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5)
신마의선-285화(285/500)
신마의선 (285)
초악량 일행을 확인한 당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 그들이 누군지 단번에 깨달았다.
‘망산초자와 빙옥선자!’
초악량에게 밀리지 않는 기도를 지닌 인물들이 강호에 흔할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저들 사이에 있는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애송이가 근래에 강호 명숙들 사이에서 소문 자자한 신마의선이라는 꼬맹이가 분명할 터.
그러거나 말거나.
당곡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초악량과 범계위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저놈은 내 몫이다! 네 녀석은 가만히 지켜보기나 해!”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투덜댔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 은원이니까!”
“단 의원은?”
“그, 그야…….”
초악량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단악선이 먼저였다.
포달랍궁에서 사용된 마교의 독과 당가의 연관성을 캐묻기 위해서는 이 자리의 책임자인 당곡이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궁지에 몰린 초악량은 자연 눈빛이 까칠해졌다.
“너는 그렇다 치고, 단 의원은 왜 데리고 왔어?”
“나만 오려고 했지! 그런데 무조건 함께하겠다는 걸 어쩌란 말이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위험한 곳에 단 의원을 데려와?”
“단 의원 고집을 몰라? 그리고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초 형 때문이잖수.”
“뭐?”
“그동안 초 형이 맨날 얻어터지고 오니까 단 의원이 불안해하는 거 아뇨.”
꼬박꼬박 받아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거기에 한술 더 떠 모든 원인을 자신 탓으로 돌려 버리자 초악량은 내심 기가 막혔다.
일순 말문이 막힌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리고 내가 있는데 위험은 무슨. 게다가 어떤 독도 단 의원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걸 초 형도 잘 알잖수.”
그 말대로였다.
실제로 초악량은 이곳에 오기 전 사전에 모든 대비를 마쳐 둔 상태였다.
서장에서 단악선과 머물며 실험하는 과정에서 어지간한 독에는 이미 내성을 갖춘 상태.
거기에 단악선은 부모님이 남긴 기록들을 통해 당가의 모든 극독을 막아 낼 수 있는 약을 제조해 미리 복용시켰다.
바로 격독산(隔毒散)이었다.
비록 효과는 한나절 정도로 한시적이었지만, 금용독을 비롯한 십대극독까지 완벽하게 차단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모를 중독에 대비해 각각의 독에 대한 해독제도 미리 완성시켜 따로 지니게 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당곡의 눈빛이 흔들린 것도 동시였다.
‘어떤 독도 위협할 수 없다고?’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금용독의 사용이 괜히 금지된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당가는 물론 그 어느 누구도 막거나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한 절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한 방법은 당가의 신물인 피독주를 사용해 독이 비껴가게 하는 것뿐.
하나 그조차도 일회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나마 당가조차 최근에서야 금용독의 해독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내로라하는 독의 전문가들이 모두 매달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외부의 협력까지 얻어 간신히 이뤄 낸 성과였다.
한데 저들이 무슨 수로 해독제를 만들어 냈단 말인가.
이미 부시독이 만들어 낸 운무가 한바탕 일대를 휩쓸었지만 여전히 태연한 저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 모두 그 어디에서도 중독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연놈들이 떠들어 댔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단 말인가!’
지금은 죽어 사라진 신의와 마의.
전 역사를 통틀어 그들 부부만큼 당가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존재도 없었다.
해독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신의.
자신들 못지않게 용독(用毒)에 능했던 마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자신들을 적대하진 않았으나 그들의 행보는 항상 당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독이야말로 당가를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가문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
한데 그들로 인해 하나씩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당가의 독이 하나씩 파훼될수록 위기감은 고조되었다.
여기에 대응해 새로운 독을 개발해도 의미가 없었다.
결국 당가는 금용독의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불가능했던 금용독의 해약만 완성한다면 그 자체로 당가를 지키는 완벽한 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당가를 향해 그들 부부는 언젠가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이미 금용독의 해약을 완성했소.
금용독을 사용하는 즉시 당가는 전 무림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 부부조차 당가의 금용독을 그만큼 두려워한다는 반증 정도라 여겼을 뿐.
한데 그 말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당장 눈앞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눈앞의 저 꼬맹이!
놈이 물려받은 것은 두 연놈의 핏줄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진전과 함께 지긋지긋한 선대의 악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어지러운 상념에 잠겨 있던 당곡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문득 얼굴에 와 닿는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린 당곡은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침묵하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당가는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없는 건가요?”
“……?”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당곡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의 독무는 인근의 백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할 거예요.”
단악선이 손을 들어 비탈 아래쪽을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탈을 따라 이동하는 부시독의 안개는 광범위한 독무를 형성하며 손쓸 수 없는 기세로 확산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요?”
단악선은 이 순간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독에 정통한 당곡이었다.
그런 그가 죄 없는 일반 백성들이 끔찍한 피해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감히……!”
당곡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으르렁댔다.
이 순간 당곡은 질기디질긴 악연의 고리에 진저리를 쳤다.
저 경멸이 담긴 눈빛!
몇 번이고 마주한 적이 있어 익숙한 바로 그 눈빛 앞에 한순간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닥쳐라! 어린 녀석아! 네놈이 무엇을 안다 함부로 지껄이느냐!”
“…….”
“이곳은 당가다! 사천제일가란 말이다!”
악을 쓰듯 고함을 지르는 당곡의 목에 퍼런 핏줄이 가득 두드러졌다.
“당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한다! 피가 넘쳐 강을 이루고 시체가 쌓여 산을 만든다 해도!”
광기마저 느껴지는 당곡의 눈빛에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한번 이성이 날아간 당곡에게 질책을 담은 눈빛도 의미가 없었다.
“본 가를 적대한 이상 너 또한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당곡의 악담이 어느 순간 선을 넘었다.
“너 역시 네 아비와 어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당가의 모든 적에게 공평한 죽음을! 그것이 본 가의 전통이고 율법이니까!”
분명 그로서는 별 뜻 없이 퍼부은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심결에 내뱉은 그 말로 인해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꽈앙!
“크헉!”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당곡이 피 분수를 뿌리며 십여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반격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무언가 희끗하나 싶더니, 거대한 충격이 가슴 위로 작렬한 것이다.
쿠웅.
입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날아간 당곡이 건물 벽에 처박혔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냐? 너.”
“어? 어, 그게…….”
범계위가 휘둘렀던 대초자곤을 어색하게 뒤로 감췄다.
“미안하게 됐수. 나도 모르게 그만…….”
수많은 당가의 무인들이 이곳에 운집해 있었지만 장내의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한순간 드러낸 범계위의 무위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그들 중 최고수라 할 수 있는 당곡이 대응조차 못 하고 단 일수에 나가떨어지다니!
“큭……!”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당곡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응시하는 단악선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떻게 아셨죠?”
“뭐?”
“우리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사실이요.”
“……!”
악에 받쳐 원독 어린 눈빛을 흘리던 당곡이 그 한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치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면 단악선은 서늘한 눈빛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의 죽음은 단악선조차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다는 건 당가가 마교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뭐, 뭐 하느냐! 저들을 쳐라!”
궁지에 몰린 당곡이 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하나 어느 누구 하나 선뜻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가주인 당곡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는 눈빛을 지닌 괴물들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이미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당곡이 재차 다그쳤다.
“천극신단(天極神丹)을 복용하라!”
당곡의 지시에 당가의 무인들이 움찔했다.
“어서!”
피가래가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당곡이 다시 한 번 폐부를 쥐어짜듯 소리쳤다.
“당가의 적을 격멸(擊滅)하라!”
그 말에 당가의 무인들의 눈에 결연한 각오가 서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품속에서 핏빛 단약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는 당가의 무인들.
그 모습을 보며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마교에게 협력해 얻어 낸 건 독뿐만이 아니었나 봐요.”
순식간에 저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려움에 질려 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자욱한 살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눈빛만이 아니었다.
기질 자체도 확연히 바뀌었다.
“역혈대공(逆血大功)?”
저들의 변화를 눈치챈 초악량이 당혹성을 흘렸다.
시전자의 생명을 담보로 일시적으로 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역천의 무공.
선천지기와 잠력을 격발해 순간적으로 평소 지닌 무공의 몇 배에 달하는 무공을 쓰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시전자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신위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주화입마로 인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독을 이용해 마교의 역혈대공을 구현해 낸 것 같아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파상 공세에 단악선은 일순 안색이 창백해졌다.
광기로 점철된 수백 명의 살의는 그만큼 소름 끼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초악량과 범계위는 태연했다.
“흥! 미친놈들.”
범계위가 가소롭다는 눈빛을 흘렸다.
무인으로서의 품격.
눈앞에서 미쳐 날뛰는 저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아니, 사람으로서 의당 지녀야 할 격(格) 자체가 없었다.
그저 지옥 밑바닥에 기어 올라온 악귀(惡鬼)들일 뿐이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부시독을 사용한 시점에서 저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차례 시선을 마주한 초악량과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튀어 나간 것은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