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3)
신마의선-303화(303/500)
신마의선 (303)
“으음…….”
금대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책상물림만 하는 관료들이 무림의 사정에 밝을 리 없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그쪽에 얼마나 대단한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는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한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굳이 그들과 대립할 이유가 있는가?”
“……?”
“그냥 적당한 모양새만 갖추고 교역권만 얻어 내면 그뿐 아닌가?”
금대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신마상단과 마찬가지로 혈운사 토벌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금룡상단 역시 가욕관을 드나들 수 있었다.
‘중원은 넓다.’
조금만 자세히 찾아봐도 정파나 사파에도 속하지 않은 중도의 고수들이 즐비한 상황.
금룡상단의 재력으로 그들을 끌어모아 적당한 모양만 갖춘다면?
게다가 서역의 상인들이라 해서 중원의 상인과 기질 자체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험한 여정을 거친 만큼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신마상단보다 높은 가격을 쳐준다면 굳이 자신들과 거래를 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어진 양소의 설득이 금대룡의 마음을 움직였다.
“저들이 대호를 잡는 동안 늑대 세 마리를 잡으면 그만 아닌가? 호랑이나 늑대나 사나운 맹수임은 마찬가지. 어차피 관련 보고서는 우리 호부의 손을 거칠 테니 중간에 단어 몇 개만 고치면 폐하께 상신하는 보고서에는 금룡상단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될 걸세.”
한마디로 저들이 차려 놓은 상에 젓가락만 올리라는 뜻이었다.
“위험한 건 그들에게 맡기고, 딸려 오는 이익만 취하면 된다는 뜻이군요.”
“바로 그걸세! 이왕이면 몇 놈 생포도 하게. 조무래기에 불과하더라도 우리가 놈을 거흉거마(巨凶巨魔)로 만들어 주겠네.”
금대룡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 정도라면 그동안 찔러 준 돈값은 하는 셈.
“가욕관 통행 허가는 내가 반드시 받아 내 주겠네. 신마상단과 동일한 조건으로 말일세.”
대답을 미루며 시간을 끌던 금대룡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서 대인만 믿고 있겠습니다.”
* * *
무위 동쪽.
사파인들 상당수가 거주하는 주택가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 찾아왔다.
“여보, 식사하세요.”
산처럼 쌓여 있는 장작을 쪼개며 겨우내 쓸 땔감을 마련하던 장곡은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웃으며 돌아섰다.
“내 이것만 마저 정리하고 곧 가리다.”
구유음소라는 명호가 무색하리만치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
과거의 그를 알던 무림인이 보았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모습이었다.
다시금 도끼를 들어 장작을 내려치려는 장곡의 모습에 그를 부르러 온 아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장곡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어서요. 탕이 식는단 말이에요.”
“허허, 알았소. 알았어.”
마지못해 아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선 장곡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식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탕이 담긴 그릇을 들어 후루룩 마시자 얼어 있던 몸이 단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때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묻는 아내의 모습에 장곡이 웃음을 터트렸다.
매번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바라는 어린 아내의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것이다.
“내 평생 먹어 왔던 그 어떤 음식보다 훌륭하오.”
“피, 거짓말.”
“정말이오. 맹물에 소금을 탄 국이라도 부인이 만들어 준다면 내게 최고의 진미라오.”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던 장곡의 아내가 이내 자신도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음식을 들면서도 장곡은 지금의 행복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녀와 부부지연을 맺은 지 일 년째.
언젠가 행패를 부리던 서역 상인으로부터 그녀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것이다.
한평생 외롭게 도산검림을 떠돌다 늘그막에 가정을 꾸린 장곡으로서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문득 아내와 시선이 마주친 장곡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다 불현듯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아내를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 그러시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꼭 가셔야 하는 건가요?”
장곡이 쓰게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것 때문이었소?”
“해남도를 다녀올 때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서요. 아마도 쉬운 여정은 아닐 것 같아서…….”
“하지만 어쩌겠소? 곡주님께서 사람이 필요하신 상황이오. 그분께 큰 은혜를 입은 내가 당연히 한 팔 거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자신이 이곳 무위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부상을 벗어나 무공을 회복한 것도 모두 단악선 덕분이었다.
단악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람다운 삶을 누려 보지도 못했을 터.
그 마음은 그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의원님 덕분에 이곳 무위는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당신이 더 중요해요. 듣자니 상당히 위험한 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어요?”
“걱정 마시오, 부인. 나 장곡이오.”
“하지만…….”
눈에 띄게 불룩해진 아랫배를 감싸며 말끝을 흐리는 아내의 모습에 장곡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반드시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리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약속하시는 거죠?”
“물론이오.”
장곡이 아내의 손을 맞잡으며 안심시켰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장곡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장곡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매번 손을 흔드는 아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 것인지…….’
새삼 무림을 떠돌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는 그였다.
때로는 은원에 얽매여, 때로는 살기 위해 무수한 피를 손에 묻혀 온 그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내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장곡은 서둘러 신마상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 씨! 이거 하나 드시오!”
길거리에서 좌판을 운영하던 행상 한 명이 방금 쪄 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내밀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들어갈 곳이 없소. 아내가 차려 준 진수성찬을 실컷 먹고 나선 참이라오.”
“오! 부럽구려. 역시 신혼은 신혼이군. 난 아침 얻어먹은 것이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
그와 나란히 선 다른 행상이 그 말을 받았다.
“이 사람아,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난 오늘 아침부터 맞고 나왔어.”
“왜? 돈 못 번다고?”
“아니. 멀쩡히 눈 뜨고 일어났다고.”
왁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행상들과 인사를 나눈 장곡이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에게 붙들려 버렸다.
“안녕하세요, 장곡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가 오늘 저녁에 아주머니랑 식사하러 오시래요! 오리 잡는다고!”
신이 나서 떠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를 재빨리 붙잡아 일으켜 세운 장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석아, 앞은 보고 다녀야지.”
“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저들끼리 깔깔대며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는 아이들.
그 뒷모습을 보며 장곡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장곡은 지금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곡주님은 내가 지킨다.’
그것이 곧 무위를 지키는 길이었고, 자신을 둘러싼 저들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었다.
잠시 후 신마상단의 본단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사파인들이 앞다투어 장곡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장 형 오셨소?”
이미 장곡은 무위 안의 사파인들 사이에서 단악선의 열혈 추종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무공으로 따지자면 곡운경과 비교해 살짝 밀리지만 인망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파 무림인들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자네들도 새외 토벌단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것인가?”
장곡의 물음에 사파인들이 저마다 투지를 드러냈다.
“곡주님을 적대하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입니다.”
“무위재인(武衛在人)! 이 기회에 이곳 무위야말로 진정한 무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을 전 중원에 알릴 것입니다.”
저마다 포부를 드러내는 사파인들의 모습에 장곡은 새삼 묘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세상에 찌들고 지쳐 있던 저들이 지금은 그 어떤 협사 못지않은 눈빛과 기개를 지니고 있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불신하고 적대하던 과거의 모습 역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사파인들이 속속 신마상단 앞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어나 백 명에 육박하는 인원들을 보며 상단을 관리하던 소적산의 수하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토벌단의 규모는 스무 명 정도라 들었는뎁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단 앞에 도열해 있던 사파인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난 반드시 이번 토벌에 참여할 걸세. 그러니 나보다 약한 놈은 물러서게.”
“그렇다면 나 염 모가 빠질 수 없겠군. 무공이나 명예로 보아 당연히 내가 가야지.”
“흥! 지난번 나한테 돈 빌려 가고 갚지도 않은 놈이 명예는 무슨! 그리고 무공으로 따지면 네가 제일 꼴찌야.”
“뭐라고! 너 나와. 당장 손속을 겨뤄 보자.”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둘러보며 장곡이 쓴웃음을 흘렸다.
“다들 진정하게. 필시 쉽지 않은 여정이 될 테니 무엇보다 무공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네.”
평소라면 장곡의 체면을 보아 적당히 양보하며 물러섰을 그들이었다.
하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장 형! 우리 손은 손도 아니오? 이번에는 나도 꼭 갈 거요!”
“난 해남도에 가는 거 양보했잖아! 이번에는 내 차례야!”
이유 불문하고 힘을 보태러 온 이상 어느 누구 하나 쉽게 물러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과열된 분위기는 험악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좋아! 그냥 한판 붙어! 살아남은 사람이 가면 되겠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모처럼 마음잡고 착하게 살아 보려 했더니!”
흉흉한 눈빛을 드러낸 중인들의 모습에 장곡이 내심 한숨을 흘렸다.
최근 들어 자주 깜박하곤 했지만 결국 이 자리에 모인 놈들은 어쩔 수 없는 사파 놈들인 것이다.
수하의 보고에 한 사람이 서둘러 달려온 것도 그때였다.
신마상단의 책임자인 소적산이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아무리 막 나가는 사파인들이라 할지라도 신마상단의 단주인 소적산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지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가까스로 소요를 가라앉힌 소적산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십시오. 곡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적산을 통해 단악선이 언급되자 언제 살기를 피워 올렸냐는 듯 사파인들이 잠잠해졌다.
고분고분 소적산을 따라 신마의가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장곡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 그 시각.
단악선은 신마의가에서 환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좋네요. 이런 방식이라면 환자에게 확실히 무리가 덜 가겠어요.”
새로운 화상 치료법을 연구해 첫 환자에게 적용한 젊은 의원이 단악선의 칭찬에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곡주님의 말씀을 들으니 고민으로 지새웠던 밤들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칭찬이라니요. 감탄인데요.”
이후에도 단악선은 의원들과 함께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치료 방법과 예후 관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확실히 풍진성과 주초운이 합류한 이후 의원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정도면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의가 운영에는 문제가 없을 터.
이때 아두가 단악선에게 달려와 사파인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회진을 계속하는 의원들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신마의가의 후원으로 향했다.
단악선이 나타나자 사파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정중히 예의를 갖추었다.
단악선은 우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미 아두를 통해 저간의 상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다들 저와 뜻을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토벌단의 성격상 대규모로 인원을 운용할 수 없어요. 이번 일의 적합성을 가려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발 과정을 거쳐야만 해요.”
서로 눈치를 살피던 사파인들이 선선히 수긍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악선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전 무기를 좀 가져오겠습니다. 집에 두고 와서.”
“전 잠시 운기행공을 좀…….”
당연하다는 듯 비무를 준비하는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발 기준은 무공의 고하가 아니에요.”
“예? 그럼 어떻게……?”
“우선은 건강 관리와 부상 유무를 확인할 거예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사파인들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자기 몸을 아끼고 지키는 사람이라야 돌아올 때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 어제 과음했는데…….”
“제 발목은 살짝 삔 것뿐입니다. 제가 익힌 무공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변명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아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두 형, 꼼꼼히 확인해 주겠어? 지난번 의료 기록하고 대조해서 주의 줬던 부분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중점적으로 확인해 줘. 부탁할게.”
“네. 확실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한 진료라면 이제는 어느 의원 못지않은 실력을 지니게 된 아두였다.
웃으며 다가서는 아두의 모습에 몇몇 사파인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반면 몇몇 사파인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당연히 장곡은 전자였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총각들과 달리 자신은 살뜰하게 챙겨 주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