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4)
신마의선-284화(284/500)
신마의선 (284)
초악량이 눈을 들어 중천에 걸린 해를 바라봤다.
“정오로군.”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초악량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비탈을 따라 운집해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초악량은 거대한 요새를 방불케 하는 당가타의 위용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망설임 없이 훌쩍 신형을 날렸다.
“……?”
초악량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의당 있으리라 예상했던 암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탈의 정상에 위치한 웅장한 장원과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살기가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제일가(四川第一家).
화려한 대문 위에 용사비등(龍蛇飛騰)의 필체로 쓰인 글귀를 마주한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초악량이 눈앞의 거대한 대문을 힘껏 걷어찼다.
꽈앙!
충격을 견디지 못한 대문이 경첩째 뜯겨 나갔다.
박살 난 대문 사이로 들어서자 빽빽하게 도열해 있는 당가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사백 명 이상.
곳곳에 은신한 채 기회를 노리는 자들을 감안하면 당가의 모든 정예가 집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송하군.”
초악량이 감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나 하나 상대하기 위해 이만한 전력을 쏟아붓다니. 영광이라 해야 하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기를 담은 싸늘한 눈빛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강렬한 살기였다.
수백 명이 동시에 뿜어내는 살기는 그만큼 압도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초악량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그 살기를 받아 냈다.
오히려 태연하게 입을 열어 한 사람을 찾았다.
“가주는 어디 계시는가?”
그 말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 표창과 수전, 노궁을 비롯해 섬뜩한 예기를 품은 온갖 암기와 날붙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처럼 운집한 무인들이 썰물처럼 갈라진 것도 그때였다.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당곡이었다.
“당신은 이곳에 와서는 안 되었소.”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당곡을 향해 초악량이 물었다.
“자네가 당가쌍절(唐家雙絶) 중 한 명인 독제수라(毒帝修羅)인가?”
죽은 천수암제가 암기의 고수였다면 그는 독공의 고수.
당곡이 서늘한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염라대왕에게 고할 명호지.”
초악량의 얼굴 위로 한 줄기 웃음이 떠올랐다.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이상, 더 이상 말로써 대화를 이어 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남은 건 오직 하나.’
모든 수단을 뛰어넘어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하게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
바로 폭력뿐이다.
초악량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경첩 하나를 집어 들었다.
콰직.
경첩을 비틀어 찢으며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부정 탈 말 함부로 하지 말게.”
“……?”
영문 모를 말에 의아해하던 당곡은 이어진 초악량의 설명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천수암제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 바로 그 말이었거든.”
“감히!”
그 순간 초악량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를 에워싼 공기가 일순 차갑게 얼어붙나 싶더니.
초악량의 손이 벼락처럼 대기를 찢었다.
초악량과 당가의 무인들 사이의 거리는 십 장 넘게 벌어져 있었다.
따라서 직접 초악량의 손이 그들에게 닿지는 않았다.
대신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이를 대신했다.
쾌애액!
“컥!”
가장 가까이 있던 당가의 무인 한 명이 자신의 목을 감싸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의 목에는 날카로운 철편(鐵片)이 깊숙하게 틀어박혀 있었다.
손가락 틈을 비집고 콸콸 쏟아져 나오는 핏물.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이처럼 초악량이 다짜고짜 싸움을 먼저 시작하리라 생각지 못한 당가의 인물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사천제일가를 상대로 이런 식의 싸움을 걸어올 줄이야.
그 어리석은 자부심.
아니…….
자만이 피를 불렀다.
하지만 흔들린 것도 잠시.
당가의 무인들도 신속하게 대응했다.
그들 역시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슈슈슈슉.
무수한 암기가 빼곡하게 전면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비처럼 쏟아진 암기는 이내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초악량의 신형이 한순간 엿가락처럼 늘어지더니 바닥에 낮게 붙어 쇄도했기 때문이다.
“아래쪽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당가의 무인들이 서둘러 암기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초악량에게 거리를 내어 준 뒤였다.
우드득.
“크악!”
섬뜩한 음과 함께 수전을 달리던 당가의 무인 한 명이 가슴을 움켜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빗장뼈부터 시작해 반대편 옆구리까지 움푹 주저앉은 늑골.
일격에 가슴뼈가 으스러진 그의 눈앞으로 살기를 베어 문 손이 짓쳐 들었다.
빠악.
그대로 얼굴이 박살 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절명한 동료의 모습에 중인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동료를 저승길로 떠민 당사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컥!”
“크아악!”
순식간에 진형이 붕괴하며 곳곳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양 떼를 유린하는 굶주린 이리처럼 초악량은 거침없이 상대를 주살하기 시작했다.
“진열을 정비하라!”
당가의 인물들 가운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순간 그의 목은 기괴하게 꺾였다.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초악량이 그의 목을 반대로 돌려 버린 것이다.
“……!”
엄습하는 공포에 당가의 무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또 다른 당가의 무인 한 명이 피를 뿜으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벼락처럼 내리꽂힌 팔꿈치에 등뼈가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며 당곡이 초악량을 노려봤다.
‘이 정도였을 줄이야…….’
불길하기 짝이 없는 명호가 무색하지 않은 실력과 잔혹한 손속.
일찍이 그에 대한 소문은 들어 왔지만, 직접 목도한 무위는 그의 예상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대외 총관!”
당곡의 쩌렁한 외침과 함께 한 사람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양팔에 부목을 대고 있음에도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한 사내.
당종호였다.
퍼엉!
당종호의 손을 떠난 여덟 개의 암기가 허공에서 폭발하며 싯누런 독연을 뿜어냈다.
독 연기에 휩싸인 초악량이 일순 멈칫했다.
“지금이다!”
당종호의 지시에 다시금 진열을 정비한 당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초악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인 이상 숨을 참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터.
쉬쉬쉬쉭!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의 명령을 따르는 추혼단이 사자에게 달려드는 들개 무리처럼 일제히 초악량에게 암기를 날린 것이다.
당종호 역시 부상을 무릅쓰고 초악량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그러다 초악량과 시선이 마주쳤다.
예의 그 서늘한 눈빛.
그 안에는 그 어떤 당혹감도 찾을 수 없었다.
순간 당종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초악량을 향해 달려들던 추혼단의 무인들이 달리던 그대로 고꾸라진 것도 동시였다.
초악량이 가볍게 손을 휘두른 결과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온갖 암기들이 무수하게 들려 있었다.
피를 뿜으며 죽어 가는 수하들의 모습에 당종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 그의 손짓 한 번에 당가의 정예가 썩은 짚단처럼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순간 당종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목에 닿는 것을 느꼈다.
‘……!’
단순히 빠르다는 표현만으론 담아내지 못할 섬뜩한 기운.
눈부신 예기도, 허공을 찢는 파공음도 없었다.
단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섬뜩한 기운이 턱 밑에 이르러 있을 뿐이었다.
퍽.
한차례 크게 휘청인 당종호가 일 장가량을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의 심장 부근에는 어느새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바라보던 당종호의 얼굴 위로 깊은 절망이 드리워졌다.
‘괴물.’
심장을 찢으며 가슴을 관통한 암기의 위력은 몸으로 겪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천수암제라 불리던 전대 가주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할 리가 없었다.
당종호의 눈빛에서 생명의 기운이 흩어졌다.
털썩.
힘없이 무너지는 당종호의 모습을 목격한 당가 무인들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만큼 초악량의 신위는 압도적이었다.
절대무적(絶對無敵)!
그와 같은 수식어로도 감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미 총전력의 사 분의 일이 갈려 나간 상태.
그런데도 정작 초악량에게는 이렇다 할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이제 이걸 돌려줄 때가 된 것 같군.”
초악량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금속 재질의 강전이었다.
상대의 몸에 틀어박히는 순간 날카로운 갈고리가 역린처럼 솟구치도록 설계된 암기.
바로 당가의 가주와 장로들만 다루는 수전(手栓)인 절명전이었다.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날 수 있었지만.”
초악량이 당곡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건넸다.
“과연 네게도 그 운이 따라 줄까?”
독연 사이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는 초악량의 모습에 당곡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떻게?”
이미 사망한 대외 총관.
당종호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초악량은 찻물에 섞인 칠보단장(七步斷腸)을 복용했다고 했다.
게다가 초악량이 지니고 있던 피독주가 새카맣게 변한 것을 목격했다 들었다.
피독주가 색을 회복하고 본래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을 터.
그런데도 방금 전의 상린남영(祥鱗藍影)을 뒤집어쓰고도 멀쩡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곡의 입매에 흐릿한 웃음이 자리 잡았다.
그에게는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광기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당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꽈앙!
무수한 전각들 너머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뒤이어 저 멀리서 자욱한 연기가 솟구쳤다.
허공에 솟구친 녹색 구름은 폭발의 압력을 타고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었다.
그러기를 잠시.
쏴아아.
뭉클거리며 사방으로 퍼져 가던 녹색 운무가 희뿌연 낙진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당곡을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복용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설마?”
초악량의 반문에 당곡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래, 부시독이다.”
“미쳤군!”
금용독이 괜히 금용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곡은 핏발 선 눈으로 초악량을 응시했다.
“당가를 적대하는 자. 그 누구라도 살아서 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치익.
바닥에 닿은 녹색 낙진이 희뿌연 연기를 피워 올리며 그대로 기화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악취를 동반한 뿌연 안개가 삽시간에 장내를 집어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피피핑!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담벼락과 석등을 비롯해 건물 곳곳에 감추어져 있던 기관들이 일제히 작동한 것이다.
시야를 차단하던 짙은 운무가 걷히고 장내의 광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승리를 확신하던 당곡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
독무가 걷힌 자리.
의당 시신으로 누워 있어야 할 초악량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그곳에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신은커녕 오히려 사람이 늘어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게냐?”
못마땅한 눈빛으로 다그치는 초악량의 말에 맞은편에 있던 거구가 뻔뻔하게 받아쳤다.
“맛있는 건 나눠 먹는 거유.”
범계위가 당곡을 보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