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
신마의선-27화(27/500)
신마의선 (27)
“개가 아니라 개보다 뛰어나다는…….”
발끈하던 범계위가 움찔했다.
어디선가 날아든 예리한 살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언제 왔는지 한설화가 지그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단악선의 탄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맛이 정말 훌륭해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단악선은 손에 든 당귀잎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정말 개 같…….”
무심코 입을 열던 범계위가 황급히 말을 삼켰다.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빛이 더욱 살벌해졌던 것이다.
반면 단악선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이 나서 당귀잎을 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초 형, 우리 이래도 되는 거요?”
“뭐가 말이냐?”
“원래대로라면 하루 만에 갈 거리 아니요? 이대로 미적거리다간 저기 애 안고 걷는 여인네보다 늦어지겠수.”
“뭐 어떠냐. 이것도 나름 좋지 않으냐?”
“하긴.”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단악선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조용하고 한가하긴 한데……. 이상하게 심심하지가 않네.”
범계위의 말에 동의하듯 초악량과 한설화가 말없이 단악선을 바라봤다.
그때 단악선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수풀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다른 약초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진짜 개…….”
무심코 입을 열던 초악량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가까이 있던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한설화를 바라봤다.
“자, 어디 아니라고 해 보시지?”
“…….”
한설화는 입을 다물었다.
차마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어느새 저 멀리 떨어진 수풀 속에서 단악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우거진 잡목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단악선을 발견했다.
산수화에서나 볼 법한 작고 오목한 샘물 옆이었다.
관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도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샘물은 맑고 깨끗했다.
중원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질을 지닌 청정수였다.
“우리 여기서 저녁 먹어요.”
단악선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샘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흐르는 샘물에 당귀잎을 씻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벌떡 일어섰다.
“그래도 명색이 여행인데 푸성귀로만 식사를 할 순 없지.”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범계위가 허락을 구하듯 입을 열었다.
“먼 길 가려면 힘이 있어야 할 게 아니냐. 고기 정도는 먹어 줘야 힘이 나지.”
“또 토끼 잡아 오게?”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움찔했다.
“무, 무슨 소리요! 난 앞으로 평생 토끼는 먹지 않기로 다짐했수!”
범계위가 단악선의 눈치를 살폈다.
“걱정 마라. 토끼 말고 다른 놈으로. 맛있고 튼실한 놈으로 잡아 오마.”
그 말을 남긴 채 범계위가 산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한설화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구니 하나를 들고 범계위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우리도 슬슬 준비를 해 볼까?”
초악량이 주변을 돌며 마른 풀과 나뭇가지들을 주워 보기 좋게 쌓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후후 몇 번 입으로 바람을 불자 돌돌 말려 대나무 통 안에 담겨 있던 종이 끝에 금세 불이 살아났다.
초악량이 마른 풀에 화섭자를 기울였다.
건초를 거친 불씨가 나뭇가지에 옮겨붙으며 모닥불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멧돼지를 둘러멘 범계위가 돌아왔다.
“으하하! 어떠냐? 아주 실한 놈이지?”
“우와!”
이건 실한 정도가 아니라 곰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쿵!
멧돼지를 바닥에 던진 범계위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고기는 역시 돼지고기지!”
어느새 돌아온 한설화도 바구니 가득 담긴 과일과 버섯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표정과 눈빛에서 스스로 뿌듯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나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단악선이 깜짝 놀라 소리쳤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그거 독버섯이에요!”
버섯을 집어 들던 한설화가 멈칫했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보란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설화가 지그시 범계위를 쏘아보다 바구니 안의 버섯들을 골라내 멀리 던져 버렸다.
버섯 정도야 없어도 상관없었다.
바구니 안에는 아직도 다른 것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 과일은 덜 익은 건데…….”
휙.
집어 든 과일을 멀리 던진 한설화가 다른 열매를 집어 들고 단악선을 바라봤다.
단악선이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열매예요.”
가만히 바구니를 내려다보던 한설화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이 중에 먹을 수 있는 게 있느냐?”
“음……. 아니요.”
퍽!
체면을 구긴 한설화가 신경질적으로 바구니를 걷어차고는 숲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그녀를 단악선이 붙들었다.
“식사 안 하세요?”
“…….”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단악선이 소매를 잡고 이끌자 한설화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에 초악량은 범계위가 잡아 온 멧돼지를 손질했다.
능숙하게 피를 빼고 가죽과 내장을 제거한 뒤 맛있는 부위만 골라 나뭇가지에 꿰었다.
한설화가 이를 건네받아 고기를 굽는 사이 범계위가 관도에 있던 자신들의 수레를 통째로 들어 이곳까지 옮겨 왔다.
잠시 후 고기가 익자 네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모닥불 특유의 훈연 향이 누린내를 잡고, 거기에 당귀잎을 곁들이니 일품요리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자 어느새 주변에 어슴푸레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겠구나.”
초악량이 수레에서 밤이슬을 피할 천막을 꺼내 설치했다.
한설화가 단악선의 손을 잡고 모닥불 쪽으로 끌어당긴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이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순간.
휘잉.
돌연 뼛골 시린 지독한 한파가 장내를 휩쓸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범계위가 버럭하며 한설화를 노려봤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난데없이 가공할 냉기에 휩쓸린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 위에는 온통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한설화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초악량과 범계위는 이내 바닥에 나뒹구는 얼어 죽은 모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단악선이 한설화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요.”
반면 갑자기 봉변을 당한 두 사람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모닥불에 바짝 붙어 꽁꽁 언 몸을 녹이던 초악량이 낮게 툴툴댔다.
“이런 건 미리 말 좀 해 주면 안 되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설화를 노려봤다.
“내 말이. 기껏 고쳐 줬더니 왜 말을 안 해? 혹시 일부러 저러나? 우리 골탕 먹이려고.”
나름 일리 있다 생각한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미심쩍은 눈빛을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설화는 그들을 무시한 채 단악선이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모닥불 주변에서 가장 좋은 위치였다.
이때 무언가를 발견한 단악선이 한 곳을 주시했다.
“우리 말고도 야영하는 사람이 또 있나 봐요.”
저 멀리,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단악선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자신들의 야영지와는 한참 떨어져 있는 관도 쪽 방향이었다.
초악량이 빙그레 웃었다.
“식사도 마쳤겠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밤 산책이나 하고 올까?”
초악량의 제안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야영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두우니 조심해서 따라서 오너라. 발밑 조심하고.”
초악량이 수풀을 헤치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단악선 역시 달빛에 의지해 초악량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점차 관도에 가까워지자 길 한편에 세워진 수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거대한 수레였는데, 같은 복장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수레를 중심으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하나인 줄 알았던 모닥불도 네 개였다.
그러나 단악선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수레 위에 나부끼는 화려한 깃발이었다.
한참 깃발을 바라보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건 표행기다.”
“표행기요?”
“표국이 표물을 운반할 때 내거는 깃발이지.”
단악선이 흥미로운 눈으로 깃발과 표사들을 보았다.
그러다 한순간 수레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표사 한 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표사의 눈빛이 변했다.
여차하면 손에 든 호각을 불 기세였다. 명백하게 느껴지는 적의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우릴 싫어하나 본데요?”
“표행 중에 만난 불청객이 달가울 리 없지.”
“원래 그런 건가요?”
“보안이 표물과 표사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표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단다. 게다가 밤이지 않느냐? 경계심이 높아질 만하지.”
“그럼 이만 돌아가요.”
그런데 단악선의 모습이 이상했다.
고개를 몇 번 갸웃하나 싶더니 자꾸 표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초악량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귀한 영약 냄새가……. 어?”
말을 하던 단악선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뚫어져라 표행 마차를 응시했다. 마침 표두가 마차의 포장을 걷고 내용물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단악선의 눈빛이 반짝였다.
“구지선엽초의 향기예요.”
“구지선엽초?”
초악량도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극양의 기운을 품고 있어 복용하는 것만으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알려진 영초다.
음기의 정화라 불리는 천음설련과(天陰雪蓮果)와 더불어 무인이라면 꿈에서도 바라 마지않을 영약 중의 영약.
설산에서 천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천음설련과와는 달리 구지선엽초는 용암이 들끓는 홍산(紅山)의 유황 지대에서 자라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먼 거리인데도 그 향기가 느껴진단 말이냐?”
물어보고도 초악량은 내심 헛웃음을 들이켰다.
불과 반나절 전에 약초를 찾아내는 단악선의 놀라운 후각을 직접 겪지 않았던가.
야영지로 돌아오는 내내 단악선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저 표물 주인에게 구지선엽초만 팔라고 해 볼까요?”
단악선이 이내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흘렸다.
“안 되겠죠? 가격도 가격이지만 표사들이 물주의 허락 없이 표물을 마음대로 거래할 리도 없으니까요.”
초악량은 시무룩해진 단악선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표사들 쪽을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표사들 가운데 유독 두 사람의 얼굴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어? 저놈들?’
초악량은 이내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냈다.
역시나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무언가 방법이 생길 것도 같았다.
* * *
늦은 저녁 초악량이 슬쩍 눈을 떴다. 한편에 누워 있던 범계위 역시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까 초 형이 봤다는 표사 두 놈, 그놈들이 확실한 거요?”
범계위의 질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몰쌍괴(三沒雙怪). 그자들이 분명하다.”
그들은 왕씨 성에 각각 염자와 결자, 외자 이름을 쓰는 쌍둥이 형제였다.
그런데 쌍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생김새는 극과 극이었다.
왕염은 비쩍 마른 몸에 키가 몹시 커 흡사 나뭇가지가 휘적거리는 느낌이었고, 반대로 왕결은 오 척 단구에 이백 근이 넘는 비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 언뜻 보면 커다란 공이 통통 튀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상반되는 외모와 달리 두 사람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바로 후안무치한 무뢰배들의 전형적인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몰면목(沒面目), 몰염치(沒廉恥), 몰지각(沒知覺).
그들 형제를 삼몰쌍괴라 부르며 무림인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