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1)
신마의선-271화(271/500)
신마의선 (271)
다음 날부터 단악선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른 아침 의원들과 함께 회진하는 것은 같았지만 진료를 마치고 의가 문을 닫은 이후로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무공 수련에 매진했던 것과 다르게 의원들을 따로 모아 별도의 의술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의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지간한 의가에서 보내는 십 년보다 신마의가에서 보내는 한 달이 더욱 값지다는 말이 행림(杏林)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
무엇보다 그들은 단악선의 높은 의술을 가까이서 직접 지켜보고 체험한 이들이었다.
아무리 격무에 지쳐 피곤하다 한들 그 가르침을 마다할 리 없었다.
단악선 역시 스스로를 다그치듯 시간을 쪼개 더욱 열심히 의원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려 애쓰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늦게까지 환하게 불을 밝힌 단악선의 진료실 쪽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의원들에게 의술을 전수하고 가신다니,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사무심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포달랍궁 이야기를 꺼내실 때는 당장이라도 여행길에 오르실 것 같았거든요.”
한데 단악선은 한 달이라는 기간을 정했다.
무턱대고 무위를 떠나기에는 아직 이곳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나저나 저희들도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곡주님께서 안심하고 떠나시려면 서둘러 인근 위소들과 연락망을 구축해야 하니까요.”
신마삼존은 이미 단악선과 함께 여행길에 오르기로 결정된 상황.
이곳 무위에 모여 있는 사파 고수들의 전력만으로도 불안했던지 단악선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해 관부와의 협력도 추진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림인들 대다수가 관무 불가침의 원칙을 고수하듯 초악량 역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툭 지나가듯 던진 범계위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우린 여기 없을 텐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지라 망설이고 있을 때.
단악선의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았다.
―무엇보다 무위의 안전이 최우선이에요.
초악량은 마지못해 단악선의 의견을 수용했다.
자신들이 돌아왔을 때 무위가 엉망이 되어 있다면?
그간의 노력이 수포가 된다면 그만큼 허탈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속상해할 단악선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때 문득 초악량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단악선의 진료실 쪽을 응시하는 한설화의 눈빛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초악량은 그녀의 눈빛에 담겨 있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곧잘 눈치채곤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차가운 그녀의 눈빛 너머로 일렁이는 희미한 동요가 느껴졌다.
“한 누이. 왜 그래?”
한설화가 잠시 멈칫했다.
“단 의원이 불안해 보여서.”
“제법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불안해.”
“……?”
“급히 의술을 전수하고, 무위에 관부를 깊이 끌어들이려 하고 있잖아.”
이어진 그녀의 말에 초악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변을 정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돌아오지 못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하는 건가.”
단악선의 심정을 아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행방을 추적하다 보면 흉수와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전설적인 의원인 부모님조차 그리된 상황이니 나름 최악의 결과를 상정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없어. 내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의지가 느껴지는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단악선을 해치려는 자.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그 전에 자신들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 * *
새벽마다 찾아오는 서리가 익숙해질 무렵.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공기가 겨울이 머지않았음을 실감하게 했다.
단악선이 풍진성에게 그동안 정리했던 의서들을 건넸다.
그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나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염려가 가득 담긴 풍진성의 눈빛에 단악선이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사무심과 능소밀, 그리고 아두를 비롯한 신마의가 구성원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단악선이 밖으로 나섰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단악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악선은 문득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나네요. 연판장을 받으러 다닐 때처럼요.”
초악량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요.”
범계위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하하하. 걱정 마, 단 의원. 늘 그랬듯이 나만 믿으면 돼!”
그렇게 네 사람은 포달랍궁을 향해 출발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단악선 일행을 바라보던 사무심과 능소밀이 아련한 눈빛을 흘렸다.
“또 우리만 남았군요, 형님.”
능소밀의 말에 사무심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셨으면 좋겠군.”
“세 분께서 지키시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하긴……. 그나저나 이제 자네의 어깨가 무겁겠군.”
최근 능소밀은 조정의 군무를 담당하는 병부(兵部)에 선을 대기 위해 신마상단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온갖 정보와 인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의 병력을 관리하는 오호도독부와도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했다.
당금 조정의 군사 체계는 병부와 오호도독부가 분할해서 관장하는 위소제가 기본이었다.
병부는 군사에 대한 출정권과 징병권 등, 군사의 관리를 총괄하고 있었다.
반면 최고 군사 사령부인 오호도독부는 자체적인 출정권이 없는 대신 군사를 총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었다.
오호도독부의 명령이 도지휘사사와 위지휘사사, 천호소 순서로 하달되는 체계.
“그래도 다행히 최근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능소밀이 웃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청이라고, 이 지역 병력을 총괄하는 지휘사가 최근 도지휘첨사로 영전을 했거든요.”
고개를 갸웃하던 사무심이 이내 탄성을 흘렸다.
위지휘사사의 수장인 지휘사는 정삼품의 품계.
대략 오천 명이 넘는 병력을 지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영전했다는 도지휘첨사는 한 개 성을 총괄하는 군정 기관인 도지휘사사 소속이었다.
비록 품계는 정삼품으로 동일할지라도 직책의 무게가 다른 것이다.
“마침 공석이 된 지휘사의 자리를 채운 사람은 우리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고요.”
다섯 개의 천호소를 거느린 지휘사의 권위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천이 넘는 군사를 명령 하나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네가 손을 썼겠지?”
“세상에 돈 싫어할 사람은 없지요.”
특히 군을 통솔하는 자리는 더욱 그랬다.
군을 지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력을 훈련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나라에서 주어지는 녹봉과 보급 외에도 가끔은 사비를 털어 고기와 술을 내어 주고, 휘하의 하급 지휘관들에게도 선물을 챙겨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 돈이었다.
물론 그것이 뇌물로 보여서는 안 된다.
대가성이 아닌, 그들의 노고에 대한 호의로 포장해야 했다.
“또한 흑점의 도움이 컸습니다.”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는 곳이다 보니 자연 군과 관련된 정보들도 적잖게 흘러들어 오는 곳이 바로 흑점이었다.
돈이 당근이라면 흑점을 통해 얻은 지휘관들의 약점은 채찍인 셈.
이를 적절히 이용해 목표에게 접근하는 건 그에게 있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하튼 자넨 참 대단해.”
사무심의 칭찬에 능소밀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능소밀이 사무심을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참에 형님도 좀 여유를 가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총관 일은 잠시 내려놓으시죠. 얼마 전에 제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벽을 넘어 한 단계 무위가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제게 맡기시고 폐관 수련이라도 해 보세요. 누가 압니까? 비어 있는 선배님들 자리를 대신할 고수가 되실지?”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무리일세.”
“하긴. 워낙 괴물 같은 분들이시죠. 가끔은 사람이 맞나 헷갈릴 정도니까요.”
이미 단악선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두 사람은 모처럼의 느긋한 대화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곳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곳 무위를 다스리는 현령인 왕사진을 새로 보좌하게 된 현승이었다.
사무심과 능소밀을 향해 달려온 그는 거친 숨도 고르지 않고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지현대인께서 급히 뵙길 청하십니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그의 표정에 사무심과 능소밀이 의아한 눈빛을 교환했다.
지난번 일이 있고 난 후 왕사진은 매우 협력적인 태도로 무위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의아했다.
이처럼 멋대로 자신들을 오라 가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 보지.”
사무심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단악선이 떠나 있는 틈을 이용해 그자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다면 이번에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크게 밟아 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막상 관아에 도착하자 그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은밀하게 전해야 할 이야기라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대문 밖까지 마중 나와 있는 왕사진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깍듯했다.
하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는 결코 반갑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신마상단의 책임자를 불러들이라 명하셨습니다.”
“……!”
능소밀의 표정이 굳어지자 왕사진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 갔다.
“최근 신마상단이 황실에 진상한 물품들에 대한 평가가 아주 후했던 모양입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천자가 일개 상인을 부른다고?”
능소밀의 반문에 왕사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지엄한 신분의 차이.
그 대상이 천하의 주인이라 자부하는 황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한데 눈치를 보아하니 왕사진은 짐작 가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능소밀은 골치 아픈 상황에 휘말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하다 하다 황제까지 알현해야 하는 겁니까?”
능소밀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무수한 위기를 헤쳐 왔던 그의 본능이 이 순간에도 맹렬하게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사무심이 위로를 건넸다.
“이미 중원을 대표하는 거대 상단의 주인 아닌가? 게다가 어쩌면 우리에게 두 번 다시 없을 기회가 될지도 모르네.”
“형님, 그럼 저랑 같이…….”
“그러고야 싶지만 그럴 수 없지. 공석이 된 자네의 자리를 누군가는 대신해야 할 테니까.”
“그건 그렇…….”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능소밀이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신마상단의 책임자인 자신보다 신마곡 전체를 총괄하는 사무심의 직책이 황제를 알현하기 더 나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보다…….”
“커흠. 고생하게, 능 아우.”
재빨리 선을 긋고 발을 빼는 사무심의 모습에 능소밀은 울상을 지었다.
“형님…….”
애써 능소밀의 시선을 외면하던 사무심이 안쓰러운 눈빛을 건넸다.
“세 분 선배님을 떠올려 보게.”
“……?”
의아해하던 능소밀이 이어진 사무심의 말에 멈칫했다.
“그분들이 화났을 때도 견뎌 왔던 자네 아닌가?”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하다못해 제비뽑기에서 진 범계위의 심술에 비하면 황제의 알현 정도는 약과였다.
적당히 눈치를 살피다 적당한 감언이설로 황제의 기분만 맞춰 주면 되는 것이다.
“자네는 잘 해낼 것이네. 나 역시 물심양면으로 이곳에서 자네를 지원하지.”
능소밀은 어느새 자신감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