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2)
신마의선-302화(302/500)
신마의선 (302)
아무리 능소밀을 높게 평가한다 하나 이는 감히 일개 신하가 입에 담을 사안이 아니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병부상서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들고일어났다.
“폐하!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옵니다!”
벌 떼처럼 온갖 이유를 대며 반대하는 대소 신료들의 간언에 황제는 오히려 생각이 달라졌다.
능소밀 정도나 되는 자가 이런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을 터.
“그만.”
황제가 손을 들어 대신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곤 흥미로운 눈으로 능소밀을 응시했다.
“그리 말하는 이유는?”
“바로 혈운사를 토벌하기 위해서입니다.”
“혈운사?”
능소밀은 본격적으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저들은 교활하고 민첩하여 지금까지 완벽한 토벌이 불가능했사옵니다. 군이 직접 나서는 순간 그대로 숨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단순한 도적 떼라 하나 언제든 북방 이민족의 첨병이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저들만큼 장성의 약점과 침입 경로에 밝은 자들은 없습니다. 미래의 화가 될 것이 확실한 저들을 확실히 뿌리 뽑지 않는 한, 천하의 안위는 언제나 위태로울 것입니다.”
“가욕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면 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냐?”
“소신과 연이 닿은 무림인들을 활용해 반드시 성공시키겠나이다.”
“하면 애초부터 군사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군?”
“예. 이는 어디까지나 신마상단의 이름으로 행해야 할 일이옵니다.”
“어째서지?”
“폐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무림인들의 일로 한정 지어,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 역시 오롯이 저희가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황제 입장에서는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폐하, 신 호부상서 양소가 감히 한 말씀 올리고자 하오니, 부디 윤허해 주소서.”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부상서가 정색하며 간언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일뿐더러, 공평한 처사도 아니옵니다. 어찌 한 상단에게만 그와 같은 특권을 허한단 말입니까? 혈운사 토벌 역시 일개 상단에 맡기기에는 너무 중한 일이옵니다.”
황제는 대답 대신 능소밀을 바라봤다.
능소밀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반대하고 나선 이가 조정의 재정 담당인 호부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을 지지하는 이부와 같은 노선이라 들었는데?
하나 황제를 앞에 두고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능소밀이 싸늘하게 받아쳤다.
“그럼 직접 하시든가요.”
“뭐라?”
일개 감찰어사 따위가 이처럼 오만불손하게 나올 줄 몰랐던지 양소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능소밀이 그를 몰아붙였다.
“능력이 있다면 진즉 나서 해결했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사안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나서지 않았다는 건 폐하에 대한 불충이 아닙니까?”
“가, 감히!”
벌게진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호부상서.
반대로 여유로운 능소밀을 번갈아 보던 황제의 얼굴 위로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를 통해 신마상단이 바라는 것이 있을 테지? 원하는 것을 말하라. 교역권의 독점인가?”
신마상단이 가욕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면 그만큼 서역과의 교역이 활발해질 터.
결과적으로는 봉쇄했던 비단길이 다시 열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능소밀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교역이 자유로워진다면 분명 신마상단도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더 큰 계획을 위한 발판일 뿐, 일개 상단에게 독점적 지위를 허락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 큰 계획?”
황제로서는 혹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능소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역과의 교역이 활성화되면 불합리한 조공 무역을 폐지할 수 있사옵니다.”
능소밀의 논리는 간단했다.
교역에 필요한 호위와 역참, 물품의 보관 및 운송 등에 이민족을 활용하면 그들에게도 이익이 배분될 터.
그들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조공 무역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다.
반대로 조정 역시 손해를 감수하고 조공 무역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교역 과정에 참여하여 안정적인 이익을 얻게 되는 부족과 그렇지 못한 부족은 자연스럽게 대립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하나의 단일 세력으로 규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단과 우호적인 부족을 통합해 조정의 친화 세력으로 끌어들인다면 향후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부족이 장성을 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견제할 것이옵니다.”
“옳거니. 물욕을 이용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인 게로군?”
황제가 탄성을 터트리자 이번엔 형부의 관리들이 바로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 허락하셔서는 아니 될 일이옵니다. 저 논리대로라면 일개 상단이 장성 너머에서 사사로이 세력을 일구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조공 무역을 통해 저들을 다스리는 것이 정도이며 훗날의 병폐를 막을 수 있사옵니다.”
그 말을 능소밀이 받아쳤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십시오.”
사실 이 자리에서 능소밀이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황제뿐이었다.
그 외의 문무백관은 그 어떤 재상이라 할지라도 안중에 없었다.
“우호 세력을 키워 조정이 그들을 직접 관리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하나 그런 전례는 남길 수가…….”
“전례라면 이미 있을 텐데요.”
“……?”
“당장은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협력 관계로 시작할 것이지만 결국에는 여진 지역에 설치된 건주위(建州衛)와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반대하던 대신은 깜짝 놀랐고, 황제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비로소 능소밀이 의도하는 바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몽골과 여진.
북방을 위협하는 기마 민족을 회유하는 정책을 병행한 조정은 정규군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군을 관리해 왔다.
바로 기미위소(羈縻衛所)라 불리는, 편입된 이민족으로 구성된 별도의 북방군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을 복속시켜 별도의 위소 체제에 편입하고 북방의 방어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조정에 종속되지 않는 외이위소(外夷衛所).
그와 같은 성격을 지닌 비정규군을 키워 북방 수비를 두껍게 만들겠다는 계산이 분명했다.
단지 가욕관을 열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것만으로도 황실과 조정이 얻는 이익이 상당했다.
상단이 얻는 이익을 우호적인 이민족에게 배분함으로써 조공 무역을 통한 손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고, 이를 통해 부족들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었다.
또한 별도의 군을 투입하지 않고도 장성 너머의 일차적 수비군을 주둔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 상단을 따라 서역 상인들 역시 자연스럽게 유입될 터.
얼마 전 허가한 무위의 유흥 시설을 통해 쏟아져 들어올 막대한 세금을 통해 세수 확보 역시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황제의 입장으로서는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었다.
“혹 그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 짐의 천하를 위협할 가능성은 없느냐?”
교역을 통해 얻은 이익이 자칫 중원을 위협하는 이민족의 힘을 키워 주게 되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하나 능소밀은 만에 하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미 대답을 준비한 상태였다.
“그때는 다시 가욕관을 굳게 닫아걸면 그만이옵니다.”
호쾌하지만 명확한 대답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단순하지만 실로 놀라운 계책이로다. 하나 호부상서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신마상단에게만 특권을 허용한다면 그동안 중원을 지탱해 온 수많은 상단들은 불만을 품게 될 터. 이는 짐이 추구하는 형평성에 위배된다.”
능소밀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소신은 오직 폐하의 뜻을 따를 뿐이옵니다. 그저 신마상단이 가욕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만 허락해 주소서.”
“그 말은 다른 상단과의 경쟁도 마다치 않겠다는 뜻인가?”
“기꺼이 감내하겠나이다. 전심전력으로 폐하께 충성하는 곳은 신마상단밖에 없다 감히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능소밀이 쐐기를 박았다.
“소신은 오직 폐하의 신하일 뿐, 더 이상 신마상단을 이끄는 단주가 아니옵니다. 제가 상신한 계책 또한 어디까지나 폐하를 위한 충심의 발로라는 것만 알아주소서.”
입에 발린 말에 황제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떡을 옮기다 보면 손에 콩고물 정도야 묻는 법.
황제가 병부상서와 호부상서를 향해 물었다.
“혹 다른 의견이 있는가? 아니면 충정교위가 제시한 계획을 뛰어넘는 의견을 개진할 자는? 말하라. 짐이 듣겠다.”
“…….”
“…….”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하는 대소 신료의 모습에 황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대들이 받아 가는 녹봉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군.”
그렇게 에둘러 질책한 황제가 능소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허하노라.”
* * *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아직 퇴청하려면 아직 반 시진 정도가 남아 있었지만 호부상서는 서둘러 궁을 나섰다.
북경 인근에 마련된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는 서둘러 관복을 벗었다.
대신 낡은 평복과 초립으로 신분을 감춘 채 급히 밖으로 나섰다.
혹시 모를 시선을 피해 외진 골목길로 이동하길 잠시.
외곽 지역의 허름한 다루에 도착한 그는 곧장 내부에 마련된 밀실로 들어섰다.
그곳에 먼저 도착하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화의 중년인이 급히 일어나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미안하네. 기다릴 것 같아 서둘렀네만 좀 늦었군.”
“아닙니다.”
웃으며 고개를 저은 화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금일 폐하께서 주재하신 회의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으음…….”
화의 중년인.
명실상부 중원 제일 상단인 금룡상단의 주인이자 전설적인 부자인 석숭 이후 가장 막대한 금권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진 금대룡의 물음에 양소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 불안한 표정에 금대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폐하께서 허하셨네.”
“……!”
“놈의 세 치 혀는 정녕 무섭더군. 병부와 더불어 나름 최선을 다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으나…….”
“천하의 상서 대인께도 무서운 것이 있었습니까?”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던 양소가 멈칫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양소가 면목 없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금대룡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닥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신마상단이 밀무역을 통해 사업의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로써 신마상단은 정식으로 서역과의 교역권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될 것은 자명했다.
가뜩이나 최근 신마상단이 급격히 성장하며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
이대로라면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
과거 정화의 대원정 시절 관부와 잇닿은 인연을 기반으로 지금의 금룡상단을 일궈 낸 선대의 예만 보아도 해외 교역이 지닌 파급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이대로라면…….’
금대룡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금껏 신마상단을 견제하기 위해 조정의 대신들에게 쏟아부은 돈이 얼마던가.
그런데도 야금야금 자신들의 상권을 잠식해 들어오는 신마상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그 흐름에 편승하는 수밖에…….”
심상치 않은 금대룡의 분위기에 양소가 주춤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저는 상인입니다.”
이어진 금대룡의 말에 양소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양소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오랜 세월 정치에 몸담아 온 그의 감각이 이 순간 맹렬히 경고하고 있었다.
은근한 협박이었지만 대놓고 위협하는 것보다 더욱 소름 끼쳤다.
양소가 황급히 외쳤다.
“바, 방법이 있네!”
“무엇입니까?”
“가욕관을 개방하더라도 신마상단에게만 독점적인 권한이 부여된 건 아닐세.”
“그 말씀은?”
“금룡상단도 토벌단을 꾸리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