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2)
신마의선-282화(282/500)
신마의선 (282)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당황한 초악량이 말을 잇지 못하던 그때.
문밖에 서 있던 한 사람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한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설화였다.
“……!”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된 초악량이 그녀에게 원망 섞인 눈빛을 던졌다.
그러나 한설화는 가볍게 코웃음 치더니 그대로 돌아 사라져 버렸다.
한숨을 내쉰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초 형!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뇨!”
“어?”
“아무리 나랑 단 의원 사이가 샘이 나도 그렇지, 혈수존자 정도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치사하게 굴어도 되는 거유?”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초악량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와락 얼굴을 구겼다.
“뭐, 그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요. 내가 대초자곤을 휘두르면 좀 멋있어? 그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단 의원은 대초자곤을 배우고 싶어 할 거고, 그만큼 나랑 오래 있으려 할 테지. 당연히 초 형은 그게 싫었을 거고.”
사방에 가시가 비죽이 돋아난 쇠도리깨 형태의 대초자곤.
보는 것만으로도 흉악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단악선이 휘두르는 걸 상상한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거냐?”
“흥! 표정 보니 맞네, 뭐.”
“이미 단 의원은 묵룡이 있잖아! 게다가 단 의원이 쓰기에 대초자곤은 너무 커! 너 말고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단 말이다!”
“그럼 왜 숨긴 거요?”
“그건…….”
초악량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어쩔 수 없나.’
초악량은 뻔뻔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우기고 보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녀석이 지금까지 자신의 속을 뒤집어 놓은 걸 생각하면 어차피 피장파장인 셈이니 찔릴 필요도 없었다.
“숨긴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다.”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개봉부 북쪽에 대암사라는 폐사찰이 있다. 그곳의 무너진 인왕문(仁王門) 근처에서.”
“찾아올 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슈.”
돌아 나가려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잃어버렸다면서?”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장소를 아는 거요?”
“그럴 수도 있지.”
초악량이 생사결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세상에는 종종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신묘막측(神妙幕測)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너만 봐도 그렇지 않으냐? 너와 화령이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을 강호의 동도가 몇이나 될까? 당장 나만 해도 아직까지 믿어지지가 않는데.”
우두커니 서서 곰곰이 생각하던 범계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초 형은 머리가 좋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
자신의 억지가 너무나 쉽게 통하자 초악량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방을 나가려는 범계위에게 초악량이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초자곤을 찾는 이유가 뭐냐? 지금껏 가만히 있더니.”
“조만간 마교 놈들이랑 붙어야 하잖수. 이왕 싸우는 거 확실하게 처리하려고. 대초자곤으로 맞아야 더 아프거든.”
성큼 걸어 나가는 범계위의 뒷모습을 보며 초악량이 다시 한 번 한숨을 흘렸다.
‘좋은 시절 다 갔군.’
대초자곤을 쥐면 몸이 틀림없이 몸이 근질거릴 터.
이전에 못다 한 승부를 내자며 도발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일단 놈들을 상대로 몸을 좀 풀어 둬야겠군.’
사천당가를 떠올린 초악량의 눈 위로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겸사겸사 묵은 은원도 청산할 필요가 있었다.
놈들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대로라면 남궁세가나 소림과는 다를 게 분명했다.
단악선 역시 자신의 방식에 모든 걸 일임한다 했으니 더 이상 인내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사과할 기회와 시간은 이미 충분히 주어졌기 때문이다.
* * *
며칠 후.
홀로 나서는 초악량을 배웅하던 단악선이 염려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반드시 혼자 가야 한다. 그래야 놈들의 솔직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번 일은 아저씨의 계획을 따르기로 했으니 믿고 맡길게요.”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것 없다. 이미 준비는 철저히 해 두지 않았더냐? 반나절 정도면 놈들이 어찌 나올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았어요.”
단악선을 안심시킨 초악량이 돌아서려던 찰나.
범계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영 불안한데? 또 안 보이는 데 가서 얻어터지는 거 아냐?”
“뭐, 인마?”
발끈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걱정 마슈. 그럴 때는 또다시 내가 구해 줄 테니까.”
지그시 노려보는 초악량의 험악한 눈빛에도 아랑곳없이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어깨에 걸쳐 멨다.
“부담 가질 것 없수. 십대악인 수좌로서 아랫사람을 돌보는 건 당연하니까.”
남은 십대악인이라고 해 봐야 자신들과 악호군이 전부인 상황.
초악량은 정작 당가와 조우하기도 전에 기가 빨리는 것 같았다.
“……잘났다, 그래.”
범계위에게 핀잔을 던진 초악량이 천천히 돌아섰다.
“하지만 너한테까지 돌아갈 몫은 없을 게다.”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이 훌쩍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초악량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거, 부끄러워하긴.”
초악량이 들었으면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뛸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 * *
사천성의 개현(開縣)에 위치한 당가타.
곳곳에 즐비한 웅장하고 화려한 전각들 중심에 유독 수수한 외관을 지닌 모옥 하나가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눈에 띄는 건물.
바로 현중각(顯重閣)이었다.
당대 가주의 집무실이자, 당가의 모든 대사가 논의되고 결정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는 현중각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었다.
당가의 초대 가주였던 당정이 처음 터를 닦고 가장 먼저 문설주를 세운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당가가 누리는 모든 번영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당씨 성을 쓰는 모두에게 현중각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현중각의 나무못 하나, 짚을 엮어 씌운 지붕의 이엉 하나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바로 초대 가주인 당정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당가의 역사와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현중각 내부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원형 탁자.
그 앞, 상석에 앉아 있던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인은 부복한 수하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시하신 대로 당령은 현재 독물들을 보관하는 암동에 구금해 두었습니다.”
“나에 대한 원망이 크겠군.”
당대 가주인 당곡의 말에 대외 총관직을 맡고 있던 당종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자초한 일인데 감히 누굴 탓하겠습니까?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지요.”
“장로들의 탄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지?”
“하나를 주면 다른 것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염치없는 노인네들입니다. 저들의 말대로 당령의 위리안치(圍籬安置)를 풀어 준다면 이번에는 당가타주의 지위를 회복시켜 달라 탄원할 것이 분명합니다.”
당곡이 미간에 내 천 자가 깊이 아로새겨졌다.
‘그 어리석은 핏줄이 어디 갈까.’
아비의 전철을 밟은 멍청한 조카를 생각하면 순간순간 열불이 치밀었다.
무림맹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가문이 먼저인 것을…….’
전대 가주였던 천수암제 당평.
가문의 적자이기 전에 하나뿐인 형인지라 최선을 다해 그를 지지하고 보필해 온 그였다.
그런데 무림맹의 꼬드김에 넘어가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바로 혈수존자를 건드린 것이다.
합공을 하고도 오히려 목숨을 잃다니.
그것도 모자라 비밀리에 연구 중이던 독과 암기마저 혈수존자의 손에 넘어갔다.
‘무림맹을 믿는 게 아니었어.’
처음에 초악량이 죽었다는 무림맹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리고 이대로 모든 비밀이 묻히리라 믿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다 뜻밖의 소식을 날아들었다.
자신들과 더불어 사천의 패주로 군림하던 청성파가 돌연 피에 잠긴 것이다.
청성파에게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것으로 초악량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당가는 내홍에 휩싸였다.
독심의 당가.
그것은 혈족의 죽음에 관여한 자는 철저하게 복수한다는 당가의 집요함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당가 내부에서 불같은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전대 가주였던 형님을 따르던 장로들을 주축으로 혈채(血債)를 갚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대에 걸쳐 쌓아 온 그 악명이 지금의 당가를 지켜 주는 갑주가 되어 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바로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어린 의원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당가의 수입 대부분은 약재의 유통에 의지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독을 다루는 곳인 만큼 해독에도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가가 주로 거래하는 약재는 독을 지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반하(半夏)와 천남성(天南星)이 대표적이었다.
강한 복통과 점막 출혈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호흡 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약재들.
복령(茯苓)이나 부자(附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약의 재료로도 쓰일 정도로 치명적인 독을 지닌 만큼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까다로운 가공 과정을 거쳐야 했다.
포자(炮炙), 포제(炮製), 수치(修治), 수제(修製), 수사(修事), 치삭(治削) 등.
여러 방법의 법제(法製)를 거쳐 약재가 지닌 독기를 완벽히 제거한 뒤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당가를 통해 법제를 마친 약재는 그 수요가 엄청났고, 당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요 고객인 행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신의와 마의의 후예인 그 어린 소년은 행림 사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악선과 초악량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알려진 이상 그를 공격하는 건 스스로 당가의 목을 조르는 일과 다름없었다.
거기에 망산초자와 빙옥선자까지…….
초악량 하나라면 모를까 한번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알려진 범계위와 화산 장문인과 깊은 유대를 지닌 한설화까지 가세한다면 그때부터는 당장 멸문지화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멍청한 놈.”
전대 가주였던 형님을 지지하는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기껏 당가타주의 자리에 앉혀 주었더니, 분수도 모르고 설쳐 대다 결국 제갈연의 헛짓거리에 놀아난 조카.
혈수존자의 손에 넘어간 암기와 독을 되찾기는커녕 도리어 당가의 보물인 피독주를 빼앗긴 당령을 생각하면 당장 때려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았다.
당종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숨을 골라야 할 때입니다. 본 가라 해서 모용세가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가내의 요직에 우리 쪽 사람들을 앉히는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지?”
“이미 구 할 정도는 가주님의 뜻에 따라 인사 배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당종호의 대답에 당곡이 비로소 만족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입만 살아 시끄러운 늙은이들을 정리해야 할 때가 머지않았군.”
가문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가져온 핏줄을 도려내는 것은 그 뒤로 미뤄도 늦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철저히 가문의 실리만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
아무리 비열하고 비정하다 해도 가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오욕도 그는 기꺼이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버지, 소자 당진입니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아들의 목소리에 당곡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령의 뒤를 이어 새롭게 당가타주에 취임한 그가 이 시각에 현중각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곡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종호가 정중하게 예를 갖춘 뒤 물러갔다.
“무슨 일이냐?”
당곡의 물음에 당진이 사색이 된 채 서둘러 대답했다.
“초악량이 성도로 들어섰습니다.”
“……!”
당곡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가 혼자서 찾아왔단 말이냐?”
“네. 일행 없이 단신으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으음…….”
침음성을 흘리며 고심하던 당곡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군.”
“네?”
의아해하는 아들을 뒤로한 채 당곡이 차가운 미소를 말아 올렸다.
“당장 장로들을 소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