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2)
신마의선-292화(292/500)
신마의선 (292)
그런데 그 말이 단악선의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초악량과 더불어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린 절대 고수.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화산의 진명진인이나 소림의 계율원주인 법료대사는 이미 만나 본 적이 있었다.
반면 나머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화궁(梨花宮)의 궁주인 월령궁주(月靈宮主) 연옥상과 주광도귀라 불리는 강위룡이 바로 그들이었다.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단악선의 질문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악선이 물어본 이상 대답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가지에 미친 놈이다.”
“두 가지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과 내기.”
눈앞에 놓인 여아홍을 들어 목을 축인 뒤 초악량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두 가지를 앞세운 온갖 기행 때문에 수많은 무림인이 골머리를 앓았지. 물론 놈을 유명하게 만든 건 뛰어난 무공도 한몫했지만 말이야.”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일단 놈은 말이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술을 만들어 낸다. 이 여아홍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놈이 만든 술과 나란히 놓으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지. 애초에 술 자체가 다르거든.”
애당초 여아홍은 재료를 발효시킨 황주(黃酒)였고, 강위룡이 만드는 술은 증류 과정을 더해 도수를 더욱 높인 백주(白酒)였다.
그만큼 과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졌다.
“증류 과정을 거치는 만큼 백주는 황주보다 순수하고 깨끗하며, 진한 향기와 맛이 일품이다. 목으로 넘긴 후에 혀뿌리 쪽에서 느껴지는 그윽한 여운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지. 무엇보다 높은 도수로 인한 자극적인 맛 자체가 탁월하다. 대부분의 술꾼들이 백주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주(美酒)에 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고, 또 그만큼 뛰어난 일가견을 지닌 초악량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설명은 꽤나 구체적이고 상세했다.
“백주는 원료와 생산 방법에 따라 각각의 특징을 지니는데, 보통은 향의 형태인 향형(香型)으로 분류하곤 한다.”
맑고 깔끔하며 진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 청향형(淸香型)은 대체로 맛이 달고 시원하며 산뜻했다.
“산서의 분주가 대표적인 청향형 백주다.”
그에 대비되는 농향형(濃香型)은 마실 때 향기가 그윽하고 달며, 부드러운 맛이 혀에 감기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목으로 넘긴 뒤에 남는 뒷맛과 여운이 향기와 함께 오래 남는 것이다.
“오량액이나 공부가주가 대표적이지.”
장향형(裝香型)은 산뜻하지 않지만 싱겁지 않고 품위를 갖춘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글자 그대로 쿰쿰한 장맛이 느껴지지만, 그 여운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어 비어 있는 잔에도 향기가 존재할 정도였다.
“미향형(米香型)은 꿀맛이 나고 부드럽다. 그윽하고 품위가 있으며 순수하고 깨끗하지. 뒷맛이 시원해서 그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
“그분이 만드시는 술은 그중 어떤 술인가요?”
“놈이 만드는 술은 조금 독특하다. 겸향형(兼香型) 혹은 복향형(復香型), 혼향형(混香型)이라고도 부르는 형태의 백주지.”
말 그대로 켜켜이 쌓아 올리듯 중첩된 향을 지닌 술이었다.
처음 맡은 향과 마신 뒤 나는 향이 다른 것이 특징이었다.
농향형과 장향형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원래 곡물을 누룩으로 당화하고 발효한 다음 증류해서 완성하는 백주는 색이 없고 투명하다. 그리고 그 빛이 맑고 투명할수록 완성도를 높게 치지. 하지만 놈이 만드는 술은 예외다. 진하고 밝은 황금색을 지니고 있지.”
색깔은 영락없는 황주인데 그 자체로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뛰어난 고도수의 백주인 셈이다.
“오죽하면 술 이름을 도원향(桃源香)이라 붙였을까.”
“도원향(桃源鄕)이 아니고요?”
도원향은 과거 동진 시절에 도연명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언급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단악선의 반문에 초악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만큼 자신이 만든 술에 자신 있다는 뜻이지. 뭐……,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다른 건 몰라도 놈이 만든 술을 맛본 사람으로서 그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내기다. 놈은 제법 유명하다 싶은 상대라면 그게 누구든 내기를 걸곤 한다. 심지어 천마를 상대로 내기를 걸었던 놈이니 말 다 한 셈이지.”
금분세수(金盆洗手)를 앞둔 노고수와 내기를 해서 금분세수 바로 직전에 그의 앞에 놓여 있던 금대야를 빼앗아서 금분세수를 망친 일화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 될 정도였다.
금분세수는 금으로 만든 대야에 손을 씻는 것으로, 복잡하게 얽힌 과거의 은원을 정리하는, 일종의 은퇴식이었다.
그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과거의 은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었고, 금분세수를 거친 사람 역시 강호의 일에 일절 관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강호의 관례이자 불문율이었다.
금대야를 빼앗긴 노고수는 금분세수를 치를 수 없었고, 결국 원수들의 손에 맞아 죽었다.
“오죽하면 별호 하나에 광(狂)과 귀(鬼)가 동시에 들어가겠느냐? 맹세컨대 놈과 엮여 좋은 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때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초 형을 포함해서?”
“……!”
초악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간의 모든 강호 생활을 통틀어 몇 안 되는 부끄러운 기억.
그 흑역사 중 하나가 바로 놈과 엮인 내기 때문이었다.
“놈과의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십 년 동안 초 형이 그놈 피해 다녔잖수.”
“그 이야기는 왜 꺼내?”
초악량이 낮게 으르렁대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 엄포에 겁먹을 범계위가 아니었다.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너 이 자식…….”
단악선이 놀라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분이 그 정도로 대단한 고수였나요? 초 아저씨가 피할 정도로요?”
“무슨 소리!”
초악량이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공만으로 따지자면 놈은 내 상대가 아니다.”
“확실히 초 형이 조금 더 위에 있긴 하지.”
범계위 역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럼 왜 그분을 피해 다니셨어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은 곤혹스러워했다.
반면 초악량을 위기로 떠민 당사자인 범계위는 재미있다는 듯 히죽거렸다.
초악량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놈을 형님이라 부르기 싫어서…….”
“네?”
“휴우…….”
한숨을 흘린 초악량이 당시의 상황을 언급했다.
“놈과 처음 만난 것은 아직 놈이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
사부의 복수를 위해 초악량이 청성파의 청 자 배분의 청성칠자를 죽인 청성혈사(靑城血事) 직후, 혈수존자라는 명호를 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놈이 나를 찾아와 내기를 걸었다.”
내기의 내용은 간단했다.
온갖 미주를 맛보며 그 술의 이름과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맞히는 것이었다.
그 대가로 강위룡은 자신이 만든 술을 걸었고, 대신 자신이 이기면 십 년간 호형호제를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자신이 있었던 초악량은 기꺼이 내기에 응했다.
그만큼 놈이 만든 술은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초악량의 패배.
혈수존자와 내기에서 승리한 것이 알려지며 강위룡의 명성은 단번에 높아졌다.
“이후 놈은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형님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피해 다니신 거군요.”
알 만했다.
그런데 그때 범계위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초 형 생각이지, 나는 좀 달라. 의외로 괜찮은 구석도 많거든.”
“흥! 그럴 리가!”
“어쨌든 공평한 내기를 하고, 결과에도 깨끗이 승복하잖수?”
초악량이 범계위를 노려봤다.
“놈의 내기에 엮여 눈알을 내어 주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낸 사람들은? 놈과의 내기에서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한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거야 자신이 선택한 거잖수. 애초에 내기에 응하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니오? 결국 욕심을 부려 화를 자초한 건데 그게 왜 그놈 탓이야?”
“네가 이상한 거다.”
“응?”
“애초에 선악을 구분 짓는 네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냐? 너처럼 나쁜 놈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선량하고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사람은 그런 놈을 미친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설마 오래전에 놈과의 내기에서 진 걸 가지고 아직까지 꽁해 있는 거유?”
“흥!”
초악량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다.
뒤늦게 자신의 상대가 범계위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손해만 볼 뿐인데 굳이 대화를 이어 갈 필요가 없었다.
모처럼 초악량을 제대로 놀린 범계위가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쨌든 부탁하리다. 난 화령이랑 예복 맞추기로 해서 말이요.”
“잠깐.”
돌아서는 범계위를 초악량이 불러 세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그 미친놈은 왜 초대한다는 거냐?”
“응? 아아, 그거.”
범계위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 녀석과 내기를 한 게 하나 있거든.”
“뭐?”
초악량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내기도 상대를 봐 가며 해야지!”
단악선도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어떤 내기를 하셨는데요?”
“별거 아냐.”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선선히 대답했다.
“내가 이십 년 안에 혼인을 하는지 못 하는지를 두고 내기를 했지.”
초악량이 다그치듯 물었다.
“놈은 무엇을 걸었느냐?”
“자신이 만든 도원향 중 가장 뛰어난 걸 한 동이 주기로 했수.”
“그런데?”
“그 내기를 언급한 게 십오 년 전이었으니 내가 이긴 거지.”
초악량이 반색했다.
그 말대로라면 어쩌면 범계위가 내기로 처음 강위룡을 꺾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기에 딸려 오게 될 도원향 한 항아리라니!
가슴이 절로 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분이 내건 조건은 뭔가요?”
“자신이 이기면 내 걸 잘라 가겠다고 하던데?”
“뭘 잘라 가요?”
범계위가 웃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이거.”
초악량이 경악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물건은 가져가 어디다 쓴단 말이냐?”
“나야 모르지. 그놈이 뭐 생각하고 내기하는 놈은 아니잖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런 말을 했었지?”
“……?”
“나만 없으면 우람하기로는 자기 거가 중원 제일이라던가?”
가만히 한쪽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대체 사내라는 족속들은 왜 이다지도 쓸데없이 크기에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단악선이 뭘 보고 배울까 심히 걱정이었다.
반면 초악량은 안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도 어지간히 정신 나간 놈이다. 그딴 미친 내기를 받아들이다니.”
“뭐, 어차피 그때는 쓸모도 없었잖수.”
“그렇다고 그딴 내기를 해?”
“무엇보다 내가 결혼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넌 진짜 화령이한테 잘해야 한다.”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까 이제 그놈 술은 내 거지.”
그 말에 초악량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도원향을 맛볼 수 있게 생겼구나.”
“이제 고맙다고 해 보슈.”
“고맙…….”
웃으며 입을 열던 초악량이 뒤늦게 화들짝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내뱉을 뻔한 것이다.
그만큼 강위룡이 만든 술의 위력은 대단했다.
“얼른 예복이나 맞추러 가!”
“쳇.”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런 그를 초악량이 다시 한 번 불러 세웠다.
“야.”
“아, 왜 또?”
“이거 잊고 갔다.”
초악량이 여아홍이 든 병을 가리키자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됐수. 들고 다녀 봐야 귀찮기만 한걸. 초 형이나 드슈. 그것도 맛을 아는 사람들한테나 귀한 거지.”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라?”
범계위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초 아저씨를 챙겨 주고 싶으셨나 봐요.”
“흥. 저 녀석도 그나마 양심은 있는 게지.”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초악량의 눈빛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그렇게 여아홍을 음미하길 잠시.
“그나저나…….”
초악량은 문득 걱정이 앞섰다.
“이 혼례가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강위룡도 강위룡이었지만 범계위도 일반인의 상식선에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인 건 마찬가지.
그래서 초악량은 내심 더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