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
신마의선-29화(29/500)
신마의선 (29)
―뭐 저런 날강도 같은 새끼가…….
―우리보다 더한 새끼!
전음으로 한바탕 욕을 내뱉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손가락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냈다.
“꼬우면 덤벼…….”
“드리겠습니다.”
“어? 이렇게 쉽게?”
천천히 몸을 풀고 있던 범계위가 왕염의 즉답에 오히려 뻘쭘해졌다.
“지금 바로 가지고 오지요.”
왕염이 돌아서자 왕결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이 돌아올 때까지 스스로 알아서 인질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너무나 순순히 요구에 응하는 그 모습이 범계위는 오히려 더 꺼림칙했다.
“잠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뭐가 문제야? 이놈들이 왜 이렇게 고분고분해진 거지?”
“네? 저희한테 질문하신 겁니까?”
왕결의 반문에 범계위가 한껏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그래. 너희들 왜 구지선엽초같은 영약을 그냥 내놓는 거냐? 그거 무지 귀한 거라며?”
“그야 선물로 달라고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그냥 주냐고. 그게 그냥 달라고 하면 막 주는, 그런 거야?”
“아니! 달라고 하셔서 주겠다잖아요!”
자신도 모르게 높아진 왕결의 음성에 범계위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지금 화낸 거냐?”
“서, 설마요. 제가 요즘 가는 귀가 먹어서……. 저도 모르게 한 번씩 목소리가 커지곤 합니다.”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는 왕결을 범계위가 지그시 노려봤다.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구지선엽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설화였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일단 가져와 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염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왕염의 손에는 팔뚝만 한 길이의 목갑이 올려져 있었다.
범계위가 목갑을 열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한설화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구지선엽초는 가지가 아홉 개에, 이파리는 실처럼 길게 늘어져 있대.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화가 말해 준 특징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목갑의 뚜껑을 닫아 한쪽에 밀어 놓았다.
그리곤 다시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나 더.”
왕염의 눈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구지선엽초 말고. 다른 거 있잖아.”
“다른 거요?”
“그래, 그거 말이야.”
왕염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대체 범계위가 자신들의 표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까지는…….”
머뭇거리는 왕염을 향해 범계위는 한껏 끌어 올린 살기를 그대로 개방했다.
“……!”
왕염과 왕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상대가 엄청난 괴물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죽기 직전까지 맞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기파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의 격차에 몸이 멋대로 얼어 버렸다.
“드,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왕결이 움직이고 왕염이 인질로 남았다.
잠시 후 표물이 실려 있던 마차에 다녀온 왕결이 손바닥 크기의 상자를 가져와 범계위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범계위의 눈짓에 왕결이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야명주(夜明珠) 때문이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흡족해하는 범계위의 표정에 왕염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순간 왕염과 왕결은 가슴 한편에서 솟구치는 불길함과 마주했다.
범계위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딱 하나만 더.”
―젠장!
―망할!
짧은 전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얼굴에도 서서히 악이 받치기 시작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봤어?”
확답을 받은 왕염이 일어나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범계위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
범계위가 왕염을 불러 세웠다.
“정말 가져오게?”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순간 범계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광망이 넘실거리는 범계위의 눈빛에 삼몰쌍괴 형제의 낯빛이 굳어졌다. 늘 어딘가 살짝 모자라는 언행 때문에 범계위는 언뜻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 중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곧 북망산.
유부의 입구 그 자체인 것이다.
“너희들, 어디 가는 길이냐?”
“네?”
“이렇게 귀한 보물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어디로 가는 거냐고.”
눈빛을 교환한 삼몰쌍괴가 침중한 표정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저희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 전 무림맹에서 백대악인 토벌을 천명했습니다.”
“백대악인? 십대악인이 아니라?”
“네. 자신들의 기준으로 새롭게 가려낸 백 명의 악인을 척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백 명 안에 너희도 들어간 거야?”
“그렇습니다.”
“많이 컸네?”
두 사람이 발끈했다.
“무림맹이 백대악인으로 엮기 전에도 저희는 이미 무림 백대고수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흑도 무림에서는 수위권일 겁니다.”
범계위가 피식했다.
“그래서? 그 대단한 고수분들께서 무림맹을 피해 의탁하는 곳이 어디야?”
“그것만큼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범계위가 다시 한 번 살기를 개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삼몰쌍괴였다. 파랗게 질린 얼굴 위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범계위가 등 뒤로 손을 뻗었다.
움찔한 삼몰쌍괴가 자신들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결과야 뻔했지만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는 법. 죽을 때 죽더라도 칼 한 번은 휘둘러 봐야 무림인인 것이다.
그 순간 범계위가 무언가를 집어 그들에게 던졌다.
날아든 물건을 무심코 받아 든 삼몰쌍괴가 깜짝 놀랐다.
바로 야명주가 들어 있는 상자였기 때문이다.
“이걸 왜 다시 저희에게?”
“여비에 보태 쓰라고.”
“예?”
“살기 위해 달아나는 거라며? 그래도 명색이 선배인데 야박하게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가,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꾸벅 감사의 인사를 건넨 두 사람이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리가 멀어지자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우리가 준 거잖아?
―그래도 뺏겼다가 다시 받으니 왠지 감사하긴 한데?
―좋아, 다음에 우리도 써먹자.
그런 전음을 나누며 두 사람이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히히히힝!
한밤중에 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시라도 빨리 범계위와 떨어지기 위해 밤길을 재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삼몰쌍괴 형제를 위시한 표행단이 멀어지자 범계위 옆으로 초악량과 한설화가 다가왔다.
한설화가 삼몰쌍괴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고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들이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함구하는 게 뭘까?”
“그러게 말이오. 원래 저렇게까지 입이 무거운 놈들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어딘가에 저놈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있는 거 같은데?”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 우리랑 상관 없잖수.”
“그렇긴 하지.”
무심코 걸음을 옮기던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욱한 살기로 일렁이는 초악량의 눈빛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갈수록 가관으로 치닫는 무림맹의 행보 때문이다.
“이참에 우리가 무림맹 본단을 확 뒤집어 버리는 건 어떻소?”
넌지시 떠보는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눈살을 찡그렸다.
“단 의원을 무림 공적으로 만들려고?”
“아니지. 그건 안 되지.”
어쨌거나 무사히 구지선엽초를 확보한 세 사람은 서둘러 야영지로 향했다.
그토록 바라던 영약을 보고 기뻐할 단악선의 모습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몰쌍괴의 목적지 따위는 이미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 * *
예상대로 단악선은 구지선엽초를 건네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지금껏 늘 단악선에게 받기만 했던 그들이었다.
그래서 매번 마음 한편이 무거웠는데, 이번 일을 통해 그나마 짐을 하나 벗은 기분이었다.
이후 여행 내내 단악선은 구지선엽초가 담겨 있는 상자를 한시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심지어 잘 때조차 상자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저렇게 좋을까.”
잠든 단악선을 내려다보던 초악량이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세상 모든 영약을 다 가진 얼굴인데?”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거다!”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말을 이어 갔다.
“단 의원을 최고의 영약 부자로 만들어 주는 거야!”
초악량과 한설화가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듣고 보니 꽤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악선은 물욕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따금 거금이 생겨도 약재 구입에 탕진하기 바빴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게 영약을 마주했을 때뿐이다.
그 영약마저 환자를 위해 쓰긴 하지만.
“그런데 어떻게?”
“어?”
한설화의 질문에 당황한 범계위가 초악량을 보았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재유경(志在有逕).”
운을 뗀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일단 뜻을 모았으니 방법은 천천히 모색해 보도록 하지.”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한설화와 범계위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여행을 계속 이어 갔다.
그리고 보름 후.
일 차 목적지인 난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장 난주의 명물 중 하나인 호원루(浩倇樓)로 향했다.
앞서 출발한 풍진성과 합류하기로 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와!”
호원루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일단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란 것이다.
연회를 벌여도 충분할 만큼 넓은 공간에는 네 개의 기둥이 위치해 있었고, 그 기둥을 중심으로 다시 네 개의 팔선탁(八仙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팔선탁 하나에 여덟 명까지 앉을 수 있으니, 한 층에만 무려 백이십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셈이다.
“엄청나네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만으로는 감숙성 전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란다. 게다가 이곳 숙수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유명하지.”
그만큼 음식 가격도 상당했지만 일부러 언급하지는 않았다.
단악선을 위한 풍진성의 배려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은 거군요.”
초악량이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단악선 말대로 남아 있는 탁자가 하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호원루가 유명하다고 해도 지금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미시였다. 지금처럼 한적할 시각에 이처럼 많은 손님으로 붐비는 건 흔치 않았다.
수상한 점은 또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왁자한 웃음과 떠들썩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예기를 품은 서늘한 눈빛이었다.
‘함정?’
비어 있는 탁자 역시 공교롭게도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무림맹 애들이네.
한설화의 전음에 초악량과 범계위는 살심이 치밀었다. 하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무언가 속셈이 있다면 그 내막을 파악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을 터.
“일단 앉자.”
초악량을 필두로 나머지 세 사람도 탁자 한 면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점소이에게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범계위가 전음을 날렸다.
―우리를 기다렸던 게 아닌가 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