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7)
신마의선-297화(297/500)
신마의선 (297)
범계위의 혼례는 무사히 끝났다.
해남파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래 전무후무한 대성황을 이룬 행사이자, 무림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업적이었다.
정파와 사파, 거기에 관부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는 건 그만큼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큰 말썽 없이 혼례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하객이 많이 몰려 주최 측인 해남파는 상당한 곤욕을 치렀지만 총력을 기울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혼례가 끝나고도 하객들은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바로 강위룡과 단악선의 내기 때문이었다.
무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단이라는 성수신단의 제조법과 고금제일이라 일컫는 명주인 도원향의 제조법이 걸린 내기.
내기의 향방을 가늠할 연무장 주변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한 사람이 연무장 위로 훌쩍 뛰어내린 것도 그때였다.
텅!
연무장 중앙에 마련된 탁자 위에 한 병의 술을 내려놓는 인물.
바로 강위룡이었다.
“자! 승부의 시간이다! 나를 도발한 꼬맹이는 앞으로 나서라! 과연 누구의 실력이 위인지 이 자리를 통해 가늠해 보자꾸나!”
웅혼한 내공이 실린 쩌렁한 음성이 해남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강위룡이 미간을 찡그렸다.
“설마 달아난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연무장 주변을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던 인파가 썰물처럼 좌우로 갈라지나 싶더니,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와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단악선이었다.
단악선의 손에도 도자기로 만든 작은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자신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받아 내는 단악선의 모습에 강위룡이 득의양양한 웃음을 흘렸다.
“흐……. 배짱 하나는 인정해 주마.”
단악선도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연무장을 중심으로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강위룡과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는 단악선.
내기의 당사자인 두 사람은 정작 평온한데, 구경꾼 사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위 쪽 인사들을 중심으로 사파 진영이 위치해 있는 연무장 동쪽에서는 살기가 솟구쳤다.
반면 반대쪽에 자리 잡은 정파 진영에서는 바위처럼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연무장 중앙에 선 강위룡이 이런 급격한 분위기의 변화를 모를 리 만무했다.
“흥미롭군.”
히죽 웃은 강위룡이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 심판은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냐?”
쿠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사람이 연무장 위로 뛰어들었다.
“내가 하지!”
범계위였다.
서둘러 달려온 듯 미처 예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범계위가 성큼 단악선을 향해 다가서더니 단악선의 손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단 의원 승!”
“뭐? 술은 마시지도 않았잖아!”
발끈한 강위룡의 항변을 깡그리 무시한 채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내 혼례식이니 내 마음이야. 단 의원, 승!”
“이 자식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강위룡은 금방이라도 출수할 것처럼 살기를 끌어 올렸다.
신성한 내기를 졸렬한 방법으로 훼방하는 범계위의 행태에 적잖게 분노한 것이다.
반면 범계위는 범계위대로 눈을 부라리며 팔을 걷어붙였다.
“뭐. 해보자고?”
이대로 격돌할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에 단악선이 재빨리 뛰어들었다.
“내기는 공정해야죠.”
“하지만 단 의원…….”
자신을 만류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걱정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그러나 단악선은 웃으며 범계위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절 믿으세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강위룡을 바라봤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이번 내기의 심판은 무림과 관련이 없는 분이 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단악선이 연무장 한쪽을 지목했다.
“저분들에게 심판을 맡기면 어떨까요?”
단악선이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진 강위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관부의 관리들도 어차피 하객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 아니냐? 그렇다면 자연 신랑인 범가 놈의 편을 들 터.”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타당한 반론이었던지라 단악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하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는 천하의 강위룡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저씨가 직접 심판을 보세요.”
“뭐라?”
“술맛을 논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식견을 지니고 계시잖아요. 무엇보다 내기에는 진심이시고요. 그런 분께서 설마 거짓말을 하진 않으실 테니까요.”
단악선의 제안에 당황한 사람은 강위룡뿐만이 아니었다.
연무장을 에워싸고 있던 군중들도 동요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내기를 건 상대에게 승부를 결정지을 권한을 쥐여 줄 줄이야.
장내의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마른 짚에 불이 번지듯 순식간에 번져 가는 소요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동의하신다면 시작할까요?”
“정말 나보고 판단하란 말이더냐?”
강위룡의 반문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제일 공정한 것 같아요.”
“난 뒷말이 나오는 게 싫다.”
“그래서 아저씨께 판단을 맡기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질 리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 어떤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단악선의 눈빛에 강위룡은 호승심이 치밀었다.
“좋다! 내 이름과 명호를 걸고 그 어떤 거짓 없이 솔직하게 평가할 것을 맹세하마.”
“대신 순서는 제가 정해도 될까요?”
강위룡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그럼 먼저 아저씨의 술을 드셔 보세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강위룡이 술이 담긴 병을 집어 들었다.
꿀꺽.
입으로 가져간 병을 기울여 한 모금의 술을 목으로 넘긴 뒤 강위룡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 안을 감싸는 알싸한 꽃 내음과 더불어 진한 과실의 향이 긴 여운을 남기며 더없이 흡족한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자신이 직접 빚은 술임에도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방금 마신 술은 도원향은 아니었다.
도원향은 까다로운 숙성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며칠 만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 도원향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원주(原酒)가 분명한 만큼 감히 천하의 그 어떤 술도 비견할 수 없다 자부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자 유려한 잔향이 코끝을 감돌았다.
다음 한 모금을 갈구하게 만드는 선명한 유혹.
진정 명주라 부를 수 있는 술만이 지닌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강렬한 느낌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단언컨대 세상에 이 술을 이길 만한 술은 없다.”
그 말에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던 범계위가 움찔했다.
그가 서 있는 곳까지 느껴지는 강렬한 주향!
그것만으로도 강위룡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빙긋 웃은 단악선이 가지고 온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쪼로록.
술잔을 채우는 맑고 투명한 액체를 응시하던 범계위의 눈에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왜 아무런 향기도 안 나지?’
이를 느낀 것은 범계위만이 아니었다.
강위룡 역시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간혹 오래 숙성된 술의 경우 향과 맛이 깨어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맵고 쓰지만 시간이 지나 공기와 닿으면 깊이 숨어 있던 향긋하고 달콤한 풍미가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하나 단악선이 들고 있는 주전자에 담긴 술은 기껏해야 사흘 만에 만들어 낸 술.
애당초 그런 조건에 부합되지도 않았다.
“드셔 보세요.”
단악선이 내민 술잔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강위룡이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
강위룡의 눈매가 꿈틀한 것도 그때였다.
“이게 뭐냐?”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강위룡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감히 지금 날 우롱하는 것이냐!”
와직.
강위룡이 주먹을 움켜쥐자 들려 있던 술잔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강위룡이 살기를 담아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으로 나를 모욕해?”
강위룡 주변의 경물이 한순간 일그러져 보였다.
그가 뿜어낸 기파에 실려 있는 지독한 경력에 의해 한순간 대기가 뒤틀린 것이다.
범계위가 재빨리 단악선 앞으로 막아섰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새 초악량과 한설화도 단악선 곁으로 달려왔다.
그때 단악선이 크게 외쳤다.
“괜찮아요. 아직 내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 말에 강위룡은 더욱 크게 격노했다.
“이놈! 이건 술이 아니지 않으냐!”
범계위가 발끈했다.
“지금 우리 단 의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그런데 단악선이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술이 아니에요.”
“어? 정말?”
당황한 범계위가 단악선이 가져온 주전자를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곤 이내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진짜 술이 아니네?”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에도 당혹감이 번졌다.
강위룡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감히 날 놀려?”
그러나 살기 가득한 강위룡의 분노를 마주하고도 정작 단악선은 태연했다.
“화를 내시기 전에 아저씨가 만든 술을 다시 드셔 보세요.”
“뭐라?”
“화는 그다음에 내시고요.”
단악선의 차분한 표정에 강위룡이 보란 듯이 자신이 만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강위룡의 신형이 석상처럼 굳은 것도 동시였다.
“이, 이건 대체?”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거리는 강위룡의 모습에 범계위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단 의원.”
의아해하는 일행의 모습에 범계위가 웃으며 말했다.
“술과 함께 마시면 효과를 드러내는 독이지? 흐흐, 우리 단 의원이 독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군. 쌤통이다, 이 자식아.”
평소라면 곧바로 받아쳤을 강위룡은 충격을 받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초악량과 한설화가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사실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그때였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강위룡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분명 이보다 더 뛰어난 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부했건만…….
그 철옹성 같던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 마셨을 때는 완벽하게 숨어 있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희미한 난꽃 향이 거짓말처럼 확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자두 같기도 하고 복숭아 같기도 한 풋풋한 향긋함이 더욱 두드러지며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술이 되어 버렸다.
확실한 건 처음 마셨을 때보다 훨씬 다양하고 뛰어난 풍미를 지닌 술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를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술은 만들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술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
“환정차(換正茶)라는 거예요.”
차분하게 이어 간 단악선의 설명에 강위룡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는 의원인 만큼 누구보다 많은 독을 다뤄 왔어요. 독을 구분하기 위해 맛을 보는 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고요. 하지만 미량의 독이라 할지라도 반복해서 맛을 보다 보면 미각이 마비되어 어느 순간 적량을 구분할 수 없게 돼요. 그래서 늘 독을 맛볼 때는 환정차를 함께 마셔 감각을 유지시켜요.”
그리고 거기에는 뜻밖의 효능도 있었다.
미각을 극대화해 독에 따른 미세한 맛의 변화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식도와 위장 같은 점막을 보호하는 효과도 뛰어나죠. 술도 달리 생각하면 몸속에 들어가면 독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따라서 환정차를 마시면 술맛은 더욱 선명해지고 속이 부대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강위룡은 어이가 없었다.
“이 내기는 내가 이겼다. 처음부터 누가 더 맛있는 술을 만들어 내는지가 내기의 관건이었으니까.”
“맞아요. 전 술을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저씨가 만든 술을 더 맛있게 만들어 낸 건 분명하죠.”
“비겼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단악선이 웃으며 강위룡을 올려다보았다.
“그걸 결정하시는 건 어디까지나 아저씨 몫이죠.”
“허허. 이것 참.”
강위룡은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술을 만드는 내기 자체는 자신이 이겼다.
하나 단악선은 그 술을 더욱 맛있게 만들 방법을 내놓았다.
양쪽이 한 번씩 이겼으니 이로써 비긴 셈.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비긴다면 단악선이 승리하는 조건을 전제로 한 내기였다.
단악선과 자신이 만든 술을 번갈아 바라보길 잠시.
이윽고 강위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패배를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