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1)
신마의선-291화(291/500)
신마의선 (291)
그런 두 사람을 벽화령이 노려봤다.
“비 맞은 중처럼 뭘 그리 중얼대는 거야?”
“…….”
“…….”
감히 대꾸할 수 없어 침묵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종리추와 장철우였다.
그들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던 벽화령이 범계위를 향해 물었다.
“쟤들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누구보다 뛰어난 고수니까요?”
한껏 자신을 추켜세우는 벽화령의 애교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역시! 우리 가가!”
“그런데 이 방법도 안 통하면 쟤들은 진짜 답이 없는 거야.”
범계위가 손을 들어 해남파 무인들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넌 좌로 두 걸음 옮겨. 그리고 넌 뒤로 네 걸음. 넌 이쪽으로 가고, 넌 저쪽으로. 그래, 그렇지.”
영문도 모른 채 범계위의 지시대로 움직여 자리를 잡은 해남파 무인들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사색이 되었다.
“쟤들도 일단은 무인인 이상 목숨이 간당간당해지면 뭔가 깨닫는 게 있을 거야.”
“……!”
경악하는 해남파의 무인들을 무시한 채 범계위가 말을 이어 갔다.
“방금 전 화령이 네가 사용한 절초는 깨달음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야.”
“일종의 심득(心得)이 필요하단 말인가요?”
“그렇지. 하지만 머리가 나쁘면 어떻게 하겠어? 몸으로라도 때워서 익혀야지.”
“아! 생사의 간극에서 깨달음을 강제한다는 거군요?”
“맞아. 비슷해.”
“마음으로 얻고, 몸으로 익힌다. 이 두 가지를 아울러 습득이라 하니까요. 바꿔 말하면 심득과 체득의 순서가 바뀐다 해도 선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맥락에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의미가 되겠군요.”
꿈보다 해몽이 좋다더니!
두 사람을 제외한 장내의 동공이 격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초에 그들의 동요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범계위가 말했다.
“그런데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필요한 게 있어.”
“그게 뭔가요?”
“절박함이야.”
“절박함이요?”
“그래.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 같은 거.”
“아아!”
벽화령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 역시 지옥팔관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과연 이 방법이 통할까요?”
“물론!”
고개를 주억거린 범계위가 호언장담했다.
“단 의원도 이 방법을 통해 강해진 적이 있어.”
언젠가 단악선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마녀가 비무를 치른 적이 있었다.
“단 의원은 굉장히 기뻐했지. 이렇게까지 맹렬한 살기를 처음 겪어 본다면서. 비무 감각이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되었지.”
“그럼 당장 시작하죠.”
벽화령의 큰 오빠인 벽파영이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자, 잠깐! 우리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범계위의 엄포에 묻혀 버렸다.
“눈 크게 뜨고 집중해. 괜히 움직였다가 목 날아가면 책임 안 진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반대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간다!”
꽈릉!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친 것도 그때였다.
해남파의 무인들을 사이에 두고 범계위가 벽화령을 향해 권풍을 날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벽화령은 검을 휘둘러 무수한 검기를 일으켜 이를 상쇄했다.
카카카칵!
눈앞에서 휘몰아치는 경력의 소용돌이에 해남파의 무인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갈가리 찢겨 나가는 대기가 한순간 요동치나 싶더니.
일그러진 대기의 압력으로 인해 온몸이 휘청거렸다.
‘헉!’
종리추가 헛바람을 들이켠 것도 그때였다.
한 움큼 잘려 나간 귀밑머리가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한 치만 비껴갔더라도 머리카락 대신 그대로 귀가 잘려 나갔을 터.
장철우 역시 마찬가지.
‘으아악!’
코앞에서 휘몰아치는 섬뜩한 경기 앞에 비명은커녕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뭐 하는 거야? 망설이지 마! 아직까지 손끝에 주저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이래서야 쟤들에게 절박함이 생기겠어?”
“……!”
벽화령의 눈 위로 떠오르는 결연한 눈빛.
이를 확인한 해남파의 무인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만해, 이 미친 인간들아!’
절박함은 이미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너무 과한 나머지 공포심이 되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벽화령의 검에서 끔찍하리만치 악랄한 초식들이 연거푸 쏟아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래! 잘하고 있어! 얘들은 그냥 통나무라고 생각해!”
신나서 외치는 범계위와 달리.
졸지에 통나무 처지가 된 다른 이들은 그저 경악할 뿐이었다.
죽기 전에 경험할 수 있다는 주마등.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 제대로 깨닫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해남파 무인들의 눈 위로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범계위의 무위에 압도되고, 벽화령의 검법에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무위에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갈망이었다.
‘나도 저 검법을 펼칠 수 있는 걸까?’
분명 자신들이 익혀 온 남해삼십육검이었건만 벽화령의 손에서 펼쳐지는 검법은 격이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의 두 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벽화령의 검을 좇고 있었다.
한편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것도 기연이라 할 수 있을까.”
벽대경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평생 자신이 꿈꿔 왔던 해남파의 검.
그 궁극적인 형태가 딸의 손에 의해 펼쳐지는 장면은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훌륭하구나!”
그 어떤 수식어로도 담아내지 못할 감격.
비록 자신은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지만, 살아서 남해삼십육검의 진정한 신위를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허허. 부문주 덕분에 우리 해남파의 오랜 숙원을 이뤘구려.”
“어디 그뿐이오? 부문주는 아직 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더욱 원숙해질 터.”
벽대경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던 해남파의 장로들 역시 감격 어린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벽화령이 자신들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 이미 자신들은 세상에 없을 터.
그때의 검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 감탄도 잠시였다.
꽈앙!
“으악!”
“컥!”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범계위와 벽화령 사이에 있던 해남파 무인들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벽대경과 장로들이 황급히 신형을 날려 곤두박질치는 무인들을 받아 냈다.
그런데 정작 이 사태를 야기한 범계위와 벽화령은 다른 이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비무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대체 저게 뭔 지랄…….”
무심코 중얼거리던 벽대경이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이곳에 장로들이 동석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어느 아비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
* * *
“단 의원!”
우지끈.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선착장 일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선착장을 향해 가는 배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나 싶더니.
쿠웅.
배 전체가 휘청하며 사방에 물보라가 튀었다.
오십 장이 넘는 거리를 단번에 도약해 날아온 범계위가 단악선을 와락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단 의원!”
“혼인식 준비는 잘하고 계세요?”
웃으며 반문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준비? 혼인하는 데 무슨 준비가 필요한데?”
마치 남 일 말하듯 의아해하는 한심한 꼬락서니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놈도 장가를 가는데…….”
옷에 묻은 물을 털어 내던 초악량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곤 한숨을 흘렸다.
배를 움직이는 사람 대부분이 해남파 소속의 무인.
새신랑이 될 범계위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저들 앞에서 평소처럼 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배는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을 나온 벽대경과 벽화령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단악선 일행을 맞이했다.
“장문인께서 직접 맞이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마주 예의를 갖추어 답례하는 단악선을 향해 벽대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사돈이 되실 분들인데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돈이요?”
“사위의 가족들이시니까요.”
“아!”
탄성을 흘리는 단악선과 달리 한설화는 발끈했다.
“누가 저 멍청이와……!”
“참아, 한 누이.”
초악량의 만류에 한설화가 범계위를 노려봤다.
살다 살다 범계위와 가족으로 엮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어이없고 기가 막혔지만 먼저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단악선 때문에 정정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해요. 부디 우리 아저씨, 잘 부탁드려요.”
“하하, 여부가 있겠소이까. 오히려 저희가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상견례 아닌 상견례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휴우. 넉넉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네요.”
늦은 시각.
일행은 단악선의 숙소로 배정된 전각에 모였다.
혼인식 준비가 한창인 해남파는 밤늦은 시각까지 떠들썩하고 어수선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어야 하지?”
해남파 측에서 초빙한 손님들의 명단을 정리하던 한설화가 초악량에게 핀잔을 던졌다.
“그러게 가족 운운했을 때 쳐 냈어야지.”
“…….”
할 말이 무색해진 초악량이 내심 곤란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신마상단에서 신랑 측 하객에 대한 초대장은 이미 돌리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선물도 늦지 않게 준비해서 가져온다고 했고요.”
“우리보단 그놈들이 훨씬 바쁘겠구나.”
“그래도 신마상단에 한해 녹림이 산길을 열어 준다고 했고, 관부 역시 협력해 검문을 일시적으로 면제해 준다고 했으니 시간 안에 도착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범계위가 들이닥쳤다.
초악량과 한설화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누구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정작 의기양양한 기세로 한껏 거들먹대는 범계위의 태도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초 형, 나한테 고맙다고 하슈.”
“뭐, 인마?”
얼굴을 구긴 초악량이 한바탕 쓴소리를 쏟아 내려는 찰나.
턱.
범계위가 탁자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한 병의 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초악량이 핀잔을 던졌다.
“지금 바쁜 것 안 보여? 이 상황에 술은 무슨?”
“흐흐, 일단 열어 보고나 말하슈.”
능글맞게 대꾸하는 범계위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초악량의 얼굴에 짙은 의혹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마?”
병을 봉하고 있던 마개를 여는 순간 초악량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그거냐? 육십 년 묵었다는 그 여아홍?”
“정확히는 육십오 년이오.”
“오!”
반색하던 초악량이 짐짓 헛기침을 터트렸다.
“흥! 이 정도로 생색은. 먼저 한잔 올려도 부족할 마당에…….”
“그럼 딱 한 잔만 드슈.”
꼴꼴꼴.
범계위가 잔에 술을 가득 채워 건네자 초악량이 점잖게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그러나 술을 목으로 넘기고 나서는 천하의 초악량도 인내심이 흔들렸다.
자연스레 잔을 내려놓고 다시 술을 따르려는 순간.
범계위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술병을 거둬 갔다.
“야!”
“흐흐. 고맙다고 해 보슈. 그럼 이거 놓고 갈 테니.”
“…….”
술병을 노려보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천하의 혈수존자에게도 이처럼 인간적인 약점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때 범계위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쳤다.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
“초대할 사람이 더 있수.”
“누구 말이냐?”
“술 귀신.”
“너 이 자식!”
자신을 놀리나 싶어 발끈하던 초악량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초 형 말고. 초 형은 술을 좋아하는 거지, 술에 미친 건 아니잖수.”
“설마……? 강위룡 그 자식을 부르자고?”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언젠가 들어 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
뒤늦게 기억 속에서 한 사람의 명호를 떠올린 단악선이 초악량에게 물었다.
“주광도귀(酒狂賭鬼) 강위룡 대협 말인가요? 아저씨와 함께 천하오절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계시다는…….”
“흥! 대협은 개뿔. 그 자식은 그냥…….”
초악량이 정색했다.
“미친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