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4)
신마의선-274화(274/500)
신마의선 (274)
난데없이 튀어나온 천마의 이름에 달뢰라마를 제외한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초악량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실제로 천마와 손을 섞어 본 것은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침묵을 깨며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하긴 당시에 그자는 꽤나 심각한 상태였지.”
그 자리에 있었던 어느 누구도 그가 살아날 거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무거운 부상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십 년 넘게 숨이 붙어 있었다니.
마지막에 놈의 숨통을 끊어 놓지 못한 것이 새삼 원통했다.
달뢰라마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신의와 마의, 두 분이 납치되기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의원들이 실종되거나 사라졌습니다. 하나같이 의술로 이름 높은, 뛰어난 의원들이었지요.”
“천마를 치료하기 위해 마교가 납치한 것인가?”
달뢰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중원에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
“장성 밖, 새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대로였다.
마교와 직접 영역을 맞대고 있는 곤륜이 마교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하나 그들이 지닌 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개방을 비롯한 중원의 정보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의 이목과 정보망은 어디까지나 중원에 한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일어난 만큼 포달랍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의와 마의의 실종을 조사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자, 잠깐만요!”
멍하니 서 있던 단악선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렇다면 혹시 부모님이 살아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치료를 위해 부모님을 납치했다면 섣불리 두 사람을 해치지 않았을 터.
그러나 달뢰라마는 안타까운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두 분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던 단악선의 기대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달뢰라마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 갔다.
“본 궁 내부에서 마교 세력과 결탁한 자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포달랍궁 내부에서 마교와 협력했던 자를 역추적해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고, 이후 그를 이용해 마교의 연락책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접촉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한 뒤 그 함정을 이용해 마교의 유력 인사를 붙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를 심문하면서 두 분의 죽음과 관련된 정보들을 확인했습니다.”
이어진 달뢰라마의 설명에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그가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없나요?”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온화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지만 라마교는 그 이면에 온갖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좌도밀교(左道密敎)의 비술들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마음먹고 심문했다면 제아무리 의지가 굳건하더라도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단악선이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을 응시했다.
툭툭.
소리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
그 모습이 더없이 가슴 아팠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단악선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착잡한 눈빛으로 이 순간을 함께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소매로 눈물을 훔친 단악선이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어 벌게진 단악선의 눈을 마주 보며 달뢰라마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어진 달뢰라마의 말에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마의께서는 잠시나마 마교의 본 단을 나와 자유롭게 움직이셨습니다.”
“……!”
“더 이상한 것은 마의 본인께서 스스로 다시 마교로 돌아가셨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께서 목숨을 잃으셨고요.”
“엄마가 스스로 마교로 돌아가셨다고요?”
단악선은 문득 엄마가 풍진성에게 남겼던 서신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이미 그녀는 확실하게 자신들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마교로 향하신 거였구나.’
그 이유야 당장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저희들의 짐작으로는 아마 두 분께서 천마의 치료를 실패하시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죽음을 맞이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달뢰라마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단악선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이미 죽었다면 모를까 환자의 숨이 붙어 있는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냈을 부모님이었다.
“아니면 치료를 거부하셨을 수도 있지요.”
달뢰라마가 언급한 다른 가능성조차 단악선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환자 앞에서는 선악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두 분이었다.
그 어떤 악인도 살려 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던 분들이었던 만큼 천마라 해서 다를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판단하신 이유가 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달뢰라마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의 죽음 이후, 천마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서장의 밤하늘은 깊고 어두웠다.
그래서일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그대로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심란한 마음을 떨쳐 내려 하면 할수록 끝없는 슬픔과 분노가 밀려들었다.
‘마교…….’
부모님을 앗아 간 그들을 떠올리자 마음 깊은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흉폭한 살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더없이 낯선 감정이 육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파괴적인 충동!
움켜쥔 단악선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단악선을 멀리서 지켜보던 세 사람의 눈에 심란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처럼 살기를 드러낸 단악선의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 모습이 낯설고 마음 아팠다.
“저 아이에게 복수라는 것이 어울릴까?”
안타까운 마음에 한설화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나직한 한숨을 흘린 초악량이 그 말을 받았다.
“모르면 몰랐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알게 된 이상 그런 결정을 내린다 해도 어쩔 수 없지.”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의원을 죽이는 거야?”
툴툴대던 범계위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러나 단악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먼 동이 터 오르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단악선은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의 복수를 해야겠어요.”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단악선의 눈빛과 목소리엔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결연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세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은 아직 어린 단악선이 복수라는 이름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복수 따위에 허비하기에 삶은 너무 짧다.”
단악선은 초악량이 이처럼 반대할 줄 몰랐던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이미 그 길을 걸어온 그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 역시 은원 따위에 얽매인 삶을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신은 충분히 고통받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죽음과 연루된 당사자들 역시 고통받아야 마땅한 법.
고통과 후회 속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몸부림쳐야 공평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가슴에 쌓인 증오를 풀어내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떠난 이를 추모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더없이 숭고한 행위였다.
“언젠가 누가 그러더군. 그만 모두 놓아 버리고 편해지면 좋지 않으냐고. 돌아가신 사부님께서도 그것을 원하실 거라고. 복수의 굴레에 사로잡혀 이토록 힘겨워하는 것을 아신다면 죽어서도 편히 눈 감지 못하실 거라면서 말이야.”
그러나 초악량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나 혼자 편해지자고 복수를 포기한다면 먼저 간 사람은?”
그 사람만 가엾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복수는 반드시 피를 동반하는 법.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앞세우고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해도 본디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악량은 단악선의 결심을 지지했다.
“복수는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닌, 산 자를 위한 것이다.”
먼저 간 이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자칫 그 미련은 독이 되어 남겨진 자를 괴롭히는 족쇄가 된다.
복수를 통해 마음에서 망자를 보내 줘야만 남겨진 자들도 아픔을 털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끝이 아무리 허무하더라도……. 그리고 그 끝에 후회만 남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할 것이다.”
“아저씨…….”
단악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이때 한설화가 단악선을 꼭 껴안았다.
“나도 네 곁에서 그 길을 함께 걸으마.”
한설화에게 선수를 뺏긴 범계위가 억울한 눈빛을 흘렸지만 이내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믿어! 단 의원! 마교 따위? 흥! 다 나오라고 해! 천마가 아니라 옥황상제나 염라대왕이라고 해도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자신을 위해 기꺼이 나서 주는 세 사람의 모습에 단악선이 울컥했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울먹이는 단악선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범계위는 가슴 깊은 곳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감히 우리 단 의원을 울리다니!’
범계위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부모님의 죽음에 연루된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옥에 처넣어 주겠어! 가서 그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게 만들어 주지!”
그런데 문득 범계위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어?”
당황한 범계위의 표정에 초악량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 범계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지옥이 있다면 극락도 있겠지?”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초악량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평생 환자들을 치료해 준 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극락에 가 있지 않을까? 지옥에 떨어진 놈들이 어떻게 극락에 있는 두 사람에게 용서를 빌지?”
“……!”
천하의 초악량조차 일순 말문이 막혀 선뜻 대답할 수 없는 난제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뭐, 상관없나?”
그리곤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우리가 가서 다시 혼내 주지,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초악량의 반문에 범계위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초 형이나 나나 어차피 극락에 가는 건 틀렸잖수. 마녀도 마찬가지고.”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어이없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죽어서 갈 곳이 지옥밖에 더 있겠수? 그러니 놈들을 먼저 보내 놓고 나중에 우리가 다시 가서 단 의원 부모님 몫까지 혼내 주자는 말이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단악선을 향해 웃었다.
“우리 단 의원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단 의원은 극락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야 할 테니까.”
그때였다.
단악선이 손을 뻗어 범계위를 와락 껴안았다.
“아니에요.”
“……?”
의아해하던 범계위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크게 감격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곳이 어디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거예요.”
초악량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네가 복수의 길을 걷는다니 말리지는 않겠다. 오히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초악량이 진지한 표정으로 조언했다.
“하나 이미 말했듯이 복수는 산 자를 위한 것. 그런 만큼 복수라는 목적에 매몰되어 너 스스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일이라도 주객이 전도되면 그 결과가 좋을 리 만무했다.
몇 번이고 그 말을 가슴 깊이 되새긴 단악선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단악선의 눈빛이 초악량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