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
신마의선-3화(3/500)
신마의선 (3)
“그나저나…….”
화제를 바꾸기 위해 초악량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네 부모님들은 어째서 보이지 않는 것이냐?”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다곤 하나 단악선은 어린아이다. 아이 홀로 이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것이 내심 의아했던 초악량이다.
다만 기회가 없어 물어보지 못했을 뿐.
하지만 초악량은 단악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금방 후회했다.
“돌아가셨어요.”
“저런! 어쩌다…….”
초악량이 황급히 하던 말을 삼켰다.
괜한 것을 물었다 싶었다. 밝고 명랑하던 아이가 지금은 온통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죄책감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묵묵히 치료를 이어 가던 단악선이 침을 상자에 갈무리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단악선이 모옥 밖으로 나섰다.
단악선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초악량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자책했다.
“염치만 없는 것이 아니라 눈치도 없구나.”
천하오절 혈수존자가 어린 의원의 표정 변화 하나에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 * *
단악선은 시전을 지나 오래된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끝에 위치한 허름한 약재상.
그곳이 오랫동안 거래해 온 단골 가게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단악선이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어? 이게 누구신가?”
유발(乳鉢)로 약재를 빻고 있던 중년인이 반색하며 단악선을 맞았다.
“어서 오시게, 단 의원.”
“잘 지내셨죠?”
“허허, 덕분에 잘 지내지. 그간 별고 없으셨고?”
약재상 주인은 스스럼없이 단악선을 대했다.
“그럭저럭요.”
단악선이 가지고 온 약재들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약재상 주인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가져온 것도 하나같이 상품이구나. 약속대로 이번부터 일 할을 더 쳐주마.”
“감사합니다. 돈 대신 약재로 주세요.”
단악선이 내민 종이를 건네받은 약재상 주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웅황(雄黃)과 자황(雌黃), 거기에 사향(麝香)까지?”
“어려운가요?”
“다른 건 몰라도 사향은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요즘 어째 사향이 부르는 게 값이야.”
“많이 비싸요?”
“몇 달 전까진 같은 무게의 금과 같더니, 지금은 그걸론 냄새도 못 맡게 하더구나.”
약재상 주인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사향 대신 우황(牛黃)을 써 보는 건 어떠냐? 그거라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원하는 효과에는 미치지 못해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알아봐 주시겠어요?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그러냐? 알겠다. 한번 수소문해 보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우리 집에서 팔리는 귀한 약초 대부분이 네가 가져다주는 것인데…….”
약재상 주인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웅황과 자황은 있으니, 가서 한번 봐라. 어차피 네가 직접 고를 거 아니냐?”
“네!”
명랑하게 대답한 단악선이 약재들이 보관되어 있는 서랍장을 향해 다가섰다.
그 모습을 보며 약재상 주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넌 항상 그곳만 가면 좋아하는구나.”
“네. 엄마 아빠가 떠오르거든요.”
단악선이 약재들을 꼼꼼히 살피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약재상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가 이 마을의 의가요?”
약재상 주인이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을 던진 사람을 포함해 나머지 두 사람도 모두 칼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눅 든 얼굴로 그가 대답했다.
“의가라 할 수준은 아니고 그저 약재상일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궁색한 마을인지라…….”
한 차례 가게 안을 둘러본 사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최근에 외지인을 본 적이 없소?”
“외지인이라면?”
“아마 꽤나 심한 부상을 입고 있을 것이오.”
“그런 사람은 이곳에 온 적이 없습니다.”
“그렇소? 혹 그럼 여기 가까운 곳에 의가나 의원이 있소?”
“의원이라면…….”
약재상 주인이 자신도 모르게 단악선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사내들의 시선 역시 단악선에게 향했다.
약재상 주인이 순간 버럭 호통을 쳤다.
“저놈이 또 저러고 있네? 야, 이 녀석아. 그거 다 파는 물건이야! 네 녀석 장난감이 아니라고!”
뒤늦게 아차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사내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다행히 그의 임기응변이 통했는지 단악선을 향한 사내들의 관심이 거두어졌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의 눈엔 놀거리를 찾는 동네 꼬마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가 다시금 약재상 주인을 바라봤다.
“낯선 자가 보이거나 관련된 소문을 들으면 객잔으로 연락 좀 주시겠소? 내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드리겠소. 하지만 혹시라도 숨긴다면…….”
사내가 말끝을 흘렸다.
대신 뿜어내는 섬뜩한 예기를 뒤집어쓴 약재상 주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명심하시오. 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이니 그자를 돕는 자 역시 동일하게 처우할 것이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내의 엄포에 약재상 주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무인들이 약재상을 나섰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단악선이 작게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을 건드리는 놈은 나쁜 놈.”
무공도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 이처럼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다니.
확실히 초악량과 대비되는 행동이었다.
약재들을 챙겨 일어서는 단악선을 향해 주인이 말했다.
“좀 전에 봤지? 요즘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한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이게 무슨 신경 축에나 들겠니.”
약재상 주인이 문밖까지 단악선을 배웅했다.
“두 번, 세 번 조심해라. 괜한 일에 말려들지 말고.”
단악선은 신마곡으로 돌아온 뒤 곧장 초악량이 머무는 모옥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 뒤 단악선이 물었다.
“아저씨를 찾으러 온 건가요?”
“아마도 그럴 게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시신을 확인하기 전엔 마음을 놓지 못할 테니까.”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무림맹 놈들이겠지.”
초악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놈들이 얼마 전 나와 몇몇을 잡아 죽이겠다 천명했으니.”
그들이 무림 십대악인을 토벌을 선언한 것도 벌써 넉 달 전이다. 해마다 있던 일이니 이번에도 대충 적당한 명분을 세우고 마무리되리라 여겼었는데, 아니었다.
나한 당주와 당가의 가주, 남궁세가의 장로까지 나설 줄이야. 자신을 죽이겠다고 무림맹의 핵심 고수들을 모두 투입할 거라곤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녀석들도 무사하진 못하겠지.”
십대악인의 수좌이자 천하오절 중 하나인 자신조차 이러할진대 다른 사람들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엄마가 매번 말했어요. 무림인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미안한 눈빛을 던졌다.
“그나저나 나 때문에 네가 곤란하게 되었구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여긴 쉽게 찾기 힘들 거예요. 입구에 진법이 있거든요.”
“나 때문에 계속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말이냐?”
“아직 치료가 안 끝났잖아요. 적어도 혼자 움직일 수 있으실 때까진 제가 치료해야 돼요.”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
“제가 아니면 치료가 불가능하니까요.”
“아…….”
초악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초악량이 단악선을 바라봤다.
“혹시 이곳에 한 명을 더 데려와도 되겠느냐?”
“그분도 환자인가요?”
초악량의 얼굴 위로 모호한 감정이 떠올랐다.
“환자라면 환자지. 증상만으로도 따진다면 나보다 더 심할 게다.”
“어떤 증상인데요?”
“피만 보면 미치는 광증이 있다.”
단악선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래요? 무척 흥미로운 경우네요.”
“왜 그리 좋아하느냐?”
“일단 증상부터가 특이하잖아요. 가능하다면 직접 보고 싶은데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의아해하는 단악선에게 초악량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도 십대악인 중 한 명이거든.”
“아저씨처럼요?”
“나랑은 다를 게다. 여러모로…….”
단악선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전 상관없으니 데려오세요.”
초악량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 그래도 녀석을 데려오면 약값은 해결이 될 게다. 그놈 은신처에 값나가는 물건들이 꽤 많으니.”
“일석이조네요. 그런데 어디로 가서 그분을 찾죠?”
초악량이 손을 흔들었다.
“녀석은 내가 데려오마.”
“많은 사람들이 아저씨를 찾고 있을 텐데요?”
“그래도 내가 가야지. 다른 사람이 설득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게다가 이 이상 널 위험하게 할 수도 없고.”
“괜찮으시겠어요?”
초악량은 가슴 한편이 간지러웠다.
“걱정 마라. 열흘 안에 다녀오마. 그런데…….”
잠시 머뭇거리던 초악량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 두겠다만, 광증 말고도 그놈이 좀 특이하다.”
“특이한 걸로 치면 우리 부모님만 할까요.”
그 말에 초악량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그럼 바로 다녀오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는 초악량을 단악선이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단악선이 재빨리 자신의 처소에 다녀왔다.
“어지럼증이 생기면 챙겨 드세요.”
단악선이 건넨 약을 받아 든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다행히 녀석의 은신처가 이곳과 멀지 않으니 열흘 안에는 돌아오마.”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이 곧장 모옥을 나섰다.
내공을 쓸 수 없었지만, 이렇게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단악선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조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참을 걸어 신마곡을 벗어난 초악량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아직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단악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신마곡을 떠나온 지 닷새째.
초악량은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검단산(劍湍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칼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날카로운 바위들이 즐비한 계곡. 그 사이로 무섭게 날뛰는 급류가 곳곳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여울에 휩쓸려 갈가리 찢겨 나갈 터.
“후우.”
초악량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공이 회복되면 이런 것쯤 문제도 아니겠지만, 지금은 촌부에게도 따르지 못할 체력이다.
그럼에도 쉴 여유가 없는 이유는 무림맹이 이곳을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접근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놈들의 정보 조직인 천이단의 눈과 귀는 오래지 않아 이곳을 찾아낼 것이다.
초악량은 더욱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비죽이 솟아 있던 날카로운 바위들 대신 널찍한 자갈밭이 나타난 것이다.
무지막지한 경력에 인위적으로 바뀐 지형이다.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초악량이 부서지다 만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가지고 온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코를 찌르는 알싸한 주향이 바람을 타고 계곡을 가득 메웠다.
쿠웅!
오래지 않아 육중한 충격과 함께 바위 옆으로 사내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섬뜩한 파공음이 대기를 찢었다.
쉬익.
“나다.”
우뚝.
순식간에 짓쳐 든 거대한 물체가 초악량의 코앞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