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304)
신마의선-304화(304/500)
신마의선 (304)
능소밀을 선두로 한 무위 일행이 가욕관에 도착하자 그들을 마중 나온 인물이 있었다.
삼엄한 군기를 과시하는 일단의 군세.
그 앞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이곳 가욕관의 책임자인 유격장군 시조경이었다.
“어서 오시게.”
시조경은 처음보다 한결 정중한 태도로 능소밀을 맞이했다.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황제는 능소밀의 품계를 한 단계 승품시켰고, 이제는 종육품의 경력(經歷)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단지 품계 때문이 아니라도 시조경은 능소밀을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단한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언변으로 황제의 허락을 얻어 낸 당시의 위용은 다시 생각해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과 한배를 탄 상태.
자신의 출세가 그에게 달려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으음?”
능소밀을 따르던 일행들을 확인한 시조경이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평생을 군에 몸담아 온 그는 황궁의 노회한 대신들과 달리 감정을 숨기는 것에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선발대의 규모가 적구려.”
능소밀은 웃으며 대답했다.
“선발대가 아니라 본대입니다.”
시조경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본대? 겨우 이 인원으로 혈운사를 치겠다는 말이오?”
못 미더운 기색이 역력한 시조경의 모습에 일행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설화였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
시조경의 눈이 더없이 크게 홉떠졌다.
설마 토벌단에 여인이 포함되어 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미모라니!
돌로 만든 와불(臥佛)도 깜짝 놀라 바로 앉을 만큼 뛰어난 미태였다.
그 순간 시조경은 돌연 얼음 굴에 빠진 것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큭!”
뒤늦게 그것이 눈앞의 여인이 뿜어내는 기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내부가 크게 진탕된 상태.
창백해진 안색으로 비틀거리던 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군문에 몸담은 이상 소위 고수라는 자들을 적지 않게 보아 온 그였다.
하나 눈앞의 여인이 지닌 존재감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슬쩍 나서 시조경과 한설화 사이를 가로막았다.
“참아, 한 누이. 일단은 우리 편이야.”
전신을 찍어 누르던 압박감이 씻은 듯 사라지자 시조경은 비로소 거친 숨을 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이자도 저 여자 못지않은 괴물이군!’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깊이가 담긴 눈빛.
그 자체로 형안(炯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더구나 상대가 지닌 기세는 인간의 그것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마주한 것 자체로 전율스러운 인물.
비로소 시조경은 토벌대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하나 범상치 않은 자가 없었다.
능소밀이 웃으며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전력이니.”
시조경이 고개를 끄덕여 섣불리 판단한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럼 안으로 드시지요.”
한결 공손해진 시조경이 직접 안내를 자처했다.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무위의 무인들은 처음 접하는 가욕관의 규모에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래전 해자로 쓰였다는 커다란 연못인 구안천(九眼泉)을 지나 외성 입구에 들어서자 몇 겹으로 축조된 내성의 성곽과 지붕이 보였다.
창공을 향해 날아갈 듯 솟아 있는 뾰족한 처마.
오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훈련하는 장소와 숙소를 지나 내성에 들어서자 빽빽하게 자리 잡은 흉벽과 망루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동문으로 들어서자 또 하나의 내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제일웅관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문을 통과하자 광화문(光化門)이라 적혀 있는 또 다른 대문이 나왔다.
이곳만 지나면 본격적인 초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열어라!”
시조경의 지시가 떨어지자 몇 마리의 우마가 밧줄을 끌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 밧줄과 연결되어 있는 광화문이 육중한 소리를 터트렸다.
얼마나 무거운지 문이 완전히 열리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사람의 힘으로 이런 건물을 쌓아 올렸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단악선의 탄성에 시조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혈운사의 토벌 임무에 투입되기에는 너무 앳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벽을 살피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한 것도 그때였다.
“성벽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재질이 다른 것 같은데요?”
시조경이 그 연유를 설명했다.
“기단이라 할 수 있는 아랫부분은 반듯한 석재를 세 겹으로 쌓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판축토성(版築土城)을 쌓아 지금 같은 철옹성을 구축한 것이다.”
“판축토성이요?”
“황토에 볏짚과 찹쌀 풀 등을 섞어 거푸집에 다져 넣어 굳힌 뒤,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지.”
단악선은 비로소 성벽 윗부분이 황토빛을 띠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설명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기로는, 토성을 쌓고 난 후 일정 거리에서 화살을 쏘아 화살촉이 박히면 그 토성을 쌓은 병사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 성벽을 공고히 다졌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견고한 것도 이 때문이고.”
단악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을 갈아 넣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장성 건축과 관련해 유독 슬픈 전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 데에는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터엉.
이윽고 굉음과 함께 광화문이 활짝 열렸다.
일행과 함께 가욕관 밖으로 나선 단악선의 입에서 경탄성이 터져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초원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다는 표현의 일망무제(一望無際).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활짝 열려 있는 광활한 초원은 그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게다가 남쪽을 바라보니 만년설에 쌓인 산맥이 하늘을 가릴 듯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천산산맥과 잇닿아 있는 기련산(祁連山)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에 시선을 빼앗기던 것도 잠시.
단악선이 시조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군문에서 수집했던 정보들을 건네주시겠어요?”
“으음?”
시조경의 얼굴에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물론 처음부터 제공하기로 약조한 정보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토벌대의 책임자만이 열람 가능한 기밀 사항.
당황한 시조경을 향해 능소밀이 입을 열었다.
“그분이 이번 토벌대를 이끌고 계시는 책임자입니다.”
“……!”
놀란 시조경이 눈을 껌벅였다.
기껏해야 심부름 같은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일꾼 정도로 생각했던 아이가 이번 일의 책임자라니.
하지만 능소밀과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단순한 농담이 아닌 게 확실했다.
“여, 여기 있소.”
시조경이 봉서를 꺼내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감사해요.”
웃으며 서류들을 품 안에 갈무리한 단악선이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명심하세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에요.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 절대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예. 곡주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화와 초악량.
그리고 정중하게 대답하는 무인들의 태도가 시조경은 여전히 얼떨떨하기만 했다.
이런 괴물들을 이끄는 사람이 고작 저런 아이라니.
능소밀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들 무사히 돌아오시길.”
“다녀올게요.”
능소밀의 배웅을 받으며 단악선과 그 일행은 시조경이 제공한 군마 위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가욕관을 나서 이동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쿠웅.
멀리서 들려온 봉문 소리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말을 타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고삐를 움켜쥔 채 안장 위에서 위태롭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단악선.
그 모습을 확인한 초악량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등자(鐙子)에 건 발에 체중을 싣고, 보이지 않는 의자에 걸터앉았다고 생각하려무나. 그럼 금방 적응될 게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툴툴대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 자식이? 똑바로 안 걸어?”
“워워! 그 방향 아니야!”
주위를 둘러보던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말에 경험이 없는 건 비단 단악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한설화는 제법 능숙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깨닫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차라리 말을 업고 달리지 그러냐.”
멈칫거리며 뻣뻣하게 걸음을 옮기는 말.
발굽 아래 새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보는 순간 한설화를 태운 말이 겁에 잔뜩 질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
한설화는 애써 못 들은 척 초악량의 시선을 외면했다.
고작 말을 타는 데 막대한 내공을 쏟아붓는 것이 그녀도 내심 민망했던 것이다.
* * *
단악선 일행을 배웅한 뒤 무위로 돌아온 능소밀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여차하면 추가 병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예비대를 구성하는 한편, 추가 물자와 비상 연락망을 수시로 점검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불시에 어떤 문제가 터질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마상단과 인근 위소, 그리고 개방을 비롯한 정파와 완벽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던 도중.
뜻밖의 인물이 그에게 접근해 왔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쌍탑사가 내다보이는 주루에서 좋은 술이 왔습니다.”
쌍탑사라 불리는 영조사가 위치한 곳은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였지만 능소밀에게 그곳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오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온 흑점의 산서지부가 바로 그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술이 왔다는 건 흑점에서 만나기를 원한다는 뜻.
능소밀은 곧바로 흑점의 은밀한 연락소를 병행하고 있는 무위의 기루로 갔다.
이화루라는 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30대 사내가 그를 내원으로 안내했다.
“갑자기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내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능소밀을 보자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습니다.”
총관으로 신분을 위장한 오십 대 장년인 고벽운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고벽운 옆에 또 다른 인물이 앉아 있었기에 능소밀이 자리에 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이분을 소개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이 저를 대신해 능 대협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능소밀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혹시 죽을 병 걸리셨소? 잘하시다 왜 갑자기?”
“저희 조직 내부의 일인지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부디 해량해 주시길…….”
“흐음. 이거 아쉽습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동의 없이 책임자를 교체한 흑점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라 해서 왜 모를까.
“죄송합니다. 하나 이분의 능력이 저보다 훨씬 탁월하니 지금보다 훨씬 능 대협을 수월하게 보조할 수 있을 겁니다.”
“호오, 꽤나 자세하게 아시는군요?”
“네? 그게 무슨…….”
의아해하던 고벽운이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멈칫했다.
“흑점은 철저한 점조직 아니었소?”
“……!”
“그 말인즉 저 사람이 당신의 상관이라는 의미로 들리는데.”
이때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당황한 그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삼십 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언뜻 유약해 보이나 눈빛에서 느껴지는 예기가 범상치 않은 자였다.