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
신마의선-30화(30/500)
신마의선 (30)
초악량과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입구로 향했기 때문이다.
일 층 입구로 누군가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사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창백한 얼굴과 눈 밑의 짙은 음영 때문에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사내였다.
“어? 저놈?”
범계위의 말에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초악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또한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는 분이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닥에서는 아주 유명한 돈 귀신이다.”
“돈 귀신이요?”
“이름은 사무심. 겪어 본 사람은 누구나 치를 떠는 지독한 수전노다. 오죽하면 명호가 수전귀야(守錢鬼爺)일까.”
범계위가 설명을 보탰다.
“돈에 대한 집착이 장난 아니야. 게다가 돈 쓰는 건 또 얼마나 인색한지, 초 형은 감히 비벼 보지도 못해.”
초악량이 범계위를 노려봤다.
“난 검소한 거다.”
그 말에 한설화의 면사가 풀썩였다.
이를 본 초악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면사 때문에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코웃음 치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자가 검소한 건 미덕이지만 가난뱅이가 검소하면…….”
한설화의 말을 범계위가 곧장 받아 호응했다.
“지지리 궁상이지.”
“이것들이?”
다른 건 몰라도 서로를 헐뜯는 것에는 진심인 그들이었다.
그 순간 호원루 안으로 들어서던 사무심이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사무심이 들어오던 그대로 돌아 나갔다.
일 층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린 것도 그때였다.
“젠장!”
“추적해!”
그들이 사무심을 쫓아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텅 빈 호원루 안에는 단악선 일행을 제외하면 다섯 명의 손님이 전부였다.
“무림맹 놈들이 기다리던 게 저놈이었어?”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러게? 녀석이 사파의 인물이긴 하지만 무림맹에게 쫓길 이유는 딱히 없을 텐데?”
이때 다른 손님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저자가 수전귀야지?”
“요 며칠 난주가 뒤숭숭한 이유가 저자 때문이었군.”
“듣자니 저자를 잡기 위해 인근의 파사단이 전부 집결했다더군.”
“무림맹이?”
“몰랐나? 얼마 전에 무림맹에서 백대악인 척살을 천명하지 않았나?”
초악량과 범계위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이 아는 사무심은 분명 흑도 무림 상위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악인들 대신 사무심을 백대악인에 욱여넣은 건 상당히 억지스러웠다. 놈이 돈에 집착하긴 해도 나름의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무심 그놈, 손속이 좀 독해서 그렇지 괜찮은 놈 아니요? 그놈이 구해 준 고아들만 천 명이 넘는 걸로 아는데?”
이때 점소이가 주문했던 음식들을 가져왔다.
“와!”
탁자 가득 놓인 화려한 음식들의 향연에 단악선은 연신 감탄성을 터트렸다.
명성에 걸맞게 요리들은 하나같이 별미 중의 별미였다.
배추를 이용해 만든 개수백채(開水白菜)는 맑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었고, 닭을 재료로 만든 낙산봉봉계(樂山棒棒鷄)와 실처럼 가늘게 찢은 고기에 양념을 끼얹은 우육편사(牛肉編絲) 역시 훌륭한 풍미를 자랑했다.
그런데도 초악량과 범계위는 젓가락만 깨작거릴 뿐, 좀처럼 음식을 들지 않았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단악선이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어디 불편하세요?”
“응? 아니다, 그냥 입맛이 좀 없구나.”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슬쩍 의자를 뺐다.
“난 뒷간 좀 다녀오리다.”
초악량의 눈 위로 기광이 일렁였다.
“그럼 난 산책 좀 해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호원루를 나섰다.
때마침 이곳으로 향하던 풍진성과 입구에서 마주쳤다.
“벌써 식사를 마치셨습니까?”
풍진성의 물음에 초악량이 말끝을 흐렸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초악량과 범계위의 표정을 살피던 풍진성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눈치 빠른 그가 두 사람의 눈에 감도는 살기를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부디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풍진성의 당부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범계위가 이토록 자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사자무언(死者無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 * *
“헉헉!”
사무심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한 지 오래였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지만 파사단의 천라지망을 벗어나기란 요원했다.
까앙!
사무심이 자신의 독문병기인 철척(鐵尺)을 휘둘러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을 쳐 냈다.
서컥.
하지만 그 순간 은밀하게 접근한 한 자루의 비수가 그의 옆구리를 긋고 지나갔다.
“크으……!”
악다문 사무심의 이빨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누적된 크고 작은 부상이 결국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짧게 혀를 찼다.
“쯧쯧, 애쓴다, 애써.”
제법 분투하고 있었지만 승냥이 떼처럼 달려드는 파사단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결국 몇 겹으로 에워싼 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파상 공세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사무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사무심에게 다가간 파사단 대원 한 명이 높게 칼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의 칼은 사무심을 베지 못했다.
턱.
어느새 사무심 앞을 막아선 범계위가 떨어지는 칼을 붙잡아 버렸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놀란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칼을 놓친 파사단원이 허공에 떠올라 한참을 날아갔다.
털썩.
바닥에 나동그라진 파사단원이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움푹 주저앉아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
주위에 차가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장내의 누구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특히나 사무심이 느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파사단의 공격을 직접 몸으로 겪어 본 만큼 누구보다 그들의 힘을 잘 아는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난입한 눈앞의 거구는 닭 모가지 비틀 듯 간단히 한 명을 죽여 버렸다.
그 압도적인 무위에 그저 아연할 수밖에.
이때 범계위가 업고 있던 초악량을 내려놓으며 당부했다.
“단 의원이 내공 쓰지 말라고 한 거 기억하슈.”
“저런 놈들을 상대로 내공은 무슨.”
명백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파사단원들이 살기를 일으켰다.
그 순간 그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각진 얼굴과 우람한 체구를 지닌 사십 대 후반의 장년인이었다.
“본인은 맹의 지시에 따라 파사단 삼 개조 통솔을 맡은 이 조장 팽무위라 하오.”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팽무위라 자신을 밝힌 장년인을 보았다.
그 순간 팽무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스산한 기분이 드는 섬뜩한 거한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귀하들은 어디의 고인들이신지?”
원래대로라면 무림맹의 행사를 방해하는 이유를 묻고, 그 대답 여하에 따라 경고와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상대의 존재감 앞에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팽가의 핏줄인가 보군.”
“그렇소.”
초악량의 말에 팽무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 일대의 패주로 군림하는 도가의 명문 세가.
그 성씨를 잇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당당한 태도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앞에 서 있는 서생 때문이었다.
처음엔 눈빛만 차가울 뿐, 그것만 빼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첫인상일 뿐, 곧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중압감이 주변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는 마치 산과도 같은, 혹은 바다와도 같은 안정감이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둘씩이나.
난데없는 고수의 등장에 팽무위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그때.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고가 일어났다.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건만 파사단원들이 두 사람을 향해 신형을 날린 것이다.
팽무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안 돼!”
뒤늦게 소리쳤지만 파사단원들에게 닿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팽무위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이곳에 있던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빛에 취해 불 속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처럼 본능적으로 달려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거구 사내의 손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흐릿한 손 그림자가 허공 위로 커다란 호선을 그어 가나 싶더니, 그 소름 끼치는 궤적이 자신의 수하들과 겹쳐졌다.
“컥.”
“커헉!”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
그 뒤로 자욱한 피 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차가운 눈빛의 서생도 바닥에 구르는 검 하나를 집어 들더니 파사단원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앞으로 찌르고 위아래로 그어 대는, 지극히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살기를 베어 문 검이 유백색 호선을 그릴 때마다 어김없이 그 검 끝에 누군가의 목이 걸렸다.
“……!”
비명조차 없었다.
고작 세 호흡.
팽무위를 제외한 모든 파사단이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에 팽무위는 참담함을 느꼈다.
일생 대부분을 칼 밭에서 굴러왔다 자부하는 그였다.
무공 역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범계위는 팽무위를 향해 다가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팽무위는 숨이 턱 막혔다.
무형의 기운이 심장을 움켜쥐는 기분.
무엇으로도 피할 수 없는, 눈앞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팽무위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왕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이곳에 온 목적만큼은 이뤄야 한다.
휙.
팽무위가 갑자기 신형을 돌려 사무심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츄릿!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한 줄기 강맹한 도기가 대기를 찢었다.
“……!”
이를 마주한 사무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처 대응할 틈이 없었다.
파사단을 상대하며 누적된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괴인들의 난입에 크게 당황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무심이 질끈 눈을 감았다.
하나 그렇게 사납던 도기는 사무심을 해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사무심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초악량이었다.
순식간에 짓쳐 든 사나운 도기가 어느 한순간 허무하게 흩어졌다.
기이한 각도로 누르고 잡아채는 초악량의 손을 따라 도기가 조금씩 와해하더니 종국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
팽무위는 기가 막혔다.
도기를 시전한 당사자가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귀신 같은 솜씨였다.
당금 강호에 도기를 맨손으로 와해시킬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팽무위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괴물!’
그 외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을 응시하는 얼음장 같은 눈빛, 그 앞에서는 어떤 각오나 결의도 소용이 없었다.
“초 형! 내공 쓰지 말랬잖수!”
“헛!”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팽무위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거구의 사내가 지척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팽무위는 황급히 칼을 들어 올렸다.
챙강.
질 좋은 강철을 제련해 만든 박도가 너무나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퍽!
“커헉!”
반대로 상대의 손은 너무도 간결하게 가슴에 틀어박혔다.
팽무위의 눈 위로 깊은 절망이 떠올랐다.
흉골(胸骨)을 부수며 파고든 수도(手刀)만으로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한데 그것으로도 모자랐던지 상대의의 수도가 더욱 파고들기 시작했다.
우드득.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을 으스러트리며 나아간 수도가 그대로 팽무위의 등을 부수며 뚫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