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86)
신마의선-286화(286/500)
신마의선 (286)
해일처럼 짓쳐들어오던 무인들의 파도가 한차례 크게 출렁이나 싶더니, 그대로 양익(兩翼)이 뜯겨 나갔다.
그대로 상대의 진열에 깊숙하게 파고든 초악량과 범계위의 신위는 가히 만부부당(萬夫不當)!
그 압도적인 위세는 방금 전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 내는 이가 없었다.
우드득!
“크아악!”
콰득! 찌이익!
“끄억!”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피 보라 속에서 온갖 끔찍한 소리와 비명이 뒤섞여 난무했다.
“……!”
악귀처럼 사정없이 상대를 찢어발기는 두 사람의 신위에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쉴 새 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압도적인 기세는 둘째 치고, 추호의 자비도 남겨 두지 않는 잔혹한 손속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살풍경한 광경.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초악량과 범계위.
자신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한없이 따뜻한 두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주살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에는 마귀 삼천 마리를, 저녁에는 삼백 마리의 마귀를 먹어 치운다는 전설 속의 귀신 식사(食邪)가 현세에 강림한 듯한 광경이었다.
진심으로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런 단악선의 동요를 느꼈던 것일까.
한설화가 손을 뻗어 단악선의 어깨에 조용히 올렸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단악선은 이내 저들이 누굴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자신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자신에게 이런 모습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 터.
‘주저하는 나를 대신해 저분들이 손에 피를 묻히시는구나.’
단악선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참혹하고 끔찍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시산혈해의 길을 걷는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장내를 집어삼킨 혼돈과 광기.
단악선은 이를 끝까지 마주했다.
반면 당곡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적지 않은 세월 도산검림을 겪어 봤다 자부했건만, 이런 끔찍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단말마의 비명 아래 덧없이 지는 생명들.
비록 저들은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었지만 의미 없는 반항에 불과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에 당가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두 사람에게 죽어 널브러진 자들의 숫자는 기백을 헤아리는 상황.
모용세가가 느꼈을 아득한 절망감을 당곡 역시 이 순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 일각여.
빠악!
대초자곤을 휘둘러 상대의 머리를 날려 버린 범계위가 악귀와 같은 눈빛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근처에는 두 발로 서 있는 자들이 없었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오연한 눈빛을 흘리며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굽어보던 그의 시선이 당곡에게 향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당곡이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단악선이 묵룡을 들어 그의 퇴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당신은 천극신단을 복용하지 않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당곡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흔들리는 당곡의 눈빛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놀라 되물었다.
“처음부터 복용할 생각도 없었군요?”
단악선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곤 이내 형용하기 힘든 분노가 그 기분을 대신했다.
뻐억!
“커헉!”
당곡이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시커먼 봉이 명치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엎드린 채 토사물을 게워 내는 당곡을 내려다보는 단악선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경멸이 가득했다.
단악선의 얼굴이 더없이 차가워졌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당혹감과 공포에 휩싸인 채 고개를 들어 올린 당곡을 향해 단악선이 서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입에서 반드시 진실을 듣겠어요.”
단악선이 품속에서 꺼내 든 목갑.
그 안에서 나타난 침을 발견한 당곡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자, 잠깐! 모든 걸 말하겠다!”
손을 들어 단악선을 제지한 당곡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교에 본 가의 비전을 넘긴 것은 내가 아니다! 전대 가주……. 전대 가주였던 형님의 짓이야! 신의와 마의를 마교에 팔아넘긴 것도 그가 한 짓이었어!”
“포달랍궁의 집단 중독이 처음부터 부모님을 노린 음모였다는 말인가요?”
“그, 그래! 내가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단악선이 물끄러미 당곡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 당신은요?”
“……!”
당곡이 급히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차디찬 단악선의 음성이 그 말을 잘라 버렸다.
“당신도 다르지 않아요.”
단악선이 다가서자 당곡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신의와 마의는 의원이었다! 너 역시 그렇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지금의 이런 네 모습이 의원으로서 바람직하다 여기느냐? 과연 네 부모가 이런 모습을 원하리라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처음 지녔던 가주로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하는 당곡.
그 모습이 실로 비참하고 딱해 보였다.
“저도 묻고 싶네요.”
끝까지 구차하게 매달리던 당곡이었으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런데 제 목소리는 그분들에게 닿지 않아요.”
단악선이 슬프게 웃었다.
“너무나……. 먼 곳에 계시거든요.”
기이하게 일렁이는 단악선의 눈빛.
이를 마주한 당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푹.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침이 당곡의 요혈을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놀란 당곡이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보다 빠르게 여러 개의 침이 연달아 혈도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당곡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취생몽사.
언젠가 바트얼지라는 혈운사의 달자를 심문하던 방식이었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온 것도 동시였다.
그 짧은 찰나에도 침을 통해 확인한 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곡의 생명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그는 이미 삼도천을 건너는 중이었다.
폐부를 으스러트린 범계위의 일격이 결정적이었다.
그 어떤 의원도 주요 심맥이 으스러진 환자는 살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당곡은 그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이 서둘러 질문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당신이 아는 걸 모두 말해 주세요.”
흐리멍덩한 눈으로 단악선을 올려다보던 당곡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 두 사람은…….”
띄엄띄엄 이어지는 희미한 음성.
이를 듣기 위해 단악선은 당곡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수보?’
마교 내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핵심 관련자.
모든 음모를 주재해 온 그가 직접 당가를 찾아왔다니?
단악선은 짙은 의혹에 휩싸였다.
수보라는 자를 언급하는 순간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일단 그자를 추적해야 돼.’
그 생각을 하며 질문을 하려 할 때였다.
“쿠엑!”
당곡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돌연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해 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 물어볼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단 하나의 질문.
수보의 정체를 물으려던 단악선의 마음속에 더욱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부시독의 해약은 어디에 있죠?”
당가에서 살포한 부시독은 이미 인근 마을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이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수많은 사람이 죽는 참사가 일어날 터.
단악선은 이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현중각의 조사당 안쪽.”
겨우 그 말을 남긴 당곡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간헐적인 경련이 찾아온 것은 그 직후였다.
연신 핏물을 게워 내며 괴로워하던 당곡이 어느 순간 사지를 늘어트리며 숨을 거두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범계위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흥! 운 좋은 놈 같으니.”
초악량 역시 모처럼 범계위와 뜻을 같이했다.
당곡은 결코 편한 죽음을 누려서도, 누릴 자격도 없는 놈이었다.
툭.
핏빛 강전 하나가 당곡 옆에 나뒹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절명전을 초악량이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것이다.
“약속대로 돌려주지. 저승길 노자에나 보태라.”
당곡에게서 시선을 거둔 초악량이 단악선을 어깨를 토닥였다.
“잘했다.”
“네?”
“마지막에 이자에게 했던 질문 말이다.”
수보의 정체에 대해 누구보다 궁금했을 단악선이었다.
그러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단악선이 선택한 것은 수많은 이들을 살려 낼 방법이었다.
복수보다 사람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당연한 일인걸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당곡의 맥을 잡아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윽고 단악선이 눈을 들어 장내를 둘러봤다.
음습하게 떠도는 비릿한 피 냄새.
죽음의 냄새만이 감도는 참혹한 장내의 광경에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 모습에 한설화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저들의 죽음이 부당하다 생각하느냐?”
잠시 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세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만약 제가 복수를 위해 이들처럼 변해 버린다면 어찌하실 건가요?”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단 의원이 그럴 리가 없잖아!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다면 우리가 단 의원을 이렇게 아낄 리가 없지.”
“만약……. 정말 만약에 제가 저런 선택을 한다면요?”
집요한 단악선의 반문에 범계위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단 의원이 그리되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지. 그때는 칼을 물고 엎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릴 거야.”
“역시 그렇겠죠?”
“그럼! 당연하지!”
범계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때려죽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더없이 순박한 눈빛이었다.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는 이미 서로를 의지하는 운명 공동체니까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죽은 당가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단악선이 슬픈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적어도 저들 중 몇몇은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따져 묻지 않았죠. 눈과 귀를 막고 윗사람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따랐을 뿐이에요. 그런 저들의 맹종 덕분에 이런 짓이 가능했겠죠.”
지금의 당가와 당곡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도 결국 저들이었다.
초악량은 단악선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부모님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 심란한 사람은 바로 단악선이었다.
더구나 복수의 길을 걷기로 천명한 이상 의원으로서의 정체성도 혼란을 느끼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고, 또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그래서 더욱 초악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설화와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서로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