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4)
신마의선-294화(294/500)
신마의선 (294)
“당가의 몰락으로 인해 성도 일대가 무주공산이 되었다.”
형산파로 인해 구대문파에서 밀려난 청성파 입장에서는 이는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가, 아미와 더불어 사천 지역을 삼분하고 있던 청성이었다.
그 구도가 무너지자 아미는 관망하는 반면, 청성은 기존에 당가가 지배하던 상권과 영역을 흡수하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는 중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 자리를 통해 타 문파들에게 양해를 구하려는 생각인 게다. 겸사겸사 당가를 무너트린 당사자들과 친분을 도모할 생각이겠지. 그들도 나름의 명분은 필요할 테니까.”
“아…….”
청성파 입장에서는 단악선 일행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필요성이 절실한 셈인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악호군!”
누군가의 외침에 중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단악선의 눈에 파도를 가르며 달려오는 쾌속선 한 척이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 뱃머리에 서 있던 인영.
녹림 총표파자 악호군이었다.
배가 해안과 가까워지자 그가 신형을 뽑아 올렸다.
허공을 가른 그의 신형이 멋들어지게 선착장에 내려섰다.
“오랜만…… 어엇?”
단악선을 향해 말을 건네던 악호군이 당혹성을 흘렸다.
예전에 녹림이 신세를 졌던 만큼 단악선의 초대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악호군이다.
그런데 하필 이곳에서 진조운과 맞닥뜨릴 줄이야.
‘쓰읍.’
입맛이 몹시 썼다.
그리고 이는 진조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 모종의 일로 두 사람은 하루 밤낮을 꼬박 싸운 적이 있었다.
결과는 양패구상.
그런 과거의 악연 때문인지 서로를 향한 눈빛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공사가 다망하실 형산파의 문주님께서 이 오지까지 직접 왕림하시다니…….”
“그러시는 총표파자야말로 그간 너무 격조하셨습니다? 소문은 간혹 들려오긴 하던데……. 무림맹의 견제가 사라져 열심히 세를 회복하고 계신다고?”
“그래 봐야 새롭게 구대문파의 한자리를 거머쥔 형산만 하겠소이까.”
진조운과 악호군.
두 사람 모두 표정으로는 싫은 내색을 팍팍 하면서도 말투만큼은 짐짓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여튼 감축드립니다. 듣자니 꽤 활약을 하셨다고? 개방 방주를 해친 흉수인 칠절마군을 직접 죽이셨다 들었습니다. 뭐, 누구는 얻어걸린 거라 하지만요. 남궁가주께서 다 쓰러트린 것을 마지막에 운 좋게 가로챘다던가? 하하, 물론 본인은 믿지 않지만 말이요.”
악호군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러시는 문주께서야말로 사라졌던 원공보검을 되찾으셨다 들었습니다. 그러게 내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소이까? 이 악 모가 수작을 부려 가로챈 것이 아니라고. 알고 보니 등잔 밑이 어두웠소이다그려. 하하하.”
진조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에게 가장 아픈 역린이라 할 수 있는 사문의 수치를 들추다니!
“내가 지금 참고 있는 건 단 의원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오.”
“흥! 누가 할 소릴!”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생사결을 벌이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치솟는 살기를 억눌렀다.
지금은 단악선의 초청에 응해 마련된 자리.
둘 다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만큼 단악선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는 것을 끝으로 홱 돌아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벽대경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례를 앞두고 혹시라도 불미스런 사태가 일어날까 싶어 내심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새로운 배가 도착했다.
조정의 깃발을 달고 있는 관함이었다.
벽대경은 서둘러 관부의 손님을 맞기 위해 그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하선을 마친 관부의 인사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참 대단하십니다.”
“네? 그게 무슨…….”
탄성을 흘리는 포정사를 향해 벽대경이 반문했다.
포정사는 한 성의 통치를 담당하는 기관인 승선포정사사의 수장.
무려 종이품의 고관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 무림에서 차지하는 해남파의 위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소이다.”
포정사와 함께 온 도지휘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했다.
“허허. 이렇게까지 성황을 이룬 혼례는 내 일찍이 본 적이 없소이다. 이게 다 문주께서 쌓아 올려 온 덕망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 개 성의 군정을 총괄하는 기관인 도지휘사사의 수장인 그 역시 정이품의 고관.
해남파와의 오랜 관계가 있어 직접 혼례에 참석한 것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내심 자신들이 이곳에서 가장 큰 지위를 지닌 하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위를 둘러보니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즐비했다.
거기에 천하 녹림도의 수장인 총표파자까지.
관무 불가침의 원칙에 따라 아무리 무림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들이라 하나 저들이 무림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까지 모르고 있진 않았다.
“…….”
벽대경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역시 아직까지 영문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잠잠해진 것이다.
의아함에 주변을 돌아보니 복잡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구대문파 인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막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내리는 일련의 무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곡운경!”
“뭐? 곡운경이라면 비무에 미쳐 전 중원을 떠돈다는 그자 아닌가?”
“왜 아니겠어? 오죽하면 별호가 추비무랑일까.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만…….”
“으음……. 구유음소 장곡, 거기에 독안룡 유귀까지?”
“이매수 염당도 함께 있구려.”
“허……. 할심독조 염기에 청금귀수, 거기에 독릉산응 조맹방과 혈음노봉 양익천까지?”
사파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우르르 배에서 쏟아져 나오자 곳곳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진조운과 악호군으로 인해 묘한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던 선착장이었다.
한데 여기에 사파의 무인들이 대거 합류하자 팽팽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번져 갔다.
그 모습에 정연신니가 고소를 머금었다.
“무위가 금지로 선포된 이후 죄다 그곳으로 몰려간 모양이군.”
진명진인이 그 말을 받았다.
“하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설마 혼인식에서 무슨 사고라고 나겠습니까?”
그 말에 구대문파 인사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저들과 불편한 관계라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서로 자중하면 그만인 것이다.
특히나 사파는 몇 차례에 걸친 무림맹의 탄압에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태.
그러다 보니 생존자 중 상당수는 마교에 포섭된 상태였다.
급격하게 세력이 기운 이상 이 자리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할 터.
하나 서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구대문파의 수장들은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의외로 저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정파의 추격으로 인해 주눅 들어 있던 눈빛은 본래의 자신감을 되찾은 상태였고, 기도 역시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져 있었다.
‘대체 무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진명진인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나같이 무공의 경지가 전보다 높아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저들이 무위를 중심으로 단일 세력을 형성했다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저 중에 곡운경과 장곡 정도만 하더라도 구대문파의 장로들과 필적하는 수준.
당장 녹림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사실상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많은 고수가 집결해 있는 셈이다.
반면 무위 사파인들의 방문을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종리추와 장철우였다.
“흐흐. 이제 우리 차례다.”
“받은 수모 그대로 돌려주마.”
“진정한 텃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지.”
벽화령을 따라 무위를 방문했을 당시 놈들이 하도 눈치를 주는 바람에 피곤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그 순간.
퍽!
퍽!
누군가 두 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어떤 놈이 감히…….”
“뒈지려고 작정을……. 어? 문주님!”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예를 갖췄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벽대경의 엄포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문주님! 저희가 무위에서 어떤 꼴을 겪었는지 아신다면…….”
“맞습니다. 은원을 잊는다면 그게 어디 무림인입니까?”
그러나 종리추와 장철우는 벽대경의 말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화령이가 들으면 퍽이나 좋아하겠군.”
흠칫하는 두 사람을 향해 벽대경이 혀를 찼다.
“잘해라. 나중에 딴소리 안 나오게.”
“…….”
“…….”
“대답은?”
“……예.”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벽대경은 여전히 긴장 어린 눈빛으로 장내를 주시했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무위 쪽 인사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구대문파를 비롯한 정파에 악감정이 없을 리 없는 사파인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들의 눈에서 번뜩이는 살기는 전장에서 적을 조우한 장수들만큼 서슬 퍼런 예기를 품고 있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몇 번이나 상대를 죽이고도 남았을 만큼 원한이 가득 서린 안광.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 입을 열자 무위 쪽 인사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험악하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언제 살기를 피워 올렸냐는 듯 살가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곡주님을 뵙습니다.”
“선배님의 혼례를 축하드립니다!”
단악선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에 진명진인은 내심 기가 막혔다.
들개처럼 거친 사파인들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더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 아이 때문이었구나!’
비로소 저들의 변화가 누구에게 기인한 것인지 깨달은 진명진인을 향해 정연신니가 미소를 건넸다.
“대단하지요?”
진명진인은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쓰게 웃었다.
애초에 한설화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참석한 자리인 만큼 단악선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였다.
한데 이쯤 되니 장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벽대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산파의 장문인과 녹림의 총표파자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아미파 역시 단악선의 작은 행동에도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청성파 역시 마찬가지.
처음부터 단악선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방문한 만큼 분명 따로 자리를 마련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에 한시도 단악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초악량과 한설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단악선을 대하던 소림의 법료 역시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하물며 무위의 사파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 한마디면 간이며 쓸개도 내줄 것처럼 단악선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를 둘러보던 벽대경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정파와 사파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 그 어떤 잡음도 일어나지 않다니.
거기에 이곳에는 그토록 무림과 경원시하던 관부의 인물들도 있었다.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더없이 묘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단악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무, 문주님! 저기 좀 보십시오!”
누군가의 경악성이 장내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 벽대경은 바다 쪽을 가리키며 눈이 휘둥그레진 종리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가리킨 손을 따라 바다 쪽으로 시선을 던진 벽대경도 이내 깜짝 놀랐다.
바다를 가르며 빠르게 접근하는 인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굽이치는 파도를 발끝으로 차며 빛살처럼 달려오는 사내.
소위 등평도수(登萍渡水)라 부르는, 무력답수(無力踏水)의 놀라운 신위였다.
누군가가 해연히 놀라 소리쳤다.
“강위룡이다!”
“천하오절?”
“주광도귀!”
곳곳에서 분분히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쿠웅.
그 소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한 초로인이 짊어지고 있던 커다란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 거대한 항아리였다.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초로인이 씨익 웃었다.
“무림에서 한 자락 하신다는 꼰대들은 죄다 이곳에 몰려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