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
신마의선-28화(28/500)
신마의선 (28)
“그 자식들, 명도 징그럽게 기네.”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피식했다.
“그래도 나름 흑도에서는 방귀 꽤나 뀌는 실력이니까.”
“무슨 소리요? 나한텐 십초지적도 안 되던데.”
“그건 너 정도나 되니까 그런 거고. 아마 강호 전체를 통틀어 백대고수를 꼽으라면 말석에는 반드시 이름을 올릴 게다.”
“여튼 저놈들이 여기 있다는 건 저 표물 안에 구지선엽초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 아니오?”
“그 외에 다른 보물이 있을 수도 있지. 표물이 하나라는 법은 없으니까.”
범계위가 잠시 고민하다 초악량을 바라봤다.
“훔치는 건 안 되려나?”
“단 의원이 매우 싫어하겠지.”
“그럼 어쩌지?”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다.”
“오오! 역시 초 형!”
범계위의 칭찬에 초악량이 슬쩍 웃고는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표사로 위장하고 있다는 건 기회를 보아 표물을 탈취하기 위해서일 터. 놈들이 마각을 드러내는 그때가 기회다.”
표사들의 전력만으로 삼몰쌍괴 형제를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적당한 시점에 개입해 놈들을 쫓아 버리는 거다. 그사이 슬쩍 구지선엽초를 빼돌려 숨기는 거야.”
이어진 초악량의 설명에 범계위가 탄성을 흘렸다.
“나중에 표사들이 표물을 점검하겠지만 도와준 우리가 표물을 가로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달아난 삼몰쌍괴가 훔쳐 갔다고 생각하겠지. 그러고 나서 표국 일행이 떠난 뒤 우리가 우연히 삼몰쌍괴가 흘리고 간 구지선엽초를 줍는 것이다.”
이 정도면 단악선도 의심하지 않을 터.
그때였다.
“그냥 달라고 하면 되잖아?”
갑자기 끼어든 한설화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턴가 한설화가 일어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살짝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범계위의 힐난에 한설화가 초악량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의외로 초악량은 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표물이 삼몰쌍괴 손에 넘어간 순간 그 책임 소재는 그들의 몫이었다.
자신들이 훔친 것이 아니게 되니 굳이 단악선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달라고 하면 주겠소?”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말 없이 내놓을걸?”
“특히나 상대가 너라면.”
그제야 범계위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 맞다. 나 망산초자였지?”
범계위가 표국 일행이 야영하는 방향을 보며 히죽 웃었다.
“흐흐. 그때 저놈들을 살려 두길 잘했네. 이렇게 쓸모 있을 줄 알았다면 그렇게 많이 패지도 말 걸 그랬어.”
그 순간 바람도 없는 데 한설화의 면사가 가볍게 풀썩였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저 새끼들 뭐지? 대체 언제까지 간만 보고 있는 거야?”
사흘 내내 표사로 위장한 채 표행에만 집중하는 삼몰쌍괴의 모습에 범계위의 인내심도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갈림길에 도달할 터.
혹시라도 목적지가 엇갈리면 그들을 쫓아갈 명분이 없었다.
“그러게. 이렇게까지 신중한 놈들이 아닌데.”
초악량도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가 아는 삼몰쌍괴는 눈앞의 보물을 두고 이렇게까지 시간과 공을 들일 자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덮쳐 버립시다.”
“아서라. 단 의원에게는 뭐라 하려고?”
“그럼 이대로 계속 기다리기만 하자는 말이오?”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익숙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혹시 반대의 경우가 아닐까요?”
“반대의 경우?”
“고용된 게 아니라 저들이 표사들을 고용한 거라면요?”
“응? 무슨 소리야?”
“애초에 저들이 표물을 의뢰한 주인인 거죠. 지금은 표사로 위장해서 직접 지키고 있고요.”
“맞아! 그런 경우도 있겠군. 역시 우리 단 의원……. 어?”
뒤늦게 범계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는 줄 알았던 단악선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
“저 새끼들 뭐지?부터요.”
“……!”
처음부터 들었다는 뜻이다.
당황한 범계위가 초악량을 바라봤다.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단악선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사흘 내내 함께 있었는데.”
단악선이 모포 위에서 부스스 일어나며 말했다.
“아침에 궁금해서 범 아저씨께 여쭤봤는데, 저분들이 그렇게 유명한 악인들이라면서요?”
초악량과 한설화가 노려보자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놈들이 훔친 걸 받아 낼 거라는 말은 안 했어!”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말했네, 지금.”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 먹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에 범계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들 단악선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평소 그들이 아는 단악선이라면 자신들의 행사를 만류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주 좋은 계획인 거 같아요.”
“……!”
의외의 대답에 세 사람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였던 것이다.
“저 사람들이 표물을 훔친다면 표물의 주인에게 우리가 돌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흥정의 여지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
“만약 저들이 표사들을 고용한 당사자라면?”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죠. 우리와 연이 닿지 않는 물건이니 포기하는 수밖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악선은 여전히 간절한 눈빛으로 표물이 실린 마차를 응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일단 표물을 맡긴 물주부터 확인하자.”
“방법이 있나요?”
표행은 비밀 엄수가 철칙이었다.
“그냥 데리고 와서 물어보지, 뭐.”
“네?”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상식을 벗어난 탐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좋은 방법이군.”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던 초악량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게다가…….
“그게 제일 확실하지.”
한설화마저 그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오히려 저놈들이 주인이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몰라.”
그렇게 운을 뗀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친분이 깊으면 저것보다 더 귀한 물건도 선물로 내어 주는 게 강호인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요?”
“너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저 사람들도 그럴까요?”
“그래서 직접 물어보려고. 우리와 친한지 안 친한지.”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하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초악량이 씨익 웃으며 단악선에게 말했다.
“저놈들이라면 분명히 줄 거야. 범계위 저 녀석과 엄청 친하거든.”
범계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에겐 내가 생명의 은인이지.”
죽이려다 귀찮아서 그만둔 것뿐이었지만 살려 준 건 살려 준 거였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 * *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자시 무렵.
삼몰쌍괴, 왕염과 왕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형을 일으켰다.
밤새 요란하던 풀벌레 소리가 갑자기 그쳤기 때문이다.
잔뜩 경계심을 끌어 올린 두 사람이 주위를 둘러봤다. 표물이 실린 마차를 에워싼 채 경계를 서고 있는 표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는 특별한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짙은 어둠 너머, 이쪽을 향해 다가서는 인영을 발견한 것이다.
“거봐. 심상치 않은 놈들 같았다니까.”
왕결의 말에 왕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다. 일찍 정체를 드러내 주면 우리야 고맙지.”
사흘 전, 초저녁 무렵에 조우했던 서생과 어린아이.
그들과 같은 일행이 분명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척후를 담당하는 표사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들의 보고에 의해 두 사람은 이미 저쪽의 상황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런데 저놈…….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왕결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왕염 역시 당황한 눈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야음을 틈타 은밀하게 접근하기는커녕 오히려 곧장 자신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놓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었다.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탐욕에 눈이 먼 멍청이거나.
공교롭게도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되는 범계위였지만 삼몰쌍괴는 아직 상대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철그럭.
왕염과 왕결이 은밀하게 자신들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일 장 정도 남았을 때였다.
두 사람이 막 출수를 하려던 찰나.
상대가 히죽 웃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섬뜩해지는 미소였다.
“여, 홀쭉이랑 땅딸보. 오랜만이야.”
왕염과 왕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동안 잘 지냈나 보네? 얼굴이 아주 좋아 보여.”
“이 미친놈이!”
왕결이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 왕염이 서둘러 동생의 팔을 붙들었다.
“왜 그래?”
짜증 섞인 왕결의 물음에 왕염이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목소리…….”
“뭐?”
“우릴 저렇게 부르는 놈은 하나뿐이잖아.”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왕결의 두툼한 살집이 부르르 떨렸다.
“서, 설마…….”
왕결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망산초자?”
“어? 어떻게 알았어? 제대로 변장했는데?”
돌아온 대답에 삼몰쌍괴의 얼굴이 그대로 흙빛이 되었다.
“씨☓…….”
“하필이면…….”
아연실색하는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너희 둘만 조용히 따라와.”
그 말을 남기고 범계위가 돌아섰다.
“어쩌지, 형?”
“젠장! 마가 끼어도 제대로 끼었구나!”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목숨과도 같은 표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을 때, 저만치 앞서가던 범계위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죽을래?”
그 말에 두 사람은 사색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사람은 허겁지겁 범계위 뒤를 쫓았다.
잠시 후.
관도를 멀찌감치 벗어난 한적한 숲속에 들어선 범계위가 우뚝 신형을 멈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범계위를 따르던 왕염과 왕결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진짜 망산초자일까?
왕결의 전음에 왕염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지 않고서야 이 압도적인 존재감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저 미친놈이 왜 여기서 튀어나와?
―낸들 아냐?
―무림맹 놈들이 저놈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대체 그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직접 물어보든가.
그렇게 전음을 주고받던 왕결이 범계위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한판 붙어 봐?
―아서라. 저런 괴물을 무슨 수로! 우리 같은 놈 열 명이 있어도 상대가 안 돼.
―그럼 어쩌자고?
―일단 뭐라 하는지 이야기나 들어 보자. 그러고 나서 방법을 찾자고.
그때 범계위가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구지선엽초 너희들 거냐?”
“헉! 그걸 어떻게!”
헛바람을 토하는 왕염을 향해 범계위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역시 그렇군.”
범계위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물로 줘. 그럼 조용히 돌아갈게.”
너무나 당당한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