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8)
신마의선-298화(298/500)
신마의선 (298)
강위룡이 패배를 인정하자 연무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사위를 가득 메웠다.
이곳에 자리한 대부분이 강위룡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던 상황.
그랬던 만큼 예상을 뒤집는 결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특히나 무위 쪽 인사들은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의를 다해 단악선의 명호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내기의 결과를 받아들인 강위룡도 깨끗하게 승복했다.
“약속대로 도원향의 제조 방법을 네게 알려 주마.”
그런데 뜻밖에도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그 제조법을 어디에 쓰겠어요.”
“뭐?”
강위룡은 일순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날 모욕할 셈이냐?”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어째서…….”
“제가 아무리 도원향을 만들어 낸다 한들 아저씨께서 만든 도원향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거든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강위룡이 눈을 껌벅였다.
“이름만 같을 뿐, 어딘가 부족한 술이라면 지금껏 쌓아 올린 도원향의 명성에 누가 될 거예요. 그건 아저씨에게도 분명 슬픈 일이겠죠.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만들지 않으려고요.”
강위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할 말을 잃은 강위룡이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그렇다면 다른 원하는 걸 말해라.”
“굳이 그래야 하나요?”
단악선의 반문에 강위룡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한다. 이처럼 내기를 흐지부지 끝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같은 전례를 남길 수는 없다.”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마상단에서 도원향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 말에 강위룡이 정색하며 펄쩍 뛰었다.
“뭐라? 도원향을 돈을 받고 팔란 말이냐?”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도원향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대답에 강위룡은 일순 멈칫했다.
“인정받고 싶으신 거잖아요?”
“……!”
“단순히 혼자 즐기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굳이 도원향을 걸고 내기를 하진 않으셨을 테니까요.”
강위룡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듣고 나니 스스로도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단악선은 더욱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대로라면 도원향은 언젠가 사장되고 말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도원향이 왜 사라져?”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단악선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기 마련이에요. 소문이나 명성은 특히 그렇고요. 물론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고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걸 전설이라고 부르죠.”
“전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어요.”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강위룡이 되물었다.
“그게 뭐냐?”
“바로 사람이에요.”
“사람?”
“네. 도원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자주 회자될 테니까요. 세월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그것뿐이에요.”
고민에 잠긴 강위룡의 모습에 단악선이 슬쩍 웃었다.
“물론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원하신다면 무위에 아저씨만을 위한 주조장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그곳이라면 얼마든지 비밀을 유지하며 도원향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게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
“저도 맛보고 싶거든요.”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언젠가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고금제일주라 불리는 도원향의 명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요. 만약 그때 도원향이 남아 있지 않거나 실전된다면 굉장히 안타까울 것 같아요.”
그 말에 강위룡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그야말로 쾌도난마(快刀亂麻).
그 어떤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언행 앞에 까다롭기로는 천하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강위룡도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허, 못 당하겠군.”
이윽고 마음을 굳힌 강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단, 삼 년이다. 삼 년간은 무위에 머물 것이나, 이후 행보는 그때 가서 결정하도록 하겠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아마도 무위가 마음에 드실 거예요.”
멀리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진명진인과 정연신니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단순히 내기에서 이긴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주광도귀를 무위에 눌러 앉히다니!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던 그때.
“그러면 이제 혼례를 마쳤으니 범 아저씨와의 내기도 끝난 건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강위룡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지. 범가가 이겼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무장 위에서 범계위가 사라졌다.
잠시 후.
쿠웅.
도원향이 들어 있는 커다란 항아리를 옆구리에 낀 채 다시 나타난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도원향과 함께하는 축하연이라니……. 그야말로 최고의 자리가 되겠군.”
그 말에 장내에는 기이한 열기가 가득 찼다.
하지만 이어진 코웃음 소리에 뜨겁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흥! 누구 마음대로?”
범계위가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부라렸다.
“이제 이건 내 거야. 그러니 어디 손대기만 해 봐.”
당황한 초악량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언제는 다 내어 줄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냐?”
그러나 범계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끄러! 우리 단 의원이 마시고 싶다잖아! 그때까지 이건 봉인이야! 그렇게 알아, 다들!”
여기저기서 실망 가득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혹시라도 도원향을 한 모금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들떠 있던 중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날 밤.
떠날 손님들은 떠나고, 각 문파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수뇌부와 무위 쪽 인사들이 창해각(滄海閣)에 모였다.
해남파의 모든 대소사가 결정되는 곳인 만큼 원래는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곳이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문주인 벽대경이 직접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벽대경이 직접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참석한 인사들도 축하를 건네며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쿵.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혜공대사가 명아주 지팡이를 엮어 만든 선장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인데, 이 자리를 빌려 빈승이 한 말씀 드려도 되겠소이까?”
창해각에 자리한 모든 이의 시선이 혜공대사에게 쏠렸다.
“곧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늙은이의 괜한 기우로 그쳤으면 좋겠지만, 돌아가는 저간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소이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이들이 아니었다.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나름의 대비를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 이런 자리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중지를 하나로 모은다면 더욱 뜻깊지 않을까 싶어 부득이 분위기를 깨게 되었소.”
그렇게 좌중의 분위기를 환기한 혜공대사가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빈승이 소시주께 몇 가지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오.”
“하문하세요. 경청하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단악선의 눈빛에 혜공대사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모종의 일로 한동안 서장에 다녀오셨다 들었소.”
혜공대사는 자연스럽게 단악선 쪽으로 주도권을 넘겼다.
이에 단악선은 그간 겪은 일을 가감 없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포달랍궁을 방문한 이유와, 그곳에서 얻은 진실.
그리고 당가와 일전을 치르게 된 이유까지…….
모든 설명을 마친 단악선이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단악선이 심각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머지않아 마교가 준동할 거라는 사실이에요.”
곳곳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비로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정연신니가 나직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모든 위험을 직접 감내한 단 시주의 노고에 빈니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군요.”
그 말에 나름 명숙이라 자부하는 인사들이 저마다 곤혹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대로였다.
마교와 당가 사이의 관계를 밝혀낸 것도 단악선이었고, 당가를 무너트린 것도 결국엔 단악선이었다.
혜공대사를 보필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던 법료가 나직한 불호를 터트렸다.
“아미타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지금 중원의 상황이 딱 그러하군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중인들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의 상황과 정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모든 게 마교가 원하는 흐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교가 입은 피해라고 해 봐야 고작해야 육마존 한 명을 잃은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들을 추종하는 새외오세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을 무너트렸지만 아직 남은 세력들이 건재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마교가 지닌 진짜 전력도 아니었다.
반면 중원 쪽은 이미 상당한 피해가 누적되어 있었다.
구대문파 중 한 곳인 청성파는 거듭된 두 번의 혈사로 인해 상당수의 고수를 잃었다.
더구나 기존의 오대세가 역시 이전처럼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용세가는 멸문했고, 당가 역시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거기에 황보세가도 스스로 봉문을 자처했다.
무림맹주였던 남궁백의 죽음으로 인해 남궁세가 역시 크게 위축되었고, 제갈세가 또한 제갈연의 일로 인해 오대세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정마대전 당시에 남궁세가를 중심으로 결속해 마교와 싸웠던 무림맹 시절을 생각하면 가히 몰락이라는 표현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
무엇보다 개방의 방주였던 이립의 사망은 중원 무림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진 사파의 고수들 또한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대다수가 마교 쪽에 포섭된 정황이 분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초악량, 범계위, 한설화와 시선을 교환한 단악선이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마교와의 전쟁을 선언하겠어요.”
“……!”
놀란 중인들을 향해 단악선은 단호하고도 확실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당장 눈앞에 마주한 마교의 위협을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어요. 반드시 동참하라고 여러분께 강요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 해서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을 거고요.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하나, 우리의 행보를 의심하거나 곡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지금은 그 여느 때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합심해야 할 때니까요.”
어린 나이라 믿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박력에 진명진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명숙들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일까.
장내에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미력하나마 곡주님과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저 역시 기꺼이 제 목숨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무위의 사파 무인들이 앞다투어 단악선을 지지했다.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지는 열기를 피부로 직접 느낀 벽대경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해남파 역시 함께하리다.”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과 아미파의 장문인인 정연신니도 뜻을 같이하기로 밝혔다.
“본 파도 최선을 다해 협조할 것을 약조하겠소.”
“그곳이 어디든 단 의원 곁에는 늘 아미가 함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