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3)
신마의선-273화(273/500)
신마의선 (273)
“제가 태어난 곳은 탁씨 성을 쓰는 집성촌으로, 한때 강호에서 무불능요(無不能要)라 불리던 분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초악량이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귀수(鬼手)의?”
달뢰라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군요.”
“…….”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불가해(不可解)라 불리던 강호의 전설적인 기인, 탁요신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시서금화(詩書琴畵)를 비롯해 건축과 기문 둔갑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주가 하늘에 닿아 있다 전해지는 불세출의 천재가 바로 탁요신이었다.
심지어 신마곡에 설치되어 있는 혼천미리암진(混天迷理暗陳)이라 불리는 기환진(奇幻陳)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초악량은 비로소 상대가 이토록 유창하게 한어를 구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대의 달뢰라마가 중원인 출신이었다니.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이야기였다.
달뢰라마가 다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반선라마께서 저를 찾아오셨을 때 저는 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천연두(天然痘)였다.
“사실 탁가에 전해지는 의술은 그 어느 곳의 행림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병을 치료할 수 없었지요. 제가 생신(生身)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이 지역 서번(西蕃) 출신들은 유독 천연두에 약했다.
그래서 천연두에 걸리면 대부분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천연두를 앓은 자를 열신(熱身)이라 하고, 아직 앓지 않은 자를 생신(生身)이라 구분 짓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시던 신의와 마의께서 죽어 가던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당시 마의는 태중에 있었는데, 산달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태중의 아이를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들의 아이만큼은 얽히고설킨 강호의 은원으로부터 자유롭길 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 아버지셨던 탁능진은 두 사람을 신마곡으로 안내했습니다. 귀수라 불리셨던 제 조부께서 혼천미리암진을 시험했던 곳이었지요.”
하나뿐인 유일한 혈육을 구해 준 답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이 태어났고, 반선라마는 단악선에게 벌모세수를 베푸는 것으로 은혜에 보답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달뢰라마가 단악선을 향해 공손하게 합장했다.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어 은인께 감사를 올립니다.”
단악선이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제게 고마워하실 이유가 없어요. 달뢰라마 님을 구한 것은 저희 부모님이시지, 제가 아닌걸요.”
달뢰라마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와 반선라마, 그리고 제 부친에게 있어 시주는 둘도 없는 은인이십니다.”
“네?”
“당시 저를 치료하셨던 두 분께서 말씀하시길, 자신들도 곧 부모가 될 터인데 자식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차마 외면하실 수 없다 하셨습니다. 신분을 드러내는 위험까지 감수하시며 저를 치료하신 결정적인 이유였지요. 만약 태중의 시주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
“또한 그 인연이 이어지고 이어져 이곳의 승려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이 시주로 인한 것임을 소승은 감히 부정할 수가 없군요.”
달뢰라마와 시선을 마주하던 단악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는 단악선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눈앞의 라마승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눈빛이, 그리고 마음이 담긴 음성이 그의 진심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큰 목소리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과연! 그런 거였군!”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어이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기는 한 거냐?”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되려 반문했다.
“달뢰라마와 반선라마는 늘 같이 붙어 있다는 말 아니오? 마치 떼려야 뗄 수 없는…….”
“……?”
“두 개의 불알처럼?”
그 말에 한설화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고, 초악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왜?”
“듣는 사람 속 터지니까!”
그 순간 장내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달뢰라마는 진심으로 유쾌한 듯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어 댔다.
“맞습니다, 맞아요. 그 비유가 과히 틀리지는 않군요.”
늘 근엄하게 진리를 추구하며 중생을 계도하던 그가 언제 이런 말을 들어 보았겠는가.
그러나 초악량과 한설화는 지금 상황이 그저 민망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인연이 이어지고 이어져 이곳의 라마님들의 목숨을 건지셨다는 건 무슨 의미죠?”
달뢰라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직하게 한숨을 흘린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구 년 전, 이곳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이 창궐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데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기에 처음에는 전염병이라 생각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손을 쓸 방법이 전무했지요.”
아무리 달뢰라마라 한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에 불과했다.
결국 반선라마가 나섰다.
“그분은 병든 몸을 이끌고 중원으로 향하셨습니다. 오직 신의와 마의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단악선은 자신이 어렸을 때 신마곡을 찾아왔던 라마승의 상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혈이 들끓고 진기가 역류해 기맥이 헝클어진 전형적인 주화입마의 증세.
처음에는 부모님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협력을 통해 라마승을 살려 냈고, 그 과정을 통해 주화입마와 절맥을 치료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반선라마께서는 무사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신의와 마의께서 직접 이곳을 방문해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받던 승려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셨지요.”
역시나 단악선의 짐작대로였다.
부모님은 한동안 이곳에 머무셨던 것이다.
달뢰라마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때였다.
“그 두 분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 창궐한 병은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누군가 은밀하게 독을 풀었기 때문이라 하시더군요.”
“독이요? 대체 누가…….”
달뢰라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마교였습니다.”
단악선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마교가 어째서 이곳을 공격한 거죠?”
“뿌리 깊은 증오심 때문이지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단악선을 위해 초악량이 대신 설명했다.
“마교가 처음 발호했을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한족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원 황조를 무너트리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명이 건국되며 북방으로 쫓겨 갔지만 원이 중원을 지배할 당시만 해도 라마교는 국교(國敎)였다.”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라마교는 크게 황모파와 홍모파로 나뉜다. 각자의 가르침과 믿는 바에 따라 황색 모자와 붉은 모자를 쓰기에 그리 구분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홍교(紅敎)라 불리던 홍모파는 비교적 광명정대한 황교와 달리 사특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처음 원 황실은 황교의 지도자인 달뢰라마를 황제의 스승, 즉 제사대보법왕(帝師大寶法王)으로 삼아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홍교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환관들의 꼬드김에 넘어간 황제가 홍교의 방술(方術)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홍교는 라마교 내부에서도 사도(邪道)라 할 만큼 간악한 자들이었다. 오죽하면 마교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마니교(摩尼敎)조차 그들보다 낫다는 말이 나왔을까.”
소위 번승(番僧)이라 불리던 홍교의 라마승들은 점차 정치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이는 라마교의 본래 종지(宗旨)와 어긋났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엄격하게 금지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달사랍경(達思拉經)이라 부르는 자신들만의 경전 가르침에 따라 중원 곳곳에 환희불(歡喜佛)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전경루(轉經樓)와 연설벽(演揲壁), 라마사(喇嘛寺)에 이르기까지.
건물 벽에 남녀가 성교하는 불상(佛像)을 새기고 온갖 무도한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탐욕에 미쳐 온갖 살인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예사였고, 심지어 중원의 무공에까지 마수를 뻗쳤다.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파의 절학을 멋대로 갈취한 것이다.
“한족의 일부 배신자들이 놈들과 결탁해 만든 문파가 바로 모산파였다.”
모산파와 관련된 이야기는 단악선도 익히 알고 있었다.
초악량의 사부가 그들 모산파의 전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저들의 패악질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중에는 명교라 불리던 마교의 전신도 있었고, 각 지역의 토호들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변방으로 쫓겨났지만 마교에게 있어 라마교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셈이다.”
“홍교와 황교는 다르지 않나요?”
단악선의 반문에 대답한 사람은 달뢰라마였다.
“한 부모 아래에서 난 형제라 한들 어찌 같겠습니까. 하지만 몸속에 같은 피가 흐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황교와 홍교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 위세가 약해져 황교에 복속해 있었지만 언제 다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홍교였다.
그러나 불자에게 있어 자비란 무엇보다 큰 덕목.
품 안에 날아든 새의 목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나운 매에게 쫓긴 비둘기를 대신해 자신의 살을 내어 준 시비왕처럼 마교의 압력을 지금껏 묵묵히 견뎌 왔다.
달뢰라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마교가 본궁에 한 가지 제안을 해 왔습니다.”
바로 중원을 치는 데 힘을 보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와 종교의 통합은 있을 수 없는 일.
무엇보다 그는 평화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 제안을 거절하셨기에 마교가 독을 쓴 것이군요.”
단악선의 말에 달뢰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에게 있어 우리는 등 뒤의 비수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저들이 변방으로 밀려난 뒤 활동 지역이 우리 쪽과 많이 겹치는 데다, 우리가 언제든 입장을 달리해 자신들의 배후를 노릴 수 있다 여겼을 테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포달랍궁을 무력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악선이 달뢰라마를 향해 물었다.
“그럼 제게 벌모세수를 해 준 반선라마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안타깝게도 시적(示寂)하셨습니다.”
“시적이요?”
“아! 중원의 승려들은 입적(入寂)이라 표현하지요.”
“돌아가셨다는 말씀인가요?”
놀란 얼굴로 되묻는 단악선을 향해 달뢰라마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의와 마의께서 이곳의 승려들을 치료하신 뒤 중원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반선라마와 몇몇 제자들이 그분들을 호위하셨지요.”
달뢰라마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변고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그분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직접 향한 달뢰라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선라마를 포함한 라마승들의 시신뿐이었다.
“마교의 소행이었지요.”
근처에 남아 있는 격전의 흔적을 통해 마공만이 지닌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선라마께서는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계셨지만 당시에는 온전히 무공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셨습니다.”
단악선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벌모세수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진원진기까지 소모해 가며 펼친 이상 칠 년 만에 원래의 무공을 되찾기란 요원한 일.
“신의와 마의, 두 분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납치를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마교는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었어요. 그들이 어째서 부모님을…….”
감정이 격앙된 단악선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달뢰라마가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반선라마의 죽음은 우리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본 궁의 은인이신 두 분 의원님의 실종도 좌시할 수 없었기에 백방으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들이 두 분을 납치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 이유가 뭐죠?”
“두 분이 아니면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 때문이었습니다.”
달뢰라마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종여의입니다.”
“누구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단악선과 달리 초악량과 범계위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천마!”
그제야 단악선도 언젠가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마교의 지배자인 교주.
중원에서는 천마라 불리는 그의 이름이 바로 종여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