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99)
신마의선-299화(299/500)
신마의선 (299)
“허허, 이거 참…….”
주위를 둘러보던 진명진인은 단번에 이 자리의 주도권을 거머쥔 단악선이 새삼 놀라웠다.
“옆의 한 자리를 내어 준다면 화산 역시 기꺼이 협조하겠소.”
상황이 이쯤 되자 한쪽에서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악호군도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녹림도 동참하지.”
그렇게 모두의 확답을 얻어 낸 단악선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비록 이 자리에는 없으나 곤륜과 개방 역시 자신을 지지할 터.
구파일방의 과반수가 넘는 협력을 얻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아직은 서로가 뜻을 함께하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형태의 연합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당장은 이걸로 만족했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의 힘을 결집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한 누군가는 가장 앞에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단악선이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 * *
다음 날.
하나둘씩 해남파를 떠나는 손님들을 단악선은 끝까지 남아 배웅했다.
그러고 나서야 단악선도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범계위는 고민 끝에 해남도에 남기로 결정했다.
아직 벽화령의 무공 전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혼 시작부터 부부가 떨어져 있을 수는 없는 일.
“죄송해요, 저 때문에.”
벽화령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공만 전수하고 가가와 함께 바로 합류할게요.”
범계위도 쓴 입맛을 다셨다.
“미안해, 단 의원.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옆에서 도와야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가 될 것 같아.”
범계위가 배웅 나온 해남파의 고수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떻게 된 게 화령이 빼곤 다 둔재들뿐인 거야?”
졸지에 둔재로 전락한 해남파의 무인들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헛기침만 터트렸다.
반면 단악선은 미소로 그들을 독려했다.
“힘내세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실 거라 믿어요.”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해남파 무인들은 이내 스스로 각오를 다지듯 결연한 눈빛을 흘렸다.
‘앞으로 해남파의 역할이 중요해.’
단악선에게 있어 해남파는 큰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혼사를 통해 정파와 사파가 하나가 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또한 가족과도 같은 범계위가 벽화령과 혼례를 치른 이상 해남파 역시 단악선에게는 이미 가족과도 다름없었다.
그래서 단악선도 더욱 많이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 잊을 뻔했네요.”
“이게 뭔가?”
단악선이 건넨 상자를 의아한 표정으로 받아 든 벽대경이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건……!”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벽대경의 모습에 단악선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더 많이 챙겨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재료가 부족해 원하는 만큼 만들 수가 없거든요. 대신 내공 증진을 도와줄 수 있는 영약들은 충분히 공급해 드릴게요.”
“이, 이래도 되는 거요?”
어찌나 놀랐던지 벽대경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상자 안에 담겨 있는 단약은 성수신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세 개씩이나!
무림에 적을 둔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림의 대환단을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진 무가지보가 바로 성수신단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해남파가 새롭게 거듭나 강자로 도약하는 것이 꿈만은 아니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제는 서로 남이 아닌걸요. 대신 외부에는 비밀로 해 주세요.”
“다, 당연히!”
자신이 먼저 부탁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로 흘러 나가면 당장 해남도가 발칵 뒤집힐 터.
이때 범계위가 성큼성큼 걸어와 단악선을 와락 끌어안았다.
“단 의원. 나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잠시 떨어져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 의원 잘 챙기슈.”
평소라면 코웃음 치며 핀잔을 던져 댔을 초악량이 웬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초악량은 여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손에 들린 술병 때문이었다.
단악선의 설득에 결국 범계위가 도원향을 나누어 준 것이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단악선이 배에 몸을 실었다.
돛에 한가득 바람을 안은 배는 빠르게 수면을 갈랐고,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범계위의 모습도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제 무위로 가는 게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들를 곳이 있어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거대한 격랑.
그 안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머지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힘든 상황을 헤쳐 온 자신을 위해 단악선 스스로 허락한 선물이기도 했다.
* * *
호북성 균현(均縣)의 작은 마을.
도교의 영산(靈山)인 무당산을 남쪽에 낀 이곳 마을의 외진 공터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들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파파팡!
어지러운 수영과 파공음이 난무하며 사방으로 경력이 튀고, 자욱한 먼지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로 훌쩍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린 두 사람 중,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소년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야! 우리 운 아우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방심했다가는 조만간 따라잡히겠어?”
방소방의 너스레에 운중산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핀잔을 던졌다.
“그 말만 벌써 일 년째다. 이제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나? 방금 전에도 반 수 차이로 내가 이겼다.”
“중산아! 너 코피!”
“……?”
“거기 가슴팍에 묻었잖아.”
고개를 숙여 앞섶을 확인한 운중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코피는커녕 먼지도 묻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냐, 인사 잘 받았다.”
기다렸다는 듯 냉큼 입을 연 방소방이 킬킬대며 웃자 비로소 운중산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살을 찌푸린 운중산이 뭐라 한 소리 하려는 찰나.
웃음을 거둔 방소방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악선이는 지금쯤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
“지금쯤 우리보다 훨씬 강해졌겠지?”
“원래부터 우리보다 강했다.”
“……재미없는 자식.”
방소방은 갑자기 단악선이 보고 싶어졌다.
눈치도 없는 저 벽창호만 주야장천 상대하고 있으니 단악선이 절로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내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이제는 우리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사람이 돼 버렸네, 우리 악선이는.”
어디서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방소방의 푸념이 이어졌다.
“우리끼리 여기서 아등바등하고 있을 때 악선이는 어느새 정, 사파를 아우르는 거물이 됐어.”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다.”
“그건 우리 생각이고. 세상인심이 우리 생각만큼 순진한 줄 알아? 그렇게 따지면 거지는 왜 있고 억울한 사람은 왜 생기겠냐?”
“…….”
“하아……. 다음에 다시 만나면 뭐라 불러야 하지? 단 공자? 그것도 아니면 단 대협?”
“난 원래대로 그냥 이름이 좋은데.”
“……!”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운중산과 방소방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인지 공터 한편에 서서 웃고 있는 단악선을 발견한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형을 날렸다.
“악선아!”
“하하. 오랜만이야.”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기도 잠시.
“천하의 위명이 자자하신 우리 친구 신마의선께서 여긴 갑자기 어쩐 일이야?”
여전한 방소방의 너스레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냥. 너희가 보고 싶어서.”
“흐음……. 수상한데? 뭐지? 이 짙은 음모의 냄새는?”
퍽.
“악! 이 자식이 비겁하게 방심한 틈을 노려?”
방소방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찬 운중산이 걱정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바쁘다 들었다.”
단악선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바빠질 것 같아. 그래서 그 전에 너희를 만나고 싶었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기회? 무슨 기회?”
말꼬리를 잡으며 끼어들던 방소방이 운중산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재빨리 단악선 뒤로 몸을 피했다.
단악선이 그런 친구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너희가 그리워서 손이 근질근질했거든.”
“자, 잠깐만! 악선아, 그 눈빛은 뭐야?”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선 방소방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단악선이 날린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오! 제법인데?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악선이 운중산의 아랫배를 향해 무릎을 걷어 올렸다.
하나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운중산은 부드러운 장력으로 단악선의 공격을 흘려 내며 수비 자세를 갖췄다.
“우리를 보러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운중산의 물음에 단악선은 화려한 금나수로 대답을 대신했다.
타타타탁.
손과 손, 팔과 팔꿈치가 부딪치며 요란한 격타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열세에 몰린 운중산이 내심 당혹성을 삼키던 그때.
“흥! 친구의 위기를 못 본 척할 수 없지! 내가 누구? 협의하면 개방, 개방하면 방소방! 내 이름에 왜 방 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겠어?”
단악선과 운중산의 공방에 방소방이 난입하자 순식간에 상황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먼지구름 속에서 뒤얽혀 손속을 겨루는 세 소년의 모습.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초악량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행복해 보이는군.”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하루.
단악선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정작 단악선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선택한 것은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일상이었어야 했을 소박한 행복.
그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단악선의 삶이 안쓰러웠다.
그래서일까.
환하게 웃는 단악선의 미소가 그 여느 때보다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쳐 나가떨어진 친구들을 보며 단악선이 미안한 눈빛을 던졌다.
“괜찮아? 내가 너무 심했나? 반가운 마음에 그만…….”
“아니거든? 헉헉, 너 딱 반 각만 기다려.”
“나도……. 후우후우, 아직이다.”
연신 거친 숨을 토해 내면서도 방소방과 운중산이 힘겹게 대답했다.
“이렇게 우리가 보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거냐?”
눈을 흘기던 방소방이 돌아온 단악선의 대답에 멈칫했다.
“힘들 때마다 이 순간을 고대하며 버텨 왔거든.”
“고작……?”
“당연하지. 나에게 친구는 너희들뿐이잖아.”
그 말에 방소방과 운중산이 시선을 교환했다.
“…….”
“…….”
그러기를 잠시.
“으으.”
“큭.”
억지로 신형을 일으켜 세운 두 사람이 재차 자세를 잡았다.
“좋아.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방소방의 말에 운중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이번에는 두 사람이 먼저 몸을 던졌다.
* * *
“하아…….”
무위 입구에서 먼 곳을 응시하던 능소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범계위의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던 사파인들이 무위로 속속 복귀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왜 그리 한숨인가?”
사무심의 물음에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곡주님께서는 대체 뭐가 아쉬우셔서 그 사고뭉치를 꼬드기셨답니까?”
강위룡이 무위에 온다는 소식에 능소밀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모습에 소적산도 덩달아 시름이 깊어졌다.
그나마 능소밀은 관부의 일을 핑계로 자리라도 비울 수 있지, 신마상단의 단주인 자신은 싫어도 이곳을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런 무서운 분들은 하나같이 이곳으로 모이는 걸까요?”
“하아.”
“후우.”
번갈아 가며 한숨을 내쉬던 것도 잠시.
능소밀이 중얼거렸다.
“소문에 따르면 괴팍하기로는 범 선배님 못지않다던데…….”
사무심이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오래전에 강위룡과 만나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 선배님은 그나마 낫지.”
“예?”
“방금 뭐라고……?”
무심코 입을 열었던 사무심은 차마 애처로운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혼잣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