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7)
신마의선-277화(277/500)
신마의선 (277)
묘한 눈빛을 흘리며 능소밀을 응시하던 황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의도한 것은 아니나, 밀무역을 한 것은 맞다는 말이구나.”
능소밀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한 발만 삐끗해도 그를 기다리는 건 천 길 낭떠러지뿐이었다.
“대가성은 없으나 관리들에게 재물을 건넨 것도 분명하고?”
“…….”
“그렇다면 참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겠군.”
목덜미 위로 떨어지는 칼날을 떠올리자 오히려 능소밀은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기쁘게 감내하겠나이다. 다만…….”
“……?”
“이 미천한 백성이 폐하를 위해 작은 성의를 준비했사오니, 부디 이것만 진상할 수 있도록 허해 주소서.”
“성의?”
황제의 반문에 능소밀은 재빨리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상자를 꺼내 공손히 내려놓았다.
상아를 세공해 만든 상자는 한눈에 봐도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상자를 세공한 사람이 초악량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와 같은 때를 대비해 능소밀이 초악량에게 부탁해 만들어 둔 상자였다.
황제가 실소했다.
“감히 나를 뇌물로 꼬드길 심산이냐?”
그 말에 능소밀은 황당한 표정을 내보였다.
“예? 뇌물이라니요? 천하의 모든 것은 이미 폐하의 것 아닙니까?”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했다.
애초에 그 물건은 자신의 것이니 뇌물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자였다.
아직 불혹도 되지 않았다 들었는데,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처럼 능수능란한 언변을 구사한단 말인가.
능소밀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비록 저는 폐하의 성덕(聖德)에 기대어 고복격양(鼓腹擊壤)을 누렸으나, 아직 천하에는 그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존재하나이다. 제가 사라짐은 아쉽지 않으나, 부디 폐하의 치세가 오래오래 이어져 만백성이 저처럼 죽어도 여한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염원에 이것을 바치옵니다.”
“상자 안에 든 것이 무엇이냐?”
능소밀이 내심 한숨을 흘렸다.
‘아깝지만……. 할 수 없지.’
능소밀이 상자를 열어 내보였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세 알의 단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에 힘입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신마단과 공급이 수요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천금을 지녀도 구하기 힘들다는 독계산.
여기에 능소밀은 하나를 더 포함했다.
바로 성수신단이었다.
극소수의 신마곡 사람들에게만 비상용으로 주어진 보물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오오!”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에 황제가 관심을 보였다.
“저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는 고하도록.”
눈치를 살피던 대신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시도 황제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 다니며 수발을 드는 환관들.
그들의 수장이자 스물네 곳에 달하는 아문(衙門)의 책임자인 사례태감(司禮太監) 왕직이었다.
또한 황제의 직속 정보 조직인 동창(東廠)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허하신다면 비직이 아뢰겠나이다.”
왕직은 자신들이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상자 안의 단약들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올렸다.
황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천하의 모든 소문이 모이는 황궁인 만큼 독계산에 대한 이야기를 그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누구보다 단단한 성정을 지닌 그였지만 황후를 비롯해 수십 명의 비빈을 거느린 그에게 독계산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황제는 일순 고민에 빠졌다.
‘죽이기에 아까운 자다.’
원래대로라면 능소밀을 참형에 처해 조정의 권위를 세워야 마땅했다.
스스로 의도치 않았다 하나 조정 인사에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살포한 금품은 국법을 어겨 가며 벌인 밀무역을 통해 번 돈이었다.
만약 이대로 놈을 용서한다면 인사권을 남발한 이부의 방만을 눈감아 주는 꼴이 된다.
처벌을 주창한 병부와 예부 측 대신들도 순순히 납득할 리 없었다.
한 명의 목숨을 희생양 삼아 조정 대신들에게 경각심을 품게 하고, 숙청의 피바람 대신 너그럽게 용서하는 아량을 베푸는 것으로 황제의 권위를 세우려 했건만…….
“흠…….”
잠시 고민하던 황제가 이윽고 마음을 굳혔다.
“북진무사(北鎭撫司)의 조옥(詔獄)에 하옥하도록.”
이어진 황제의 말에 능소밀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자의 처분은 진상한 물품과 관련한 어의들의 확인을 거친 뒤 결정하겠다.”
만약 죄를 물어 참형에 처하려 했다면 형부를 거쳐 처결을 진행했을 터.
그러나 금의위(錦衣衛) 소속의 북진무사 뇌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동창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형부의 사법권에서 벗어난 초법적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황실 경호를 맡고 있던 어림친위에게 끌려간 능소밀은 곧장 금의위에게 넘겨졌다.
창도 없고 빛도 들지 않는 컴컴한 뇌옥.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능소밀을 맞이한 것은 코를 찌르는 악취와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였다.
‘살다 보니 이런 곳에도 다 와 보는군.’
능소밀은 자신의 팔자를 한탄했다.
일단 들어가면 없는 죄도 만들어 낸다는 악명 자자한 곳이 바로 이곳, 북진무사의 감옥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위들을 따라 한참을 안쪽으로 이동하자 곳곳에서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진 죄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자신이 머물 뇌옥 바닥에는 지푸라기라도 깔려 있는 게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차가운 흙바닥에 몸을 누이거나 딱딱한 석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능소밀을 감옥에 밀어 넣은 교위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의 규칙을 설명하겠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 그 어떤 대화나 의사소통도 일체 엄금한다.”
“어기면 어찌 되는 것이오?”
능소밀의 반문에 금의위 소속의 교위가 씨익 웃었다.
짜악!
“……!”
다짜고짜 휘두른 짧은 채찍에 능소밀의 등짝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답이 되었나?”
능소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위가 뇌옥을 나가 문을 걸어 잠그자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나마 무공을 익혔기에 옷이 찢어지는 것에 그쳤지, 일반 사람이었다면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만큼 인정사정없는 손속이었다.
이곳의 악명이 자자한 데에는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능소밀은 이내 편하게 앉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단악선에 비교하면 성취가 한참 늦어 그렇지, 그 또한 위화신공을 익힌 몸.
어둠이 눈에 익자 뇌옥 안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어?’
능소밀의 눈이 이채를 발한 것도 그때였다.
‘저자가 왜 여기에?’
반대편 감옥에 갇혀 있는 누군가를 유심히 응시하던 능소밀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 * *
달뢰라마가 단악선 일행에게 내어 준 오래된 사원은 인세와 고립된 외진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조차 백 리가 넘는 거리.
그만큼 독약을 연구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사방에 즐비한 약탕기에 차례대로 숯을 밀어 넣던 초악량의 질문에 범계위가 버럭 했다.
“아니, 초 형! 일 진짜 그렇게 대충대충 할 거요? 그쪽에는 숯 절반만 넣어야 한다니까? 세월 놀음할 시간에 단 의원이 시킨 거나 좀 제대로 하슈.”
“뭐, 인마? 너나 잘해! 네놈 콧김이 부채질보다 더 세겠다. 하기 싫으면 부채 이리 내! 네가 숯 다루고.”
커다란 아궁이 앞에서 콧물을 훌쩍이며 부채질하던 범계위가 입술을 삐죽했다.
“흥! 어림없는 소리! 어떻게 뽑은 제비인데?”
“그래 놓고 왜 이리 투덜대? 좋아할 땐 언제고.”
“누가 싫다고 했소? 그냥 무공으로 끓이면 순식간인데 그렇게 못 하게 하니 답답해서 그렇지.”
초악량이 쓰게 웃었다.
“나라고 다르겠냐.”
그나마 다행인 건 한설화에 비하면 그들의 사정이 낫다는 정도였다.
가장 짧은 제비를 뽑은 한설화는 이곳과 마을 오가며 약재들을 운반해야 하는 가장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
“독 만드는 게 어째 약 만드는 것보다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수.”
솥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체 모를 액체.
거기서 피어오른 냄새는 코끝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원 근처에는 짐승은커녕 작은 곤충조차 접근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독은 내공으로 손쉽게 태워 버릴 수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다루는 독이 그 어지간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시로 내공을 끌어 올려 독기를 상대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은 중독 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무공과 단악선의 의술이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덜컹.
사원 내부로 향하는 문이 열리며 단악선이 걸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뿌연 뭉클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뿌연 독연(毒煙)을 헤치며 나온 단악선은 피부가 온통 울긋불긋하게 변해 있었다.
화들짝 놀란 범계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단 의원!”
“괜찮아요.”
손을 들어 범계위를 제지한 단악선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품 안에서 해독제를 꺼내 복용했다.
동시에 위화신공을 끌어 올리자 상서로운 서기가 전신을 에워쌌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의 얼굴과 피부가 본래의 혈색을 되찾았다.
“콜록.”
몇 번의 잔기침을 통해 미약한 독기마저 모두 뱉어 낸 단악선이 그래도 혹시 몰라 피독주를 꺼내 손에 쥐었다.
다행히 피독주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완전히 해독된 것을 확인한 단악선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중독과 해독을 번갈아 계속 반복하다 보니 확실히 내성이 생기네요.”
안도한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농을 건넸다.
“그 내성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겠구나.”
“헤헤, 그럼 좋죠.”
배시시 웃던 단악선이 탕약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초악량과 범계위가 함께 제조한 약들을 확인했다.
“두 분도 이제 의원이 다 되셨네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두 사람의 탕약 실력에 단악선은 진심을 담아 칭찬을 건넸다.
언제 툴툴댔냐는 듯 초악량과 범계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다가섰다.
“그럼 두 분 다 진맥 좀 할게요.”
“우린 괜찮다니까.”
범계위가 고개를 저었지만 단악선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독을 한꺼번에 다루는 만큼 늘 주의해야 해요. 개중에는 다른 독과 연쇄 반응을 일으켜 어떤 증상이 발현될지 모르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러기를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왜 그러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만독불침이 되어 가는 건 저뿐만이 아닌데요?”
“응?”
“두 분의 몸에도 내성이 쌓이고 있어요.”
“설마? 이게 그냥 독을 자주 접한다고 되는 게 아닐 텐데?”
그 와중에 단악선이 어느새 침을 꺼내 양손에 거머쥐고 있었다.
“자. 침 맞으실 시간이에요. 우선 이 해독제부터 드시고요.”
초악량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단순한 침과 해독제가 아니었구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술을 통해 체내에 심은 항독(抗毒)의 약 기운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의 내공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상태였다.
처음에는 그 효과가 미미했지만, 제조하는 독의 독성이 높아질수록 눈에 띄게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단악선이 두 사람에게 시술을 하는 동안 한설화가 돌아왔다.
온갖 약재들이 빼곡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는 그녀에게도 단악선은 동일한 방법으로 시술을 마쳤다.
“수고하셨어요.”
단악선의 말에 한설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괜히 초악량과 범계위를 쏘아봤다.
그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던 초악량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험험. 그나저나 실마리는 찾았느냐?”
뭔가를 알아낸 것 같다고 단악선이 언급한 게 벌써 사흘 전이었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사실 어느 정도 범위를 좁히긴 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
단악선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독약의 효과를 시험해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동물을 대상으로는 한계가 있어서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내려면 사람을 상대로 시험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단악선이 말끝을 흐리며 쓰게 웃었다.
아직은 독을 완성한 상태가 아니어서 완벽하게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만큼 시험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알 수 없었다.
동물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일.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적당한 사람이 있다.”
그런 후 범계위를 빤히 응시했다.
“저 멍청이라면 그리 쉽게 죽진 않을 거야.”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초악량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화기(火氣)야 말로 독과는 상극이니 이만한 적임자를 찾기는 어렵겠군.”
졸지에 궁지에 몰린 범계위가 당황해 소리쳤다.
“이 배신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