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8)
신마의선-278화(278/500)
신마의선 (278)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처럼 성분 독 일부라면 모를까, 완성 직전의 독을 시험하는 것은 아무리 범계위라 해도 위험한 일이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세 사람이 흠칫했다.
“그냥 제가 직접 제 몸에 실험해 보면 돼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안 돼!”
“차라리 내 몸에 해!”
“절대 불가다.”
정색하며 만류하는 세 사람의 단호한 태도에 단악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저는 괜찮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독을 접해 와서 누구보다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직접 제가 독을 제어하는 편이 여러모로…….”
“그래서 더 위험하다.”
단악선의 말을 자른 초악량이 심각한 표정으로 설득을 이어 갔다.
“이곳에 진짜 의원은 너 하나뿐이다. 우리가 중독된다면 네가 치료할 수 있지만 네가 중독되어 위험해 처하면 우리가 손쓸 방법이 없지 않으냐?”
“하지만…….”
“허락할 수 없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단악선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야기는 돌아 돌아 원점인 상태.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한 것도 그때였다.
“잠깐. 의외로 이거 간단한 문제 아닌가?”
의아해하는 일행들을 향해 범계위가 답답하다는 듯 바깥쪽을 가리켰다.
“우리끼리 고민할 이유가 뭐 있어? 실험할 사람을 밖에서 구해 오면 되는 거잖아?”
“……!”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당장 가서 몇 놈 잡아 오지, 뭐.”
“안 돼요!”
금방이라도 신형을 날리려는 범계위를 단악선이 황급히 만류했다.
범계위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 마음은 내가 잘 알아.”
“네?”
“선량한 사람 말고 죽어 마땅한 놈으로 잡아 오면 되는 거지?”
“아니요. 안 되죠.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괜찮아. 난 우리 단 의원 실력을 믿어. 어차피 단 의원은 그런 놈들도 최선을 다해 살려 낼 거잖아?”
“그렇긴 하겠지만…….”
“더구나 치료 과정을 거치면 오히려 건강해질 거 아냐? 있던 병도 낫게 해 줄 테니까.”
“그렇다곤 해도 분명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을 거예요. 중독되고 나서 치료하는 과정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그럼 처음부터 정신이 좀 이상한 놈으로 잡아 오면 되겠네. 아니면 정신이 이상해질 필요가 있는 놈이나.”
“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범계위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단 의원이 모르는 게 있어.”
“……?”
“의외로 세상에는 정신 나간 놈이 아주 많아. 나쁜 놈은 그보다 더 훨씬 많고. 그래서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아.”
막무가내인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 형이 할 말은 아니지.”
“뭐, 인마?”
다시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그런 일은 제가 용납할 수 없어요. 설령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무관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위험한 실험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끄응.”
이처럼 단악선이 단호하게 선을 긋자 범계위가 신음을 흘렸다.
이때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좀 더 고민을 해 보자.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게다.”
범계위가 버럭 했다.
“초 형! 우리가 단 의원이랑 지낸 게 어디 한두 해요? 단 의원 성격이라면 저러다 분명 자기 몸에 실험을 할 거라고!”
“……!”
정곡을 찔렸던 것일까.
단악선이 움찔했다.
그런 단악선을 한설화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초악량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 전에 방법을 찾아야겠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초악량이 전음을 날렸다.
―생각해 둔 것이 있다.
“응?”
갑작스레 날아든 전음에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따로 설명할 테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자.
내키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던 범계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머리 쓰는 건 이 중에서 초악량이 제일 나았기 때문이다.
“그럼 다 함께 같이 고민해 보지, 뭐.”
갑작스러운 범계위의 태세 변환에 한설화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절대 자신에게 실험하는 건 금지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한설화가 가져온 상자를 뒤져 몇 가지 약재들을 챙긴 단악선이 다시 내부 전각으로 향했다.
“그럼 이따 봬요. 일단 연구는 계속해야 하니까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그래, 단 의원. 쉬엄쉬엄해.”
“…….”
반면 한설화는 그런 두 사람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이윽고 단악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물었다.
―방법이 뭐요?
―날파리들이 있지 않느냐?
―날파리?
고개를 갸웃하던 범계위가 이내 탄성을 흘렸다.
―아아! 여기 염탐하던 피라미들?
―그래, 그 마적 떼.
―그런데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잖수. 위협도 되지 않는 데다 마교 놈들도 아니라며?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하지 않았느냐?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자 범계위도 따라 웃었다.
척하면 척.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다가도 이럴 때는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짙은 음모의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단 의원을 부탁하마. 우리는 잠시 다녀올 곳이 생겼다.”
“흐흐. 오래간만에 돈 좀 써야겠군.”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한설화를 뒤로한 채 초악량과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런데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치고 있는 건 둘째 치고, 빈손으로 출발했을 때와 달리 커다란 수레를 대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귀가 끄는 수레 위에는 온갖 물건들과 상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게 다 뭐지?”
한설화의 물음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우리가 워낙 궁색하게 산 것 같아서.”
“기분 전환 삼아 이것저것 좀 샀다.”
보란 듯이 손에 가득한 전표를 흔들며 부채질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 사람 지금…….”
한설화의 눈빛이 싸늘해지는 순간.
“아, 이건 한 누이 거.”
초악량이 재빨리 옥으로 만든 비녀를 한설화에게 내밀었다.
“……?”
“자, 자. 괜찮으니까 받아. 내 마음이고 성의니까 거절하지 말고.”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한설화에게 초악량이 억지로 옥비녀를 쥐여 주었다.
한편 같은 시각.
야트막한 구릉에 몸을 숨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스무 명이었는데, 멀리 내려다보이는 낡은 사원을 주시하며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확실히 돈이 많은 놈들이야.”
“제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중원에서 크게 한탕 하고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게 분명합니다.”
“오늘 시장에서 전표를 은덩이로 바꾸는 걸 보았습니다. 그 무게가 족히 스무 관은 나갈 겁니다.”
“고수는 아니겠지?”
“덩치 큰 놈이 한가락 하는 것 같지만 한 손이 열 손을 당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게다가 오는 내내 콜록대던 것을 보니 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니면 크게 다쳤거나요. 평소에 비싼 약재들을 사들이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은자가 담긴 상자도 제대로 못 들어서 와르르 쏟지 않았습니까? 허우대만 컸지 힘은 별 볼 일 없는 놈일 겁니다.”
이들 무리를 이끄는 수장으로 보이는 애꾸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기다릴 것도 없겠군. 해가 떨어지면 실행한다.”
인적 드문 한적한 곳에서 시주승들을 털어 먹고 살던 마적단의 두목 롭상 상가이는 뜻밖에 굴러 들어온 기회를 마다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날 밤.
한 무리의 인영들이 어둠이 내린 사원의 담을 타 넘었다.
기회를 엿보던 마적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이내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거봐라. 파리가 똥을 끊는 거 봤냐? 돈 냄새를 흘리면 저런 놈들이 틀림없이 꼬이게 되어 있다니까.”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초로인의 말에 나란히 서 있던 거대한 체구의 거한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흐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수.”
“무슨 인정?”
“초 형이 나보다 훨씬 나쁜 놈이라는 거.”
마적 떼들은 일순 당황했다.
자신들의 손에 들린 무기들을 보고도 태연한 상대의 모습에 뒤늦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무, 무릎을 꿇어라! 물건만 순순히 내놓는다면 해치지는 않겠다!”
마적단의 두목인 롭상 상가이가 호기롭게 외쳤다.
한어가 아닌 탓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이나 눈빛을 통해 어느 정도 느낌은 전해졌다.
그 순간.
툭.
범계위가 독액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솥을 툭 차서 쓰러트렸다.
“아이쿠, 저런! 너무 놀라서 그만 솥을 건드리고 말았네?”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호들갑을 떠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내내 이상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쓰러진 솥에서 흘러넘친 독액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클거리며 솟구친 것도 그때였다.
심상치 않은 독연이 삽시간에 주변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마적단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갔다.
“컥!”
“커헉!”
“끄어……!”
답답한 신음과 숨넘어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털썩!
목과 가슴을 움켜쥔 마적단이 흐느적대며 바닥에 쓰러졌다.
단악선이 놀라 밖으로 뛰쳐나온 것도 그때였다.
“무슨 일이에요?”
주위를 둘러보던 단악선의 눈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범계위가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실험체들이 제 발로…….”
콱.
범계위의 발등을 밟아 입을 틀어막은 초악량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글쎄다. 이자들이 갑자기 뛰어들어서는 뭐라 뭐라 외치더니 저렇게 픽픽 쓰러지더구나.”
“아!”
뒤늦게 쓰러진 솥을 발견한 단악선이 다급하게 외쳤다.
“서둘러야 해요. 더 이상 지체하면 아무리 저라도 이분들을 구할 수 없어요!”
단악선의 지시에 부랴부랴 움직이면서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범계위는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 * *
북진무사의 조옥에 수감된 지 보름째.
능소밀은 그동안 맞은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삼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몹시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팔과 다리가 기괴하게 꺾여 있었고, 왼쪽 귀는 오래전에 잘려 나간 것처럼 뭉툭했다.
게다가 얼굴에는 얽은 곰보 자국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따금 주변을 힐끔거리는 눈빛은 여전히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심신이 무너진 자는 지닐 수 없는, 예리한 눈빛이었다.
‘마교에 투신한 것이 아니었나?’
탐화진군(貪花眞君) 서세창.
무림맹의 백대악인 토벌 당시에 행방이 묘연하거나 흔적 없이 사라졌던 무수한 사파 고수들 중 한 명이었다.
특히나 놈은 축골공(縮骨功)을 익혔기에 얼굴과 체형을 바꾸는 역용술(易容術)에 능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긴가민가 싶어 지켜보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소밀은 놈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한때 정보 단체인 신소방을 이끌었던 만큼 강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해박했기 때문이다.
최음제를 사용해 수많은 여인을 겁탈해 온 악명 높은 색마.
놈에게 정절을 유린당해 목을 매단 규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이 때문에 정파 무림에서는 공적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다.
어지간해서는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관부조차 놈에게는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를 이곳에서 조우하게 되다니.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능소밀이 뇌옥 밖을 향해 크게 외쳤다.
“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