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79)
신마의선-279화(279/500)
신마의선 (279)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능소밀이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이내 뇌옥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경고했을 텐데.”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채찍을 거머쥐는 금의위 위사를 향해 능소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지휘사(指揮使) 대인을 뵙게 해 주시오.”
“뭐?”
조옥을 관리하는 위사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분수도 모르는 작자가 감히 금의위의 책임자인 정이품의 대신을 오라 가라 하다니.
“그분보다 훨씬 높은 분을 뵙게 해 주마.”
“……?”
의아해하던 능소밀의 어깨 위로 채찍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짜악!
“어떠냐?”
짜악!
“슬슬.”
짜악!
“눈앞에 염라대왕이 보이나?”
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던 위사가 일순 멈칫했다.
갑자기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모골이 송연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을 응시하는 한 쌍의 눈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순간 능소밀이 벼락같이 손을 뻗어 위사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러곤 천천히 위사를 잡아당겼다.
“노, 놓지 못할까?”
당황한 위사가 벗어나기 위해 용을 썼지만 돌아온 것은 손목이 으스러질 것 같은 무시무시한 압력뿐이었다.
그렇게 위사를 눈앞으로 끌어당긴 능소밀이 조용히 웃었다.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아서 더욱 섬뜩한 웃음이었다.
“야.”
“……!”
“내가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겠냐?”
신마곡에서나 기를 못 펼 뿐이지, 강호에 나가면 능소밀도 충분히 어깨를 펴고 다닐 정도가 되는 실력자였다.
공청석유를 복용한 사무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끔찍하게 자신의 사람들을 아끼는 단악선 덕분에 온갖 영단과 영약을 복용한 상태.
게다가 위화신공도 익혔다.
단악선의 무공 진전이 너무 빨라 비교 대상으로 놓을 수 없었을 뿐, 그 또한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지 오래였다.
그런 능소밀이 뿜어내는 기파를 가까운 거리에서 뒤집어쓴 위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한 번만 말한다. 그러니까 잘 들어.”
“…….”
“어젯밤에 동창의 제기(薺騎)가 접촉해 왔다.”
조옥을 관리하던 위사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인 금의위를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바로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동요하는 그의 모습에 능소밀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당연히 거짓말이었지만 눈앞의 위사가 눈치챌 리 없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당장은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터.
그만큼 능소밀은 금의위의 약점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태조 홍무제가 설치한 이후, 금의위는 황제의 권력 기반이 되는 핵심 기관 중 하나로 군림해 왔다.
초기에는 황제의 개인 신변 보호와 정탐이 주요 목적이었으나, 점차 측근들과 공신들을 감시하는 역할이 강해졌다.
홍무제는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신하들을 의심하였고, 내키지 않는 인물이 있으면 곧바로 사사하거나 암살하였다.
바로 그 업무에 금의위가 투입되었다.
이후 업무가 확장되어 황실과 수도의 행정과 보안을 책임지는 역할뿐만 아니라 군사 기밀을 다루는 것을 물론, 정보의 수집과 교란까지 담당했다.
더구나 기존의 사법 체계에서도 독립적이었다.
대신들이나 내각대학사가 아닌, 오직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였기 때문이다.
체포와 구금, 심지어 고문조차 대신들의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권한을 지닌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판 없이 수감자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하나 그 무소불위의 권력도 오래가진 않았다.
금의위의 비대한 권력 집중으로 인해 그 폐해가 심각해지자, 결국 홍무제는 금의위의 권력을 대거 축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영락제가 즉위하며 상황은 달라졌지.’
세 번째 황제인 영락제는 다시금 금의위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조카인 건문제를 죽이고 제위를 빼앗은 만큼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를 반란을 항상 우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락제가 그와 같은 권한을 부여한 조직이 금의위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황제로 즉위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의 감찰 조직을 개편해 금의위와 다른, 별도의 조직을 신설한 것이었다.
그게 바로 동창이었다.
동안문 인근에 기반을 두고 있어 동창이라 불리었는데, 조직을 이끄는 수장인 대영반(大營班)은 특이하게도 무관이 아닌 환관이 맡고 있었다.
본래 건국 초기만 해도 환관은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환관 정치가 극에 달했던 원말의 폐해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무제는 환관을 아예 정치에서 배제했고, 심지어 글조차 배우지 못하게 했다.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반대로 영락제는 환관을 우대하기로 결정했다.
조카로부터 제위를 빼앗은 정난지변(靖難之變)에서 결정적인 승리의 단초를 제공한 자들이 바로 환관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황실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그들의 힘이 필요했다.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 출중한 능력을 보였기에 아예 따로 환관에게 정보와 감찰을 담당하는 조직을 맡겨 버린 것이다.
동창 역시 금의위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체포와 구금, 고문이 가능했다.
다른 점이라면 금의위의 수장은 외신인 무관이라는 것이고, 동창은 환관인 장인태감이 우두머리라는 것뿐이었다.
‘굳이 더하자면 복장 정도?’
금의위의 위사 격인 동창의 제기들은 검붉은 비단 제복에 가죽신마저 검은색으로 차려입었다.
그들이 북평부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뇌옥을 관리하던 위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어떻게 동창의 제기가 이 안에 들어올 수…….”
“쉿. 목소리가 크다.”
“…….”
위사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완벽하게 기선을 제압한 능소밀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금의위 내부에 동창의 간자가 없다 확신하나?”
흔들리는 위사의 눈빛을 마주한 능소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이 내게 요구한 건 한 가지 정보였다.”
“정보?”
“지금은 신마상단의 단주지만 내가 과거에 신소방이라는 정보 단체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천하의 금의위가 모르진 않을 텐데?”
사실 금의위의 위사 모두가 이를 알 리 만무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래서? 놈들에게 어떤 정보를 넘긴 것이지?”
아니나 다를까.
위사가 목소리를 낮춰 다급하게 물었다.
“넘기지 않았다.”
“……?”
“그저 저들의 제안을 생각해 본다 했고, 그는 오늘 밤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그럼?”
능소밀이 붙들고 있던 손목을 놓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책임자를 데려와라. 그에게 동창이 요구한 정보를 알려 주겠다.”
“그냥 내게 말해 주면…….”
능소밀이 피식 웃으며 상대의 말을 잘랐다.
“당신을 뭘 믿고? 아닌 말로 당신이 동창에 포섭된 자일지 어떻게 알겠나?”
그 말에 위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밀이 여유로운 태도로 고개를 까닥였다.
“금의위에게 이득이 되는 정보인데도 이처럼 망설이는 것을 보니 당신도 동창의 간자가 틀림없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위사가 능소밀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뇌옥을 벗어났다.
그렇게 반 시진쯤 지났을까.
“양승경일세. 나를 보자 했다지?”
능소밀이 눈을 들어 말을 건넨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급했는지 정복을 그대로 달려온 육십 대의 대신.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무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황제 곁을 지키고 있던 대신이 맞군.’
기억과 대조해 상대의 얼굴을 떠올린 능소밀이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급하게 간언할 것이 있어 부득이하게 지휘사 대인을 뵙자 했나이다.”
“잠시 나오지.”
금의위의 위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능소밀이 조옥을 벗어났다.
“듣자니 동창과 관련된 일이라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는 상대의 모습에 능소밀이 슬쩍 웃었다.
금의위의 허를 찌른 게 주효한 것이다.
비슷한 역할과 권한을 지닌 두 개의 조직이 존재하는 만큼 금의위 입장에서는 당연히 동창의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권력의 누수.
혹은 균형의 추가 저들에게 기우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사과드립니다. 대인을 뵙기 위해 부득이하게 허언을 하였나이다.”
“뭐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양승경의 얼굴이 점차 분노로 벌게지기 시작했다.
능소밀을 에워싼 위사들의 눈빛도 살벌해졌다.
그들의 손에는 언제든지 능소밀을 찌를 수 있도록 날 선 비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비수는 하나같이 능소밀의 요혈에 닿아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조옥을 관리하던 위사들과 달리 금의위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들이었다.
양승경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제아무리 능소밀이라 할지라도 살아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소밀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제가 쥐고 있는 정보라면 능히 동창을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경이 멈칫하며 위사들을 제지했다.
“듣겠네.”
“마교가 황실에 마수를 뻗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경악해 말을 잇지 못하는 상대를 향해 능소밀이 물었다.
“자세히 설명드리기 앞서 하나만 묻겠습니다.”
능소밀이 손을 들어 뇌옥을 가리켰다.
“제 맞은편 뇌옥에 갇혀 있던 자는 무슨 죄목으로 하옥된 것입니까?”
“정금군주(淨錦君主)께서 어화원(御花園)을 거니실 때 침입을 시도했네.”
능소밀은 내심 기가 막혔다.
‘미친놈인가?’
황제의 혈족인 황족.
그들에게 주어지는 작위가 친왕(親王)이었다.
친왕은 황제의 아들, 즉 황제의 서자나 황제의 형제 가운데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봉지를 받지 못한 이를 가리킨다.
군왕(郡王)은 친왕에 다음가는 작위로, 대개 황태자의 아들들.
즉, 황태손을 제외한 아들들에게 주어지는 작위였다.
단 여자일 경우에는 군주(郡主)의 작위를 받는다.
한마디로 황실의 정원을 거닐고 있던 황제의 질녀에게 접근했다 붙잡힌 것이다.
그러나 능소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대로군요.”
“……?”
“저자는 이곳에 갇히기 위해 고의로 황실 경호를 담당하는 금의위에게 붙잡힌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지?”
“그자는 서세창이라는 자로, 강호에서는 탐화진군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사파의 색마입니다. 무림맹의 백대악인 토벌을 피하기 위해 마교에 일신을 의탁한 자이기도 합니다.”
능소밀은 아예 대놓고 서세창을 마교도로 몰아갔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만큼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놈은 뇌옥 안에서 끊임없이 운기요상을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자의 목적도 알고 있나?”
“누군가를 탈옥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놈의 목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중요한 것은 마교의 고수가 금의위의 조옥에 잠입했고, 이를 금의위가 알아내 해결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또한 이와 관련한 정보를 동창보다 금의위가 먼저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비로소 양승경은 눈앞의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대인의 탁월하신 정치 감각을 조금만 활용한다면 폐하의 신뢰가 동창보다 금의위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뭐 이런 작자가?’
놀란 눈으로 능소밀을 응시하던 양승경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