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2)
신마의선-272화(272/500)
신마의선 (272)
무위를 떠나온 지 보름째 되던 날.
단악선 일행이 사천에 들어섰다.
포달랍궁이 위치한 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경유해야만 했다.
경공을 전개해 달리던 단악선은 문득 아쉬움을 느꼈다.
예전에 연판장을 완성하기 위해 들렀던 아미파의 따스했던 환대가 떠올랐다.
하지만 당장은 아미파를 방문할 여유가 없었다.
여행의 성격과 목적이 당시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포달랍궁에 도착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단악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리던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괜찮아요. 아직 반 시진 정도는 더 달릴 수 있어요.”
단악선의 대답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경공을 전개하는 와중에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숙련의 경지에 접어든 단악선이었다.
그 빠른 진전 속도에 내심 감탄했지만 초악량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팔 년 전이라고?”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구 년 전이네요. 제가 일곱 살 때였으니까요.”
초악량은 새삼 신기했다.
대체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었다.
“그동안 포달랍궁에서 다른 연락은 없었느냐?”
초악량은 그 점이 내심 계속 궁금했다.
개정대법의 일종인 벌모세수는 시전자의 막대한 내력을 소모한다.
그의 사부조차 자신을 위해 원정(元精)까지 소모해 가며 칠 주야에 걸친 추궁과혈(推宮過穴)을 마쳤었다.
이는 단악선에게 벌모세수를 베풀었다는 라마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자신이 한평생 쌓은 내공을 쏟아부은 그가 단악선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마 연락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오 년 동안은 항상 진법을 펼쳤거든요. 애초에 신마곡의 위치는 풍 아저씨 외에는 알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전에 신의와 마의가 진천권(振天拳) 염숙을 치료했다 하지 않았느냐?”
“신마곡을 찾아온 환자 대부분은 과거 부모님과 인연이 있던 분들이셨어요.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무위 근처를 헤맬 뿐이었고요.”
그런 이들 중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신의나 마의가 신마곡으로 데려오곤 했다.
물론 강력한 수면제와 몽혼 약으로 의식을 흐리게 한 뒤, 눈과 귀를 막아 신마곡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한 뒤였다.
“그래선지 진법을 해제했는데도 일 년 넘게 아무도 신마곡을 찾아오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신마곡에 들어선 사람이 나였군.”
“네. 맞아요.”
단악선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 초악량이 기막힌 우연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외부인을 허락하지 않던 신마곡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 하필이면 강호의 악명 자자했던 자신이었다니.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단악선과 인연을 이어 오고 있었다.
범계위나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만약 단악선이 절진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름 없는 주검이 되어 한 줌 흙으로 되돌아갔을 것이고, 지금처럼 함께 여행하는 두 사람도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
그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일행은 계속 경공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열흘째.
그들은 서장 지역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마주한 풍광이 크게 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곳곳에서 라마승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중원의 승려들과는 확연히 다른 복색이었다.
특히 일부는 독특한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이 단악선 일행을 발견하곤 반색하며 다가섰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십 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라마승이 유창한 한어를 구사하자 일행은 일순 당황했다.
“저는 아짐바 소남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어진 라마승의 말에 초악량이 앞으로 나섰다.
“혹 다른 사람과 착각하신 것이 아니오?”
자신을 아짐바 소남이라 소개한 라마승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중원에서 오신 신마의선과 그 일행분들 아니십니까?”
“……!”
초악량이 깜짝 놀라 일행을 돌아봤다.
저들이 대체 어떻게 이곳에 자신들이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일까?
무위에서 출발해 사천을 벗어날 때까지는 최대한 기감을 펼쳐 인적이 없는 곳으로만 이동해 온 그들이었다.
혹시 모를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이 무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마교가 수작을 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단악선이 앞으로 나섰다.
일단 정중하게 저들의 방식으로 예의를 갖춘 뒤 단악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님께서 기다리던 사람이 저희가 맞습니다. 한데 어떻게 미리 알고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는지요?”
라마승이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달라이 라마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중원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실 것이니 나가서 마중하라고요.”
“달라이 라마라고 하시면……?”
“아! 죄송합니다. 중원어로는 달뢰라마(達賴喇嘛)라 불리시는 분입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짧게 설명했다.
“라마는 저들의 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달라이라는 칭호는 큰 바다를 뜻하고. 이곳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지배자인 대보법왕(大寶法王)을 가리키는 말이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싶어 눈앞의 라마승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순박한 눈빛이나 표정에서는 그 어떤 수상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신통력이라도 지닌 것일까?”
서장의 라마승 일부가 기이한 신통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떠올린 초악량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지만 라마승은 미소 띤 얼굴로 경건하게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그분께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초악량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저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어째서 이토록 환대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강호에 자자한 악명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런 자신들을 달뢰라마에게 선뜻 안내한다는 사실이 못내 수상쩍었다.
그 눈빛을 읽었는지 라마승이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심을 거두어야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전하라 하셨습니다.”
“……!”
정곡을 찔린 초악량이 움찔하는 사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마승을 향해 다가섰다.
“안내해 주세요.”
흡족한 미소와 함께 라마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단악선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이상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와!”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정확히는 장엄하기 그지없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초악량을 위시한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한설화의 눈 위로도 놀라움이 떠올랐다.
“저런 거 중원에서 본 적 있수?”
범계위의 물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황궁을 포함해 그 어떤 성과도 견줄 엄두가 나지 않는 건축물.
바로 납살성(拉薩城)이라고도 불리는 포달랍궁이었다.
앞서 걷던 라마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놀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동서의 길이만 해도 백 장이 넘고, 남북은 구십 장에 조금 못 미치니까요. 십삼 층에 달하는 높이 역시 사십 장에 이르고요. 중원을 오가는 서역 상인의 말에 따르면 단일 건축물로서는 천하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라 하더군요.”
그 말대로 붉은빛이 감도는 포달랍궁은 궁전보다는 요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뒤로 펼쳐지는 풍광과 더해지니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손대면 푸른 물이 묻어 나올 것 같은 선명한 창천(蒼天).
그 아래 만년설이 덮인 거대한 산맥은 붉은색의 포달랍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입구를 중심으로 건물 전체를 둘러싼 해자를 건너 안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보시다시피 바깥쪽의 붉은색 홍궁(紅宮)은 부처님을 위한 공간이고, 눈앞에 보이는 흰색의 백궁은(白宮) 저희가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설명한 라마승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포달랍궁 내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거대한 방이었다.
태사의는커녕 의자도 없는 그곳 중앙에는 한 사람이 좌정을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기껏해야 약관 정도나 되었을까.
이곳의 지배자인 달뢰라마가 맞나 싶을 만큼 젊은 승려였다.
“손님들을 모셔 왔습니다.”
단악선 일행을 안내했던 라마승의 말에 실내 중앙에 앉아 있던 젊은 라마승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단악선을 제외한 세 사람이 멈칫하며 단악선 앞을 막아섰다.
눈앞의 젊은 라마승과 시선이 마주치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존재감이 장내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손님들께서는 부디 경계하는 마음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이 머무는 곳. 결코 은인을 해치지 않습니다.”
상대로 하여금 더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눈빛과 목소리였다.
하지만 은인이라니?
의아해하는 단악선의 눈빛에 젊은 라마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저를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시주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요.”
“……?”
“시주께서 태어나신 날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단악선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설마 제게 벌모세수를 해 주셨다는 분이?”
질문을 하고 난 직후 단악선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눈앞의 라마승은 기껏해야 약관 남짓.
자신이 태어났을 때라면 그의 나이 역시 네다섯 살에 불과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라마승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반선라마(班禪喇嘛)로, 제 스승님 되시는 분입니다.”
“반선라마요?”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단악선을 향해 달뢰라마로 짐작되는 라마승이 미소 띤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과거 이 지역이 융성했던 토번국 시절에는 이곳에 불자가 없었습니다. 소위 밀교라 부르는 토속 신앙이 뿌리 깊게 백성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었지요.”
그러다 원(元)나라 초엽에 불교가 흘러 들어와 밀교와 결합했고, 그 결과 그들만의 독특한 서장불교가 파생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파사파(巴斯巴)라 불리는 위대한 스승이 자신을 드러낸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당시의 원 황실은 그를 제사대보법왕(帝師大寶法王)에 봉했고, 이후 나라가 바뀌며 황제의 스승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이후 대보법왕의 이름만이 달뢰라마에게 대대로 전승되고 있지요.”
젊은 달뢰라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르침을 베푸셨던 선승 가운데 종객파(宗喀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그가 지금의 라마교를 완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의 포달랍궁이 건설되고 라마교의 체계가 잡힌 것도 그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 자제에게 가르침을 전하였는데, 수제자가 달뢰라마이고 두 번째 제자가 반선라마라고 했다.
“그리고 달뢰라마와 반선라마는 서로 교대하여 스승과 제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던 단악선은 이어진 설명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달뢰라마의 생명이 다할 때가 되면 제자인 반선라마에게 자신이 환생하여 태어날 곳을 미리 언질해 둡니다. 달뢰라마가 입적하고 나면 반선라마는 생전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 지역을 여행하며 달뢰라마가 환생한 아이를 찾아 자신의 제자로 들이지요.”
“그 아이로 달뢰라마께서 환생했다는 걸 어떻게 알아보죠?”
어찌 보면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젊은 라마승은 조금도 괘의치 않고 설명해 주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아이는 전생(前生)에 있었던 일을 마치 양호(羊祜)가 금환(金環)을 찾아내듯이 분명하게 말하곤 합니다.”
심지어 스승과 제자 사이만 알 수 있는 기억을 언급하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반선라마는 그 아이를 데려와 달뢰라마로 삼고 자신이 물려받은 가르침을 전수합니다. 반선라마 역시 죽음이 가까워지면 제자인 달뢰라마에게 자신이 환생해 태어날 곳을 알려 주지요. 달뢰라마 역시 마찬가지로 환생한 반선라마를 찾아 제자로 삼고 교(敎)를 전하여 줍니다.”
한마디로 달뢰라마와 반선라마는 환생을 반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과 제자가 되어 준다는 의미였다.
“신의와 마의, 그 두 분과 인연이 닿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당대의 달뢰라마인 젊은 라마승.
그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