호에 누가 있어 천하의 혈수존자를 죽인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월령궁주(月靈宮主) 연옥상? 아니면 주광도귀(酒狂賭鬼) 강위룡?’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그 두 명이었다.
초악량과 더불어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린 절대 고수.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화산의 진명진인이나 소림의 계율원주인 법료는 딱히 초악량과 날을 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존재.
‘천마?’
하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정마대전 이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던 그가 홀로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누가?’
단악선이 소적산을 향해 물었다.
“초 아저씨를 죽이겠다고 했다고요?”
“예. 마을 입구에서 방문 이유를 묻는 곡 대협의 물음에 당당하게 그리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살기등등한 표정으로요.”
“곡 아저씨께서 막지 않으셨나요?”
“그게…….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곡운경은 이곳 무위에서도 신마삼존을 제외하면 상당한 고수였다.
“그 정도로 대단한 고수인가요?”
“예?”
단악선의 반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소적산이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
“상대가 무공을 익히지 않아 건드릴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능소밀이 놀란 마음을 달래며 소적산을 지그시 노려봤다.
“난 또 뭐라고. 그게 이렇게까지 정색하며 보고할 일인가?”
“저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한데 이 말을 들은 초 선배님께서 화들짝 놀라시더군요. 그분답지 않게 안색도 창백해지셨고요.”
그제야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은 능소밀이 표정을 달리했다.
“초 선배님은 어디 계시나?”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입구 쪽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범 선배님은 재밌겠다며 따라가셨고요.”
“우리도 가 봐요.”
영문을 몰라 당황한 능소밀을 뒤로한 채 단악선은 이미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을 입구에 도착한 단악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사생결단을 내자니까!”
초악량을 향해 삿대질을 해 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노인은 둘째 치고.
“미안하네.”
“미안은 무슨! 미안한 놈이면 서신이라도 한 장 보냈겠지!”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약속했지 않나? 두 번 다시 말없이 사라지지 않기로!”
“자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런 거야.”
“또 변명이냐?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깟 무림인들 얼마든지 오라지. 살 만큼 살았는데 조금 일찍 죽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그들이 불행해지면?”
“아니, 미안하다는 놈이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 지나 그래? 정말 미안한 거 맞아?”
“아, 글쎄 미안하대도.”
이처럼 쩔쩔매는 초악량의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뒤늦게 단악선은 언젠가 초악량이 해 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유일한 친우가 사천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청성파에서 한바탕했다며!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멀쩡하군그래? 어디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이해라도 했겠는데 아주 쌩쌩해! 그것도 모르고 마음 졸이며 걱정한 내가 멍청한 놈이지! 안 그래?”
“어허, 이 친구 참……. 안 그러던 사람이 왜 이러나?”
“내가 안 그러게 생겼어? 청성파는 쑥대밭이 됐지. 놈들에게 뼈에 사무친 원한을 지닌 친구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이제나저제나 연락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코빼기를 내비치기는커녕 서신도 없네? 그런데 풍문으로 이곳 무위에서 신마삼존이니 뭐니 하며 신선놀음을 하고 계셨다고?”
결국 참다못한 염사인이 직접 무위까지 온 것이다.
“거참…….”
초악량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며 쓴 입맛을 다셨다.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손에 들고 있던 큼직한 돌멩이를 염사인의 손에 쥐여 주고는 씨익 웃었다.
“너 이 자식?”
초악량의 날 선 눈빛에 범계위가 실실거렸다.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그게 그 인과…… 그 뭐시기라고 했잖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염사인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정말로 들고 있던 돌을 내려칠 기세였기에 단악선이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
“저는 단악선이라고 해요.”
염사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자네가 그 신마의선이라 불린다는 어린 친구로군!”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 들어 그렇게 불리고 있어요. 송백지조(松柏之操)라 불리신다는 염 대인이시죠? 초 아저씨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놈이 내 이야기를 했다고? 뭐라 그러던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우시라고요.”
“설마 그랬을까. 친우라고 여겼다면 진즉에 서신이라도 보냈겠지.”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뒤끝도 길다, 길어. 아주 그냥 죽을 때까지 우려먹겠어.”
“흥! 그래 봐야 일 년이다. 네 놈이 날 열 받게 한 세월이 얼만데 고작 그것도 못 참아?”
“뭐?”
염사인의 말에 초악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냐?”
“이젠 가는 귀까지 먹었어? 나 얼마 못 산다고.”
“대체 어디가 안 좋아서?”
“직업병이지, 뭐. 하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염색약이 어디 좀 독해? 장기에 독기가 쌓인 것은 어의도 어쩔 수 없다더군. 그러니 그냥 팔자려니 할 수밖에.”
대수롭지 않게 남 일처럼 이야기하는 염사인의 모습에 초악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염직을 그만두게 한 겐가?”
초악량의 물음에 염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젊어서 바짝 벌기에는 수입이 제법 나쁘진 않지만, 늙어서는 골병들기 딱 좋은 일이니까. 지금의 나처럼.”
이때 염사인 뒤에 서 있던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염사인 곁에서 장원을 관리하던 총관인 장삼이었다.
“치료를 권했으나 어르신께서 극구 고집을 꺾지 않으시기에 결국 초 대인의 소문까지 끌어와 억지로 이곳까지 모셨습니다.”
장삼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금 강호에 혁혁한 명성을 날리고 계시는 신마의선께서는 달리 치료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어요. 그러면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일단 의가로 가시죠.”
“됐네. 이제 와 치료는 무슨. 살 만큼 충분히 살았고, 저 뻔뻔한 녀석 낯짝도 봤으니 되었네.”
“가실 때 가시더라도 좀 쉬었다 가세요. 대인은 둘째 치고 함께 오신 분들이 많이 지쳐 보이세요.”
염사인이 힐끗 고개를 돌려 자신을 따라온 장삼과 세 청년을 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아니, 나랑 비슷하게 늙어 가는 장 총관도 멀쩡한데 젊은 놈들이 왜 이리 허약해 빠진 거야? 그래 가지고 어디 식구들이나 건사하겠어? 에잉…….”
결국 염사인이 못 이긴 척 마지못해 단악선의 안내를 받아 의가로 향했다.
의가에 도착한 뒤 단악선은 직접 차를 우려 염사인에게 건넸다.
염사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의원이 저 싸가지 없는 늙은이보다 천 배는 사람이 됐군.”
초악량은 그 말에 웃지도,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만큼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어르신 맥을 좀 짚어 볼게요.”
“됐다니까 그러네.”
“차 드시는 동안만요. 달리 하실 것도 없으시잖아요.”
초악량이 역정을 냈다.
“거, 말 좀 들어! 늙은이 티 내냐? 뭐 이리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하!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네가 지금 나한테 화낼 처지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염사인은 소매를 걷고 손목을 내밀었다.
진지한 얼굴로 진맥을 이어 가길 잠시.
단악선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통이 심하셨겠네요. 간헐적인 통증도 있으셨을 테고요.”
“뭐, 그렇지.”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염사인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아주 손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걸 치료할 수 있다고?”
“물론 단기간에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독성을 배출시키는 약을 복용해야 하고 피를 맑게 해 줄 약재도 써야 하거든요. 운동과 음식 조절도 필요하고요.”
당장 통증을 없애는 건 침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단은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는 게 우선이에요. 치료만 꾸준히 받으시고 건강 관리만 꾸준히 하신다면 호전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
“복잡한 건 제게 맡기시면 돼요. 그래서 의원이 있는 거잖아요.”
“허……. 한때 어의였던 의원조차 고개를 저었거늘…….”
염사인이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를 향해 초악량이 핀잔을 던졌다.
“뭘 고민하는 겐가?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지.”
“언제까지 여기 눌러앉아 한가하게 치료만 받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냥 눌러앉아.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바둑도 두면서. 우리 나이쯤 되면 그래도 돼.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어.”
“나는 정든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할 자신이 없네. 누구랑은 달라서 말이야.”
초악량이 발끈하려는 순간 단악선이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몸 안에 쌓인 독을 배출할 해독 약을 대량으로 준비해 드릴게요. 습기만 피하면 일 년 이상은 보관하실 수 있도록요. 그 안에 다른 마을 분들을 모두 이곳으로 데리고 오세요.”
“우리 마을 사람들을?”
“독성이 사람을 가리며 비껴가는 건 아니니까요. 특히 아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모두 이곳으로 오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물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염사인을 보며 초악량이 나섰다.
“부탁이야. 단 의원의 말을 들어.”
부탁이라는 말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했다. 천하의 혈수존자가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단악선이 얼른 말을 보탰다.
“그분들이 이곳에서도 계속 하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둘게요. 아시겠지만 신마상단에는 실력자들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모두 전문 분야가 있으시니, 신마상단과 연계하면 서로 도움이 될 거예요.”
결국 염사인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좋네. 그런데 내 하나만 묻지.”
“말씀하세요.”
“자네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가 뭔가?”
“초 아저씨의 친구분이시잖아요.”
“이유는 그것뿐인가?”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염사인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평생을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던 저 친구가 한사코 여기 붙어 있는 이유를 알겠군.”
염사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