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0)
신마의선-280화(280/500)
신마의선 (280)
축시 말엽.
컴컴한 뇌옥 안은 고요했다.
이따금 울려 퍼지는 낮은 코골이 소리.
그것만이 뇌옥의 적막을 대신하는 전부였다.
심지어 뇌옥 입구를 지키는 위사조차 벽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스윽.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던 서세창이 신형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잠시 숨을 죽인 채 뇌옥 안을 살피던 그가 천천히 창살을 향해 다가섰다.
‘오늘은 한 명뿐이군.’
조옥을 관리하던 위사들은 평소에는 이 인 일 조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얼핏 듣기론 금의위 내부에서 자체적인 훈련이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평소에는 두 시진을 기준으로 하던 근무 교대가 세 시진을 넘어, 네 시진째에 접어들 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졸지에 홀로 말뚝 근무를 서게 된 눈앞의 위사는 결국 무료함에 지쳤는지 반 시진 전부터 졸기 시작했다.
서세창의 눈에 기광이 일렁였다.
그 순간.
우두둑.
그의 전신에서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오나 싶더니 사지가 기묘하게 꺾이고, 비틀렸다.
‘저게 사람이야? 문어야?’
맞은편 감옥에서 실눈을 뜬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능소밀은 이어진 기괴한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세창은 마치 관절이 없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창살 사이로 몸을 구겨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뇌옥을 빠져나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우드득. 뚜둑.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서세창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잠시 호흡을 고르며 내기를 다스린 서세창이 진득한 살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곧장 뇌옥 입구에서 졸고 있는 위사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쾌애액!
섬뜩한 파공음이 뇌옥 안의 어둠을 찢었다.
위사의 목을 노리며 내리그은 서세창의 수도.
그러나 상대의 목과 불과 한 치의 거리만을 남겨 둔 채 그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섰다.
턱.
어느새 손을 뻗은 위사가 그의 손목을 움켜쥐어 버렸기 때문이다.
‘고수!’
서세창은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 조옥을 관리하던 하급 위사가 아닌, 금의위에서 닳고 닳은 노련한 숨은 고수가 분명했다.
졸고 있던 위사가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흔들림 없는 단단한 눈빛.
방금 전까지 늘어져 있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세가 그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파팍!
빛살과 같은 속도로 서세창의 마혈을 찍은 금의위 위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로 탈옥을 시도할 줄이야.”
당혹감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서세창은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나 놈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귀하의 뛰어난 무공과 탁월한 연기력 덕분이요.”
오히려 자신을 한껏 추켜세우는 능소밀의 말에 금의위 소속의 교위장군, 위천상은 눈살을 찌푸렸다.
능소밀의 입매 위로 잠시 떠올랐다 사라진 미소의 의미.
이를 모르지 않을 만큼 그는 아둔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서세창은 자신의 진짜 신분을 실토했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금의위의 고문.
제아무리 담이 크고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결국 서세창은 자신이 마교도라는 것과 황제를 시해하기 위해 금의위의 조옥에 잠입했음을 시인했다.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금의위 입장에서는 황제의 암살을 미연에 방지했다는 공로가 필요했고, 결국 그는 금의위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능소밀은 다시금 황제를 알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참.’
따갑게 날아와 피부에 박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동창의 수장이자 이십사 아문의 책임자인 사례태감(司禮太監) 왕직.
황제가 옆에 있어 지그시 눈을 내리깔곤 있었지만 이따금 자신을 향하는 눈빛은 결코 곱지 않았다.
아마도 금의위의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동창의 이름을 판 것이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간밤에 재미있는 일을 했더구나?”
황제의 물음에 능소밀이 바닥에 더욱 엎드리며 대답했다.
“모르면 몰랐을까, 폐하의 강산을 어지럽히는 역도들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나이까.”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짐이 다스리는 천하에 아직까지 구시대의 망령들이 설치고 다닌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군. 더구나 황궁에까지 숨어들었을 줄이야.”
황제가 물끄러미 능소밀을 내려다보았다.
어의들의 확인을 거친 뒤 복용한 독계산은 과연 그 명성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어젯밤의 일로 인해 능소밀이 더욱 욕심났다.
“짐은 상과 벌이 명확한 사람이다. 밀무역에 대한 네 죄과는 황실에 잠입한 마교도를 붙잡은 공으로 사하도록 하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마교는 저에게도 불구대천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불구대천의 원수라?”
반색하는 황제를 향해 능소밀이 외쳤다.
“저는 상인이나 무림인이기도 합니다.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마교는 또다시 발호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우리 신마상단과 무위의 무림인들은 가장 선두에 서서 놈들과 싸울 것입니다.”
그 대답이 흡족했는지 황제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좋다. 짐이 너의 충정을 기억하겠노라.”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그건 그렇고…….”
황제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죄과를 공으로 덮어 죄는 이미 사라졌으니 네가 진상한 물품들에 대해서도 포상을 해야겠지?”
그러곤 넌지시 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잠시 뜸을 들이던 능소밀이 더욱 깊이 부복하며 외쳤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조정과 만백성의 하늘이신 폐하의 옥체강녕(玉體康寧)만을 바랄 뿐입니다!”
“허…….”
입 안의 혀처럼 구는 능소밀의 태도에 황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짐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잘 아는 자로다. 너와 같은 환관이 짐 곁에 없는 것이 아쉽구나.”
‘……!’
능소밀은 소름이 쭉 끼쳤다.
언제는 다행이라더니 이제는 아쉽다니?
양물을 제거당하고 내시가 된다 상상하니 능소밀은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를 내색하지 않기 위해 능소밀은 더욱 바닥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좋다. 그렇다면 그와 별개로 내 선물 하나를 내리마. 이는 어디까지나 짐을 기쁘게 한 상이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능소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위에서 네가 하려는 일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짐이 친히 포정사와 도지휘사에게 전폭적인 협조를 지시할 것이다.”
포정사는 한 성의 통치를 담당하는 승선포정사사의 수장이었고, 도지휘사는 성의 군정을 총괄하는 도지휘사사의 수장.
둘 다 정이품의 고위 관료로, 정칠품의 지현 따위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무위에 건설되는 종합 유흥 시설에 대해서는 황제도 이미 들어 알고 있을 터.
그것을 이 자리에서 황제 본인이 허락한 것이다.
능소밀은 짜릿한 쾌감에 휩싸였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고양감과 희열!
손가락이 잘리고도 도박꾼들이 도박판을 전전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인가 싶었다.
인생사(人生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더불어 능가 소밀에게 충정교위(忠靖校尉)를 제수하고 충용교위(忠勇校尉)를 승품한다. 아울러 정칠품의 감찰어사(監察御史)로 명하노라.”
능소밀은 일순 숨이 턱 막혔다.
“예?”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황제에게 반문을 할 정도였다.
감찰어사는 관할 구역의 감찰을 통괄하는 도찰원(都察院) 소속의 직책.
비록 품계는 정칠품에 불과하나 감찰 결과를 직접 황제에게 보고해야 했기에 실제 품계보다 더욱 권한이 막강했다.
황제의 말 한마디에 무위를 다스리는 지현과 동급의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왜 멋대로 관리로 임명해 버리는 건데!’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능소밀은 최대한 태연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이 미천한 백성은 하해와 같은 폐하의 황은을 감히 감당할 수가 없나이다. 무엇보다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지닌 바 능력이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러니 부디 그 말씀은 거두어 주소서.”
“그럴 리가?”
황제가 피식 웃었다.
“그대의 출중한 능력은 짐도 이미 충분히 아노라.”
“아, 아니 그래도…….”
“포정사와 도지휘사에게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직책은 필요할 터인데?”
황제의 말에 능소밀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의 충정이 변함없기를 바란다.”
단호한 황제의 태도에 능소밀은 결국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황공하옵니다.”
이 순간 능소밀은 어째선지 코 꿰인 기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황제의 눈 밖에 나서도 안 되지만, 함부로 황제의 눈에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 *
석 달에 걸친 단악선의 연구가 드디어 성과를 거두었다.
단악선의 연구를 자처해 준 이곳 현지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비록 치료 과정은 험난했지만 무사히 해독을 마쳤고, 건강을 회복한 스무 명의 사내들은 거듭 감사하며 사원을 떠났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독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심각한 얼굴로 완성된 독단을 응시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의아한 얼굴로 다가섰다.
“왜 그러느냐?”
어느새 범계위와 한설화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섰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망설이기를 잠시.
단악선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의 독이에요.”
“뭐?”
“확실한 게냐?”
“……!”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 세 사람이었지만 눈에 떠오른 감정은 감출 수 없는 분노였다.
“당령이라는 사람이 그토록 집요하게 절명전을 요구한 이유도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초악량의 눈에서 가공할 살기가 폭사되었다.
“거기 묻어 있던 독과 성분은 다르지만 제조 방법이나 배합 원리가 완벽하게 동일해요.”
사람마다 지문과 성문이 각각 다르듯 약이나 독의 제조법에도 특별한 흔적이 남는다.
“그럼 그놈들이 마교와 결탁을 한 거야?”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해요.”
한설화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럼 당가로 가야겠구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어쩌다 보니 석 달이나 머물렀네요. 이제 돌아가요, 우리.”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이미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인사는 하고 가야겠죠?”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단악선은 주변의 가재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독단 제조에 쓰인 위험한 재료들은 완벽하게 중화해 깊은 땅속에 묻었고, 독단의 제조법과 연구 과정이 기재된 서류들은 모조리 불살라 혹시 모를 악용을 차단했다.
한설화를 비롯한 초악량과 범계위도 그런 단악선을 거들었다.
그렇게 완벽히 정리를 마친 그들은 최소한의 물건만을 챙긴 채 포달랍궁으로 향했다.
달뢰라마와 마주한 단악선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숨김없이 설명했다.
“마교와 사천당가가 손을 잡았단 말입니까?”
달뢰라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불호를 읊었다.
비록 온갖 악명이 자자하다곤 하나 사천당가는 명백히 정파에 속한 가문.
오랜 세월 마교와 대립해 온 그들이었기에 선뜻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단악선이 지닌 증거를 간과할 수 없었다.
무거운 침묵을 깨며 달뢰라마가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고맙습니다.”
“네?”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달뢰라마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새외와 중원,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편견 없이 우리를 대해 주는 그 마음 말입니다.”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인걸요.”
단악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달뢰라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사천당가로 가실 생각입니까?”
달뢰라마의 물음에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일단은 무위에 돌아가서 계획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군요.”
잠시 말없이 단악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달뢰라마가 가만히 손을 뻗어 단악선의 손을 움켜쥐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뒤늦게 달뢰라마가 손에 쥐여 준 물건을 확인한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