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0)
신마의선-300화(300/500)
신마의선 (300)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것 같은데요…….”
한때 정보 단체를 이끌던 능소밀인만큼 주광도귀와 관련된 악명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천하오절 중에 가장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강위룡이었다.
월령궁주 연옥상은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논외로 치고, 다른 나머지 세 사람은 그나마 대화라도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위룡은 예외였다.
괴팍하고, 고집 세고, 막무가내인 데다가 어디로 튈지 짐작할 수 없어 더욱 위험한 자.
마치…….
‘범 선배님 같잖아?’
그리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지는 능소밀이었다.
“그래도 그분이 만든 술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걸세.”
“그야 그렇겠지요.”
능소밀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악명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도원향의 명성이라면 그 활용 가치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을 어찌 상대해야할지…….”
“그저 하나만 명심하면 되네.”
“……?”
“그 어떤 내기도 절대 하지 말게.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말일세.”
“그거면 됩니까?”
“뭐, 일단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대답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능소밀은 이내 바짝 긴장하며 전면을 응시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두 사람을 향해 진지하게 조언했다.
“웃게. 괜한 시비에 휘말려 고생하기 싫으면.”
그 순간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능소밀과 소적산의 만면에 환한 웃음이 내걸렸다.
“수고 많았네.”
웃으며 건넨 사무심의 말에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장곡이 해남파에서 가져온 선물을 건넸다.
“해남파의 문주님께서 직접 챙겨 주신 선물입니다. 혼인식 준비에 애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하라 하셨고요.”
“조만간 답례를 해야겠군.”
선물을 받아 든 사무심이 이를 다시 능소밀에게 넘겼다.
그리고 일행 말미에서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강위룡을 향해 다가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위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너는?”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강위룡이 사무심을 빤히 응시했다.
오래전 사무심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전귀야와 주광도귀.
둘 다 명호에 귀신이 들어가는 만큼 그 만남이 좋게 풀렸을 리 만무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군?”
강위룡의 말에 사무심이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개심한 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쓰는 중입니다.”
“개심? 돈 귀신이 들러붙어 물불 가리지 않던 놈이?”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던 작자.
그랬던 사무심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강위룡은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곳이 저를 변화시켰지요. 부족하나마 제가 이곳의 총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사무심이 한쪽으로 비켜서며 능소밀과 소적산을 소개했다.
“저와 함께 이곳을 꾸려 가는 사람들입니다.”
“능소밀입니다.”
“소적산입니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는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던 강위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육선문의 나리시군?”
말이 좋아 나리지, 누가 봐도 비꼬는 기색이 역력한 태도였다.
직책이 직책인 만큼 능소밀은 관복을 입고 있었고, 그 점이 강위룡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역시 무림인인 만큼 관부의 인물이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적산이라 자신을 밝힌 놈의 무공은 기껏해야 뒷골목을 지배하는 순의방(巡衣幇)의 파락호 수준.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한 강위룡의 눈빛에 능소밀과 소적산이 쓴 입맛을 다셨다.
사무심이 나선 것도 그때였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신마상단을 소 아우에게 물려주고 관직에 올랐지만 능 아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상단을 키우는 게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소 아우 역시 단주직을 맡아 탁월하게 상단을 운영하고 있고요.”
“뭐. 그런가 보군.”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던지 사무심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럼 주조장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오자마자 바로 부려 먹을 심산이냐? 하긴 천하의 그 돈 귀신이 어디 가겠어? 개심이라니……. 지나가던 자라가 배를 뒤집고 웃을 일이지.”
“직접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단언컨대 이 정도로 완벽한 주조 설비를 갖춘 곳은 전 중원을 통틀어 이곳 뿐일 테니까요.”
그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강위룡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내기라도 할까요?”
사무심의 곁을 지키고 있던 능소밀과 소적산이 깜짝 놀랐다.
강위룡과 절대 내기를 하지 말라고 조언한 당사자가 먼저 내기를 언급하다니!
그런데 뜻밖에도 강위룡은 피식 웃고는 사무심을 재촉했다.
“흰소리 작작 하고 안내나 해라.”
“따라오시지요.”
강위룡을 안내해 멀어지는 사무심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능소밀과 소적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중심에서 일각 정도 떨어진 한적한 장원.
그 안에 들어선 강위룡은 세심하게 준비된 주조 시설을 둘러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심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외부에 제조법이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인부들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부득이한 경우 이곳에 상주하는 관리자를 통해 보고를 올리게 조치했습니다. 한 사람이 일련의 제조 과정을 알 수 없도록 철저한 분업을 통해 각자가 맡은 일만 수행하도록 지시했고요.”
사무심이 후원 쪽으로 강위룡을 안내했다.
“이곳의 우물은 매우 깊어 물이 맑고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물맛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량도 풍부하기에 술을 빚으시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물에 바가지를 던져 물을 길어 올린 강위룡이 물맛을 음미했다.
물이야말로 술을 빚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
“으음?”
강위룡의 눈이 번쩍 뜨였다.
중원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 물맛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누룩은 어느 것을 선호하시는지 몰라 각 지역의 모든 대국(大麴)과 소국(小麴)을 준비했습니다.”
누룩은 술의 뼈, 혹은 혼(魂)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요소.
강위룡도 평소 품속에 지니고 다니며 철저하게 관리하는 그만의 누룩을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곡물과 누룩을 섞어 당화하는 발효조와 술을 증류하는 목이 긴 도기, 완성된 술을 보관할 항아리까지.
어느 것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정도면 술을 빚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 모두 갖춰진 셈.
“짧은 시간에 잘도 이만큼 준비했군.”
강위룡의 성격상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칭찬이었다.
사무심 역시 이를 아는지라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무심이 준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조장과 가까운 곳에 마련된 강위룡의 거처 역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내부의 가구를 비롯한 집기와 이불까지.
하나같이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생 여기 살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흡족했던지 주위를 둘러보는 강위룡의 눈매는 어느새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으음?”
“저를 포함해 이곳에 머무는 사파인들 대부분이 평생을 부평초처럼 떠돌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 지금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했지요.”
“나도 그리될 것이라는 뜻이냐?”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 내키시는 대로 선배님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흥! 못 본 사이 상당히 건방져졌군?”
금세 까칠해진 강위룡의 눈빛을 사무심이 미소로 받아넘겼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자, 그럼 창고를 둘러보시겠습니까?”
사무심을 따라 창고로 향한 강위룡은 어마어마한 창고의 규모에 황당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넓게도 지어 놨군. 여기 이 모든 항아리에 도원향을 전부 채우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선배님께서 하시는 일에 일절 관여치 말라는 곡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 병만 만드셔도 되고, 아예 만들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선배님의 재량이니까요. 하나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그래도 어느 정도 수량은 확보하는 것이 도원향의 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도원향을 빚는 건 과정부터가 쉽지 않았다.
여느 술들과 달리 일반적인 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씨 누룩을 다른 누룩과 섞어 독특한 풍미를 지닐 때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도원향만의 독보적인 맛과 향은 사라지고 흔하디흔한 백주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거기에 발효나 증류 과정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
한 사람이 그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관리해야 하는 만큼 생산량 역시 한계가 뚜렷했다.
“제자를 들이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제자?”
“이미 도원향은 그 자체로 이미 그 어떤 술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명주입니다. 다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감히!”
발끈하던 강위룡이 이어진 사무심의 설명에 멈칫했다.
“도원향은 맛본 사람이 워낙 극소수라 여느 명주들이 선점하고 있는 위상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중원의 뛰어난 명주들과 비교를 통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양의 도원향이 필요합니다.”
“…….”
“도원향의 제조 과정을 굳이 홀로 감당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기술을 전수해 후인을 양성하고, 그들이 만들어 낸 도원향을 선배님께서 마지막에 검수하신다면 명성에 흠집이 갈 일이 없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강위룡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따지고 보면 천하의 명주라 불리는 술들도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해 세상에 널리 유통되며 유명세를 얻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디까지나 저는 선배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제자가 될 자들은 제가 선별해 모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다른 놈에게 제조법을 알려 줄 생각이 없지만…….”
말끝을 흐리던 강위룡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생각은 해 보마.”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무위의 음식들이 훌륭하니, 식사는 어디서든 하셔도 만족하실 겁니다. 필요하신 건 언제든 신마상단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는 사무심을 향해 강위룡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확실히 많이 변했군.”
“그렇습니까?”
사무심이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나 강위룡에게는 더없이 낯설기만 했다.
그가 기억하는 사무심은 지금 같은 온화함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내가 준 술은 다 마셨나?”
강위룡의 물음에 사무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악착같이 살아 냈던 당시의 기억 때문이다.
지옥 밑바닥을 헤매던 아귀처럼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던 와중, 강위룡이 건넸던 도원향은 얼마간은 지독한 현실을 잊게 해 주었다.
“날 제외하고 처음 도원향을 맛본 놈이 너라는 건 알고 있느냐?”
“물론이지요. 그래서 저 역시 누구보다 선배님을 다시 뵙고 싶었습니다.”
사무심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내가 아닌 그 이름 모를 아이들에게 해라. 나는 단지 내기에 졌을 뿐이니까.”
수전귀야로 살던 시절에 사무심은 중소 상단 하나를 무너트린 적이 있었다.
과도한 빚을 지우게 만든 뒤, 그들이 재기할 기회도 주지 않고 산산이 쪼개어 다른 상단과 전장에 팔아 치워 채권을 회수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졸지에 상단을 잃은 단주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했다는 점이었다.
뒤늦게 이를 안 강위룡이 직접 사무심을 찾아 나섰다.
진씨 성을 쓰던 상단주와 강위룡 사이의 친분 관계를 사무심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강위룡에게 붙잡힌 뒤였다.
하나 막상 사무심을 찾아내고도 강위룡은 갈등했다.
사무심이 돌보고 있던 고아들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위룡은 사무심에게 내기를 걸었다.
아이들에게 물어 단 한마디라도 사무심에 관한 악행이 드러날 경우 지체 없이 목숨을 거두겠다는 내용이었다.
하나 그 내기는 사무심이 이겼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눈물범벅이 되어 사무심을 살려 달라 매달렸기 때문이다.
결국 내기에 진 강위룡은 도원향 한 병을 사무심에게 넘기는 것으로 은원을 마무리 지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어찌 되었나?”
“다들 흩어졌지만 잘 살고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강위룡을 뒤로한 채 사무심이 돌아섰다.
멀어지는 사무심을 바라보는 강위룡의 눈 위로 더없이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