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6)
신마의선-276화(276/500)
신마의선 (276)
상대의 신분을 짐작한 능소밀이 내심 혀를 찼다.
‘하필이면!’
좌도어사라 했으니 관리들의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고 감찰하는 기관인 도찰원(都察院)의 두 장관 중 한 명이 분명했다.
“그리 고하는 이유는?”
황제의 물음에 노대신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들의 뿌리가 국법에 저촉되는 밀무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명률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황상의 치세에 역행하는 대죄입니다. 나아가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대죄이니만큼 결코 용인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다른 이들의 의견도 좌도어사와 같은가?”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무백관 사이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소신의 의견은 조금 다르옵니다.”
능소밀은 그 순간 황제의 눈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이채를 발견했다.
워낙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순 본래의 눈빛으로 되돌아왔지만 삼존의 등쌀에 시달리며 극도로 발전한 그의 눈썰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부(吏部)의 판단을 듣지.”
황제가 발언을 허락하자 이부상서(吏部尙書) 허신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무리 국법이 나라의 근간이라 하나 폐하의 어지(御旨)보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조정이 밀무역을 금한 것은 분명하오나, 과거의 선례로 비추어 볼 때 예외를 둔 사례가 없지도 않사옵니다. 대표적으로 해동의 삼이 그러하고, 곤녕궁(坤寧宮)을 비롯한 동서육궁(東西六宮)에서 사용되는 물품 상당수 역시 민간 상단에서 진상된 것들이옵니다.”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에둘러 말하곤 있었으나 그 안에 숨긴 뜻을 모를 리 없는 그였다.
곤녕궁은 황후의 침궁.
곤녕궁 북쪽에 위치한 어화원(御花園)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 여섯 개의 궁들은 후비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이부상서가 언급한 물품은 한마디로 그녀들이 소지하거나 사용하는 사치품들일 터.
그중 상당수가 밀무역을 통해 들여온 서역의 물건들이었다.
특히 중원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거울 같은 유리 제품과 용연향 등의 향료가 대표적이었다.
“…….”
황제는 잠시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밀무역을 완전히 금지해 관련 진상품의 수급이 불가능해진다면 밤새 침전에서 볼멘소리에 시달려야 할 터.
한편 능소밀은 이미 저간의 모든 상황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이건 뭐, 전쟁이군.’
서로 대립하는 의견을 내놓은 좌도어사와 이부상서가 교환하는 눈빛.
무공을 익히지 않은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은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서릿발 같은 기세 역시 마찬가지.
마치 고수들의 대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가 입을 다물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 선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인사 동향에 관해 수상한 정황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소이다?”
“근거 없는 억측이외다. 어디까지나 능력과 평가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사이동이오.”
“관직을 얻기 위해 뇌물을 바친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소만.”
“어허! 어찌 함부로 근거 없는 소문에 의지해 이부의 권한과 의지를 폄훼하는 것이오?”
점차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가는 대신들의 비난에 능소밀은 자신이 이곳에 불려 온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제기랄!’
신마상단을 확장하며 부득이하게 곳곳에 뿌린 자금.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중앙 관료의 권력 싸움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황제의 집권 초기.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해 황제는 정치 세력의 신구 교체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당연히 관료의 인사권을 손에 쥔 이부(吏部)의 권한이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군부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보수파인 병부(兵部)와 예제(禮制) 및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禮部)는 이부를 견제하게 됐다.
그래서 도찰원을 앞세워 이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이부와 형부(刑部), 호부(戶部)가 같은 편이고, 병부와 예부가 저들과 대립하는 형세군.’
재정과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호부는 싫어도 이부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신마상단이 뿌린 재물 상당수가 지방 관리들에게 흘러들어 갔고, 이는 다시 중앙 대신들에게 올라갔을 터.
그것이 이부의 인사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약 인사 과정에서 뇌물이 오간 정황이 드러난다면 이부에 막강한 권한을 쥐여 준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될 수도 있었다.
자칫 이로 인해 이부의 권위가 추락하고 권한이 제약된다면?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호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여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묻는다면 형부 역시 곤혹스러워진다.
반면 공공 공사를 담당하는 공부(工部)는 중립인 상황.
‘나를 이용해 저들을 흔들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앙 조정의 권력 싸움에 끼게 된 능소밀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거기까지.”
황제의 말에 대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짐이 친히 국문(鞫問)을 주재한 것인즉, 경들은 입을 다물라.”
좌중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천자의 위엄을 증명한 황제가 능소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실이더냐?”
순간 능소밀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번 사태의 진짜 흑막이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서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황제였다.
‘빌어먹을!’
능소밀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내친걸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마음을 굳힌 능소밀이 곧바로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네. 사실입니다.”
능소밀의 대답에 황제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죄를 인정한다는 말이냐?”
“인정합니다.”
“…….”
황제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의지와 상반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잠시.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아느냐? 경우에 따라 감형의 여지는 있다 하나, 관리들에게 뇌물을 공여한 죄는 기본적으로 사형이다.”
“뇌물이라니요? 이 미천한 백성은 감히 그런 일을 벌일 만큼 담이 크지 못합니다.”
“혐의를 부정한다는 것이냐?”
능소밀이 짐짓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관리 일부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폐하를 위한 충심 때문이었지, 결코 사사로이 제 이득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황제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계속하라.”
“그들은 모두 폐하의 신하들. 저들이 얼마 안 되는 푼돈에 미혹되어 관리의 본분을 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폐하에게 누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여 스스로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뇌물이 아니다?”
“대가를 요구하면 뇌물이 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선물에 조건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찌 뇌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밀무역은? 그 또한 사형을 면치 못하는 중죄다.”
“밀무역 또한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그 시작은 오직 폐하를 향한 충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사사로운 이익을 얻기 위해 밀무역을 시작했다면 중원 곳곳에 독초처럼 도사리고 있는 염효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 저희는 관의 허가를 얻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폐하의 치세에 감사한 마음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뻔뻔한 능소밀의 대답에 노대신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건 상단을 키울 만큼 키우고 난 이후, 관리들을 포섭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냐!”
능소밀이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노대신을 향해 되물었다.
“누구십니까?”
“병부상서다.”
“병부상서씩이나 되시는 분이 어찌 폐하 앞에서 거짓을 입에 담으시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능소밀의 반격에 병부상서 조의심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반면 능소밀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아무리 상대의 위세가 대단하다 한들 신마삼존을 통해 단련된 강철 같은 신경은 웬만해서는 이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질기고 단단해진 상태였다.
“지금 누가 거짓을 논한단 말이냐!”
병부상서의 일갈에도 능소밀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와전된 사실을 자의로 해석하여 폐하께 고하는 것 말입니다. 신하 된 자로서 어찌 폐하의 이목을 흐리게 만드는 불충을 저지르시는 겁니까?”
“이, 이놈이!”
황제가 손을 들자 병부상서는 벌게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병부상서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였는지 말해 보라.”
다시금 예의를 갖춘 능소밀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최초로 서역의 물품을 입수한 것은 우연한 계기로 확보한 전리품이었습니다.”
“전리품?”
황제의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전쟁이라도 치렀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누구와?”
“강호인이 혈운사라 부르는, 달단의 야만인들이옵니다.”
“어째서 일반 백성인 그대가 그들과 전쟁을 치른단 말인가?”
“천하의 모든 것은 폐하의 것. 폐하의 강산을 어지럽히는 역도들을 어찌 그냥 두고 본단 말입니까?”
“그들이 활동하는 곳은 장성 너머라 알고 있는데?”
“하지만 저들은 지금도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며 남몰래 힘을 키워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조금이라도 약화하기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을 강구했나이다.”
오랑캐로 하여금 오랑캐를 상대하게 한다는 말에 황제는 더욱 흥미를 보였다.
“계속하라.”
황제의 말에 능소밀은 혈운사를 물리치고, 그들의 후계자를 나포해 그들과 적대 세력인 부족에게 넘긴 사실을 언급했다.
또한 혈운사와 싸워 왔던 이야기와 최근에 와해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것을 강조했다.
물론 반쯤은 칠절마군 노단양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황제 앞인데도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스스로에게 내심 감탄하며 능소밀은 병부상서를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병부의 지휘권을 지니신 분이라면 당연 혈운사가 괴멸되었다는 소식도 들으셨을 텐데요?”
병부상서가 움찔했다.
“하나 그건 최근의 일이 아니더냐? 지금은 신마상단의 시작에 관해서…….”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북쪽으로 간 것은 혈운사를 처리하기 위해서였고, 그 성과로 놈들이 서역 상인들에게 약탈했던 물품들을 전리품으로 얻었을 뿐입니다.”
황제가 병부상서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자의 말이 사실인가?”
병부상서가 쩔쩔매며 대답했다.
“혈운사라 불리던 마적 무리가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 그것이 밀무역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능소밀이 그 말을 자르며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희는 혈운사와 싸우는 과정에서 서역 상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초대로 서역에 다녀온 것뿐입니다. 거기서 선물을 잔뜩 받았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받은 게 있으니, 보답도 해야 할 터. 이후로도 몇 번 더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건네받은 선물들이 중원에서는 워낙 귀한 물품이다 보니, 정식적인 거래 허가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걸 증명할 수 있느냐?”
“그걸 왜 제가 증명합니까?”
“뭐라?”
“제 죄를 발고하신 분은 병부상서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증좌를 제시해 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도 병부상서께서 하셔야 옳지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버럭 하는 병부상서를 향해 능소밀이 피식 웃었다.
“역모를 꾸미시던 분이라 그런지 참 뻔뻔하십니다그려.”
“뭐, 뭐라?”
병부상서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찌 함부로 조정의 신하를 무고하느냐! 너는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느냐?”
“당연히 없지요.”
“뭐?”
“병부상서의 논리대로라면 혐의는 본인 스스로 입증해 벗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오랜 세월 정치판에서 굴렀다 자부하던 노대신도 일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황제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짙어졌다.
오직 언변을 무기 삼아 아슬아슬한 권력의 도산검림을 헤쳐 온 노신들이었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노신들을 상대로 여유 있게 대처하는 능소밀의 능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너는 분명 스스로 죄를 인정한다 하였다.”
황제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사옵니다.”
“한데 정작 너는 혐의 전부를 부정하고 있구나.”
“저는 오직 사실만을 고할 뿐입니다. 제가 황상께 죄를 지은 것은 부정할 수 없사온데, 어찌 회피하려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네가 인정하는 죄는 대체 어떤 것이냐?”
능소밀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별것 아닌 일로 천하의 주인이신 황상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귀하디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으니 어찌 이 미천한 백성의 죄가 가볍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
황제의 입에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실로 혀가 매끄러운 자로다. 짐의 환관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